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용성
1940년 11월 22일, 일본 고베(神戶)에서 아버지 김명수(金明洙)와 어머니 강신원(姜信元) 사이에서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미군의 공습이 심해지자 6월에 가족이 귀국, 서울 궁정동에 거주하게 됐다. 1948년 체신부 직원이었던 부친이 위암으로 사망했다. 6·25전쟁 이후, 가난 탓에 국비학교인 국립교통고등학교 업무과에 입학했다. 학업에 흥미를 잃고 소설을 읽고 쓰는 일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1961년 4월, 장편소설 ≪잃은 者와 찾은 者≫가 ≪한국일보≫ 공모에 당선됐다. 이듬해에는 문학 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 황순원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국제대학 영문과 2학년 수료 후 봄에 경희대학교 영문과로 편입했다. 1964년 3월, 군대 생활을 제대로 체험하기 위해 고되다는 해병대 간부후보생에 지원 입대했다. 1968년 1월에 중앙대학교 영문과 출신의 이근희(李槿姬)와 결혼하고 12월에 장남 홍중(泓中)을 얻었다. 1969년 4월, 월남전 때문에 연장됐던 군대 생활을 임시대위 계급장을 끝으로 겨우 마칠 수 있었다. 군대에서 배운 것은 고도의 교육을 받은 지성적 인간일지라도 본능적인 인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과 군대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메커니즘이라는 점이었다. 그해 5월,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했다. 1971년 4월에 차남 욱중(郁中)이 태어났다. 평판 작품이 된 중편 <리빠똥 將軍>을 ≪월간문학≫에 분재했다. 1974년에는 장편 ≪리빠똥 社長≫을 ≪일간스포츠≫에 연재, 독자의 관심을 끌었다. 1975년, 첫 작품집인 ≪리빠똥 將軍≫과 ≪리빠똥 社長≫을 예문관에서 간행했으나 긴급조치 9호로 광고 한 번 해 보지 못했다. 1982년, 문득 신문 연재 소설에 대해 회의를 품고 될 수 있으면 신문 연재를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또 오래전부터 뜻한 바가 있어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1983년에는 성장지 서대문 일대를 배경으로 한 <도둑일기>를 ≪현대문학≫에 9월호부터 분재했다. 이 작품으로 이듬해 2월에 제29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논문 <蔡萬植의 ‘太平天下’ 硏究>로 석사학위를 취득함과 동시에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1986년, <슬픈 양복재단사의 나날> 계통에 속하는 <아카시아꽃>으로 제1회 동서문학상을 수상했다. 인하대학교 전임 강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1987년엔 박사학위를 땄다. 논문은 <한국소설의 시간의식 연구>이다. 이듬해부터는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기 시작했다. 1992년, 문예진흥원 기금으로 12월부터 2개월 간 남미 한국 이민들의 실상을 취재하기 위해 여행했다. 그 결과는 1998년 ≪이민≫(전 3권)으로 나왔다. 같은 해,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정교수가 되었다.2004년엔 장편 ≪기억의 가면≫(문학과지성사)을 간행하는 한편 요산문학상, 김동리문학상, 경희문학상을 수상했다. 2005년 2월, 인하대학교 정년퇴임하면서 교수의 길을 마감했다. 개성적인 작가로서 또 교육자로 활동해 온 그는 2011년 4월 28일에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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