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김시습
1435년 서울 성균관 북쪽에 있는 반궁리(泮宮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강릉이다. 친가 외가 모두 대단한 집안이 아니었다. 외가에서 자라면서 말을 배울 무렵부터 외조부에게서 글자를 익히기 시작했다. 김시습은 유년 시절 장안의 화제였다. 두 살 때 “난간 앞에 꽃 웃으나 소리 아니 들리고, 숲 아래 새 울지만 눈물 보기 어렵네(花笑檻前聲未聽, 鳥啼林下淚難看)” 구절을 듣고는 병풍의 꽃과 새를 가리켰다거나, 다섯 살 때 자기를 보러 온 정승 허조(許稠, 1369∼1439)를 두고 “고목에 꽃이 피니 마음 늙지 않았다오(老木開花心不老)”라는 시구를 지었다는 종류의 이야기가 여럿 전해 온다. 소년의 천재성은 궁궐 안에까지 들려왔고, 세종은 그를 불러 시험하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유년기의 천재성과 이로 인한 주변의 칭찬은 김시습의 삶을 불행한 쪽으로 몰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천재성은 비정상성과 통하고, 유년기의 능력은 나이가 들면서 퇴색하기 십상이며, 그 자질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과 비례하지 않는다. 김시습은 내성적이며 부끄럼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뒷날 그는 친지와 이웃의 넘치는 칭찬 때문에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과거엔 실패했고 집안은 빈한했다. 유년기의 충만감은 일순 공허감으로 뒤바뀌었다. 15세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오래도록 치유되기 어려운 내상을 입었다. 아버지는 곧 재취했다. 평생 집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떠도는 계기가 되었다. 18세 즈음에 혼인을 했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후 계유정난(癸酉靖難, 1453), 단종의 선위와 세조의 즉위(1455), 단종 복위 운동의 실패와 사육신 등의 죽음(1456), 단종의 죽음(1457) 등 정치적 격변이 잇달아 일어났다. 여러 문헌에는 김시습이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해 매장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458년, 24세의 김시습은 승려 행색으로 관서 여행을 떠났다. 평생의 방랑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관동과 호남을 유람하고, 서른 살 무렵에 경주에 안착한다. 37세(1471)에 경주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로 이주했다. 이듬해 수락산 동쪽에 집을 짓고 평생을 이곳에서 살려고 마음먹었다. 수락산 시절 김시습은 외부 활동과 교유를 자제하고 수행과 학문에 전념했던 것으로 보인다.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 등의 주요 불교 저술을 지었다. 이 시기 가장 가까이 지낸 사람은 남효온(1454∼1492)이었다. 후대 사람들은 두 사람을 생육신으로 묶어 일컬었다. 47세에는 잠시 환속해 다시 결혼하고 부친의 제사를 지냈다. 잠시 공부와 시작(詩作)의 방향이 유교로 급격하게 쏠렸다. 하지만 두 번째 결혼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수락산에 터를 잡은 지 만 10년이 되는 1483년 봄, 49세의 김시습은 다시 짐을 꾸려 길을 떠났다. 남효온이 지은 시에 따르면, 김시습은 육경(六經)과 역사서 등을 싣고 관동의 산수를 돌아다니다가 농토를 얻어 생계를 꾸릴 것이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라고 했다. 이후 10년 그의 발걸음은 춘천, 홍천, 인제, 양양, 강릉 등지를 지났다. 오봉산과 오대산과 설악산에 머물렀다. 바닷가에서 한 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늙어 갔다. 1493년, 죽음을 직감한 코끼리가 깊은 동굴을 찾아들 듯이, 이승을 떠날 때가 된 김시습은 백제로 향했다. 무량사(無量寺), 지금은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아늑하고 포근하며 부드러운 절집에서 그는 평생 방랑에 지친 영혼을 안식한다.
