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칠지도는 단순한 칼이 아니다!”
주는 사람은 깊은 신뢰를 담을 수 있고,
받는 사람은 감히 뜻을 거스르지 못하게 되지.
화려한 무공과 드넓은 식견으로 전성기를 연 근초고왕
백제에서 가장 똑똑하기로 소문난 오경박사 왕인
쇠와 싸울 때는 세상이 무너져도 꿈쩍 않는 철기 장인 탁소
얼떨결에 대장장이의 조수가 되어 버린 귀족 소년 근차
잘 만든 검 한 자루가 수만 군사 안 부럽다!
삼국 시대 최고의 외교 강국 백제를 만나다!
백제인의 야심과 지혜로 벼린 칼, 칠지도일곱 개의 칼날이 하늘로 치솟아 있는 칠지도. 엄마 아빠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국사책에 흑백사진으로나 실리던 이 칼이 요즘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그리고 웹툰에까지 어마어마한 화력을 지닌 무기로 등장하고 있다. 사람으로 치면 나이가 1600살쯤은 되어 전설에나 등장할 법한 칼인데……, 대체 어떤 매력이 있어 지금까지 우리 앞에 불쑥불쑥 되살아나는 것일까?
뿐만 아니라 칠지도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뉴스에 나오는 단골손님이기도 한다. 바로 우리나라와 일본의 고대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100년 가까이 논쟁의 주인공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백제의 신검 칠지도》는 이처럼 들여다볼수록 재미난 내력을 지닌 칠지도를 둘러싸고 펼쳐진다. 그 무대는 탄탄한 외교력으로 백제의 전성기를 연 근초고왕 시대. 얼떨결에 대장장이 조수가 되어 버린 귀족 소년 근차가 백제와 왜의 친교를 방해하려는 고구려 첩자로부터 칠지도를 구해 내는 재기 넘치는 모험담이 펼쳐진다. 겉보기에는 투정이나 부리는 철부지 같지만, 알고 보면 속 깊고 야무진 이 열한 살 소년은 독자를 백제 최고의 철기 공방으로, 야심찬 백제의 외교 현장으로 발길을 이끈다.
근초고왕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삼국 시대 3대 정복왕으로 꼽힐 만큼 대단한 전술가인 한편, 그 누구보다 빨리 한반도 밖으로 시선을 돌려 서해안 교역로를 개척한 뛰어난 외교 전략가였다. 《삼국사기》에서는 그를 ‘드넓은 식견’을 지닌 군주로 평가했을 정도.
당시 백제는 선진 문물을 왜에 전파해 백제 편으로 만들고자 했고, 칠지도 속에는 그런 백제인의 시대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말하자면 단순히 쇠붙이로 만든 칼이 아니라 야심과 지혜로 벼린 칼이랄까? 백제는 칠지도라는 검 한 자루로, 오늘날로 치면 IT와 맞먹을 첨단 철기 기술을 뽐내면서 왜라는 든든한 아군까지 얻은 셈이니 말이다. 그럼 이제 막 칠지도의 탄생을 앞두고 있는 삼국 시대 외교 강국 백제를 만나러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누더기를 입은 귀족 소년, 백제 최고의 철기 공방에 가다 세상의 배란 배가 다 모인 것처럼 북적북적한 한나루. 열한 살 근차는 이곳에서 아버지, 그리고 왕인 박사와 함께 막 여행을 시작할 참이다. 근차네 아버지는 백제에서 가장 높은 벼슬인 좌평인데, 이번에 어라하(임금)의 특명을 받았다. 바로 왜에 보낼 특별한 선물을 만들어 오라는 것! 목적지는 백제 최고의 대장장이, 탁소 장인이 살고 있다는 쇠펭이 마을이다.
그런데 쇠펭이 마을에 도착해 배에서 내린 직후, 요상한 일이 벌어진다. 근차가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는데 난생처음 보는 쇠펭이 마을 아이들이 짓궂게 장난을 걸며 다가오더니 근차더러 쇠사리라고 불러 대는 게 아닌가? 근차가 그게 누구냐고 하자, 아이들은 제 이름을 가지고 아니라고 우긴다며 퉁을 놓더니 근차에게 펄을 잔뜩 뒤집어씌우고는 깔깔대며 도망쳐 버린다.
혼자 바닷가에 남겨진 근차는 고이 벗어 둔 비단옷이 사라진 걸 뒤늦게 알아차린다. 모래사장에는 땟국이 줄줄 흐르는 누더기가 한 벌 뒹굴고 있고……. 하는 수 없이 누더기를 주워 입은 근차는 아까 그 녀석들의 발자국을 뒤쫓는다. 비단옷을 훔쳐간 그 녀석들을 혼쭐내 주리라 마음을 먹고서…….
