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몽구스 크루>로 2006년 사계절 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등단한 작가의 두 번째 청소년 소설집. 다섯 편의 단편은 사회의 관심 박으로 소외된 아이들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이야기다. 책은 성장의 그늘을 지나는 10대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담았다.
표제작인 ‘자전거 말고 바이크’는 사귄 지 22일째인 중학생 커플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다. ‘투투데이’의 선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10대들의 성과 사랑에 관한 고민을 담았다. ‘화란이’는 거리의 소녀를 통해 극한상황으로 몰리기만 하는 10대들의 현실을 그린 소설이다. 월간지 발표 후 독자들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의 현실을 솔직하게 그려 우리 사회의 모순과 현실의 벽을 극대화해서 보여준다.
출판사 리뷰
성장의 그늘을 지나는 10대들에게 보내는 이야기
수탁은 구령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바닥에선 냉기가 올라오고, 차양막에 가려진 하늘은 초록색이다.
이러고 살다가 나는 뭐가 될까?
이제 겨우 십오 년을 살았는데 백 년은 산 것처럼 지겨웠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미친 듯이 싸울 때가 아니면 억수같이 잠이 쏟아졌고, 자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았다.
- [구령대 아이들] 중에서
혹시 너 그런 애들이랑 어울리고…… 설마, 그러는 거 아니지? 그래 그렇지. 엄마는 너 믿어. 네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니 어쩌니 잔소리 할 필요 없지? 그러니까 그런 애 생각은 아예, 머릿속에서 싹 지워! 나중에 어른 되서 사회사업이라도 한다면 몰라도 지금은 그런 애한테 관심 가져서 너한테 득 될 거 하나 없어. 엄마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아이는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내 말은 그냥 걜 봤다, 그거야!’라고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랬다간 밤을 새울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 [화란이] 중에서
낮은산 출판사의 청소년 문학 시리즈 ‘낮은산 키큰나무’의 여섯 번째 책으로『자전거 말고 바이크』가 출간되었다. 춤에 미친 비보이들의 치열한 일상을 다룬 장편소설『몽구스 크루』로 2006년 제4회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등단한 신여랑 씨의 두 번째 청소년 소설집이다. 다섯 편의 단편이 묶인 이번 작품집에서 작가는 사회의 관심 밖으로 소외된 아이들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
소외된 아이들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2007년 여름, 서울 성동구 옥수동의 동호정보공고 문제가 인터넷을 달군 적이 있다. 인근 신축아파트 주민들이 ‘혐오시설’인 실업계 학교를 이전시키고 그 자리에 초등학교를 세워달라고 했고, 교육청과 정치권은 아파트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동호공고 폐교를 추진한 것이다. 아파에는 ‘축! 동호공고 이전’ 현수막이 걸렸고, 그것을 보며 등교해야 했던 공고 아이들은 절규했다. “우리가 핵 폐기장이나 쓰레기만도 못한 인간입니까?”
신여랑의 작품집이 그려내는 풍경은 이와 비슷하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몰려다니며 싸움을 하는 ‘불량한’ 아이들을 그려내지만,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불량한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런 아이들의 속깊은 고민, 끝없는 외로움과 괴로움, 그리고 그 아이들을 애써 외면하고 낙오자로 일찌감치 낙인찍어 버리는 ‘우리’의 냉랭한 시선이다.
결국 동호공고 아이들은 스스로 현실에 맞서 싸웠고, 자기 존중감과 자신들의 학교를 지켜냈다. 그랬던 것처럼, 작가는 많은 독자들이 이 책으로 인해 잔인한 현실을 응시하고, 분노하고, 아파할 수 있기를 바라는 듯하다.
「구령대 아이들」은 “이제 겨우 십오 년을 살았는데 백 년은 산 것처럼 지겨”운, 싸움꾼 수탁이 이야기다. 수탁이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봄, 경찰에 끌려가던 모습이었다. “애들 단속이나 해! 그런 집 애랑 어울려서 좋을 거 없으니까.” 모여들어 수군거리던 동네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수탁을 보고 “어머, 어쩜 생긴 게 저희 아빠 판박이네!” 하고 손가락질한 그날 이후, 수탁은 “그냥 미칠 듯 화가 나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지내왔다. 학교에서는 잠을 자거나 암묵적으로 일진들 자리인 구령대에 벌렁 드러누울 뿐이다.
그런 수탁을 알아주는 것은 소년원에 갔다 온 선배 병오뿐이다. 그러나 어느 날 병오조차 “차라리 조폭을 하겠다”는 수탁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낸다. “네가 얻어터지면, 사람들이 너 불쌍하다고 할 줄 알아? 세상 사람들은 달라! 너 같은 놈은 당해도 싸다고 박수 쳐! 언젠가는 당할 줄 알았다! 그것 참 잘됐다! 저런 것들은 싹 다 잡아다 처넣어야 한다, 그런다고! 알아? 그러니까, 나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정신 차려 이 새끼야!”
싸움 말고는 존재의 이유를 찾지 못하던 수탁은 다른 학교에서 ‘사고’를 치고 전학 온 형태 무리에게 일부러 흠씬 두들겨 맞고, 그 뒤로는 더 이상 구령대로 가지 않는다. 머리가 뜨겁고 무거워질 때면 말없이 운동장을 달리기만 할 뿐. 수탁은 병오를 찾아가 꺽꺽대며 울었고 며칠을 망설이다 무에타이 도장에 등록했던 것이다.
