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낯설고 원망스럽기까지 했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가족들을 받아들이기까지 열일곱 소녀 미용이의 마음 속 혼란을 그렸다.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었어도 딸이 아닌 먼 친척 노릇을 해야하는 미용이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느덧 미용이의 마음은 가족들에게 향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흰 뱀을 찾아서>로 제17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남상순의 신작.
가족의 해체로 인한 청소년기의 방황을 묘사하는 한편, 절친한 친구 소영이와 자신을 무작정 따라다니는 미선이와 소통하는 일화들에 대해서도 같은 비중으로 다룬다. 가족을 넘어 인간과 인간의 유대에 대한 폭넓은 시야가 돋보인다. 서로가 서로에게 다가가고, 알아가고, 마음을 열고, 때론 미워하지만 결국 받아들이면서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이 결국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단면임을 역설한다.변기 물을 내리고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다시 한 번 소스라쳤다. 아버지가 내 가출용 가방의 손잡이를 끌고는 현관에 서 있었던 것이다. 만면에 웃음을 띤 표정은 넌 어쩔래? 병원에 안 갈래? 하고 묻는 것 같았다.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무겁고 성가진 짐이었다.얼결에 나는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서고 말았다. 아버지는 앞에서 가방을 덜덜거리며 끌고 나는 뒤를 따랐다. 조금 가다가 나는 아버지가 디뎠던 자리에 내 발을 포개면서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보폭이 다른 탓에 내 발걸음은 조금씩 껑충거리게 되었지만 나는 아버지의 흔적을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기억해 내려고 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마치 그것이 아버지에게 다가갈 유일한 방법이라도 되는 듯 내 발걸음은 점점 더 유쾌해지는 것이었다.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멀어지는 과정이 아니라 가까워지는 것이다. 거부가 아닌 다가서는 과정이다. 어쩌면 아버지와 나 사이의 거리는 앞으로도 쉽게 좁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아버지의 발자국을 기억해 내려고 안간힘을 다해 두리번거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오해가 풀리고 비밀이 공개된다고 해서 갑자기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중요한 것은 조금식 실제로 다가서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이렇게 가출용 가방을 끌고서라도 말이다. - 본문 219~220쪽 중에서
작가 소개
저자 : 남상순
경북 문경의 속리산 자락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왕복 8km씩 걸어서 다녔다. 등교할 때는 4km의 산길을 20분 만에 주파했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두세 시간 걸릴 때가 허다했다. 자연을 재료로 온갖 놀이도 하고 이야기판도 벌이면서 길 위에서 재미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멀리 산 너머에서 기적소리가 들릴 때 다른 세계를 상상해 보았는데, 문명은 그렇게 상상을 통해서만 왔다. 어른이 되어 첫 번째로 쓴 단편소설 「산 너머에는 기적소리가」를 통해 작가가 되었다. 『흰뱀을 찾아서』, 『동백나무에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들』, 『나비는 어떻게 앉는가』, 『희망노선』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했으며, 소설집 『우체부가 없는 사진』을 출간했다. 2000년 이후 아동청소년문학에 흥미를 느껴 장편동화 『이웃집 영환이』, 『특별한 이웃= ㅁ』, 『코끼리는 내일 온다』를 썼고, 청소년소설 『나는 아버지의 친척』, 『사투리 귀신』, 『키스감옥』, 『라디오에서 토끼가 뛰어나오다』, 『인간합격 데드라인』, 『스웨어 노트』 등을 펴냈다. 현재는 아차산 밑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시간이 나면 산과 공원을 헤매고 다니면서 이야기를 구상한다. 제17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목차
작가의 말
1. 아버지 집으로 가다
2. 새로운 가족
3. 꿈
4. 의문점
5. 생활기록부
6. 조금만 더 기다려라
7. 새 친구
8. 모든 것을 다 가진 아이
9. 미선이의 상상
10. 모과나무 아래로 달려가지 못한 날
11. 가좃 모임에서, 나는
12. 슬픔은 복받치고 아픔은 씻어내고
13. 돌연한 외출
14. 소녀와 외톨이와 건맨
15. 오래된 에피소드
16. 귀가
17. 여보세요, 넌 누구니?
18. 야참
19. 낯 뜨거운 상황
20. 유리창에 새겨진 구름 그림자
21. 나의 세 번째 영장류
22.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23. 저 태양 때문에
24. 내 마음의 지도
25. 이해와 오해의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