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근대 일본의 동화작가이면서 시인이었던
미야자와 겐지의 단편 동화집.
<은하철도의 밤>으로 그 독특한 이미지와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주었던 미야자와 겐지는 이번 동화집에서도 동물과 사람이 넘나들고, 일상과 환상이 뒤섞인 세계를 보여준다.
첫번째로 실린 '도토리와 살쾡이'는 살쾡이가 주인공 이치로에게 엽서를 보내 재판진행을 도와달라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살쾡이는 서로 잘났다고 싸우는 황금도토리들에게 재판을 해주기로 했는데, 서로 주장들만 해대 도저히 재판을 할 수 없었던 것. 이치로는 "제일 어리석고, 엉망진창이고, 돼먹지 않은 도토리가 가장 위대하다"는 판결을 내려줌으로써, 순식간에 재판을 해결해버린다.
'기러기 동자'는 다소 어린이들이 파악하기 힘들다. 날아가는 기러기들에게 함부로 총을 쏴 기러기 동자를 제외한 기러기 식구들이 목숨을 잃는다. 전생의 인연으로 수리야 케이는 기러기 동자를 양아들로 삼아 기르는데, 어느 날 기러기 동자와의 인연이 다해 다른 세상으로 가버린다는 이야기. 기러기 동자의 슬픈 눈과 말을 통해 생명을 함부로해대는 인간의 잔인한 면모들이 드러난다.
책의 표제인 '주문이 많은 요리점'은 그야말로 독특한 구성으로 되어있다. 도시의 면모를 지닌 유럽사냥꾼 두 명이 자신의 조건에 대해 뽐내면서 숲에 들어갔다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뻔한 이야기이다. 자신이 잡혀 먹을지도 모르면서 뽐내기만 하는 두 유럽인의 모습이 풍자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밖에 갈가마귀와의 전투를 앞두고,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아야 하는' 전쟁에 고뇌를 하는 까마귀 대위와 슬픈 약혼녀의 이야기, 제일 솜씨가 없어 악단장에게 매일 혼나던 첼리스트 고오슈가 매일 밤 고양이, 뻐꾸기, 너구리, 들쥐 등 동물들의 도움으로 맹연습을 해 연구회를 성공으로 이끈다는 이야기, 못생겼지만 고난을 이기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불굴의 정신을 보여주었던 쏙독새가 스스로 별이 되는 이야기 등 아름다우면서도 깊은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들을 담았다.
미야자와 겐지의 동화들은 아름다운 상상력과 기발한 구성, 그리고 동물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열린 공간 때문에 일단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의 책을 읽게하는 것은, 그 속에 들어있는 슬프면서도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 책의 삽화를 넣은 이가경의 그림은 다소 어둡지만, 동화의 환상성을 드높이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살쾡이가 이치로에게 살그머니 말했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이치로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는 게 어떨까요? 이 중에서 제일 어리석고, 엉망진창이고, 전혀 돼먹지 않은 자가 가장 훌륭하다고 말이에요. 내가 설교 시간에 들은 얘기입니다."살쾡이는 과연 그렇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점잖게 비단옷의 앞자락을 열어 황금빛 전포를 조금 내보이고 나서 도토리들에게 선언했습니다. "알았다. 조용히 해. 명령이다. 이 중에서 제일 어리석고, 엉망진창이고, 전혀 돼먹지 않았고, 머리통이 찌부러진 놈이 가장 위대하다."도토리들은 입을 다물고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습니다. --본문 22쪽, '도토리와 살쾡이' 중에서
작가 소개
저자 : 미야자와 겐지
일본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미야자와 겐지는 1896년 헌옷가게와 전당포를 운영하는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0대 때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21세에는 문학 동인지를 창간하여 동화를 발표했다. 아버지가 경영하던 전당포에는 가난한 농민들이 가재도구를 가져다 팔았고, 어려서부터 그런 농민들을 보면서 마음 아파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일본의 전통시인 단가(短歌)를 짓기 시작했으며, 모리오카고등농림학교 농학과에 입학한 뒤부터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겐지는 이때부터 많은 동화와 시를 썼으며, 농업에 관한 연구논문도 활발하게 발표했다. 고향인 이와테 현에서 농민들과 아픔을 함께하기 위해 농업에 뛰어들었고 농업 강의와 벼농사 지도 등 농민 운동을 펼치는 한편, 농업학교 교사로 일하면서도 시, 동화 등을 집필하며 작품 활동을 쉬지 않았다. 〈은하철도의 밤〉, 〈주문이 많은 요리점〉, 〈바람의 마타사부로〉, 〈봄과 수라〉, 〈비에도 지지 않고〉 등 100여 편의 동화와 시를 썼다. 하지만 생명 존중 사상을 담은 그의 작품들은 당시 일본에서 외면당했고, 그는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늑막염으로 생을 마쳤다.
목차
1. 도토리와 살쾡이
2. 기러기 동자
3. 주문이 많은 요리점
4. 쏙독새의 별
5. 북수장군과 의사 삼형제
6. 까마귀의 북두칠성
7. 첼리스트 고오슈
8. 켄쥬 공원의 숲
-<주문이 많은 요리점>의 작가 미야자와 겐지의 삶과 문학 / 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