출판사 리뷰
2014년 법정 추념일로 지정된 제주4·3. 그러나 제주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평화의 섬 제주에서 일어난 끔찍한 역사를 모른다. 심지어 제주 도민들조차 쉬쉬하며 지금껏 지내왔다. 도대체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제주에 사는 작가 3명이 3년 동안 공들여 작업한 이 책은 제주 4·3사건을 최대한 객관적 시각으로 조명해 청소년부터 모든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4·3사건의 전개 과정에 따라 4·3을 겪은 어린이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여섯 개의 픽션에 담았고, 그 뒤에 ‘왜?’라는 질문과 함께 사건과 관련한 자세한 정보를 논픽션으로 담아냈다. 이 책을 통해 기억을 공유하고 진실을 규명하는 작업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더는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는 무엇인지 묻고 있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한국 현대사의 슬픈 비극을 모르고 있을까?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4·3은 왜?』는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한 청소년소설 작가 신여랑과 제주에서 나고 자라 활동하고 있는 동화작가 오경임, 제1회 4·3평화문학상 시 부문을 수상한 현택훈 시인이 함께 힘을 모아 3년 동안 작업한 책이다. 신여랑 작가가 제주에 정착하면서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제주4·3이었다. 그에게 4·3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 그 자체였다. 제주 올레, 사려니 숲길을 비롯해 제주도는 해마다 1200만 명이 찾는 세계적 휴양지로 자리 잡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는 등 그야말로 ‘평화의 섬’이지만 그 속엔 한국 현대사의 슬픈 비극이 숨어 있다. 신여랑은 오경임, 현택훈에게 전문가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이 땅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을 위한 제주4·3 책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당연히 흔쾌히 같이 작업할 줄 알았던 오경임, 현택훈은 한참을 머뭇거리다 힘든 결심 끝에 뜻을 모았다. 그만큼 제주인들에게 4·3은 지금까지도 트라우마 그 자체다. 오경임 작가는 4·3을 대학(제주대 국문과)에 들어가서 선배들과의 학습을 통해 처음 알았고, 현택훈 작가는 큰고모 가족이 4·3때 목숨을 잃었지만 친척들 중 어느 누구도 4·3에 관해 말을 하지 않았다 한다.
제주 4·3사건에 관한 공식적인 정의는 2000년 1월 12일 공포된 4·3특별법에 의해 작성된 『제주 4·3사건 진상 보고서』에 나온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독 선거)·단정(단독 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 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본문 155쪽)
한마디로 제주4·3은 7년 7개월 동안 제주 도민 수만 명이 학살당한 제노사이드다. 하지만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4·3은 지금껏 폭동, 반란, 항쟁 등 다른 이름으로 명명돼왔고, 현재는 그냥 4·3사건으로 통칭된다. 지난해 제 66주년 4·3 희생자 추념식은 첫 법정 기념식으로 치러졌지만,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제주4·3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끔찍함이나 비극보다는 제대로 된 진실 규명을 통한 화해와 상생이다. 이 책 역시 여기에 초점을 맞춰 기획되었고, 청소년들과 함께 평화와 인권을 생각해보고자 마련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4·3의 잔혹함, 개인과 특정 집단의 단죄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청소년들에게 두려움과 공포, 증오가 아니라 평화와 인권의 고귀함을 말하고 싶었다. 무엇이 그것을 파괴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지킬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청소년의 시선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담으려 애썼다. -‘기획의 말’에서(10쪽)
제주 4·3사건을 이해하는 방법 신여랑, 오경임, 현택훈은 4·3을 살아낸 아이들을 불러낸다. 4·3사건의 전개과정에 따라 1947년 제 28회 3·1절 기념 제주도 대회와 3·10 민관 총파업을 배경으로 한 「아홉 살 치순이」를 시작으로, 1948년 새벽 2시를 전후해 한라산 중허리 오름마다 봉화가 붉게 타오르면서 본격적인 4·3이 시작된 것을 픽션으로 꾸민 「맹종이의 비밀」은 아홉 살 소녀 치순과 소년 맹종이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리고 1948년 10월 17일 제주 전역에 내려진 소개령(해안선에서 5킬로미터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과 이승만 대통령이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벌어진 ‘초토화작전’(중산간 마을 주민들을 모두 해안지대로 내보낸 뒤 무장대가 숨을 수 없도록 마을 전체를 불태워 버리는 전법)을 배경으로 한 「죽성 할망」에서는 을생이라는 소녀가 주인공이다. 1948년 겨울 안덕면 동광리 마을 사람들이 두 달 동안 숨어 지냈던 큰넓궤에서의 생활을 배경으로 한 「무동이」는 영화 [지슬]과도 관련이 깊다. 「다 큰 지지빠이 병이」는 1949년 1월 남원읍 의귀리에서 벌어진 군인들과 무장대의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병이 할머니는 돌담을 쌓다 죽고 엄마는 군인들한테 맞아 죽었다. 병이는 행방불명된 아빠를 어떻게든 찾으려고 애쓰다 결국 의귀리 전투의 희생양이 된다. 「덕구 대장」은 1949년 6월 7일 사살된 무장대의 상징적 존재 이덕구의 마지막 활동 무대인 이덕구 산전을 배경으로, 소년 칠용이가 패잔병이나 다름없는 이덕구 부대를 만나면서 벌어진 일을 다루고 있다.
