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우리에게 위안을 건네는 글!
어느덧 일흔일곱 살에 이른, 우리 시대의 소설가 박완서의 산문집. 7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저자가 겪어야 한 애증과 애환과 행운과 기적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는 저자의 경건한 고백처럼, 이 책은 자연과 사람을 인내의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며 건져올린 경탄과 기쁨이자 애정과 감사다.
아차산의 품에서 살고 있는 저자의 즐거움은 꽃과 나무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베어버렸으나 죽지 않고 새로운 싹을 토해낸 목련나무에게는 자신을 용서해주고 찬란한 봄을 꿈꾸게 해주어서 고맙다며 말을 거는 등 저자의 마음은 그러한 수다로 일구어낸 꽃과 나무가 가득하다. 그리고 저자는 죽어있지만 살아날 것과 살아있지만 죽을 것이 공존하는 자연을 통해 깨달은 엄혹한 순환의 법칙을 가르쳐주면서, 자연이 하는 일은 모두 옳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또한 이 책은 저자의 가족은 물론,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김수근, 김상옥, 이문구 등 유독 맑고 아름다운 영혼을 찡하게 추억하고 있다. 세상에 대해 너그러운 저자 주위의 어른들의 삶은 우리에게 길의 거지라도 능멸할 수 없게 만드는 상상력의 힘을 불어넣어준다.
출판사 리뷰
박완서, 어느덧 일흔일곱…
“요즈음 나이까지 건재하다는 것도 눈치 보이는 일”이 되었을 만큼,
“알량한 명예욕을 버리지 못하고 괴발개발 되지 않은 글을 쓰고”(263쪽) 싶어할까봐 밤낮으로 경계하여야 할 만큼,
한없이 낮고 두려운 나이.
어느덧 일흔일곱에 이른 소설가 박완서의 산문집 『호미』가 열림원에서 출간되었다. 『두부』 이후 5년 만에 독자들에게 내놓는 신작 산문집이다.
70여 년의 세월 동안 박완서가 겪은 “애증과 애환, 허방과 나락, 작은 행운과 기적들…”이 고스란히 이번 산문집에 담겨 있다. 애증과 나락마저도 박완서의 깊은 성찰을 통해, 묵직한 울림이 되어 전해져온다.
내 나이에 6자가 들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촌철살인의 언어를 꿈꿨지만
요즈음 들어 나도 모르게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
박완서의 경건한 고백처럼,『호미』는 작가 주변의 자연과 사람들을 한없는 인내의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며 건져올린 경탄과 기쁨이자 애정과 감사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우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은, 사물과 인간의 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가 아닐까”(22쪽), “땅은 내가 심거나 씨 뿌리는 것한테만 생명력을 주는 게 아니다. 바람에 날아온 온갖 잡풀의 씨앗, 제가 품고 있던 미세한 실뿌리까지도 살려내려 든다”(55쪽), “침묵이란 지친 말, 헛된 말이 뉘우치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게 아닐까”, “상상력은 남에 대한 배려, 존중, 친절, 겸손 등 우리가 남에게 바라는 심성의 원천이다. 그리하여 좋은 상상력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한다”(112쪽).
한결같이 박완서만이 들려줄 수 있는 축복의 문장들이다.
들판의 모든 것들,
시방 죽어 있지만 곧 살아날 것들,
아직 살아 있지만 곧 죽을 것들,
사소한 것들 속에 깃든 계절의 엄혹한 순환…
구리시 아차산 자락에 살고 있는 박완서의 즐거움은, 꽃과 나무에게 “말을 거는” 일이다. 그루터기만 남겨두고 싹둑 베어버렸으나 죽지 않고 새싹을 토해낸 목련나무에 대고는 “나를 용서해줘서 고맙고, 이 엄동설한에 찬란한 봄을 꿈꾸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말을 건다. 일년초 씨를 뿌릴 때는 “한숨 자면서 땅기운 듬뿍 받고 깨어날 때 다시 만나자고 말을 건다. 일년초가 비를 맞아 쓰러져 있으면 “바로 서 있으라고 야단”(15쪽)도 친다. 스스로 원경으로 물러서는 박완서의 마음밭은, 바로 그러한 수다와 속삭임으로 일구어낸 꽃들과 나무들 천지다. 오늘도 박완서는 새벽의 조용한 마음밭으로 나가 꽃과 나무들의 출석부를 부른다. 복수초, 상사초, 민들레, 제비꽃, 할미꽃, 매화, 살구, 자두, 앵두, 조팝나무……
모든 자연의 시작은 종말을 예고하는 법.
