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02년 독일 도서상 수상작으로, 동명의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픽션을 가미했다. 최악의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어린 소녀의 눈을 통해 전하고 있다. 홀로 남겨진 피난길에서 소녀가 만나게 되는 상황들은 슬프고 아픈 인류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데, 이는 단지 과거의 이야기로 남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벌어지고 있는 세계 곳곳의 폭력과 범죄의 실체를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위험 속에 소녀를 버려두는 인물들은 특별히 악한 기질로 가득 찬 사람들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작가는 이러한 설정을 통해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비 도덕성과 무관심을 이야기하고 경각심을 일으키고 있다.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참상은 어린 소녀의 천진함, 순수함과 어우러져 그 잔인함이 배가 된다. 홀로코스트 속을 혼자 헤쳐와야만 했던 소녀의 여정을 통해 우리 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리뷰
혼자가 된 여덟 살 소녀의 홀로코스트 생존기
홀로코스트를 피해 피난길에 올랐다가 가족과 떨어져 혼자가 된 여덟 살 소녀의 고난을 다룬 소설. 『씁쓸한 초콜릿』,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로 국내에 익히 알려진 미리암 프레슬러의 2002년 독일도서상 수상작이다.
귀하게만 자라온 소녀 말카는 어느 날 엄마의 손에 이끌려 헝가리로 피난길을 떠난다. 말카가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에 병을 얻자, 엄마는 어느 농부에게 아이를 맡기고, 큰딸과 먼저 길을 떠난다. 그러나 독일군의 시선을 두려워한 농부는 말카를 길 한가운데에 버리고 만다. 말카는 그때부터 길 위에서 추위와 허기, 외로움과 싸운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 어린 소녀가 혼자 살아가는 모습은 비참하기만 하다. 그러나 작가는 아이의 시선을 빌려 너무 무겁지만은 않게, 그러면서도 우리 안의 인간성을 자극하도록 그 시절을 묘사해 냈다. 누군가에 대한 동정, 혹은 비난을 강렬하게 드러내지도 않고, 메시지를 전하려 애쓰지도 않았다. 오직 순수하게 세상을 보는 아이의 시선을 담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리고 홀로코스트의 참상에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바로 미리암 프레슬러라는 작가의 저력이다.
『바람에게 부탁했어』는 동명의 실존인물로부터 얻은 얼개에 작가가 픽션을 더해 완성한 소설이다. 말카 마이는 현재 이스라엘에 살고 있으며, 피난길에 겪었던 일들을 거의 잊었다고 한다. 분명한 사회적 이슈를 담은 뜨인돌 청소년 문학 브랜드 《비바비보VivaVivo》 시리즈의 아홉 번째 작품이다.
소녀가 묻는다. “당신이라면 나의 손을 잡아 줬을까요?”
인류 최악의 대학살이라고 불리는 홀로코스트. 이런 고난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가해자의 위치에 설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 나오는 오스카 쉰들러 같은 의인은 못 되었을지라도, 최소한 소설 「더 리더」에 등장하는 한나처럼 수동적 복종형이거나 아니면 방관자 정도였을 거라고 추측하지 않을까? 그러나 1960년대 비윤리적 실험으로 악명을 떨친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 복종 실험’에서 나타난 결과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인간은 아주 약한 정도의 권위에도 쉽게 상식과 윤리를 배반한다.
괴롭고 부끄럽지만, 그것이 인간이다. 상황이라는 것은 교육받은 지성, 몸에 밴 친절을 간단히 벗겨 버리고 초라하고 나약한 모습을 드러나게 한다. 소설 속 농부는 말카 또래의 딸을 두고 있으면서도 그 작은 소녀를 버렸다. 그것도 길 한가운데에. 집단 살해 현장을 목격하고 성당으로 뛰어든 말카를 데려다가 먹여 주고 재워 준 할머니는, 말카가 갈 곳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제 집에 가라며 길에 내버려 두었다. 독일군을 피해 기차 안으로 숨은 말카는 어떤 남자가 “독일군이 한 가지만큼은 잘한 게 있”다면 “유대인을 싸그리 없애 버리는” 일이라고 하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우리 중 누가, 나는 이들과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말카는 우리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 1960년대 예일대학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교수는 ‘징벌에 따른 학습효과’를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실험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했다. 그들에게는 시간당 4불의 임금이 제시되었다. 참가자는 칸막이 건너편에 있는 사람에게 문제를 내고 그가 오답을 말할 때마다 전기충격을 가하게 되어 있었다. 오답이 반복될수록 전기충격의 강도는 점차 강해진다. 그런데 이 실험의 실제 목적은 참여자에게 밝힌 것과 달리 사람이 권위에 복종하는 양상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 밀그램 교수는 인간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450볼트까지 전압을 높일 참가자가 몇이나 될 것인지 보고 싶어 했다. 건너편에서 전기충격을 받고 소리를 지르며 내보내 달라 애원하는 이들은 모두 실험팀의 일원이었다.
