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낮은산 너른들 시리즈 12권. <나는 조선의 가수>, <우리들의 작은 신>의 작가 하은경의 작품. 세상을 변혁하기를 꿈꾸었던 양반 허균과 서얼 ‘홍길동’을 한 축에 놓고, 이야기 속에서나마 억눌린 꿈을 마음껏 펼쳤던 하층민 소년을 또 다른 축으로 하여 역사적 상상력을 펼쳐 나간다. 시대를 초월하는 문학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역사 동화인 동시에,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견뎌 낸 뒤 훌쩍 어른이 되어 가는 한 소년의 극적인 성장담이기도 하다.
출판사 리뷰
‘괴물’ 허 참판과 비렁뱅이 소년의 만남
최초의 한글 소설로 평가받는 『홍길동전』은 교산 허균(1569~1618)이 쓴 것으로 전해진다. 한문학의 대가였던 사대부 허균이 이런 이야기를, 그것도 한글로 썼던 배경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하은경 작가의 신작 동화 『백산의 책』은 세상을 변혁하기를 꿈꾸었던 양반 허균과 서얼 ‘홍길동’을 한 축에 놓고, 이야기 속에서나마 억눌린 꿈을 마음껏 펼쳤던 하층민 소년을 또 다른 축으로 하여 역사적 상상력을 펼쳐 나간다.
이미 두 권의 역사 동화를 펴낸 바 있는 하은경 작가는 시대와 신분에 맞지 않는 자유분방한 언행 탓에 ‘괴물’로 불리던 괴짜 양반, 남부러울 것 없는 사대부 집안 재상이면서도 신분제 계급사회의 폐해를 뼛속 깊이 느끼고 있던 지식인 허균의 고뇌에 주목했다. 부조리로 가득한 조선 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다가 끝내 역모 죄로 처형된 그의 열망이 ‘이야기’ 속에서 펼쳐진 것이 바로 『홍길동전』이라는 해석이다. 몇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이 세기의 베스트셀러(!)에는 허균이 만났을 법한 조선 백성들의 염원까지도 담겨 있으리라는 상상력이 덧입혀졌다.
주인공 백산은 한양 운종가 저잣거리에서 좀도둑질로 먹고사는 고아 소년이다. 버려진 아이여서 이름조차 없었던 그는 저자에 나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꾼한테서 ‘백두산 하늘연못’의 전설을 들은 뒤 스스로 ‘백산’이라는 이름을 지어 붙이고 자랑스러워한다. 그런다고 해서 돌봐주는 이 하나 없는 초라한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날 백산은 장안의 권세가인 판의금부사 이이첨의 집사의 돈주머니에 손을 댔다가 길거리에서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는다. 때마침 현장을 목격한 허 참판이라는 양반이 벌을 주려면 관아로 데려갈 것이지 사사로운 매질을 하느냐며 바른말을 하는 바람에 백산은 겨우 목숨을 건진다. 백산은 허 참판이 지체 높은 양반임을 알아보고 ‘저 집에 가면 밥은 굶지 않겠지’ 하는 마음에 종으로 들어가기를 청한다.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 저잣거리에서 주워들은 중국 기서의 단편을 조잘거리며 아는 척하는 영특함에 허 대감은 결국 백산을 받아들인다. 그즈음 이야기를 짓고 있던 허 대감은 가끔 백산을 불러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어느 대목이 막힐 때면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백산은 아이다운 상상력을 발휘하고 힘없는 백성들의 답답한 처지를 토로하기도 하면서 흥미진진한 전개를 유도한다. 이렇게 두 사람은 연산군 시절을 풍미했던 도적 ‘홍길동’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으며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영웅을 만들어 간다.
허 대감은 신분제도에 가로막혀 인재를 중용하지 못하는 조선 사회를 실제로 개혁할 꿈을 품고 있었다. 자신과 뜻을 같이 하며 어울리던 일곱 명의 서자들이 이이첨의 계략으로 인해 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한 이후, 허 대감은 거미줄같이 약해 빠진 조직력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해 그토록 증오해 마지않던 이이첨의 아래로 들어가 벼슬을 하며 와신상담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곱 명의 벗들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아 화적패 두목이 된 박치의가 찾아와 거사를 논의하는데…….
한편 허 대감은 완성된 이야기가 적힌 종이 다발을 백산에게 건네며 책으로 엮으라는 부탁을 전한다. “이건 네 책이다. 네가 지은 것이나 다를 바 없어.”라는 말과 함께 “이야기 지은 사람 이름은 넣지 말라 하라.”는 것이 백산에게 남긴 엄중한 당부였다.