그러나 박완서는 종말이 새로운 시작을 불러오는 순환의 법칙을 일깨워준다. “작년에 그 씨를 받을 때는 씨가 종말이더니 금년에 그것들을 뿌릴 때가 되니 종말이 시작이 되었다. 그 작고 가벼운 것들 속에 시작과 종말이 함께 있다는 그 완전성과 영원성이 가슴 짠하게 경이롭다.”(45쪽)
자연의 엄숙한 순환인 시작과 종말 앞에서, 박완서는 겸허히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칠십 고개를 넘고 나서는 오늘 밤 잠들었다가 내일 아침 깨어나지 않아도 여한이 없도록 그저 오늘 하루를 미련 없이 살자고 다짐해왔는데 그게 아닌가. 내년 봄의 기쁨을 꿈꾸다니…….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는 기능이 남아 있는 한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한 것이로구나”(35쪽)
오늘날의 박완서를 지탱해주는
팔 할의 아름다운 영혼들
박완서는 이번 산문집에서 유독 맑고 아름다웠던 영혼들을 가슴 찡하게 추억한다. 세상에 대해 더없이 너그러웠던 그녀 주변의, 그녀보다 앞서 세상을 살다갔거나 여전히 우인(友人)으로 존재하는 어른들의 삶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하는 상상력의 힘을 우리에게 불어넣어준다.
박완서의 시어머니 되시는 분은 “종교도 없었고 학교도 안 다녔지만 인간을 아끼고 생명을 존중하는 경건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신 분”(165쪽)이었으며, 철저히 유교적이었던 할아버지는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을 사람의 근본으로 삼으면서도, 대처에 나가 있는 손자들이 방학해서 내려와 있는 동안 차례도 지내고 음식 장만을 하기 위해 양력설을 쇠도록 한 진보적인 분이셨다. “네가 싫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 잔칫집이나 친척집에 손님으로 가서 윗자리에 앉지 마라. 일꾼이 게으르게 굴었다고 품삯 깎지 마라”(168쪽) 등등 그분의 훈계와 뜻을 박완서는 오늘도 잊지 않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보배로운 이 시대의 기인”인 역사학자 이이화, “복 많은 사람” 김수근, “돼먹지 않은 걸 꾸짖고 혐오하실 때는 망설임이 없으”시던 시조시인 김상옥, “이름만 봐도 가슴이 따뜻해지곤” 하는 소설가 이문구 선생에 대한 박완서의 존경과 그리움이 주는 깨달음은 값지다.
작가 소개
저자 : 박완서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났다.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엄마의 말뚝』 『꽃을 찾아서』 『저문 날의 삽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 장편소설 『휘청거리는 오후』 『서 있는 여자』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미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아주 오래된 농담』, 동화집 『부숭이의 땅힘』 『보시니 참 좋았다』 『옛날의 사금파리』,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 『살아 있는 날의 소망』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어른노릇 사람노릇』 등과 묵상집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1980), 이상문학상(1981), 대한민국문학상(1990), 이산문학상(1991), 현대문학상(1993), 동인문학상(1994), 대산문학상(1997), 만해문학상(1999), 황순원문학상(2001), 호암상(2006) 등을 수상했다.
목차
책머리에 3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 9
돌이켜보니 자연이 한 일은 다 옳았다 14
다 지나간다 21
만추 30
꽃 출석부 1 34
꽃 출석부 2 38
시작과 종말 42
호미 예찬 46
흘길 예찬 50
산이여 나무여 54
접시꽃 그대 58
입시추위 62
두 친구 68
우리가 서로에게 구인이 된다면 74
그리운 침묵
내 생애에서 가장 긴 8월 81
그리운 침묵 87
도대체 난 어떤 인간일까 93
좋은 일 하기의 어려움 99
야무진 꿈 103
운수 안 좋은 날 107
냉동 고구마 111
노망이려니 하고 듣소 115
말의 힘 119
내가 넘은 38선 123
한심한 피서법 127
상투 튼 진보 131
공중에 붕 뜬 길 135
초여름 망필(妄筆) 139
딸의 아빠, 아들의 엄마 143
멈출 수는 없네 147
감개무량 151
그가 나를 돌아보았네
그는 누구인가 157
음식 이야기 174
내 소설 속의 식민지시대 188
그가 나를 돌아보았네 203
내가 문을 열어주마
내가 문을 열어주마 211
우리 엄마의 초상 217
엄마의 마지막 유머 224
평범한 기인 229
중신아비 236
복 많은 사람 239
김상옥 선생님을 기리며 243
이문구 선생을 보내며 249
딸에게 보내는 편지 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