실험결과는? 실험 전에는 450볼트 전압까지 높일 이들이 전체 실험 참가자 중 0.1퍼센트 미만일 것이라는 가설이 세워져 있었다. 상식적으로, 또한 ‘인간적으로’ 누가 시간당 4불을 받으면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겠는가? 그러나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전체 참가자 중 무려 65퍼센트가 최대 전압까지 올렸다. 실험 장소에는 아무런 속박이 없었으므로 참가자는 언제든 실험실을 박차고 나갈 수 있었다. 다만 실험을 주관하는 이, 즉 권위자의 몇 마디 압박이 참가자에게 끊임없이 가해졌다. 실험 주관자는 참가자가 실험을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걱정하지 말고 계속하라. 당신이 전압을 올리지 않으면 실험은 마칠 수 없다. 책임은 내가 지겠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희망이 두려웠던 아이, 말카를 소설 속에 불러들인 이유
홀로코스트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매해 4월 20일에는 이스라엘에서 홀로코스트 추모 행사가 벌어진다(*4월 20일은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에서 1943년에 봉기가 시작된 날이다). 희생자는 600만 명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 숫자가 맞는지에 대해서는 한참 논쟁 중이다. 관련서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이고, 소설·영화 등 수많은 예술작품들을 낳기도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인류가 저지른 참혹한 살상을 끊임없이 반추하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를 꼽아 보자면 이 커다란 범죄를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정리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누가 누구를 용서할 것이며, 죄의 대가는 어떻게 치를 것인가? 『바람에게 부탁했어』에 등장하는 어린 소녀 말카는 누구로부터 고통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자기 자식을 지키고자 남의 자식을 버린 이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그들이 비인간적이었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최소한의 행동을 취했다고 할 것인가?
용서는 누가 대표로 구할 수도 없고, 누군가를 대신해서 해줄 수도 없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고통은 어떤 식으로든 정의롭게 정리되지 못할 것이다. 대신 우리는 사실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성찰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그 겨울, “깡마른 허벅지가 남의 다리처럼 낯설게 느껴”졌던,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하늘로 날아갈 것만 같아 걱정이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차라리 그렇게 되었으면 싶”었던 말카를 소설 속에 불러들인 이유다.
미리암 프레슬러에게 더해진 또 하나의 명성,
2002년 독일도서상 수상작 『바람에게 부탁했어』
미리암 프레슬러는 올덴부르크 청소년도서상 수상작인 『씁쓸한 초콜릿』, 독일청소년문학상 수상작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등으로 우리나라의 독자들에게도 익히 알려진, 독일의 대표적인 청소년 문학 작가다. 『바람에게 부탁했어Malka Mai』는 그녀에게 2002년 독일도서상 수상작이라는 또 하나의 명성을 더해 준 소설이다. 독일도서상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독일 라이프치히 도서전에서 독일서적상협회가 선정한 최고의 책에 수여하던 최고 권위의 문학상이었다. 2005년부터는 그해 출간된 책 중 최고의 작품에게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수상하고 있다. 수상자에게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가 고안한 트로피가 수여된다.
작가 소개
저자 : 미리암 프레슬러
1940년에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태어나 프랑크푸르트 예술대학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다. 제2의 ‘루이제 린저’라는 평을 들으며 독일의 대표적인 청소년문학 작가이자 번역가로서 꾸준하게 활동해왔다. 1994년에 번역 전집으로 독일 청소년문학상 특별상을 받았고, 2001년에는 전체 작품에 대해 칼 추크마이어 메달을 받았다. 현재는 프리랜서 작가와 번역가로 일하면서 뮌헨에 살고 있다.
대표작으로는『쓴 초콜릿』『왁스 위의 할퀸 자국』『이제는 입을 열고 말하라』『11월 고양이』『꽃자루』『카타리나와 그 밖의 아이들』『닉켈과 새를 부르는 사람』『너무나 그리운-안네 프랑크의 생애』『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등이 있다.
역자 : 유혜자
스위스 취리히대학교에서 독일어와 경제학을 공부했다. 20년 넘게 독일 문학을 우리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황허에 떨어진 꽃잎』처럼 익숙한 것을 색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주고, 사고와 발상의 전환을 도와주는 책을 번역하는 일에 큰 보람을 느낀다. 『좀머 씨 이야기』, 『단순하게 살아라』, 『행복이 찾아오면 의자를 내주세요』, 『전쟁과 아우』, 『깡통 소년』, 『8시에 만나!』, 『분수의 비밀』 외 다수를 번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