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중학교 자퇴 후 홀로 떠난 예술 유학.
3년 만에 미국 최고 권위의 <내셔널 영 아트 2014> 비주얼 아트 최우수상!
꿈에 미치고 열정에 홀린 열일곱 소녀의 아름다운 ‘드림 노트’ 어떤 분야에서 남다른 재능을 발휘하는 청소년을 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뭔가 특별한 뒷받침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영재교육을 받았거나, 또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의 눈물겨운 뒷바라지가 있었거나. 그렇지 않고서는 제아무리 재능을 타고나도 소용없다는 이 우울한 선입견은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종종 확인되는 경험적 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 한 소녀가 있다.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청소년 예술대회인 <내셔널 영 아트National Young Art Competition 2014> 비주얼 아트 부문에서 최우수상(Finalist)을 받은 김수완. 그는 튼튼한 뒷받침 속에서 예술유학을 떠난 엘리트였을까? 그렇지 않다.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손수 작성한 포트폴리오를 보내 미국의 명문 예술고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고, 기숙사에서 홀로 유학생활을 했다. 그럼 중학교 때 미술대회를 휩쓸던 유망주였을까? 그것도 아니다. 숨 막히는 교육현실을 견디지 못해 중1 때 학교를 그만둔 자퇴생이다. 그렇다면 어릴 때부터 전문교육을 받은 영재였을까? 그것 역시 거리가 멀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개인교습은커녕 그 흔한 미술학원 한번 가본 적이 없다.
통상적인 ‘영재 코스’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이 소녀에겐 삶을 바꾼 몇 번의 계기가 있었다. 자퇴와 유학이 꿈을 향한 야무진 결단이었다면, 유학 직후인 열일곱 여름에 떠났던 석 달간의 유럽 여행은 열정을 가다듬는 성찰의 시간이었다. 넓은 세상과 위대한 작품들! 그 앞에서 느꼈던 열패감과 들끓던 자의식과 선연했던 깨달음들은 글과 그림이 빼곡한 네 권의 노트로 남았다. 그걸 엮어낸 게 바로 <열일곱, 아트홀릭>이다. 그가 청소년 아티스트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게 그해 말이었으니, 이 책에 담긴 시간들은 그 비약적 성장의 출발점이 되었던 셈이다.
여행 노트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이 책은 여행서가 아니다. 백여 컷의 빼어난 그림들이 실려 있지만 그렇다고 예술서도 아니다. 꿈에 미치고 열정에 홀린 열일곱의 성장 에세이! 이 책은 꿈을 찾기조차 힘겨워하는 청소년들과 멀어지는 꿈을 그리워하는 어른들이 함께 읽어야 할 아름다운 드림 노트다.
“아름답고 열정적인 나! 못할 게 없다.”고독했던 유학 생활과 달리 여행길은 엄마가 곁에 있어 외롭지 않았다. 그 또한 예정되어 있었던 건 아니다. 글쓴이의 귀국을 기다리던 한국의 가족들을 배신(?)하고 덜컥 파리행 티켓을 끊는 바람에 놀란 엄마가 부랴부랴 파리로 날아온 거였으니까.
제 예술인생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여행임을 직감해서였을까. 글쓴이는 한 순간도 허비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겠다는 자기와의 약속을 90일 내내 충실히 실천한다. 예술가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과 다짐이 여행 시작부터 또렷하게 드러난다.
“나는 지금 오직 예술에 미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예술가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생각과 감정들이 금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해서 나는 두렵지 않다.”
대가들의 작품을 눈앞에서 본다는 게 마냥 행복한 경험이기만 한 건 아니다. 다빈치와 벨라스케스와 피카소 앞에서 글쓴이는 종종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때때로 절망한다.
하지만 풀죽어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꿈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아트홀릭답게 글쓴이는 금세 기운을 되찾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절망을 뛰어넘는 당찬 자신감이 곳곳에서 화산처럼 터져 나온다.
“잘 견뎌 낼 것이라고 믿는다. 처음 갈 때는 정복자 펠레처럼 두려움이 없었는데. 그래, 나는 스스로 돈키호테라 생각한다. 무작정 가는 것이다. 돈키호테에게는 준비가 없다. 쳐들어갈 뿐이다.”
“미래의 나는 나를 질투할 것이다. 나는 어리고 젊다. 생긴 것은 예쁘지 않지만 생김새 따위는 상관없다. 나는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내 열정은 심장에서만 뛰는 것이 아니라 내 눈과 머리까지 올라와 빛을 낸다. 내 눈은 전보다 맑고 반짝거린다. 내가 못할 것이 있을까?”
그가 꿈꾸는 건 세속적인 부와 명예 따위가 아니라 예술가로서 도달해야 할 하나의 경지다. 아티스트답게 글쓴이는 그것을 색깔로 표현한다. 그가 말하는 검정은 아마도 흑(黑, black)이 아니라 현(玄, dark)일 것이다. 수많은 현자들이 우러러 온, 우주의 신비가 담겨 있다는 바로 그 빛깔.
“나는 스무 살 이전에 검정색이 되는 것이 꿈이다. 무한한 우주가 되고 싶다. 검정은 단순하지만 만들기 힘든 색이다. 모든 색깔을 일정한 비율에 맞춰 섞어야만 나오는 색이다. 나 자신을 검정으로 만들 것이다. 그 이후에는 무한한 우주 속에서 나만의 색깔을 뽑아낼 것이다.”
