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청소년들에게 문학 읽기의 기쁨과 인문학적 사유의 힘을 향유하게 하기 위해 기획한 푸른생각 총서 '한국 문학을 읽는다' 9권.
'한국 문학을 읽는다'는 원문을 충실하게 싣고, 낱말풀이를 달아 작품의 이해를 돕고, 본문의 중간 중간에 소제목을 붙여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하였다. 그리고 등장인물에 대한 소개, 작품의 줄거리를 정리한 이야기 따라잡기, 작품 감상의 핵심을 밝힌 쉽게 읽고 이해하기, 마지막에 작가 알아보기를 붙여 작품의 이해를 돕고 있다.
아홉 번째 도서인 <복덕방.달밤 외>는 인간 세정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동정적인 시선으로 대상과 사건을 바라보는 자세 때문에 단편소설의 서정성을 높인 것으로 평가되는 이태준의 선집이다. '복덕방', '달밤'을 포함해 '까마귀', '해방 전후' 등 이태준의 대표적인 작품 6편을 수록하였다.
출판사 리뷰
소설 언어와 형식 미학의 교과서를 제시한
작가 이태준
이태준의 소설은 근대소설이 태동한 이래 단편소설의 완성된 경지에 이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태준의 작품에 나타나는 뛰어난 소설 언어와 형식 미학은 그의 소설사적 위상을 증명한다. 이태준은 글을 짓는 것이 곧 말을 짓는 것이며, 말은 곧 마음이고, 마음은 감정을 죽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딱딱하게 굳어서 박제가 된 ‘글’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즉 감정이 살아 움직이는 ‘말’을 중요하게 본 것이다. ‘글’ 짓기가 아니라 ‘말’ 짓기는 그의 작품세계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좋은 것들이 사라져 가는 상황에 대한 애타는 심정, 잘못된 변화와 가치관 및 사상의 흐름을 감지하고 고민하는 마음을 잘 드러낸다. 그것은 과거의 추억에 매달리는 집착이나 패배의식이 아니다. 과거를 지탱하던 것과 현재를 움직이는 요소들은 각각 X축과 Y축이 되어 팽팽한 갈등의 방정식을 이루고 있는데, 이 방정식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이태준 소설의 핵심이다. 이 과정을 잘 따라가면 독자들은 이태준이 가진 ‘매의 눈’ 즉 시대와 사회를 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한 이태준이 좌익으로 사상적 변환을 단행한 일은 매우 뜻밖의 사건이었다. 이태준이 등단한 1925년은 경향문학이 우리나라에 이미 싹터 있었고, 이후 많은 작가들이 신경향파 및 카프 단체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이태준은 순수 모더니즘 계열의 구인회 활동을 했고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을 전혀 쓰지 않았었다. 해방 전의 작품과 작가의 태도를 보면, 이태준이 해방 이후 좌익문단의 권력 중심에 설 것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해방 직후 우리 문단은 좌우문학이 대립하는 시기였고, 문학의 정치적 기능이 강했었다. 식민지에서 해방이 되어 자유를 얻은 우리나라를 컴퓨터에 비유하여 말하면, 모든 프로그램이 초기화되는 상태, 즉 리셋을 앞두고 있었다. 새로 깔리는 프로그램의 내용이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따라서 이태준의 갑작스런 사상적 변환과 월북, 그 이후의 비극적인 행적은 우리 정치사와 연결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 수록한 작품은 이태준의 대표 단편소설 6편이다.
「달밤」은 세상이 각박하고 경쟁적으로 변하다 보니, 순수나 순박함이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데 대해 유감스러워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북동에 이사 온 ‘나’는 신문 보조 배달원인 ‘황수건’을 만나고 순박한 시골의 정취를 느낀다. 시골과 서울의 차이는 반편이나 못난이들이 밖으로 나와 행세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편인 ‘황수건’은 열심히 살고자 하는데 인생이 점점 풀리지 않고, 달밤에 술을 마시며 눈물과 한숨을 쏟아낸다. 더 이상 시골, 즉 순수함은 존재할 공간이 없음을 의미한다.
