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공주는 그저 예쁘게 앉아 왕자를 기다리면 된다고? 동화 속 공주들에 대한 편견을 거부하고 왕자의 청혼을 거절한 공주, 공주를 따라 인어가 된 왕자, 궁궐 무용수와 결혼한 신데렐라까지 옛이야기에 딴지를 걸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그려냈다.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공주들의 모습이 그려지다.
출판사 리뷰
말랑말랑 자유로운 옛이야기 들려주기
옛이야기의 힘은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이야기가 얼마든지 바뀐다는 데 있다. 다정하고 활기찬 엄마가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다면 이야기는 한없이 길고 아기자기해질 것이다. “옛날 옛날 아주아주 먼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고 토끼가 서당에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어느 깊고 깊은 산골에…….” 반면, 무뚝뚝한 엄마가 고된 노동에 지쳐 있다면 “옛날에 엄마랑 애들이 살았는데 호랑이가 와서 다 먹어버렸다. 끝! 이제 그만 눈 감고 자!” 하고는 정말 끝나 버릴 것이다. 어쩌면 옛이야기는 이야기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또다른 의사소통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옛이야기는 듣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 되었다. 책에 활자로 박힌 이야기는 완강하다. 그래서 귀찮아진 엄마가 슬쩍 빼먹기라도 하면 대번에 고함이 터져 나온다. “엄마, 호랑이가 참기름을 발라야지!” 빤히 눈앞에 보이는 글자들이 있으니 대충 넘어가자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야기를 바꾼다는 건 여간해서 쉽지 않다. 아주아주 오랜 옛날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는 이제 박제가 되어 버린 걸까?
<옛이야기 딴지걸기>는 ‘구전만이 가지는 강력한 힘’을 되찾고자 딱딱한 책 속에 갇힌 이야기들을 풀어내주기 위해 기획된 책이다. 책 말미에 붙어 있는 작가의 말은 “이 시대 마지막 이야기꾼인 세상의 모든 어버이들에게” 보내는 당부를 담고 있다.
오늘도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머니 아버지들이 이 책을 읽고 마음대로 이야기를 바꿔 들려줄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다면 나로선 가장 기쁠 것입니다. 구전만이 가지는 강력한 힘을 이야기는 되찾아야 합니다. 그것만이 지금까지 이야기가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었고, 앞으로도 그것이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니까요.
<옛이야기 딴지걸기> 역시 옛이야기를 책 꼴로 만들어내는 작업임에는 틀림없지만 고정된 이야기로 남기보다 읽는 사람 마음대로 바꿔 읽기를 권한다는 점에서 옛이야기의 참맛을 살리고 있는 것이다.
2008년 우리 아이들이 읽는 옛날 이야기
‘우리 나라 편’과 ‘다른 나라 편’으로 나뉘어 있는 <옛이야기 딴지걸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한 이야기들을 비틀고 바꾸어 새로운 재미를 주고 있다. 작가는 오래 전 자녀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안타까웠거나 못마땅했거나 아쉬웠던 내용들을 입맛에 맞게 바꿔 놓았는데, 여기에는 편견없고 자유로운 아이들의 시각이 듬뿍 담겨 있다. ‘선녀와 나무꾼에겐 아이들도 있다고!’에서는 원래 이야기 속에 잠깐만 언급이 되는 아이들에 주목해, 선녀 엄마와 나무꾼 아빠의 재결합을 위해 아들 딸이 보이지 않게 힘을 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어진 과제를 풀어야 한다거나 뛰어난 능력보다는 착한 마음씨 덕분에 성공에 이른다거나 하는 옛이야기의 형식에도 충실하면서 오늘날의 적극적인 아이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편, ‘심청이 무슨 효녀야?’와 ‘알고 보면 팥쥐도 가엾어’는 오랫동안 나쁜 사람으로 찍혀 있던 뺑덕어멈과 팥쥐를 제 나름의 입장과 사연을 지닌, 개성 넘치는 인물들로 바꿔 놓았다. 술 잘 먹고 욕 잘하는 뺑덕어멈의 캐릭터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술 잘 먹고 욕 잘해도 좋은 사람일지 모른다’는 착한 생각을 반영해 놓은 결과다. 우렁이 각시를 아이 맘을 잘 알아주는 우렁이 엄마로 바꾸어 놓거나(‘우렁이 엄마가 우리 엄마라면!’) 꿋꿋한 절개로 신분상승을 이루는 춘향이 대신 당찬 성격으로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는 춘향이(‘이 도령이 암행어사가 안 됐으면?’)를 그려 보이는 것 역시 2008년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코드를 맞춘 결과다.
