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중 하나인 '해님 달님' 설화를 독특한 시각으로 해석하여 표현한 그림책이다. 초등 2학년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한 이 옛 이야기는 오누이가 부모의 곁을 떠나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호랑이는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닥칠 여러 가지 고난과 위험들을 간접적으로, 은유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그 고난과 위험을 뛰어넘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 그림작가의 첫 번째 책이기도 한 이 작품에는 해와 달이 나타나기 전에 어두컴컴한 세상, 그 세상이 잘 표현되어 있다.
이런 무채색 그림을 처음 접한 독자들은 어둡고 다소 무거운 느낌을 받을 것이다. 고지영의 그림은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어두운 극장 안처럼 이미지들을 집중해서 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보면 볼수록 시선을 끌고, 한참 동안 그림을 들여다보게 한다. 그리고 어느새 평온함과 아늑함까지 느끼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옛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에서 음미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출판사 리뷰
옛이야기 그림책의 매력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옛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못된 계모에게 구박받는 착한 딸 이야기 ‘콩쥐팥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의 옷을 숨겨 결혼하는 나무꾼 이야기 ‘선녀와 나무꾼’. 이런 이야기들은 예전부터 책을 보며 읽은 것이 아니라 이야기꾼들(주로 할머니할아버지 또는 엄마아빠였다)이 술술 들려주었다. 이렇게 옛이야기는 원래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현재 들을 수 있는 옛이야기는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살아있는 것이다. 대부분 탄탄한 이야기성을 지녔으며,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무엇보다 무한한 상상 세계를 맛보고, 다양한 세상사, 인간사를 간접 경험할 수 있어 아이들뿐 아니라 많은 어른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하지만 사회가 점차 현대화되면서 조부모나 부모 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지고, 다양한 대중매체가 발달하면서 그런 이야기꾼의 역할은 책이나 TV, 영화나 연극 등이 대체하게 되었다. 옛이야기는 더 이상 듣는 이야기가 아니라, 듣고 보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그림책은 어린이 독자에 초점을 맞춰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독특한 형식의 매체이다. 아직 글을 모르는 어린이를 위해 어른이 읽어주고 어린이가 듣는 그림책은 예전 이야기꾼이 입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던 것과 흡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이 옛이야기 그림책에 매력을 느낀다.
우리나라의 대표 옛이야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가난해서 남의 집 일을 하고 오는 어머니를 잡아먹고 아이들까지 잡아먹으러 집으로 찾아온 호랑이에게 도망친 오누이가 하늘의 해와 달이 되었다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도 우리에게 친숙한 옛이야기이다. 특히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초등학교 교과서(2-1 말하기듣기 94~95쪽)에 실릴 정도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옛이야기 중에 하나이다.
호랑이가 어머니를 잡아먹기 전에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말은 운율감이 있고 반복적으로 등장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알고 있는 친숙한 표현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호랑이에게 떡을 하나씩 뺏기고 결국 잡아먹히는 장면이나 오누이에게 계속 찾아오는 위기의 순간들은 독자들에게도 숨 막히는 긴장감을 주기도 한다. 반면 무서운 호랑이가 오누이의 재치에 당하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렇게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이야기의 구성이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에 걸쳐 계속 전해 내려올 수 있었던 매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여러 편의 그림책으로 만날 수 있었다.
예전에 입으로 옛이야기를 들려주던 시절에는 이야기꾼에 따라 이야기가 조금씩 다르고, 같은 이야기라도 각 지방마다 차이를 보인다. 이야기꾼의 말솜씨나 기억력뿐 아니라 각 동네의 특성에 따라 이야기가 조금씩 달라졌을 것이다. 이렇듯 옛이야기 그림책도 어떤 작가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독특한 그림책으로 만날 수 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 ‘해님 달님’, ‘해님 달님이 된 오누이’ 등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같은 옛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행본으로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책도 10여 권에 이르고, 각 그림책마다 이야기의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독자들은 다양한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만나왔다.