「까마귀」는 죽음에 대한 사유를 서정적인 문체로 써내려간 소설이다. 인기 없고 가난한 작가와 폐병에 걸려 죽어가는 여인은 우연히 만나서 죽음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눈다. 까마귀는 외로운 작가에게 친구가 되는 반면, 병에 걸린 여인에게는 죽음의 상징이 된다. 소설 속에 에드가 앨런 포의 시 「레이번」(“The Raven”, 갈까마귀)이 나오는데, 시와 이 소설의 내용이 많이 중첩된다. 작가가 포의 시에서 모티프를 얻어 소설로 창작한 것이라 추측된다.
「복덕방」은 과거의 가치관을 지닌 노인들이 근대화한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주인공 ‘안초시’는 불만이 가득한 채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대무용가인 딸에게도 짐이 되자, 결국 자살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다. 반면 ‘서참위’는 과거의 지위를 잊고 복덕방을 열심히 운영하며 웃으며 살기로 한다. ‘박희완 영감’은 대서업을 하려고 일본어를 배우러 다니며 새로운 생활을 꿈꾸는데, 그 꿈이 현실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적다. 이 작품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옮겨간 세상에서 노인들이 자존심과 싸우는 모습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패강랭」은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버리고 현실을 따라가는 시대를 비판하는 소설이다. 소설가 ‘현’은 친구 ‘박’을 위로하러 10여 년 만에 평양에 간다. 평양의 옛 모습이 많이 사라져 있어서 ‘현’은 매우 아쉬워하는데, 부회의원 ‘김’은 ‘현’에게 지금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두 사람이 크게 싸운다. 소설의 제목에서 ‘패강’은 대동강의 옛 이름이고, ‘랭’은 대동강의 물이 ‘차다’는 뜻이다. ‘현’은 『주역』에 나오는 ‘이상견빙지(서리를 밟으면 그 뒤에 얼음이 올 것을 각오하라)’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옛것을 무시하는 현실추수주의에 경고를 내린다.
「돌다리」는 땅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의사인 아들은 병원 증축을 위해 땅을 팔자고 하고, 아버지는 아들의 제안을 조심스럽게 거절한다. 땅은 만물의 근거이며 땅이 없다면 집과 나라가 존재할 수 없으니, 땅을 이해타산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아버지의 이런 생각은 오래된 돌다리를 고치는 과정, 돌다리에 얽힌 역사를 통해 구체화된다.
「해방 전후」는 작가가 해방 직후에 발표한 작품으로 해방 이전의 소설과 사상적 경향이 매우 다르며, 역사적·정치적 서사성이 강하다. 주인공 ‘현’은 소설가인데, 일제강점기 말 일본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않으려고 낙향을 했다가, 해방 이후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을 좌익작가의 입장에서 대변한다. 「패강랭」의 주인공인 소설가 ‘현’과 같은 인물이며, 두 인물은 모두 자기 자신이라고 작가가 밝힌 바 있다. 이 작품을 읽는 또 다른 재미는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역사적인 날인 1945년 8월 15일과, 그 전후 며칠간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작가 소개
저자 : 이태준
호는 상허尙虛. 강원도 철원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성장했다. 휘문고보 4학년 때 동맹 휴교 주모자로 퇴학당하고 일본으로 떠났다. 1925년 도쿄에서 단편 <오몽녀>를 <조선문단>에 투고해 입선했다. 1927년 도쿄 조치대 예과를 중퇴한 후 귀국했다. 1929년 개벽사에 입사, 조선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33년 구인회에 참가했으며, 이후 1930년대 말까지 주로 남녀 간의 사랑과 심리를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 1940년경 일제의 압력으로 친일 활동에 동원되었고, 1941년 모던 일본사가 주관하는 제2회 조선예술상을 수상했다. 1943년 절필 후 낙향했다가 해방을 맞아 서울로 올라왔다. 해방 공간에서 좌익 작가 단체에 가입해 주도적으로 활동, 1946년 <해방 전후>로 제1회 해방문학상을 수상하고 그해 여름에 월북했다. 6·25 전쟁 중엔 낙동강 전선까지 내려와 종군 활동을 했다. 1956년 구인회 활동과 사상성을 이유로 숙청당한 이후 정확한 행적은 알려진 바 없으며 사망 연도도 불확실하다. 1934년 첫 단편집 《달밤》 발간을 시작으로 한국 전쟁 이전까지 《까마귀》《이태준 단편선집》《이태준 단편집》《해방 전후》 등 단편집 7권과 《구원의 여상》《화관》《청춘 무성》《사상의 월야》 등 장편 13권을 출간했다.
목차
달밤
까마귀
복덕방
패강량
돌다리
해방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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