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므로…
잊지 않을게, 못다 한 수많은 이야기와 너의 아픔을 『바다로 간 별들』의 배경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20여 일이 지난 시점에서 그해 겨울까지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7년, 지금은 어떠할까. 꿈쩍도 하지 않을 듯했던 배가 다행히 인양되었고, 미수습자를 찾는 노력도 계속되지만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아직 남아 있다. 그곳 그 순간에 멈춰 선 진실 또한 여전히 캄캄함 어둠 속에 남아 있다. 현실은, 냉정히 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박일환 작가는 세월호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는 데 오래도록 고민했다. 초고를 마치기까지 2년 넘는 시간이 걸렸다니, 그 고민의 깊이가 짐작되고 남을 정도다. 그럼에도 작가가 이야기를 완성하기로 마음먹은 까닭은 ‘도리를 다하고 싶다’는 절실함에서였다. 작가는 세월호로 자녀를 잃은 단원고 가족들을 취재하고, 어린이청소년 작가들과 함께 진실규명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바라보고 기억해야 할 책임감과 의무를 가슴 뜨겁게 다짐한 것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세월호 참사를 바탕으로 작가가 창작해 냈다. 참사 이후의 정황 등 현실적인 부분을 조사하고 참고하였을 뿐, 실존 인물들과 관련이 없다. 주인공 민지는 친한 친구를 잃었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아픔’을 갖고 있으며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객관적인 입장’에 놓여 있다. 작가는 소설 전반의 분위기를 슬픔으로만 몰고 가지 않고, 일반적인 관찰과 정보 서술에 치우치지도 않는다. 객관성을 확보하는 화자가 이야기의 진실성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도록 서사의 ‘거리 유지’에 부단히 애를 쓴 부분이다. 이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우리 사회에 벌어지는 비극적 사고)를 바라보며 ‘나일 수도 있었다. 남의 일이라 단정할 수 없다.’라고 느끼는 바로 그 지점과 정확히 맞닿으며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더욱 밀착시킨다.
세월호를 잊지 않고자 노력하고, 그 노력을 다하기 위한 여러 활동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크고 작은 형태로 행해지고 있다. “왜, 아직도 세월호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 소설의 주인공 민지는 무어라 답할까. ‘사람’으로서 당연한 자세이지 않느냐고, 이것은 어쩌면 이 사회를, 이 나라를, 살아 내기 위한 ‘생존본능’에 기초하는 게 아니냐고,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지 않느냐고 답하지 않을까? 수없이 되풀이되는 간절한 외침이 더는 헛된 희망으로 남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여기, 박일환 작가가 전하는 민지 이야기를 들여다보기로 하자.
“이 슬픔의 터널을 벗어날 수는 있는 걸까?”
아물지 않은, 그 봄의 아픈 기억… 열여덟 민지가 전하는 그리움의 노래 부유하진 않아도 화목한 가정에서 매사 성실한 아빠 엄마 언니와 살고 있는 열여덟 살 민지는 평범한 ‘대한민국 고딩’이다. 수업이 끝난 뒤 친구들과 떡볶이 먹는 게 즐겁고, 가수 샤이니의 멤버 종현을 좋아하고, 콘서트에 가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하고, 가끔 노래방에 가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푼다. 성적이 뛰어나지도, 딱히 장래희망이 확실하지도 않아 고민이 많지만 특유의 활발한 성격으로 긍정의 힘을 믿으며 지내고 있다. 그 어느 계절보다 봄을 좋아하고, 매사에 싱그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던 민지. 그런 민지가 이제 더는 봄을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눈부신 어느 봄날, 믿을 수 없는 사고로 중3 때 같은 반이었던 친한 친구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을 삼킨 4월의 바다는 차가웠고, 심청이를 태우고 올라온 연꽃 같은 기적을 보여 주지 않았다. (…) 믿기지 않아서, 차마 믿을 수가 없어서 얼마나 도리질을 했는지 모른다. 그럴수록 친구들이 지금 내 곁에 없다는 사실만 분명해졌다. 기쁠 때 같이 웃고 힘들 때 같이 울어 주던 그 친구들 말이다. _본문 11쪽
떠나 버린 친구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질 듯 무너져 내리는 민지. 그나마 이 시간을 버텨 내고 있는 건 친구들과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시엔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일상이었지만, 이제 와 생각하니 너무나 눈물겹고 애틋한 기억들. 민지는 그 시절의 풍경을 하나둘 되돌려보기 시작한다. 추억의 중심에는 언제나 수경이가 있다. 민지는 수경이, 은지, 혜림이, 미란이와 ‘오죽하면’이라는 댄스 팀을 만들고, 교내 축제를 준비하기도 했다. 서로 생일이면 누구보다 기쁘게 축하해 주었고, 남친에게 차여 속상한 마음을 속 시원히 털어놓았고,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놀기도 했다. 성격도 다르고 생김새도 달랐지만, 다섯이 모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만큼 행복했던 날들.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더욱 꿈처럼 느껴진다.
