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두렵다고 물러서기만 해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지 않겠니?”
피가 무서워 도망친 기억을 지우고 환자를 돌보는 덕이
왜군의 조총 부대 앞에서 당당하게 맞서는 권율 장군
행주치마에 돌을 담아 나르며 온몸으로 싸우는 백성들
왜군의 침략으로 쑥대밭이 된 나라를 구하기 위해
행주산성에 모인 사람들의 용기가 일궈 낸 기적 같은 승리!
왜군의 침략으로 위기에 빠진 조선, 임진왜란선조 임금이 나라를 다스린 지 이십오 년째 되던 1592년(임진년)에 왜군은 이십만의 병사를 이끌고 조선으로 쳐들어온다. 칠 년 동안 전쟁이 이어지면서 우리나라 땅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른바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일 년 전, 왜나라의 수상한 낌새를 느낀 선조는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황윤길과 김성일을 통신사로 보냈는데, 왜나라에 다녀온 두 사람의 의견은 전혀 달랐다. 황윤길은 왜나라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많은 배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 반면, 김성일은 전쟁이 일어날 리 없다고 한 것. 하필이면 선조는 김성일의 말을 믿었고, 결국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전쟁을 맞게 되었다.
당시 왜나라를 다스리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국을 통일하고 한창 기세등등해 있었다. 섬을 벗어나 대륙으로 나갈 기회를 틈틈이 노리다 1592년 4월 14일, 왜군은 명나라로 가는 길을 내어 달라는 핑계를 대며 부산 앞바다에 배를 몰고 나타났다. 엄청난 수의 병사들과 조총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전국적으로 왜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다. 육지에서 왜군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다. 부산에 상륙하고 이십 일 만에 한양까지 밀고 올라올 정도였다. 하지만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과 수군이 크게 활약을 했다. 거기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큰 힘을 보탰다.
육지에서는 권율 장군이 왜군을 무찔렀다. 그중에서 행주대첩이 가장 유명한데,《덕이의 행주대첩》은 바로 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행주산성에서 왜군에 맞서 용감히 싸운 권율 장군과 백성들의 모습을 그리는 동시에, 행주대첩을 겪으며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를 떨쳐 내고 한 발짝 성장해 나가는 열두 살 덕이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담아내고 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빛나는 용기와 백성들의 힘의녀가 되기 위해 혜민서에서 공부하던 열두 살 덕이는 전쟁이 일어나자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뒤로 줄곧 악몽에 시달린다. 피 흘리는 아저씨를 내버려 두고 도망친 기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끔찍한 모습을 보면 두려움이 앞서는 자신과 달리, 환자를 보자마자 주저 없이 다가가는 혜민서 동무 금영이를 떠올릴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진다.
이러한 고민을 안고 덕이는 행주산성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부지런히 움직인다. 직접 싸우지 못하는 여자들은 병사들의 밥을 준비하고, 아이들은 물을 긷고 돌멩이를 모은다. 그러던 어느 날, “와르르 쾅쾅!” 목책이 무너지는 사고가 일어난다.
덕이는 다친 병사를 보고도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두려움을 안고 있지만 그것을 견디고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권율 장군의 말을 듣고 어렵사리 용기를 낸다.
이튿날 새벽, 왜군의 공격이 시작된다. 병사들은 권율 장군의 명령에 따라 포탄과 화살을 쏘며 엄청난 기세로 몰려드는 왜군에 맞선다. 왜군의 공격이 하루 종일 이어지면서 부상자가 늘어나자, 덕이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부상자를 살피고 치료를 거든다. 그러다 위급한 산모를 발견하고는 침착하게 배운 것을 떠올리며 아기를 받는다. 뿌듯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화살이 떨어졌다는 소문이 돌면서 행주산성에 모인 사람들은 너나없이 돌을 모아 나른다.
