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작가 라헐 판 코에이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소년 얀을 통해 지극히 선하지만 언제든 타락할 수 있고, 용감하지만 쉽게 나약해지고 마는 우리 모두의 얼굴을 그렸다.<바타비아호의 소년, 얀>은 유럽의 동양 원정이 한창이던 17세기 초, 향신료를 사들이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인도네시아로 출항했다가 8개월 만에 좌초한 바타비아호의 실화에 근거하고 있다.
근대 범선 건조의 정점을 대표하며, 신흥 강국 네덜란드의 자부심의 표현이었던 바타비아호는 산호초에 좌초하여 파국적인 운명을 맞았지만, 이미 그 전에 승선한 사람들 사이의 신분 차이로 인해 물자의 분배가 불공평하게 이루어지고 불합리한 특권 행사가 횡횡하면서 항해는 삐그덕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바타비아호는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의 정복욕과 진보의 한계를 보여주었지만 '바타비아호의 침몰'은 단지 그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침몰 후에 더욱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바타비아호에서 생존한 사람들은 오스트레일리아 부근의 무인도를 점거한 뒤, 잔인하고 파괴적인 권력욕을 지닌 몇몇 사람에 의해 무력하게 지배당하고 급기야는 살인까지 저질렀다. 대상인 펠사에르트가 구조선을 타고 다시 돌아오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이들은 한정된 식량과 자원을 놓고 '쓸모없는' 사람들을 제거해 나가면서 생명을 연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바타비아호의 불행한 항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출판사 리뷰
그 때 그 배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1628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기함 바타비아호가 향신료를 사들이기 위해 동인도 섬으로 출항했다. 승객 340명 중에는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바타비아호에 모든 희망을 걸고 선실 사환으로 승선한 열여섯 살 소년 얀이 있었다. 그러나 얀을 배에 오르도록 힘써 준 부(副)상인 코르넬리스는 갈수록 정체를 알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얀을 옥죄고, 선상 인물들 사이에는 질시와 탐욕 어린 음모의 기운이 짙어져 간다. 그리고 바타비아호는 출항 8개월 만에 파국적인 운명을 맞는다. 작가 라헐 판 코에이는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에 이어 다시 한 번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소년 얀을 통해 지극히 선하지만 언제든 타락할 수 있고, 용감하지만 쉽게 나약해지고 마는 우리 모두의 얼굴을 그렸다.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의 작가 라헐 판 코에이Rachel van kooij가 날카로운 눈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포착하고 그 속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능력을 다시 한 번 발휘하였다. 작가가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를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에서 힌트를 얻어 구상한 것과 마찬가지로, 『바타비아호의 소년, 얀』은 유럽의 동양 원정이 한창이던 17세기 초, 향신료를 사들이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인도네시아로 출항했다가 8개월 만에 좌초한 바타비아호의 실화에 근거하고 있다. 근대 범선 건조의 정점을 대표하며, 신흥 강국 네덜란드의 자부심의 표현이었던 바타비아호는 산호초에 좌초하여 파국적인 운명을 맞았지만, 이미 그 전에 승선한 사람들 사이의 신분 차이로 인해 물자의 분배가 불공평하게 이루어지고 불합리한 특권 행사가 횡횡하면서 항해는 삐그덕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바타비아호는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의 정복욕과 진보의 한계를 보여주었지만 ‘바타비아호의 침몰’은 단지 그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침몰 후에 더욱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바타비아호에서 생존한 사람들은 오스트레일리아 부근의 무인도를 점거한 뒤, 잔인하고 파괴적인 권력욕을 지닌 몇몇 사람에 의해 무력하게 지배당하고 급기야는 살인까지 저질렀다. 대상인 펠사에르트가 구조선을 타고 다시 돌아오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이들은 한정된 식량과 자원을 놓고 ‘쓸모없는’ 사람들을 제거해 나가면서 생명을 연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바타비아호의 불행한 항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약제사의 선실 사환
