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교과서의 정석이 담긴 현직 교사의 생생한 한국사 가이드
지루하고 답답한 한국사라면? 읽지 말자36시간의 한국사 여행 두 번째 이야기, 조선으로의 시간 여행이다. 조선은 성리학에 의해 다스려지고 성리학을 위한 나라로 묘사된다. 과연 그랬을까? 조선은 성리학을 신처럼 믿고 따랐던 사대부들에 의해 세워지고 이룩된 나라였다. 그렇다면 사대부들이 성리학의 가르침, 즉 절개와 명분을 목숨처럼 중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자가 그렇게 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에서는 크게 일어나지 못한 성리학이 유독 조선에서 꽃피어난 이유가 있다. 36시간의 한국사 여행 두 번째 이야기는 그 이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혁명이 성공하면 보수의 길을 따른다. 보수화는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혁신을 부르고...... 보수와 혁신의 순환 속에서 역사는 흐른다. 흐르는 역사를 일시 정지하여 세세히 보고 싶다면, 12시간 동안 한국사 여행을 떠나보자. 이 여행이 지루하고 답답하다면? 읽지 말고 덮어버리자. 그래도 역사는 흐른다.
민중의 입으로 전해진 역사, 이야기 한국사를 담다역사는 이야기이다. 옛 사람들의 기록으로 남겨진 이야기, 또는 입으로 전해온 전설, 설화, 민담과 같은 것도 역사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예전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담아 책으로 남겼다. 대표적인 것이 “삼국유사”이다.
조선의 역사는 대부분 실록을 바탕으로 한다. 이것이 정사이다. 우리는 이를 교과서에서 배운다. 그러나 민중을 통해 내려온 이야기도 있다. 정식 역사로 보지는 않지만 민중의 생각과 염원이 담긴 이야기 속에는 감춰진 역사의 내면이 담겼다고 보기도 한다. 역사적 사건과 정황을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이해하기 위해 이러한 이야기를 서술했다. 무학대사와 한양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다음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개경에서 이성계가 왕위로 오른 직후, 풍수지리에 밝은 무학대사에게 새 도읍지로 적당한 곳을 찾아보라고 했다. 무학대사가 북한산에 올라 지세를 살피고 어떤 곳(왕십리)에 다다르니 이곳이 새 왕조의 도읍지로 적합해 보였다. 그때 한 노인이 소를 몰고 무학의 옆을 지나치며 “이놈의 소! 미련하기가 마치 무학 같구나. 왜 바른 길을 버리고 지름길로 가려느냐.” 하더란다. 무학대사가 노인의 몰골을 보니 예사 사람이 아닌 듯 여겨졌다. 무학대사는 노인 앞에 꿇어 엎드려 절을 하면서 “왜 미련하기가 무학 같냐.”고 했는지 물었다. 여러 번 부탁한 끝에 노인에게서 십 리만 더 가면 도읍지로 적당한 땅이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노인의 말대로 그곳에서 십 리를 더 가니 사방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좋은 땅이 펼쳐 있었다. 이곳이 바로 한양이다. 서울시 성동구의 왕십리라는 지명은 이 무학대사와 노인의 이야기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50쪽
우리 역사를 어떻게 읽고 이해해야 할까? 역사를 이해하려면 역사적 개념부터 알아야 한다. 이는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역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역사의 기본 지식은 대부분 역사적 용어, 즉 한자어로 되어 있다. 낱말의 뜻을 정확히 알아야 문장의 내용, 의도, 의미 등을 파악할 수 있듯 역사도 마찬가지다. 한자어로 된 역사 개념을 바로 알아야 역사적 정황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역사 사실과 문맥 속에서 개념을 인식해야 역사에 대한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여 이해할 수 있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이것이 역사를 읽고 습득하는 데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한자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역사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역사 용어와 어려운 한자를 풀어 설명하여 문맥 속에서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한자에 대한 음과 뜻을 적고 해설하는 것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 이유는 역사 개념을 알고 나면 역사 읽기가 소설처럼 단숨에 읽혀지기 때문이다. 역사는 신이 창작한 소설과 같다. 다음은 한자의 뜻을 풀어 설명한 사례로, 3사와 공납, 오가작통법에 대한 서술이다.
