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낮은산 출판사에서 권정생 글 김세현 그림의 <엄마 까투리>가 출간되었다. 아홉 마리를 돌보던 까투리는 큰 산불 속에서 혼자서는 몸을 피하지 못하고 새끼들에게 다시 날아온다. 엄마 까투리는 결국 새끼들을 품에 안고 재가 된다. 그러나 타 죽은 엄마 품속에서 새끼들은 다치지 않은 채, 모두 살아남는다. 새끼들은 커다랗게 자랐지만 엄마 냄새가 남아 있는 그곳에 함께 모여 보듬고 잠이 든다.
<엄마 까투리>는 자못 슬프고 무거운데다 비장미가 너무 강해 어쩌면 신파적으로도 보일 수 있지만, 김세현은 생명력 있는 필선과 화려한 색감의 변화를 통해 글의 무거움을 덜어내고 엄마 까투리에서 새끼들로 이어지는 기운생동의 생명력을 한껏 불어넣었다.
김세현은 권정생 작품에 깃들인 자유로움과 명랑의 바탕을 파악하고 거기에 서예의 간결한 필선에서 우러나온 사생을 더했다. 그 뒤, 엄마 까투리와 아홉 마리 꿩 병아리들의 캐릭터에 변형과 과장을 반복해, 자칫 무겁게 들릴 수 있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사랑스러운 생명력과 자연스런 흐름을 부여했다. 죽음까지도 새로운 생명의 도약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대자연의 기운임을 느낄 수 있는 호방한 그림이다.
출판사 리뷰
권정생 선생이 남긴 마지막 그림책
낮은산 출판사에서 권정생 글 김세현 그림의<엄마 까투리>가 출간되었다. “까투리 이야기 써 보았습니다. 좋은 그림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낮은산 출판사로 원고가 날아온 것은 2005년 3월. 그로부터 삼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그림책이 출간되었고, 그 사이 선생님은 완성을 보지 못하고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한 권의 그림책을 만드는 데는 짧게는 석 달도 걸리고 길게는 삼 년 이상도 걸린다. 이 책은 꽤 오랜 세월을 묵힌 끝에 나온 셈. 화가 김세현은 이 원고를 받아들고 고심을 거듭하며 수없는 파지를 냈고, 완성된 스케치를 전혀 다른 형태로 발전시켜 보기 또한 수차례 한 끝에, 담담한 어투 속에 격정적으로 모성의 궁극성을 이야기하는 권정생 선생님의 원고를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해 내었다.
“어머니의 사랑이 어떻다는 것을 일깨워 주기 충분하다고 봅니다.”라고 했던 권정생 선생님의 메모처럼, 이 책은 오직 제 한 몸밖에 가진 것 없는 미약한 존재인 한 어미가 불가항력적인 고난 속에서도 무사히 아홉 마리 새끼를 지켜내는 상황을 통해 극한의 모성을 보여주고 있다.
어머니… 권정생의 마지막 보금자리
사실 권정생의 평생 화두는 ‘어머니’였는지도 모르겠다. 병석에 누우시기 전까지도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평생 그리워하며 살던 그는 자신의 시집<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지식산업사 1998)을 “엄마 보고 싶을 때 꺼내 읽는 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단편동화「무명저고리와 엄마」(<똘배가 보고 온 달나라>, 창비 1977)에서 ‘어머니’와 어머니의 저고리는 굴곡 많은 우리 겨레의 역사를 말해 주는 알레고리가 되기도 했다. 제국주의에 맞선 테러리즘에 대해 이야기할 때조차도 권정생은 ‘어머니’의 비유를 들어 이야기했다. “새끼 빼앗긴 엄마 닭은 적한테 자기 목숨 내놓고 달려듭니다.”(오마이뉴스 2004. 8. 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02288)
<엄마 까투리>의 산불은 그가 평생 지니고 살았던 말 못할 육체적 고통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미약한 존재들이 점점 살기 힘든 곳이 되어 가는 현실세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말년의 극심한 고통 속에서 이 세상을 향해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엄마 까투리>에서는, 종교적 구원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보금자리일 수도 있었던 ‘모성’에 대한 권정생의 천착을 엿볼 수 있다.
원고지 50매 가량의 짧은 글인<엄마 까투리>의 줄거리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큰 산불 속에서 허둥지둥 몸을 피하는 들짐승과 날짐승들. 갓 태어난 꿩 병아리 아홉 마리를 돌보던 까투리는 혼자 서는 몸을 피하지 못하고 새끼들에게 다시 날아온다. 할 수 없었다. 엄마 까투리는 결국 새끼들을 품에 끌어안고 재가 된다. 그러나 타 죽은 엄마 품속에서 새끼들은 솜털 하나 다치지 않고 모두 살아남는다. 그리고 저희끼리 몰려다니며 부지런히 뭔가 주워 먹고는 앙상하게 뼈대만 남아 있는 엄마 품에 들어가 숨곤 한다.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새끼들은 커다랗게 자랐지만 엄마 냄새가 남아 있는 그곳에 함께 모여 보듬고 잠이 든다. 그렇게 엄마 까투리는 온몸이 바스라져 주저앉을 때까지 새끼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단순한 진리에서 오는 먹먹한 감동
<엄마 까투리>원고를 보았을 때, 화가 김세현은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다고 한다. 시골 학교 사택에 살던 어린 시절, 양 어깨에 물지게를 지고 균형을 맞추며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던 어머니의 모습. 그에게는 고단한 삶의 무게를 지탱하던 어머니의 뒷모습과 커다란 발이 유난히 기억에 남았다고. 김세현이 형상화한 엄마 까투리는 마치 신화 속의 신성한 새처럼 커다란 날개와 튼튼한 다리를 가진 모습이다. 견고한 어머니의 존재 그 자체인 것이다.
<엄마 까투리>는 자못 슬프고 무거운데다 비장미가 너무 강해 어쩌면 신파적으로도 보일 수 있지만, 김세현은 생명력 있는 필선과 화려한 색감의 변화를 통해 글의 무거움을 덜어내고 엄마 까투리에서 새끼들로 이어지는 기운생동의 생명력을 한껏 불어넣었다. 사실 권정생의 작품세계를 살펴보면, 그 어떤 글도 마냥 묵직하기만 한 것은 없다. 유머와 명랑함,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낙천성’이 없었다면 그의 글이 몇십 년에 걸쳐 어린이들에게 이토록 사랑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김세현은 권정생 작품에 깃들인 자유로움과 명랑의 바탕을 파악하고 거기에 서예의 간결한 필선에서 우러나온 사생을 더했다. 그 뒤, 엄마 까투리와 아홉 마리 꿩 병아리들의 캐릭터에 변형과 과장을 반복해, 자칫 무겁게 들릴 수 있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사랑스러운 생명력과 자연스런 흐름을 부여했다. 죽음까지도 새로운 생명의 도약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대자연의 기운임을 느낄 수 있는 호방한 그림이다.
사실 화가 김세현은 권정생 선생님을 생전에는 한 번도 뵙지 못했다. 그러나 ‘어머니’를 향한 선생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듯, 어머니의 사랑을 가슴 아프고도 그윽하게 느낄 수 있는 그림을 우리 앞에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