“예술가는 단지 조금 더 용감한 사람들일 뿐”육체와 달리 정신적 성장은 때로 비약이 가능하다. 여행 후반부로 갈수록 그림의 선과 터치가 대담해지고 능숙해졌다는 게 쉬이 확인되지만, 그보다 확연히 눈에 띄는 건 출발 때보다 한층 깊어진 글쓴이의 생각이다.
“내 여행 동안의 스케치북을 보고 속상해졌다. 나는 중요한 유명 건물들 또는 풍경들만 그려 왔던 것이다. 이제는 사람들, 상인들, 여행객들, 그 외에 조그만 것들에게도 눈을 돌려서 그리고 싶다.”
“내가 이렇게 여행하며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동안 그 이면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천막촌에서 바라본 타워팰리스 사진이 기억난다. 그렇게 블록이 쌓이고 빈 공간이 늘어나면 일어나는 일은 ‘게임 오버’다.”
“캄보디아에서 쓰레기를 뒤지며 목말라했던 아이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명성이나 예술계에서의 주목, 부유함을 바라기보다 세계를 떠돌면서 많은 것들을 발견하고, 썩은 냄새를 구역질난다고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만져 보고 느끼고 결국에는 예술로 정화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중학교 자퇴 이후 생겨난 ‘실패자’라는 트라우마를 극복해 가는 과정이다. 불편한 기억들을 담담하게 털어놓으며 “이제는 내가 싫지 않다. 나는 특별하다”라고 강조한 다음, 글쓴이는 새로운 출발을 선언한다. 하나의 삶에서 또 하나의 삶으로! 그해 여름의 유럽은 그에게 단순한 물리적 시공(時空)을 넘어, 새로운 정신의 날개를 획득하는 영적 시공이기도 했던 것이다.
“나는 여행하면서 하나의 인생을 살았다. 인간이 죽을 때 허물을 벗고 떠나듯이 내 허물을 이곳에 남겨 두고 떠난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로 가는 것이다.”
교복과 실내화를 버리던 날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이 책의 맨 끝엔 여행 2년 뒤인 2014년 겨울에 쓴 에필로그가 실려 있다. 거기에 실린 에피소드들은 자연과 인간과 예술을 바라보는 글쓴이의 눈빛이 그동안 얼마나 깊어졌는지 충분히 짐작케 해 준다. 소망대로 검정색에 가까워졌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독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문장만큼은 진실임에 분명하다.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이야기이므로.
“현실의 한계라는 건 우리에게 주어진 위대한 놀잇감이며, 중요한 건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라는 것을 꼭 기억해 주기 바란다. 예술가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고 단지 조금 더 용감한 사람들일 뿐이다.”
나는 특히 고흐를 좋아했다. 두껍게 칠한 물감과 울퉁불퉁한 표면에서는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 자주 썼던 진한 노란색에서는 외로움이, 바다와 같은 파란색에서는 그의 영혼이 느껴졌다. 그렇게 대가들의 색깔 하나하나를 따라하는 것은 내가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세상을 배우는 방법이었다. (8쪽)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가. 내가 한없이 작은 존재로 느껴질 때면 짜증이 나면서도 아직 나에게 많은 단계가 남아 있어서 그 계단을 오를 생각에 설렌다. (26쪽)
나만의 세계가 있어야 한다. 빨간색, 파란색, 그 어떤 색깔도 아닌 내 색깔! 내가 색칠한 공을 내 발로 튕겨 세상 속으로 차 넣어야 한다. (36쪽)
끊임없이 연습하고 생각하고 미치는 그 차원, 그 순간에 도달할 때가 있다. 잘 그려야 한다는 걱정을 버리고 내가 보고 있는 것에 집중하고 손에 모든 것을 맡기면, 꼭 머리가 하늘 꼭대기에서 밧줄처럼 연결되는 느낌이 들면서 엄청난 집중력이 생긴다. 그럴 때는 누가 옆에서 나를 본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한다. (46쪽)
예술은 부의 상징이지만 가난의 상징이기도 하다.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 <창녀>는 그 시대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내가 예술가라면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보고 어루만져야 할 부분이다. (49쪽)
이 일기는 어른이 된 미래의 나를 위한 것이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많이 방황할 것이다. 열정이 식어 버리고 내 자신이 초라해질 때, 어른의 껍데기로 길을 잃고 어린애처럼 헤맬 때, 내가 쓴 일기와 그림과 열정들을 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면 좋겠다. (65쪽)
다시 테트리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같은 한국이지만 한쪽이 푹 꺼진 한국은 얼마나 공허한가. 한국이 가지고 있는 큰 빈 공간이 아닌가? 예술가는 그 시대의 리포터이다.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동시대에 이런 빈 공간을 보고 덮어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빈 공간은 예술가들의 놀이터다. (68쪽)
앞으로 나에게서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을 낳기 전에 태교가 중요하듯이 작품 탄생 전에 태교는 정말 중요하다. 나는 지금 세상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읽고 보면서 태교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태어나지 않은 수많은 아이들을 품고 있다. (150쪽)
루브르를 떠나고 싶지 않다. 지금 나는 아직도 스페인 톨레도나 마드리드 어딘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는 그곳에 있을 것이다. 내가 언젠가 다시 간다면 그곳에서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나온 역 그 이름들 속에도 앉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시간에 나를 두고 왔다. (216쪽)
인간으로서 우리는 일상을 창조하고 실험할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예술가이다. 현실의 한계라는 건 우리에게 주어진 위대한 놀잇감이며, 중요한 건 두려움을 이기는 용기라는 것을 꼭 기억해 주기 바란다. 예술가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고 단지 조금 더 용감한 사람들일 뿐이다. (2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