“사헌부(司 맡을 사, 憲 법 헌, 府 관청 부: 법을 맡은 관청, 우두머리는 종2품의 대사헌)는 의정부의 재상들을 비롯하여 모든 관리들이 부정을 저지르는 일이 있는지 조사하여, 증거가 확실할 경우 관직에서 내쫓기도 했다. 오늘날 감사원과 성격이 유사하다. 그리고 임금의 명령이나 행동에 잘못이 있을 경우 간쟁(諫 간할 간, 諍 간할 쟁: 임금의 잘못을 간곡하게 지적할 권리)도 할 수 있었다. 사간원(司 맡을 사, 諫 간할 간, 院 관청 원: 임금의 잘못을 비판하는 일을 맡은 관청, 우두머리는 정3품의 대사간)은 임금이 잘못된 명령을 내리거나 잘못된 정책을 행할 때 비판하는 일을 담당했다. 그래서 사헌부와 사간원을 ‘양사’(兩 두 양, 司 맡을 사) 또는 ‘대간’이라고 한다. 대간을 굳이 풀이하자면 어른[임금, 어른 臺]에게 쓴 소리를 한다는[간할 諫]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77쪽
“공납은 공물[貢 공물 공]을 납부한다[納 납부할 납]는 뜻이고, 공물은 토산물[物 만물 물]을 바친다[貢 바칠 공]는 뜻이다. 즉, 농민이 토산물로 내는 세금을 가리킨다. 공물에는 수공업 제품, 광산물, 수산물, 모피(毛 털 모, 皮 가죽 피: 짐승의 털과 가죽), 과실, 약재 등이 있다.” -136쪽
“오가작통법은 다섯[五 다섯 오] 집[家 집 가]을 하나로 묶어[作 지을 작] 통제[統 통제할 통]하는 제도[法 법 법]였다. 그래서 도망가지 못하게 다섯 집이 서로 감시하고 고발하게 했다.” -138쪽
교과서 한국사를 쉽게 풀어 쓴 조선의 역사 이야기이다. 교과서는 제한된 쪽수 안에서 역사를 다루어 압축과 요약이 필수적이다. 즉, 핵심 위주의 서술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요한 역사적 사건만 다루다 보니 역사의 흐름이 단절된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교과서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핵심 내용을 풀어 서술했다. 시기적 상황과 사건의 인과 관계, 인물의 활동 내용을 자세히 서술하여 조선의 역사를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고려 왕족인 왕씨들은 어찌 되었을까? 다음은 그에 대한 일부 내용이다.
“정몽주가 죽은 지 3개월이 지난 후 1392년 7월에 급진파 사대부는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이성계를 왕위에 앉혔다. 공양왕은 공양군으로 강등됐다가 유배지에서 살해됐다. 고려 왕족인 왕씨들은 강화도로 집결하라는 명에 따라 강화도로 가는 도중 배가 침몰되어 대부분 죽었다. 이렇게 왕씨들은 대부분 이성계 세력에 의해 멸족됐고, 요행히 목숨을 부지한 경우에는 성을 바꾸어 살아남았다.” -18쪽
하나 더 예를 보자. 세조가 죽은 후 그의 둘째 아들이 예종으로 왕위를 이었다. 그러나 그도 1여 년 만에 죽고 만다. 그런데 예종의 뒤를 이은 왕은 예종의 아들도 아니고, 인수대비의 큰아들도 아닌 인수대비의 둘째 아들인 성종이었다. 왜일까? 그에 대해 자세히 서술했다.
“예종이 짧은 삶을 마감하던 날, 세조의 왕비이며 왕실의 최고 어른인 정희왕후는 맏아들로 이미 죽은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 자을산군을 새 왕으로 지명했다. ..... 그 이유는 자을산군이 한명회의 사위였기 때문이다. ...... 자을산군이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이다.” -42쪽
한국사를 시험보기 위해 핵심적 내용만 알려고 한다면 무조건 외워야 한다. 그리하면 기억은 시험이 끝난 후 점차 희미해질 뿐이다. 그러나 핵심 내용을 주조로 하되 그 내용의 연결 고리를 자세히 알고 나면 굳이 외우지 않아도 역사의 흐름을 논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리하면 기억은 오랫동안 나의 일부로 남아있을 것이다.
사료, 사진, 도표, 지도를 통해 시대 상황을 폭넓게 이해하다 역사적 상황과 사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사료이다. 각 시대적 상황에서 빚어진 문제들을 바로 알려면 당시 사람들의 동향과 생각을 알아야 한다. 그에 대한 것들이 사료이다. 실록 등 그 시대의 기록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역사책에 수록된 다양한 사료를 제시했다. 이외에 당시 상황을 표현한 지도와 도표, 문화의 양상을 보여주는 유물사진과 그림 등을 제시하여 눈으로 익히며 감상할 수 있는 역사 이야기를 담았다.
목차
제13시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추구한 조선
1. 왕의 이름에 붙는 조(祖)와 종(宗)의 의미는 무엇일까?/2. 조선 건국과 두문불출, 경복궁과 정도전/3.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유는?/4. 세종이 성군인 까닭은?/5.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킨 이유는?/6. 성종의 묘호가 ‘成宗’이 된 이유는?/7. “경국대전”에는 어떤 법들이 담겨 있나?