공원에서 웃고 떠들며 즐거워하던 친구들 중에 지금 수경이는 우리 곁에 없다. ‘없다’라는 말이 훗날 사무치게 닥쳐올 줄은 당시만 해도 우리 중 누구도 알지 못했다. 희생된 친구들이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수경이도 그날 밤 우리의 머리 위에서 빛나던 별들 속으로 들어가 섞여 있는 걸까? _본문 122쪽
사실 고2 시기가 인생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민지가 모르는 건 아니다. 당장 내년이면 고3이기에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해야 한다. 엄마 아빠나 선생님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민지 역시 잘 안다. 하지만 지금 민지를 부여잡는 건 ‘삶과 죽음’ 그 자체의 문제다. 왜 수경이는 그렇게 떠날 수밖에 없었나. 의문이 풀리지 않았기에 그 물음에 끈질길 만큼 꼬리를 물고 또 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지는 주말이면 친구들과 피켓을 들고 진실규명 활동에 참여하고, 광화문에 간다. 수경이가 다니던 단원고 교실을 찾아가고 추모공원을 찾아가 수경이 생일을 챙겨 주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민지는 중학교 때 미술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을 받는다. 카페에서 만난 미술선생님은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난 또 다른 친구, 민석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우스꽝스러운 실수로 ‘믹서기’라는 별명을 갖게 된 민석이는 말수 적고, 식물에 관심 많고, 텃밭 동아리 활동을 했던 아이였다. 공통 관심사가 없어 친해질 기회가 없었지만 집이 가까워 우연히 동네에서 몇 번 만난 적 있었다. 심심하던 차에 같이 배드민턴 치고, 풍선덩굴 씨앗을 찾아본 기억 정도인데, 미술선생님이 민지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다. 민석이가 오랫동안 민지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너한테 얘기를 안 하려고 했어. 나만 알고 있으려고 했지. 자칫하면 네 마음에 괜히 부담만 줄까 봐.”
“그런데 지금은 왜요?”
“민석이 아버지를 만나고 와서 생각하니까 너에게 얘기해 주는 게 좋겠다는 마음이 들더라. 가까이 지낸 친구도 많지 않았는데 민석이가 누굴 좋아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하늘나라에서 너무 외로울 것 같기도 했고……. 내 얘기 듣고 충격받았니?”
미술선생님이 내 눈치를 살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언뜻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_본문 170쪽
미처 몰랐던 민석이의 흔적을 하나둘 찾아 나가는 민지. 너무 늦게 도착한 진심 앞에서, 민지는 미안함과 아쉬움에 또 한 번 눈물을 쏟아 낸다. 민지는 민석이가 잠들어 있는 ‘안산하늘공원’에 찾아가고 풍선덩굴 씨앗을 찾으며, 이제야 알게 된 민석이의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하기로 한다. 며칠 뒤 꿈속에서 민석이를 만난 민지는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다 가슴 시리도록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민지는 먼저 떠나보낸 친구들을 향한 깊은 슬픔을 딛고, 다시 꿋꿋이 일어설 수 있을까?
기다릴게,
긴 여행이 끝나고 돌아올 너와 마주할 새로운 봄날을 대한민국에서 세월호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조심스럽고 예민한 문제다. “아직도? 대체 언제까지?”라고 날 세우는 이들과 “언제까지라도! 진실을 알기 위해!”라고 가슴 치는 이들이 공존하는 까닭이다.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로 남을 이 참사의 진실 규명은 멀찍이 던져 놓고, 대체 왜 이념적 대립이 이루어지고 국론이 분열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앞으로는 숨어 있던 진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올 것이라고 감히 확신한다. 이제는 조금 더 용기 낼 수 있게 되었으므로. 간절한 마음은 더욱더 단단해졌으므로. 진실을 향한 목마름은 누가 짓밟고 억압한다고 사라질 것이 아니었으므로.
참사 1주기를 앞두고 도보행진단에 참가해 한 발 한 발 꿋꿋이 내디디는 민지를 보며 우리는 다시, 희망의 가치를 품게 된다. 민지는 여전히 그날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조금씩 덜어 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기억조차 아픔이고 미안함이고 고통이던 시기를 지나, 그리움과 추억으로 친구들과의 한 시절을 따뜻하게 회상하고 있는지 모른다. 오래도록 마음 한편이 먹먹하게 저려 올 테지만, 그 순간들도 슬픔을 넘어서는 디딤돌이 되어 줄 테니까. 우리는 잊지 않고 함께할 테니까.
책을 내려놓은 다음 ‘수경아, 민석아, 경호야’ 마음속으로라도 그들의 이름을 불러 주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늘나라 저 멀리서 수경이를 닮고, 민석이를 닮고, 경호를 닮은 친구들이 씩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줄 거라 믿습니다. 여기서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희도 씩씩하게 잘 살아가라고 하면서 말이지요. -‘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