오누이의 성장 이야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 글을 새로 쓴 김중철은 30여년 가까이 그림책을 기획하고 연구한 그림책 전문가이다. 작가는 때로는 삭제되었고 때로는 덧붙여졌던 옛이야기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예전 이야기꾼이 들려주던 그대로 그림책에 담고 싶었다. 화려한 미사어구나 재미있는 말놀이 형식의 문장이 아니라, 원래 이야기의 운율이 살아있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텍스트로 글을 엮었다. 그래서 글을 읽다 보면 할아버지가 나긋나긋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
무엇보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원형은 오누이가 부모의 곁을 떠나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과서나 많은 그림책에서는 몇몇 잔인하다고 생각되는 장면이 삭제되기도 했다. 하지만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호랑이는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닥칠 여러 가지 고난과 위험들을 간접적으로, 은유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그 고난과 위험을 뛰어넘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종종 삭제되었던 엄마가 팔다리가 먹히는 묘사나 막내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이야기는 잔인하기는 하나, 아이들이 겪고 이겨내야 하는 과제인 것이다.
또한 호랑이가 막내를 오도독오도독 잡아먹는 부분은 전체 줄거리에서도 결정적 사건으로서 중요할 뿐 아니라 청각적인 심상을 독자에게 전달해 오누이가 호랑이의 잔인함을 느끼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이 빠지면 이야기의 맥이 끊기게 되고, 이야기의 팽팽한 긴장감도 풀리게 된다.
우리의 살고 있는 현실은 더 잔인하다. 책을 읽는 아이들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호랑이보다 더 무섭고 잔인한 세상의 어려움과 맞서 싸워야 한다. 글작가는 예전 이야기꾼이 되어 아이들에게 당당히 세상과 맞서 독립된 인격체가 되기를 바라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들려주고 있다.
신화로 다시 태어난 옛이야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해와 달이 나타나기 전에 어두컴컴한 세상, 그 세상이 이 그림책에 표현되었다. 최근 화단에서 활발한 작품 및 전시 활동을 하고 있는 현대화가 고지영은 자신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첫 그림책에 담았다. 화가는 캔버스 위에 검정, 회색과 흰색 등 무채색의 유화를 수십 번, 수백 번의 반복된 붓질로 해와 달이 나타나기 전 태고의 어두움과 혼돈, 두려움을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에 반사되는 듯한 이미지들을 만들어냈다.
이런 독특한 그림 스타일뿐 아니라 고지영의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는 그동안 ‘해와 달이 된 오누이’ 그림책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이 호랑이에 대한 묘사이다. 기존의 그림책에서는 희화되거나 약탈자의 잔인한 모습만 강조되었다면, 이 그림책에서 호랑이는 오누이가 해와 달이 되기 위해 필요악, 즉 성장의 결정적인 계기로 묘사되었다.
이는 호랑이와 어머니가 서로 일맥상통하는 존재라고 작가는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역할은 자식을 낳고 기르는 양육자뿐 아니라 자식이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하게 하는 조력자이기도 하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호랑이는 오누이가 해와 달이 되게 하는 즉 독립적인 인격체로 성장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어머니를 잡아먹으러 나타나는 호랑이는 갑작스럽게 등장하지 않고, 마치 산이 살아 일어나듯이 나타난다. 처음에 거대하고 근엄한 모습으로 등장한 호랑이는 오누이를 잡아먹으려고 할 때는 역동적이고 위협적인 모습으로 변화한다. 작가는 각 상황에 따라 호랑이의 역할 변화를 이해하고, 이미지도 그에 맞게 변화시켰다. 또한 어머니가 죽는 장면에서 등장한 꽃잎이 호랑이가 죽는 장면에서도 등장한다. 그 꽃잎은 마치 진혼곡처럼 어머니와 호랑이의 죽음을 함께 위로한다.
또한 오누이가 잠시 호랑이를 피해 숨는 나무를 새롭게 표현하였다. 오누이가 도망가는 장면에서 나무를 보면, 마치 이리로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누이가 두레박을 내려달라고 하늘에 기도할 때 나무도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이처럼 오누이의 안식처였던 나무의 모습에도 이야기성을 부여하여 새롭게 표현하였다.
작가는 이처럼 오누이와 호랑이를 비롯한 주인공뿐 아니라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물들까지 마치 영혼을 가진 생명체처럼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오누이가 성장하여 해와 달이라는 독립된 인격체가 되기 위해서 주변의 작은 미물도 모두 필요한 존재들이고 조력자였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너무 흔하고 너무 잘 알아서 시시한 옛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지영이 그리고 김중철이 엮은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새롭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 글작가와 그림작가는 인간의 ‘성장’을 이 이야기의 원형(原形)로 본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잘 알고 있는 무섭고 재미난 옛이야기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아니라, 신화로 다시 태어난 옛이야기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