다른 나라 편에서는 옛이야기가 아닌 안데르센의 동화까지 딴지 걸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역시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공주 대신 자기 뜻을 펼치는 공주(‘바보처럼 잠만 자는 공주라니!’)가 나온다거나 전쟁이 싫어서 바다로 간 왕자가 마침내 인어가 된다거나(‘사람이 인어가 되면 안 되나?!’) 하는 식으로 옛이야기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뒤집어 놓는다. 왜 개구리나 야수는 멋쟁이 왕자로 변신해야 하는 걸까? 좀 못생기긴 했어도 자기 모습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게다가 못생겼다거나 예쁘다거나 하는 기준은 시대마다 다르기 마련이니 그다지 연연해 할 것이 못 되지 않는가. 자신의 모습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하고 끝끝내 흉측한 모습으로 남는 야수(‘왕자로 변하면 싫단 말이야!’)와 평범한 외모 때문에 왕자의 눈에 들지 못하고 그 대신 궁중 무용수를 만나 유랑 무용단을 꾸리는 신데렐라(‘신데렐라, 왕자한테 반하기는 했니?’)는 누가 보더라도 뿌듯하고 당당한 캐릭터들이다.
각각의 이야기 한편 한편에는 작가가 들려주는 집필 의도와 뒷이야기 등이 담겨 있어 보다 깊이 있는 책읽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옛이야기 딴지걸기>를 제대로 읽는 법은, 다 읽고 난 다음에 또다른 이야기를 생각해내는 것이다. 앞 못 보는 심봉사에게는 어떤 답답한 속내가 있었는지, 변사도는 정말 나쁜 사람인지, 인어 공주와 거래를 한 마법사에게는 과연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 등등.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보고 신나게 이야기를 지어내노라면,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에게서 아득히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꾼의 본능을 되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음악이 멈추었어. 모두들 너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지. 이런 일은 어떤 옛날 이야기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니까. 마법에 걸린 공주는 그 마법에서 구해 준 왕자와 반드시 결혼을 해 왔어. 그것을 거절한 공주는 단 한 명도 없었어. 그만큼 그것은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일처럼 분명한 일이었지. 그랬으니 모두들 자기 귀를 믿지 못한 채 잠시 멍하니 서 있었어.
p28
작가 소개
저자 : 이경혜
어렸을 때 몹시 외로웠던 탓에 책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책이 아니었다면 아주 괴상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책의 은혜를 많이 입은 덕분에 은혜를 갚는 마음, 빚을 갚는 마음으로 글도 쓰고, 그림책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책 말고도 바다를 포함한 모든 물, 고양이를 포함한 모든 동물, 산신령을 포함한 모든 신, 만년필을 포함한 모든 문구류 등을 아주 좋아합니다.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그 동안 낸 책으로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그 녀석 덕분에』 『유명이와 무명이』 『사도사우루스』 『새를 사랑한 새장』 등이 있습니다.
목차
바보처럼 잠만 자는 공주라니!
왕자로 변하면 싫단 말이야!
사람이 언어가 되면 안 되나?
신데렐라, 왕자한테 반하기는 했니?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