쇠펭이 마을로 가 보니 망치 소리, 기합 소리, 노랫소리가 뒤섞인 요란한 난리통 속에 신나게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곳 사람들은 모두 근차를 향해 쇠사리라고 부른다. 아마도 이 마을에 근차와 똑 닮은 쇠사리라는 아이가 살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근차는 일꾼 아저씨에게 또 어디서 게으름을 피우다가 왔냐고 호되게 꾸지람을 듣고 하룻저녁 내내 덩이쇠를 두드리는 벌을 받는다. 아뿔싸, 귀족 도련님이 눈 깜짝할 새에 대장간의 심부름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위기에 빠진 천하 명검, 칠지도를 지켜라!근차는 아버지가 묵고 있는 태수(마을의 수령)의 집에 숨어들었다가 그곳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쇠사리를 목격한다. 때마침 한성에서부터 달려온 심부름꾼이 들이닥쳐 다급하게 전갈을 읊는다. 신물에 관한 정보가 샜는지 고구려와 신라 쪽 움직임이 수상하니 조심하라나? 그 바람에 우르르 몰려온 병사들 눈에 띈 근차는 항변도 제대로 못 해 본 채 문밖으로 쫓겨난다.
마을을 탈출하는 일도, 아버지와 왕인 박사를 뒤쫓는 일도 번번이 실패만 하는데, 설상가상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인 가락지까지 도둑맞는다. 게다가 그 범인은 신물을 제작 중인 대장간에 잠입한 첩자일 가능성이 무지무지 높은데……. 근차는 이대로 쇠펭이 마을을 떠날 수 없다며 첩자가 또다시 대장간에 나타나길 기다려 보기로 마음먹는다.
며칠 전만 해도 발에 진흙이 달라붙을까 걱정하느라 바다에 들어가는 것조차 꺼려할 만큼 곱게만 자라 온 아이였지만 이제 근차는 달라졌다. 숯을 져 나르고, 물을 긷고, 수건을 빨며 온갖 고된 일도 손수 해 나간다.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탁소 장인은 신물을 만드는 동안 곁에 둘 심부름꾼으로 근차를 지목하고, 근차는 그 덕분에 칠지도가 탄생하는 순간을 지근거리에서 목격하게 된다.
탁소 장인이 혼신을 다해 만든 칠지도. 검신에 새긴 글귀처럼 “온갖 적과 병”을 물리칠 듯 성스러운 기운이 가득한 게 천하 명검이 따로 없다. 근차의 마음속에는 이제 한 가지 결심이 더 싹튼다. 가락지 때문만이 아니라도, 칠지도를 지켜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첩자를 잡고야 말겠다는! 마침 왕인 박사가 건네 준 중국 한나라 시절 역사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곰곰이 되씹던 근차의 머릿속에 마침내 한 가지 꾀가 떠오르는데…….
과연 근차는 칠지도를 지켜낼 수 있을까?
지혜로운 외교력이야말로 국력!이야기 속에는 삼국 시대 첨단 기술을 그러쥐고 칠지도를 만들어 낸 제철 장인, 그런 기술을 뽐내 이웃 나라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을 정도로 지략이 뛰어났던 군주, 그 군주의 계획을 한마음으로 도왔던 한류 전도사가 두루 등장한다. 바로 근초고왕, 탁소, 왕인 같은 백제 외교의 아이콘들이 등장인물로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칠지도를 들고 바다를 건너간 백제 사신들이 왜의 민중으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는 축제 장면에서 막을 내린다. 근차의 아버지는 그 길을 따라나서는 아들에게 백제가 강력해진 진짜 비밀을 들려준다. 베풂으로써 성장해 나가는 문화 전파국 백제다운 비밀을.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면 그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법이다. 우리 백제인은 가진 것을 나누고, 상대의 마음을 얻어 더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작가의 말’에서 지은이는 이렇게 묻고 있다. “세계는 하나라는 요즘, 우리들의 마음은 활짝 열려 있을까?” 세상을 향해 활짝 연 마음으로 신분의 벽도, 국경의 벽도 넘어서, 한 걸음 성큼 나아가는 백제 소년의 이야기는 먼 과거를 배경으로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나아갈 미래 또한 그려 보이고 있다.
물론 칠지도는 한일 양국의 팽팽한 역사 분쟁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뜨거운 쟁점이다. 칠지도에 새겨진 글귀를 두고 일본은 진상품이라고 주장하고, 반대로 우리나라는 하사품이라고 반박하는 진실 공방이 그 핵심이다.
