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 작가 박향 신작 소설!
깊은 슬픔과 그리움이 만들어낸 작은 기적
그 가을 우리를 한 뼘 자라게 한 어느 소녀와의 만남
어느 날 우리 앞에 이상한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입시공부로 바쁘고 각자의 문제로 힘들어도
넷이 모이면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제현, 현제, 지수, 기동
한 소녀와의 만남으로 더욱 특별해진 네 친구의 왁자하고 가슴 뭉클한 고교 생활기!서로 다른 개성과 고민을 지닌 네 명의 친구가 비밀스러운 사연을 가진 한 소녀를 알게 된 후 소녀의 아픔을 위로하며 함께 성장해가는 따뜻하고 유쾌한 청소년 소설. 세계문학상 대상과 현진건 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작가 박향이 『얼음꽃을 삼킨 아이』 이후 두 번째로 발표하는 청소년 소설이며, 나무옆의자 청소년문학 ‘소설BLUE’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이다.
부산 동하고등학교 2학년 이제현과 김현제. 둘은 이름이 비슷해서 친해진 단짝친구다. 제현은 부모님의 이혼과 아빠의 재혼, 자신을 두고 떠난 엄마에 대한 원망 때문에 가출해 찜질방을 전전하며 학교에도 며칠째 무단결석 중이다. 현제는 방황하는 친구를 위해 하루 결석하고 함께 여행을 가기로 한 약속이 엄마의 반대로 무산되자 엄마와 냉전 중이다. 이들에게는 또 다른 친구 홍지수와 정기동이 있다. 지수는 중학교 때 ‘놀던’ 아이였고 기동은 일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왕따였는데, 두 사람 모두 힘겨웠던 시절을 견뎌내고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입시공부로 바쁘고 각자의 문제로 힘들어도 함께 뭉치면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이들 네 친구 앞에 어느 날 이상한 여자아이가 나타난다. 여자아이의 출현은 이들에게 뜻밖의 과제를 부여하고 학교생활에도 변화를 불러온다.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이야기처럼, 길을 그리는 아이
“깊고 깊은 밤에, 나는 무작정 길을 그렸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으니까.” 한밤중에 검은 마스크를 쓴 여자아이가 학교 담을 넘는다. 귀신인가! 무슨 사연일까? 뭔지 몰라도 위험하고 도움이 필요해 보인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여자아이는 재빠르게 어딘가로 향한다. 여자아이의 이름은 오혜진. 혜진에게는 너무도 참혹해 치유되지 않는 아픔이 있다. 6년 전 이복 오빠가 부모의 학대로 죽고, 부모가 그 시신을 토막 내 여러 곳에 나누어 버린 것이다. 오빠의 시신은 끝내 다 수습되지 못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사건 이후 혜진은 보호소에 맡겨졌다가 지금의 부모에게 입양되었는데, 그 후로도 오랫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폐 증세를 보이거나 이상 행동을 하기도 한다. 혜진은 이집트 신화 ‘오시리스와 이시스’ 이야기에서 이시스가 죽은 남편 오시리스를 부활시킨 것처럼, 이곳저곳에 흩어진 오빠의 살들을 돌아오게 하면 오빠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는다. 오빠가 돌아오게 하기 위해 혜진은 길(지도)을 그린다. 캄캄한 밤에, 간절한 그리움으로. 길 잃은 영혼이라도 찾아올 수 있도록 아주 정교하고 상세한 길을 그린다.
이러한 사연을 알게 된 제현과 현제, 지수와 기동은 어떻게든 혜진을 도우려 한다. 우선 학교에서 문제 삼기 전에 혜진이 학교 어딘가에 그리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온 학교를 돌아봐도 찾을 수 없던 길이 어느 날 전혀 뜻밖의 계기로 상상도 못 한 공간에서 발견된다. 게다가 그것은 인간의 솜씨라고 하기엔 너무나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의미심장한 장소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그림에 학교는 발칵 뒤집어지고, 누가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에 모두의 관심이 쏠린다. 그 사이 혜진은 상태가 더 나빠져 병원에 입원을 하고, 옥상의 지도는 학교 당국에 의해 지워질 위기에 처한다. 네 친구는 지도가 지워지기 전에 혜진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시작한다.