허 대감을 ‘오지랖 넓은 양반’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했던 백산은 역적으로 몰린 허 대감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뒤 심하게 앓는다. 한참 뒤, 저잣거리에 다시 나타난 이야기꾼의 입에서 『홍길동전』의 줄거리가 흘러나오자 백산은 한없는 상념에 젖는다. 그저 입에 풀칠하는 것 말고는 아무 꿈이 없었던 백산은 그제야 진정한 꿈을 품게 된 것이다.
그들이 남긴 꿈은 아직도…….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나는 조선의 가수』(바람의 아이들, 2009), 동학농민전쟁을 배경으로 어린 무녀의 신산한 삶을 그린 『우리들의 작은 신』(바람의 아이들, 2010) 등 역사의 한복판에서 온몸으로 소용돌이를 겪어냈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에 주목했던 하은경 작가는 이 작품에서도 허 대감을 비운의 영웅으로 만들기보다는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면서도 자신과 집안의 안위에 고뇌하며 흔들리기도 하는 영혼으로 창조해 냈다. 그가 써낸 이야기 또한 그의 천재성이 발휘되었다기보다는 어린 소년 백산이 저잣거리에서 몸과 마음으로 느낀 대로 아뢴 충고를 바탕으로 했기에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으로 그렸다.
작가는 ‘시대의 반항아’로 평가받는 허균을 공부하면서 단박에 마음이 끌렸다고 고백한다. 당대 최고의 시인에다 평론가, 사상가, 혁명가였지만 자유분방하다 못해 괴팍하기 짝이 없는 말과 행동을 일삼던 그는 아마 조선시대 최고 기피 인물이었을 터.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백산이 그랬듯이, 작가 또한 글을 쓰는 동안 허균에게 감동받는 한편 안쓰러워하기도 했다고 한다. 부와 지위와 명예, 모든 것을 다 갖추었던 최고의 권세가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과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걸다니. 성공보다는 실패의 가능성이 더 높았음을 그도 모르지 않았을 터인데, 결단을 내리기까지 겪었을 고독과 고뇌가 얼마나 컸을지 한동안 가슴이 아팠다고. 그의 이상을 오래도록 후세에 전하고 있는 『홍길동전』이 있다는 사실은 슬픈 결말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큰 위로가 될 듯하다. 『백산의 책』은 시대를 초월하는 문학의 힘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해주는 역사 동화인 동시에,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고통을 견뎌 낸 뒤 훌쩍 어른이 되어 가는 한 소년의 극적인 성장담이기도 하다.
“대감마님, 하면 길동이는 서자가 아닙니까요?”
백산은 마뜩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만날 서자 나리들과 어울리더니 이야기 속에서도 서자 타령인가.
“그렇지. 길동이는 서자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더란다. 허나 비록 천한 출신이어도 재주가 뛰어나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어버리는 법이 없었느니라. 어떠하냐? 재미나냐?”
허 대감은 조바심이 나는 듯 백산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아주 재미납니다요. 소인, 그 다음이 어찌 될지 무척 궁금합니다요.”
백산의 대꾸에 허 대감은 허허 웃음을 지었다.
짐작했던 대로 홍길동전은 누가 지었는지 모르는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었다. 백산은 그제야 허 대감이 왜 이름을 넣지 말라고 했는지 깨달았다. 허 대감은 자신의 모든 것이 곧 사라질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자기 이름을 넣지 말라 한 건, 이 책만은 살아남아 달라는 그의 마지막 바람이었다.
‘헛된 것이 아니었어. 대감마님 뜻은 결코 헛되지 않을 거라고!’
어쩐 일인지 머릿속에서 수많은 별들이 일시에 빛을 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그럴 것이다. 허 대감은 사라졌지만, 그의 책은 오래 살아남아 그 뜻을 전할 것이다. 허 대감이 바라던 대로 장터를 누비며 많은 사람들에게 들리고 또 읽히면서……. 그러니 그는 죽지 않은 것이다. 홍길동은 다름 아닌 그의 혼이기 때문이었다.
작가 소개
저자 : 하은경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카톨릭대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전공했다. 2002년 샘터사 주관 '샘터상' 동화부문에 '행복한 청바지' 가 당선되었다. 장편동화 《안녕, 스퐁나무》로 ‘제8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을 받았고, 지금까지 동화책 《나는 조선의 가수》 《백산의 책》 《나리초등학교 스캔들》들과, 청소년 소설 《우리들의 작은 신》을 썼다.
목차
골칫덩어리 / 첫 만남 / 괴물이라 불리는 양반 / 딱한 사정 / 깨우칠 날이 올 터이지 / 이야기 짓는 사람/ 억울한 누명/ 흉흉한 소문들 / 차마 잊지 못한 꿈 / 발칵 뒤집힌 한양 / 이야기는 완성되고 / 거대한 흰 새 / 계절이 두 번 바뀌고 / 다시 만난 허 대감 /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