저자 : 김만중
조선 중기 문신·문학가이며, 자는 중숙(重叔), 호는 서포(西浦),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1665년(현종 6) 정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정언·수찬을 역임하였고 1671년 암행어사가 되어 경기·삼남의 민정을 살폈으며, 1675년(숙종 1) 관작이 삭탈되기까지 헌납·부수찬·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679년(숙종 5) 다시 등용되어 예조참의·공조판서·대제학·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장숙의 일가를 둘러싼 언사 사건에 연루되어 선천으로 유배되었다. 1688년(숙종 14) 풀려났으나 다시 탄핵을 받아 남해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구운몽》을 쓴 뒤 병사하였다. 시문에도 뛰어났고, 유복자로 태어나 효성이 지극해 어머니 윤씨를 위로하기 위하여 국문 소설을 많이 썼다고 하는데, 알려진 작품은 《구운몽》과 《사씨남정기》뿐이다. 《구운몽》은 전문을 한글로 집필한 소설 문학의 선구로 꼽힌다. 특히 그 구성은 선계(仙界)와 현실계(現實界)의 이중 구성을 택하였고, 불교적인 인생관을 형상화하였다. 그 밖의 작품으로 《서포집》, 《서포만필》, 《고시선》이 있다.
한국 고전소설·신화설화 수필 가전체 64를 시작하며·4
시대별 작품 갈래에 대하여·6
〈상고 시대〉
신화|단군 신화(작자 미상) · 12 / 주몽 신화(작자 미상) · 16 / 박혁거세 신화(작자 미상) · 23
설화|구토 설화(작자 미상) · 29 / 조신 설화(작자 미상) · 33 / 도미 설화(작자 미상) · 38 / 화왕계(설총) · 42 / 바리데기 설화(작자 미상) · 46 / 경문대왕 설화(작자 미상) · 53 / 달팽이각시 설화(작자 미상) · 58 / 아기장수 설화(작자 미상) · 63 / 연오랑 세오녀 설화(작자 미상) · 69 / 온달 설화(작자 미상) · 73 / 서동요(작자 미상) · 78 / 김현감호 설화(작자 미상) · 83 / 지귀 설화(작자 미상) · 89 / 사복불언(작자 미상) · 94 / 오봉산의 불(작자 미상) · 98
〈고려 시대〉
가전체|공방전(임춘) · 102 / 국순전(임춘) · 110 / 국선생전(이규보) · 117 / 정시자전(석식영암) · 125 / 죽부인전(이곡) · 131 / 저생전(작자 미상) · 138 / 배열부전(작자 미상) · 146 / 청강사자현부전(작자 미상) · 151
패관 문학|차마설(이곡) · 157 / 이옥설(이규보) · 161 / 경설(이규보) · 164 / 슬견설(이규보) · 167
〈조선 전기〉
전기 소설|이생규장전(김시습) · 171 / 만복사저포기(김시습) · 191
〈조선 후기〉
군담 소설|박씨전(작자 미상) · 200 / 임경업전(작자 미상) · 215 / 임진록(작자 미상) · 256 / 유충렬전(작자 미상) · 283
사회 소설|홍길동전(허균) · 303
가정 소설|사씨남정기(김만중) · 323
풍자 소설|호질(박지원) · 352 / 양반전(박지원) · 365 / 허생전(박지원) · 373 / 옹고집전(작자 미상) · 382
염정 소설|춘향전(작자 미상) · 402 / 운영전(작자 미상) · 435 / 구운몽(김만중) · 454 / 숙향전(작자 미상) · 475 / 채봉감별곡(작자 미상) · 497
우화 소설|토끼전(작자 미상) · 510 / 장끼전(작자 미상) · 525
몽유 소설|용궁부연록(김시습) · 544 / 남염부주지(김시습) · 563
판소리 소설|심청전(작자 미상) · 575 / 흥부전(작자 미상) · 598
수필|한중록(혜경궁 홍씨) · 615 / 계축일기(어느 궁녀) · 644 / 인현왕후전(작자 미상) · 663 / 주옹설(권근) · 689 / 이상한 관상쟁이(이규보) · 693 / 요로원야화기(박두세) · 698 / 수오재기(정약용) · 704 / 조침문(유씨 부인) · 709 / 규중칠우쟁론기(작자 미상) · 714 / 일야구도하기(박지원) · 721 / 통곡할 만한 자리(박지원) · 726
도서 DB 제공 - 알라딘 인터넷서점 (www.alad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