어머니가 소개 갈 행장을 준비하는 동안, 을생이는 죽성 할망이 묻힌 동백나무 옆에 몰래 작은 구덩이를 팠다.
“할머니, 할머니.”
할 말이 많은데, 가슴속에 넘치도록 할 말이 많은데, 말이 되어 나오지를 않았다. 그저 호상옷만 구덩이에 넣고서 꼭꼭 흙만 다질 뿐이었다.-「죽성 할망」에서(81쪽)
1947년 봄부터 1949년 봄까지 4·3사건의 핵심적인 내용을 픽션으로 구성하고, 각 꼭지 뒤에는 ‘왜?’라는 질문과 함께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여준다. 또한 「역사의 현장, 어제와 오늘」에서는 각 사건의 배경이 되는 관덕정, 큰넓궤, 이덕구 산전 등 4·3 현장을 당시와 오늘을 연결해 설명한다. 작가들은 4·3과 관련한 여러 자료집과 책들을 찾아 읽고, 4·3을 겪은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뵈며 인터뷰를 하고, 제주4·3평화공원, 너븐숭이 4·3기념관을 비롯해 4·3 역사 현장을 여러 번 방문하며 집필하였다. 책 말미에는 이 책 작업에 참여한 작가와 화가들이 1박 2일 코스로 함께한 4·3답사기가 실려 있다. 이밖에 4·3과 관련한 용어 설명, 1945년부터 2014년 처음으로 법정 추념일로 지정되기까지 4·3사건의 전개 일지 등은 4·3사건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감수는 제주4·3평화재단 및 제주4·3연구소 이사로 활동 중인 김동윤 제주대 국문과 교수와 제주도의회에서 4·3특위 활동을 지원하면서 피해 조사 보고서를 책임 집필한 강덕환 제주도의회 정책자문위원이 맡았다.
왜 우리는 4·3을 기억해야 할까? 이 책은 제주 4·3의 최대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들의 눈에 비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함으로써 지금의 독자들과 기억을 공유한다.
프롤로그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에서는 4·3사건의 전사(前史)라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해방과 맞물린 2차 세계대전 후 미·소 양국의 대립이 낳은 냉전 기류와 남북 분할 점령, 신탁 통치 논쟁, 좌우파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복잡한 정세를 꼼꼼하게 살펴본다. 에필로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제주도에서의 예비 검속으로 인한 민간 피해, 5·16 쿠데타 정부의 기억 파괴, 4·3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과 여전히 남아 있는 숙제들(후유 장애, 유해 발굴, 행불자 문제 등)에 대해 다룬다. 2006년 고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4·3위령제에 참석했다.
“국가 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입니다.”(본문 151~152쪽)라는 추도사처럼 우리는 ‘국가의 도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4월은 그야말로 ‘잔인한 달’이다.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고 원인과 구조 과정의 문제점 등 진실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한쪽에서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 사건이 희미해지도록 애쓰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떻게든 기억을 되살려 진실을 기록하고,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기억하려는 자들과 기억을 파괴하려는 자들의 싸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회학자 김동춘은 한국전쟁 때 자행된 학살의 진실을 다룬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를 통해 우리의 현재를 들여다보는 것의 시작이 ‘기억의 공유’임을 역설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 4·3은 왜?』를 쓴 작가들은 2013년 여름에 나온 이 책을 세월호 참사를 겪고서야 주목했다. 처음에 픽션을 통해 기억을 공유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작가들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새삼스레 중요성을 깨닫게 된 계기였다.
4·3사건 당시 민간에 큰 피해를 입힌 서북청년단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시 고개를 들고,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5·18민주화운동이 북한군이 동원된 폭동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들이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한창 가치관이 성립되는 시기의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일간 베스트)의 역사 왜곡은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는 역사의 비극이 계속 반복되는 것을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통해 목격하고 있다. 올바른 역사의 기록, 부끄럽지만 우리 스스로 밝히고 인정해야 하는 역사의 진실 찾기는 평화와 인권을 위한 첫걸음이다. 이 책이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그마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더 나아가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4·3은 앞으로도 계속 ‘제주 4·3사건’이라 불리는 것이 맞을까? 4·3특별법은 분명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발생한 주민들의 희생에 초점을 맞추고, 그 진실을 밝힐 것을 천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까닭은 4·3의 ‘역사적 성격’ 규명을 미루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5·16 군사 혁명’을 ‘5·16 군사 쿠데타’로, ‘5·18 광주 사태’를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바로잡으며 각 사건의 ‘역사적 성격’을 분명히 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우리는 4·3을 무어라 부르게 될까?’에서(1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