새로운 성찰을 요구하는 문제작
‘거리의 소녀’를 다룬「화란이」는 2007년 10월 월간지『어린이와 문학』에 발표되었을 당시, 머리말에서 밝혔듯 독자들의 격렬한 논쟁을 몰고 온 적이 있다. 선정적인 소재주의 작품이라는 반응을 보인 독자들이 많았지만, 막상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지금 어딘가에서 화란이와 같은 아이들이 받고 있을 ‘차가운 시선’ 그것이었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가장 경원시되는 현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그 아이들이 선택하는 또다른 범죄, 그리고 좀더 높은 강도로 돌아오는 멸시와 배척.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극한상황으로 몰리기만 하는 주인공을 냉정하게 그려냄으로써, 작가는 화란이 같은 아이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모순적인 감정과 그 아이들이 현실의 벽 앞에서 느끼는 깊은 절망감을 극대화해 보여주고 있다.
발랄한 분위기의 표제작인「자전거 말고 바이크」는 사귄 지 22일째인 ‘투투데이’를 둘러싼 중학생 커플의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다. 여학생 비읍은 투투데이에 남자친구 니은이 보여준 유치하기 짝이 없는 행동과 선물에 잔뜩 골이 나 있다. 같은 반 친구 커플의 ‘짱 특이한’ 투투데이 기념품이라는 팬시 콘돔을 엉겁결에 받아든 주인공 비읍이는 가정 선생님의 일관성 없는 행동을 지적하다가 가방 검사를 당하고, 그 콘돔이 발견되어 난처한 지경에 처한다. 똑똑하고 강단 있는 비읍은 지난 성교육 시간에 ‘혼전순결’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친구에게 “혼전순결이 무슨 국보급 보물이라도 되니? 꼬오옥 지키게? 난 남자애랑 키스도 하고 싶고, 같이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 넌 그런 생각이라곤 전혀 안 해?” 하고 똑부러지게 말해 선생님과 반 아이들을 기함시킨 적이 있었던 것이다.
수줍음 많고 소극적인 남학생 니은이 ‘경험 많은’ 친구의 코치를 받아가며 여자친구의 마음에 들려 하는 모습, 자녀의 첫 연애소식에 안절부절못하는 부모들의 반응, 보수적인 가치관 속에서 호기심과 욕망에 어쩔 줄 모르는 요즘 10대들의 깜찍한 고민이 그려진다.
한편, 「까망의 왼쪽 가슴」은 10대 중심의 대중문화 산업이 낳은 그릇된 팬덤 현상과 고독하기 짝이 없는 아이돌 스타의 내면을 다루었고,「서랍 속의 아이」는 처음으로 성적 호기심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 소녀에게 상담교사가 비슷한 나이 때 겪었던 경험을 고백하며 스스로 자기 몸의 주체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찬찬히 조언해주는 작품이다.
단편집『자전거 말고 바이크』에서 보여지는 아이들은 대도시의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며 집과 학교, 학원을 쳇바퀴 돌듯 하는 ‘주류’ 청소년들과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냉소적으로 “그래서?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하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학부모 독자들은 ‘우리 애는 이러지 않아서 다행이야’ 하고 안심하며 읽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비주류의 삶을 사는 아이들의 모습 그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삶에 투영된 우리 사회의 모순과 과제들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또 ‘주류’의 냉랭한 시선과 무관심에 대해 각성하는 일이다.『자전거 말고 바이크』는 청소년 독자들에게도, 어른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성찰을 요구하는 문제작이다.
"너, 우리가 누군지 알아?"
"관심 없는데요."
"너 쫌 놀았냐?"
"아뇨, 그냥 쫌 자는 편이에요."
수탁의 대답은 A중 일진이 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일진 선배들을 학교 뒷산 공터로 수탁을 불러다 놓고, 신고식을 한다며 돌아가면서 때렸다. 그러자 수탁은 입술을 훔치며, "그렇게 때리면 안 아픈데! 일부러 그런 건가요? 한 단계만 높이세요!" 했다. 보통은 수탁이 그런 식으로 말하면 싸움이 됐고 수탁은 그런 싸움에 익숙했다. - 본문 15쪽에서
니은은 비읍에게 '투투데이 기념 절대 사절'이라고 마한 것도 기억했다. 그건 ㅇ때문이었다. 지난중에 ㅇ은 자기 투투데이라고 사방팔방 떠벌리고 다녔다. 220원! 2,200원! 빼앗듯 기금을 모으고, 친구들까지 불러 노래방에서 기념파티를 했다. 매직으로 22라고 쓴 고깔모자를 쓰고 남자친구랑 사진도 찍었다. 그러고는 이대 앞 콘도매니아란 가게에 가자고 했다. 거기서 팬시 콘돔을 샀다. 자기 커플만의 '짱 특이한' 투투데이 기념품이라나. ㅇ은 니은한테도 하나 건넸다. 니은은 그래서 그날 밤 늦게, 버디에서 접속한 비읍에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ㅇ처럼 유치하게, 정신없이 놀고 싶지 않아서. 그래 놓고는 지금 왜 이렇게 기분이 나쁜 건지 니은은 알 수 없었다. - 본문 98쪽에서
작가 소개
저자 : 신여랑
힙합 음악과 밤하늘 별 보기, 고양이랑 놀기를 좋아한다. 재미난 이야기로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만들다 남몰래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 오래 전에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다녔고, 비보이 형제 이야기 《몽구스 크루》로 사계절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작가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는 《이토록 뜨거운 파랑》 《자전거 말고 바이크》 《세븐틴 세븐틴》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 4·3은 왜?》 《아빠 딸은 어려워》 《드레스 입은 남자 친구》 《특별한 날의 엉망진창》 등이 있다.
목차
머리말
구령대 아이들
화란이
까망의 왼쪽 가슴
자전거 말고 바이크
서랍 속의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