제14시 조선 전기에 꽃피운 민족 문화
1. 한양은 어떻게 건설됐나?/2. 세종의 문화 통치 정책은?/3. 조선이 만든 하늘 지도와 땅 지도
4. 왜 장영실을 과학 천재라고 하는가?/5. 몽유도원도와 고사관수도에는 어떤 생각이 담겨 있나?
제15시 재상과 관료가 중심인 조선의 정치
1. 조선은 어떻게 나라를 운영했을까?/2. 지방은 어떻게 통치했나?/3. 조선의 국공립학교와 사립학교
4. 관리가 되기 위한 등용문/5. 과전법을 실시한 이유는?/6. 조선의 군사 제도와 군사 조직은 어떠했나?
제16시 학문하는 선비들이 다스리는 세상
1. 사림은 어떻게 정권을 잡을 수 있었을까?/2. 훈구 vs 사림,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은?/3. 붕당 정치는 파벌 정치인가?/4. 사림이 서원과 향약을 보급한 이유는?/5. 성리학을 발전시킨 이황과 이이/6. 성리학의 핵심 사상, ‘이’와 ‘기’란 무엇인가?/7. 이황, 이이, 서경덕, 조식이 연구한 성리학은?
제17시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양반도 노비가 될 수 있었다?/2. 조선의 보통 사람들, 상민 ? 천민으로 살아가기/3. 민본주의? 농본주의?/4. 농민이 내는 세금으로 나라 살림이 운영되고/5. 조선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했나?/6. 홍길동 vs 임꺽정, 의적의 출현/7.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의 가족 제도가 다른 이유는?/8. 총각대장이 이끈 두레, 품앗이와 다른 점은?
제18시 조선, 일본과 거대한 전쟁의 회오리에 휩쓸리다
1. 조선 전기의 대외 정책, 사대교린이란?/2. 일본은 왜 임진왜란을 일으켰나?/3. 이순신은 어떻게 23번 싸워 23번 승리했을까?/4. 패전의 문턱에서 이긴 전쟁으로/5. 군사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의병의 나라 구하기/6. 임진왜란 때 사용된 거북선과 무기/7. 임진왜란에서 누가 승리했을까?
제19시 조선의 선택, 혼란을 경험하고 명분이 지배하다
1. 광해군, 성군인가? 폭군인가?/2.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일어난 이유는?/3. 주화론 vs 척화론, 끓는 물이나 얼음물은 같은 물?/4. 인조가 소현세자를 죽인 것일까?/5. 효종과 현종, 북벌론과 명분론을 앞세운 붕당 정치/6. 양 난 이후 새로운 외교가 시작되다/7. 임진왜란 이후 왜 권력이 비변사로 모아졌을까?
제20시 당파 간에 균형을 맞춰 왕권을 강화하라
1. 붕당 정치란?/2. 숙종이 환국 정치를 주도한 이유는?/3. 이인좌의 난, 왜 일어났나?/4.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을까?/5. 목숨의 위협을 겪고 왕위에 오른 정조/6. 정조의 개혁 정치 기반은?
제21시 세도 정치 하에서 백성이 새 세상을 꿈꾸다
1. 세도 정치란?/2.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세상, 세도 정치 속으로/3. 탐관오리만 살찌운 세금 행정, 삼정의 문란/4.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꿈꾸는 시대, 말세/5. 세도 정치에 대한 저항, 농민 봉기가 전국에서 일어나다
제22시 조선 후기, 경제 발달이 신분제 사회를 흔들다
1. 세금 제도를 개혁해도 폐단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2. 어떻게 서민 지주가 등장했을까?/3. 조선 후기 상품 화폐 경제를 이끈 사람들은 누구인가?/4. 경제 발전이 이끈 양반 세상, 평등이 아닌 신분 상승을 꿈꾸다/5. 왜 부계 중심의 가족 제도와 수령권이 강화된 걸까?
제23시 변화된 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사상
1. 토지 제도를 바로잡아 민생 안정을 꾀한 실학자들/2. 조선의 해외 유학파, 그들이 주장한 북학이란?
3. 학문 연구의 새로운 경향/4. 허준 vs 이제마, 서얼로 태어나 명의로 우뚝서다
제24시 서민이 향유한 문화, 새로운 예술의 등장
1. 조선 후기에 유행한 서민 문화란?/2. 그림에서 일어난 새로운 바람, 국토와 백성과 소망을 담다
3. 분청사기 vs 백자 vs 청화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