하지만 이 역사 동화는 1600여 년이라는 긴 세월에도 결코 녹슬지 않는 보다 본질적인 의미에 다가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칠지도가 양국 간의 신뢰와 우정을 담아 낸 칼이라는 점이다. 백제와 왜의 뿌리 깊은 교역 관계는 긴 역사 속에서 양국이 결코 적대적이지만은 않았다는 점을 일깨운다.
최근 뉴스를 켜면 ‘동북아 신냉전 시대’라는 말을 자주 접하게 된다. 북한의 폭탄선언을 받아치는 미국 정부의 한마디 한마디가, 또 우리 정부가 일본이나 중국과의 회담에서 맞닥뜨린 갖가지 사건 사고가, 그 어느 때보다 큰 관심사다.
《백제의 신검 칠지도》는 그처럼 불안정한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와, 나날이 극심해지는 반일 분위기 속에서 더욱 사무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것은 지혜로운 외교력이 곧 국력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어른들은 흔히 약자의 도덕적 우월성에 사로잡혀 일제를 비난하는 데 몰두해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를 깎아내리기에 몰두하곤 한다. 이 작품은 그러한 역사관에서 한발 물러서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바탕으로, 또 포용력 있는 시선으로 우방 국가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선을 길러 줄 것이다.

“이놈들! 누구더러 자꾸 쇠사리라는 거야? 난 쇠사리가 아니란 말이다!”
근차가 정색을 하며 소리를 지르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아이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야, 재미없거든. 장난칠 게 따로 있지. 제 이름을 가지고 아니라고 빡빡 우길 건 또 뭐야? 가자, 가! 저렇게 시답잖은 농담에는 모른 척하는 게 장땡이야.”
아이들이 우르르 물 밖으로 나갔다. 그 바람에 너른 바다에 혼자 남게 되자 근차는 더럭 무섬증이 일었다. 그래서 물가로 어기적어기적 따라 나가다가, 물이 무릎쯤 닿는 곳에서 우뚝 멈춰 섰다.
이대로 물밖에 나갔다가는 발바닥에 펄이 잔뜩 묻을 터였다. 근차는 아이들을 큰 소리로 불러 멈춰 세우고는, 평소에 배운 대로 굵고 엄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여봐라! 그냥 가지 말고 이리로 와서 나를 업거라. 거기, 가장 덩치가 큰 너! 네놈이 업으면 되겠구나.”
덩치 큰 아이가 입을 밉살스럽게 삐죽대며 대꾸했다.
“누가 누굴 업어? 이 녀석이 갈수록 헛소리가 심해지네? 우리가 대장 대접 좀 해 주니까 이젠 귀족 행세까지 해? 옜다, 이놈아! 한번 된통 당해 봐라.”
아이는 두 손 가득 펄을 퍼 올려서는 근차 얼굴에 마구 문질렀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냐?”
다른 아이들도 두 손 가득 펄을 퍼서는 근차에게 마구 던졌다. 그러더니 저희끼리 깔깔대며 쏜살같이 도망쳤다.
잠시 뒤, 연못이 있는 정원이 나왔다. 연못가에는 비단옷을 입은 남자아이가 쪼그리고 앉아 울상을 짓고 있었다. 근차는 눈에서 불이 확 이는 것 같았다!
‘내 행세를 하고 있는 놈이잖아!’
근차는 다짜고짜 달려가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네 이놈! 감히 내 옷을 훔쳐 입고 내 행세를 해? 네가 쇠사리지?”
목덜미를 붙잡힌 아이의 눈이 순식간에 왕방울만 해졌다. 그 순간, 놀란 건 근차도 마찬가지였다. 생김새뿐 아니라, 키도 몸집도 자기를 쏙 빼닮았다. 사람들이 착각할 만했다.
“너, 너, 너는…….”
쇠사리가 근차의 손을 뿌리치고 뒷걸음질을 쳤다.
바로 그때, 집 밖에서 다급하게 말발굽 소리가 울리더니, 대문이 부서져라 큰 소리를 내며 화르르 열렸다. 심부름꾼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병사의 안내를 받아 급히 안채로 달려 들어왔다. 하인들도 무슨 일이 났나 궁금한 모양인지 우르르 뒤쫓아 왔다.
근차는 쇠사리를 붙잡고 얼른 벽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좌평 어르신! 한성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무슨 일인가……?”
안채 문이 열리며 방 안에서 생기라고는 쥐뿔만큼도 없는 목소리가 나직이 흘러나왔다.
‘아버지!’
근차는 저도 모르게 입속으로 웅얼거렸다.
“신물에 관해 정보가 새났는지 북쪽과 동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여기, 서찰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