작가는 바로 그 바타비아호에 얀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승선시킨다. 실제로 당시 바타비아호에 얀이라는 소년이 승선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소설 속 얀은 오롯이 작가의 창조물이다. 얀은 네덜란드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어려움 없이 자랐지만, 아버지가 죽고 나자 친어머니인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가 얀이 서자였음을 밝히면서 집에서 나갈 것을 종용한다. 세상 끝자락에 선 열여섯 살 소년 얀은 모든 희망을 걸고 동인도로 떠나는 바타비아호에 선실 사환으로 승선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얀이 승선할 수 있도록 힘써 주고 기꺼이 후견인이 되어 주겠다고 나선 부(副)상인 코리넬리스는 점점 사악한 본성을 드러내면서 얀이 서자 출신에 나이를 속이고 승선한 것을 빌미로 얀의 숨통을 죄기 시작한다. 작품에서 코르넬리스는 유명한 약제사였다가 도박으로 전 재산을 날린 이력이 있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작품의 독일어 원제 Der kaj?tenjunge des Apothekers가 ‘약제사의 선실 사환’인 점을 볼 때, 작가는 코르넬리스를 얀 못지않은 중심인물로 설정했으며, 약제사라는 전직을 그 인물의 중요한 캐릭터로 내세웠다. 유럽 문화에서 ‘약제사’라는 말은 독특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중세 유럽 때부터 의학과 마술의 경계가 모호했기에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할 약을 다루는 약제사에게는 당연히 마법사의 기운이 어려 있었던 것이다.
코르넬리스는 약제사라는 전직에 걸맞게 단순히 사악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신과 대척점에 서서 인간들을 조종하고 우롱하는 악마적인 마법사의 모습을 드러낸다. “난 네 인생과 마래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며 얀에게 한없이 자애로운 아버지처럼 대하는가 하면, 얀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음을 알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사악하고 교묘하게 굴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 후반부에서 코르넬리스의 권력에 휘둘려 폭력과 살인을 일삼은 자들이 모두 대상인 앞에 무릎 꿇었을 때, 코르넬리스가 얀에게 한 말에서 그는 신이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살인과 폭력조차 결국에는 선으로 이르는 길이라는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가련한 인간임이 드러난다.
“내 말 잘 들어라. 신은 무한히 선하시다. 너와 난 그런 신의 피조물이다. 그렇다면 신이 우리에게 행동하도록 한 것이 악할 수 있겠느냐?”
“하느님은 나에게 그런 행동을 시키지 않았어요.”
“무슨 소리! 우리 인간은 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때는 신의 명령조차 인간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사악한 것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신이 선하다는 확고한 믿음만 있으면, 신이 우리에게 선한 것만 허용했음을 알게 될 것이다.” (p341)
얀, 우리 모두의 자화상_지극히 선하지만 언제나 타락할 수 있고, 용감하지만 쉽게 나약해지는
대상인과 부상인, 선장 사이의 권력 다툼으로 배 안의 분위기는 묘하게 흘러가고 용의주도한 부상인 코르넬리스는 단순하고 과격한 선장을 이용해서 대상인을 처단하려고 음모를 꾸민다. 부상인의 선실 사환인 얀은 우연치 않게 음모의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게 되지만 얀은 아무도 자기를 믿어 주지 않을까 봐, 오히려 자신이 궁지에 몰릴까 봐, 또는 반란을 획책하는 자들이 ‘양심에 가책을 느껴’ 반란 계획을 철회할지도 모른다는 안이한 생각에 입을 꾹 다물고 만다.
전체 항해의 절반을 넘긴 무렵, 바타비아호가 산호초에 좌초하고. 생존자들은 남국(南國), 즉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근처의 무인도로 피신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바타비아호의 진짜 비극은 시작된다. 난파민들은 절망에 빠져 코르넬리스의 폭압적인 권력 앞에서도 용기와 이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갖가지 사악한 발상으로 난파민들의 수를 최대한 줄이려는 코르넬리스 앞에서 난파민들은 절망에 빠진 채 용기와 이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큰 섬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누구도 믿지 못하는 카오스 상태에 이른다.