아픔에 대한 진심 어린 이해와 공감, 10대들의 유쾌한 우정과 성장
“난 책임을 느껴. 사람들이 꼭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는 건 아니잖아.”소설에서 묘사하는 교실 풍경과 아이들의 모습은 대한민국의 어느 고등학교 교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현실적이다. 공부와 성적 얘기밖에 할 줄 모르는 교사, 수업과 자습과 보충수업으로 꽉 짜인 시간표, 그 속에서 아이들은 절인 배추처럼 축 처져 있다가도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신나게 자기주장을 펼치고 10대다운 에너지와 감수성을 표출한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제현과 현제, 지수와 기동도 우리 주변 어딘가에 있을 법한 아이들이다. 무책임한 부모 때문에 방황하지만 누구보다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이타적이고 책임감 강한 제현, 뼛속까지 모범생이지만 친구를 위하는 마음은 공부보다 앞서는 현제, 스스로를 홍길동의 환생이자 정의의 사도라 일컫는 유쾌하고 활기 넘치는 분위기 메이커 지수, 먹을 것을 밝히고 눈치 없다고 놀림을 당하면서도 한 번씩 어른스러운 마음 씀씀이로 친구들을 감동시키는 기동. 이들은 환경과 처지는 달라도 함께일 때 즐겁고 힘이 나며, 모여서 티격태격할 때조차 서로의 개성이 기분 좋게 화학작용을 일으킨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들에 비해 혜진은 낯선 존재다. 무엇보다 지고 있는 고통의 무게가 어마어마해서 무엇으로도 위로할 수 없을 것 같다. 네 친구의 또래이지만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고, 여전히 6년 전의 기억 속에서 살고 있다. 혜진은 아직도 집을 찾지 못하고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오빠의 시신을 돌아오게 하는 일, 오로지 그 하나에만 꽂혀 있다. 정신이 이상한 아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경찰서에도 불려가고 여러 번 병원 신세도 져왔지만 그 일을 멈출 순 없다. 혜진의 파란 노트는 그 깊은 슬픔과 간절한 그리움과 미친 마음의 기록이다.
아이들은 혜진의 상황을 외면하지 않는다. 함께 아파하고 진심으로 이해한다. 특히 제현은 혜진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무엇이든 도움이 되고 싶어 한다. “난 이미 책임을 느껴. 사람들이 꼭 자기가 한 일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는 건 아니잖아”라는 제현의 말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시대에 가슴 뭉클한 울림을 준다. 제현과 현제, 지수와 기동은 넷이 힘을 합쳐, 때로는 각자의 방식으로 혜진이 고통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혜진이 오빠의 영혼과 마주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이 지점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매우 세심하게 서사를 진행시킨다. 그 결과 감정과잉이나 당위적인 설득 없이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또한 자칫하면 소재의 무게로 인해 지나치게 어둡고 진중해질 수도 있었을 이야기가 10대들의 쿨한 화법과 왁자한 분위기 아래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하는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계속 숨을 쉬어야만 해. 내일은 또 새로운 날이니까.
파도가 무엇을 가져올지 누가 알겠어?”소설의 제목 ’파도가 무엇을 가져올지 누가 알겠어‘는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 나오는 대사에서 따온 것이다. 비행기 사고로 표류한 택배 회사원이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인도에서 살아내는 영화로, 주인공은 파도에 휩쓸려 해안가로 밀려온 택배 상자를 하나씩 뜯으며 불가능할 것 같았던 무인도에서의 삶을 이어간다. 소설 말미에서 친구들과 자전거여행을 떠난 제현과 현제는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부쩍 어른스럽게 말한다. “사람들은 다 스스로 각자의 인생을 살아내는 거다…….” “혜진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마침내 오빠를 부활시킨 거야. 그건 미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거야말로 진정한 용기인지도 모르지.”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의 말을 빌려 현제는 이렇게 덧붙인다. “계속 숨을 쉬어야만 해. 내일은 또 새로운 날이니까. 파도가 무엇을 가져올지 누가 알겠어?” 이 말이야말로 사려 깊고 유쾌한 에너지로 가득한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어머닌 어디 가셨는데?”
“살아 있는 동안 둘이 싸우는 소리만 듣고 자랐다. 야, 그렇게 부모가 싸우는데도 나처럼 착하게 크는 아들이 어디 있냐? 근데 씨발, 이번엔 진짜야. 지난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아냐? 아빠한테 젊은 여자가 생겼고, 엄마는 이혼 서류 던져놓고 집을 나가버렸고……. 전화번호도 바꾸고……. 아빤 또 냉큼 서류 제출하고, 이혼하고, 또 결혼하고. 아 씨발, 뭐가 이리 간단하고, 뭐가 이리 쉽냐.”
제현이 술병을 들자 현제가 불쑥 잔을 내밀었다.
“나도 줘.”
“까불지 마. 너 술 안 마셔봤잖아.”
“그러니까 오늘 한번 마셔보려고.”
인기척이 났는지 복도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현제가 허억 하고 비명을 질렀다. 복도 창에서 검은 물체가 교실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냉장고 속인 것처럼 교실에 찬 기운이 돌았다. 턱이 고장 난 인형처럼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보고 있는데도 검은 실루엣은 움직임이 없었다. 핸드폰 플래시를 켠 제현이 벌떡 일어나 교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구름에 가려진 고단한 달빛에 의지해 희미하게 드러났던 여자의 뒷모습이 막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등허리에서 출렁이던 머리카락은 복도 끝을 돌아 계단을 향해 총총히 사라졌다. 계단을 급하게 내려가는 발소리가 다다다닥 들렸다. 두 사람도 그림자를 따라 뛰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바람처럼 빨랐다. 1층 화장실까지 왔으나 실루엣을 찾지는 못했다. 숨을 헐떡이며 제현이 말했다.
“겁먹지 마. 귀신은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