덕이는 부상당한 금영이 아버지를 우연히 발견하고 치료하며, 환자를 위하는 마음이 앞서면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렇듯 《덕이의 행주대첩》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일궈 낸 행주산성에서의 귀한 승리를 그리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비로소 승리가 빛을 발할 수 있음을 나직이 일깨운다.
그만큼 이 작품은 행주산성에서 용감히 싸운 백성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전쟁이라고 하면 흔히 뛰어난 장군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싸운 이름 없는 백성들이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주역은 권율 장군 한 사람도, 행주산성의 지리적 이점도, 뛰어난 신무기도 아니다. 바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똘똘 뭉친 백성들의 마음과 힘이다. 아홉 번의 전투 중에서 행주치마에 돌을 나르며 벌인 투석전이 가장 널리 알려진 것 역시 백성 개개인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리라.
두려움은 견디는 거야혜민서에서 의녀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덕이는 전쟁이 일어나자 집으로 향한다. 길에서 덕이는 피 흘리는 아저씨를 보고 무서워 도망치는데, 그 뒤로 ‘의녀’라는 말조차 피하며 악몽에 시달린다. 이 때문에 행주산성에서 병사들을 돌봐 달라는 권율 장군의 부탁에도 망설이며 대답하지 못한다.
‘금영이었다면 머뭇거리지 않았겠지. 금영이는 나와 다르니까…….’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에 커다란 돌덩이가 또 하나 얹히는 것 같았다. 숨이 턱 막혔다. 숨을 크게 토해 내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돌덩이를 그대로 품은 채 살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덕이는 주먹을 꽉 쥐고 권율 장군에게 뛰어갔다.
“장군님!”
권율 장군이 멈추어 서자, 덕이는 다짜고짜 말했다.
“저는 피를 흘리는 아저씨를 보고 도망쳤어요.”
그 말을 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마음속에 꼭꼭 묻어 두었던 말이 그렇게 느닷없이 튀어나올 줄 몰랐다.
덕이는 당황해 얼굴을 붉혔다.
“무서웠던 게로구나?”
권율 장군이 물었다.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어요.”
“저런, 정말 무서웠겠구나. 그럴 때는 피하고 싶지. 너만 그런 게 아니다. 다들 마찬가지야. 나도 그렇고.”
권율 장군의 말에 덕이는 눈을 크게 떴다.
“전쟁터를 누비는 나이 많은 장수는 두려운 게 없을 줄 알았느냐? 수천수만 명의 목숨이 나에게 달려 있고, 내 한마디에 나라의 운명이 갈릴지도 모르는데, 어찌 두렵지 않겠느냐?”
권율 장군은 눈을 들어 잠시 먼 곳을 바라보다가 이어 말했다.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걸 견뎌 내는 게 중요하지. 두렵다고 물러서기만 해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지 않겠니?”
새로운 경험행주산성에서의 전투로 다들 분주한 가운데, 덕이도 부상자를 돌보고 치료를 거든다. 그런데 출산을 앞둔 산모가 있다는 얘기에 급히 움막으로 뛰어 들어간 덕이는 아주머니의 손을 꼭 잡아 안심시키고, 침착하게 책에서 배운 내용을 떠올리려 한다.
아주머니가 숨을 크게 쉬며 말했다.
“아기가…… 나오는 것 같아.”
덕이는 다급히 아주머니 치마를 들쳐 보았다. 아기 머리가 보였다.
‘머리다. 아기가 거꾸로 나오는 역산은 아니야.’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은 긴장 속에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여요, 머리가 보여요.”
덕이는 입안이 바짝 말라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침을 모아 꿀꺽 삼키며 두 손을 빠르게 비볐다. 꽁꽁 얼어 차가운 손을 조금이라도 따듯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아주머니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덕이는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아기를 받았다.
아기의 다리가 나오고 탯줄이 늘어졌다. 덕이는 미끈거리는 아기를 놓칠세라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아기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기는 눈을 꼭 감은 채로 움찔움찔 몸을 움직이는가 싶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