바타비아호 안에서 벌어졌던 권력 다툼 그리고 배가 좌초한 후 생존자들 사이에 벌어졌던 잔인한 폭력과 살인은 대상인 펠사에르트가 구조선을 타고 돌아옴으로써 끝을 맺는다. 일에 휘말려들었던 모든 사람들이 심문을 받고, 얀은 그 중에서도 코르넬리스의 명령을 가장 철저하게 받든 중죄인에 속하게 된다. 얀은 “왜 그랬지, 얀?” 하고 자신을 심문하는 차가운 눈동자들 앞에서 어떤 항변도 할 수 없음을 느낀다. 한 번도 코르넬리스의 사악한 음모에 동조한 적 없으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한 일들의 이면에 놓인 진실을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얀은 절망적으로 이렇게 외칠 뿐이다.
“빌어먹을, 다른 말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요?”
옮긴이 박종대는 이 소설에서 처음 받은 느낌으로 ‘권력에 의한 길들여짐’을 들었다. 얀은 코르넬리스의 덫에 걸려들어 사람들의 동향을 보고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누구나 자기 같은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자신을 합리화하는데, 이런 자기 합리화가 곧 ‘권력의 내면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얀과 발터는 사형 대신 미지의 섬에 유배되고 그곳에서 독사에 물린 발터를 섬의 원주민이 구해 준다. 얀은 자연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원주민의 세계를 맛보는 동시에 발터가 한때 난파된 섬에서 코르넬리스가 없는 틈을 타서 권력을 휘두르려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원주민들을 장악하려 드는 것을 보고 발터를 떠나 원주민들의 마을로 발걸음을 옮긴다. 역자는 마지막에 얀이 제 나름대로 권력의 종속에서 벗어나는 길을 택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얀이 “이제야 비로소 처음으로 독자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결정을 내렸”으며, “권력에 내준 자신을 되찾는 행위이자 권력에 저항하는 몸짓”(p398)을 보였다고 말이다.
얀이 문명 세계로 돌아갈 구조선을 기다리는 대신 원주민들의 세계로 들어서는 마지막 장면은 자칫 아나키즘적인 결론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소설 속 상황에서 얀의 그러한 결단은 아나키즘의 발로이기보다는 자신의 진실과 주체성은 외면당한 채 오직 권력만이 유효한 사회에 결별을 고하는 것으로 읽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진정한 용기를 보일 기회를 잃고 나약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가 결국에는 무력한 군중 속에 파묻힌 개인을 다룬 『바타비아호의 소년, 얀』은, ‘젊은이들이 모두 죽었다’는 사회적 위기감이 한동안 고조되던 때, 다시 촛불을 들고 등교 거부를 내세우며 행동하는 요즘의 청소년들에게 진지한 내적 성찰의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저자 : 라헐 판 코에이
1968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열 살 때 오스트리아로 이주했다. 빈대학에서 일반 교육학과 특수교육학을 공부했고, 글을 쓰면서 장애인 사회 복지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작품으로 『거위 요나스』 『할 머니의 열한 번째 생일 파티』 『바타비아호의 소년 , 얀 』 등이 있다.
목차
서문
제1부
집에서 쫓겨나다
곱사등이 구스타프
동인도회사
작별
마지막 소집 검사
배에 오르다
선장과 대상인
출항
폭풍
폭풍이 지나고
물 도둑
시에라리온
아브라함
캐테 부인
희망봉
계속되는 항해
습격
제2부 난파
배신자들
비프레히트
예로니무스 코르넬리스
음모
선상 회의
보트 항해
악마
물범섬
바타비아의 무덤
그물 수선공
전쟁
새로운 우두머리
비베의 섬
심문
심판
교수대
유배
나마트지라
새로운 세상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