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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사
범우사 | 청소년 | 199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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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소개

저자 : 박은식
황해도 황주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 호는 겸곡(謙谷)·백암(白巖)이며, 필명으로 무치생(無恥生)·태백광노·창해노방실(滄海老紡室)·백치(白痴)를 사용했다. 그는 한국 근대사상 격동기에 활동한 유학자, 근대 학교 운동의 선구자, 교육 사상가, 언론인, 역사가로서 애국계몽운동과 독립운동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그리고 국내뿐만 아니라, 격동하는 중국으로 1911년 망명한 후 그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어려서부터 주자학을 배우며 성장한 주자학자였으나, 변화와 다양한 사상을 접하면서 주자학 사상의 한계를 인식하고,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양명학(陽明學)으로 학문적 전환을 결단했다. 그는 이러한 사상적 변화와 함께 1898년 <황성신문>의 주필이 되었으며 독립협회에도 가입해 활동했다. 그 후 경학원 강사, 한성사범학교 교관을 역임하면서 교육 개혁에 관한 글을 쓰고, 1904년 ≪학규신론(學規新論)≫을 간행했다. 1905년 일제가 한국을 강제로 보호국으로 만들자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서 이를 비판했다. 그는 이후 복간된 <황성신문>에서 일제의 침략을 고발하는 항일 언론 활동을 1910년 폐간될 때까지 펼쳤다. 또한 1906년 교육계몽단체인 서우·서북학회의 기관지인 <서우>·<서북학회월보>의 주필로 논설을 써서 계몽 활동에 진력하고, 서우사범학교·오성학교·서북협성학교 교장으로서 교육에 힘썼다. 1909년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을 발표해 유교 개혁을 주장했다. 이어 장지연(張志淵) 등과 함께 대동교(大同敎)를 창건해 유교 개혁 운동을 전개했다. 1910년에는 양명학 보급을 위해 ≪왕양명실기(王陽明實記)≫를 간행하고, 한문교과서 ≪고등한문독본≫을 저술했다. 병합 후에는 독립운동과 국혼이 담긴 역사서의 집필을 위해 1911년 중국으로 망명했다. 만주의 환인현(桓仁縣)에 있는 윤세복(尹世復)의 집에 1년간 머물면서 저술에 집중했고, 대종교(大倧敎) 신도인 그의 영향으로 대종교에 입교했다. 이때 ≪동명성왕실기(東明聖王實記)≫, ≪발해태조건국지(渤海太祖建國誌)≫, ≪몽배금태조(夢拜金太祖)≫, ≪명림답부전(明臨答夫傳)≫, ≪천개소문전(泉蓋蘇文傳)≫, ≪대동고대사론(大東古代史論)≫을 집필했다.1912년 상해로 가서 신규식(申圭植) 등과 함께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고, 동포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설립했다. 1914년에는 홍콩으로 가서 중국어잡지 <향강(香江)>의 주간이 되었다. 이 시기에 강유위(康有爲)·양계초(梁啓超)·당소의(唐紹儀)를 비롯한 중국혁명동지회 인물들과 친교를 맺었다. ≪안중근전(安重根傳)≫을 저술하고, 망명 후 꾸준히 집필하던 ≪한국통사≫를 간행했다. 상해에서 이상설(李相卨), 신규식, 유동열(柳東說) 등과 함께 신한혁명당(新韓革命黨)을 조직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또 신규식 등과 함께 대동보국단(大同輔國團)을 조직해 단장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이후 한국인촌의 여러 학교를 순회하면서 한국 역사에 대한 강연으로 독립사상을 고취했다. 또 ≪발해사(渤海史)≫와 ≪금사(金史)≫를 한글로 번역하고, ≪이준전(李儁傳)≫을 저술했다.1919년 3·1운동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맞았다. 이때는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을 조직해서 활동했다. 1919년 8월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한국민의회 정부, 서울 한성정부의 통합에 의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을 지원했다.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사장이 되었으며, 대한교육회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동시에 ≪한국독립운동지혈사≫의 집필을 시작해 1920년 12월에 간행했다. 이후 ‘건국사’를 쓰고야 말겠다는 각오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2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에 추대되었으나 이듬해 11월 1일 서거했다.

  목차

이 책을 읽는 분에게
범례
삽화
한국통사 서(序) / 캉 유웨이(康有爲)
서언(緖言) / 태백광노(太白狂奴)
제1편제1장 지리의 대강
제2장 역사의 대강
제2편제1장 대원군의 섭정
제2장 경복궁의 증건
제3장 서원 철폐
제4장 재정의 개혁
제5장 국방을 염려하고 풍속을 교정함
제6장 천주교를 엄금하고 신도를 학살함
제7장 프랑스군을 크게 이김
제8장 미국 선박을 방어함
제9장 일본과의 교섭
제10장 대원군 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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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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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장 오도리가 가고 이노우에가 오다
제43장 박영효의 재차 망명
제44장 을미 차관조약
제45장 일본인이 우리 국모를 시해함
제46장 폐후와 복위
제47장 지방 의병
제48장 아관파천
제49장 러시아 세력이 점차 신장되고 열강이 이권을 나눠 가짐
제50장 한국에서의 일ㆍ러 협약과 러시아에서의 협약
제51장 각 철도를 외국인에게 인가함
제3편제1장 대한 독립과 독립당
제2장 재정고문의 문제
제3장 일본과 러시아의 3차 협약
제4장 일본이 광산을 빼앗음
제5장 일본인이 어업권과 포경권을 점거함
제6장 일본인이 우리 송도 인삼을 도둑질함
제7장 울릉도, 장고도 사건
제8장 제일은행권의 강제 발행
제9장 영ㆍ일 동맹과 러ㆍ프협약
제10장 한만 문제에 관한 러ㆍ일의 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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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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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장 한국인의 교육이 말살됨
제53장 한국인의 산업이 전무하게 됨
제54장 장인환, 전명운이 미국인 스티븐스를 사살함
제55장 이토가 육군, 사법 양부를 폐지함
제56장 안중근이 이토를 사살함
제57장 이재명이 이완용을 찌름
제58장 한ㆍ일 합병
제59장 한국인의 불복과 의심스런 투옥사건
제60장 우리나라의 종교와 일본의 속박
제61장 120인의 대규모 투옥 사건
결론
한국통사 후서(後序)
한국통사 발(跋)
부록 / 한국근대사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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