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요즘 청소년의 언어를 들여다보면, 폭력적인 양상을 넘어 기존의 언어문화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듯하다. 언어를 바로 세우는 일은 무엇이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고민할수록 답은 분명해졌다. 청소년 삶의 엉킨 실타래부터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B끕 언어, 세상에 태클 걸다』는 그러한 고민과 노력이 조화롭게 담긴 책이다. 단지 언어 순화 차원을 넘어, 비속어를 통해 지금 여기의 청소년과 우리 사회의 여러 모습을 솔직하게 관통해 낸다.
- 따돌림사회연구모임
친근감과 불쾌감 사이,
거칠고도 익숙한 비속어 세계를 흥미롭게 파헤치다 “정말 좆같아요!” 친구들이 욕하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떠냐는 방송국 PD의 질문에 해맑게 웃으며 말한 어느 남학생의 답변이다. 10대들의 언어문화에 대한 우려와 걱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각종 인터넷, 방송, SNS 등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무작위한 정보를 여과 없이 흡수하는 시대다. ‘언어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교묘하게 뒤섞이는 일도 일어나고, 누군가는 기성세대의 언어습관을 보란 듯 무너뜨리면서 그들만의 언어세계를 위한 장벽을 쌓고자 고군분투하며, 그 세계에 가닿지 못한다면 또래들 사이에서 멀찍이 떨어져 나와 소외당하기도 한다.
많은 걱정과 탄식이 계속되지만, (안타깝게도) 비속어는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감정을 분출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하고 직관적인 통로이기 때문이다. 비속어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매한가지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대체 비속어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디까지 용인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다. 존폐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별다른 생각 없이 비속어를 습관적으로 남용하고 남발하는 언어생활에 관한 문제를 함께 나누어 보면 어떨까? ‘쓰지 말자’ 무조건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왕 쓸 거면 알고나 쓰자’고 대안을 제시하면 어떨까?
국어 교사이자 사서 교사인 권희린 작가의 생각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교단에 선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선생님, 뒤에 앉은 애들이 존나 떠들어요.”라고 호기롭게 외치는 학생들의 태도에 충격을 받은 이후, 작가는 거친 비속어가 난무하는 교육 현장을 온몸으로 체화하면서 ‘왜 비속어를 쓰면 안 되는지’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러고는 학생들과 ‘5분 비속어 수업’을 함께하며 단순히 쓰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헐! 그게 그런 뜻이었어요?”
5분 비속어 수업이 빚어낸 특별한 결실 『B끕 언어, 세상에 태클 걸다』는 교육 현장에서 비속어 수업을 계속해 온 작가의 꾸준한 노력이 담긴 책이다. 2013년에 출간되어 화제를 모았던『B끕 언어』의 개정판으로 청소년의 말, 그중에서도 ‘비속어’에 집중한다. 5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층 진하고 깊어진 비속어 문화에 뒤처지지 않고자, 출간 직전까지 단어 하나하나 매만지고 살피며 지금 여기의 언어문화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책에서는 “모르면 나이 든 내 탓”을 해야 하는 각종 신조어 대신 보편적으로 널리 알려진 비속어들을 엄선하여 추렸다. 왜 이런 말을 쓰게 되는지, 그 어원을 살펴보고 좀 더 바른 언어습관 형성을 고민하려면 시대와 세대를 통과하여 ‘장시간 우려낸’ 비속어들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는 작가의 뚝심에서였다.
비속어를 쓰는 데 있어 성적이 좋든 나쁘든 상관이 없다. 남자라고 더 많이 욕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른이 되면 비속어를 쓰지 않는 것도 아니다. 즉 비속어에는 성별도, 나이도, 성적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저, 비속어는 일상의 언어 가운데 하나가 된 지 오래다. 『B끕 언어, 세상에 태클 걸다』에서 다뤄지는 비속어들은 바로 그러한 단어들이다. 작가는 비속어의 어원과 의미를 낱낱이 ‘까발리면서’ 동시에 본인의 경험과 사례를 통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또한, 쓰지 않으면 좋은 비속어에는 ‘대체어’를 함께 소개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나쁜 말이니까 쓰지 말라는 빤한 조언 말고!
차근차근 살피고, 뜯고, 제대로 맛보자, B끕! 또 다른 나 B끕, 속이 뻥 뚫리는 까스활명수, 친근감과 불쾌감 사이의 양날의 칼, 과유불급…… 이는 책 속에서 비속어를 정의하는 말들이다. 비속어 가운데에는 쓰지 말아야 할 표현도 있지만 때로 삶을 말랑말랑하고 유쾌하게 만들어 주는 표현들도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악의적인 의도가 담긴 단어는 피해야 한다. 어쩌면 그런 질 나쁜 비속어들 때문에 모든 비속어가 ‘오해’를 받게 되는지도 모른다. 솔직하게 감정을 분출하기에 제격인 비속어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에 따라, 이야기 방식에 따라 다르겠지만 비속어 가운데 웃음과 재치를 겸비한 표현들이 있다. 늘 바르고 곧은 사람보다 빈틈 있는 사람이 좀 더 인간적으로 보일 수 있듯이, 이러한 ‘매력’을 가진 비속어는 무미건조한 일상생활을 맛깔나게 살려 주기도 한다. 작가는 이를 통틀어 ‘B끕 언어’라 칭하며 B끕의 정서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월요일이 다가온다는 것만으로도 우울해지는 일요일 저녁, 심신을 달래 주는 B끕 예능, 품격 있는 B끕 문화를 지향하는 가수 싸이의 노래 등 솔직하고 당당한 매력을 뽐내며 자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B끕’들에게 작가는 지지와 응원을 보낸다. 스트레스를 해소하지 못해 마음의 병에 걸리는 것보다 좀 더 인간적이고 솔직해지는 쪽이 여러모로 나을 것임은 분명하다.
단, 비속어를 제대로 즐기기 전에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비속어는 한 사람의 삶 자체를 평가하는 척도가 되고 있고, 알게 모르게 언어생활 속에 상처받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비속어를 제대로 알고, 배워 가야 할 이유라고 말한다. 비속어는 나쁘니 바른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훈계하고 말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언어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각자 자신의 언어습관을 차분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매체의 발표에 의하면 청소년의 90퍼센트 이상이 비속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비속어 수업을 하는 학교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5년 전 『B끕 언어』가 출간된 이후 권희린 작가 역시 해마다 다양한 지역의 도서관과 학교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는다. 부모와 교사를 대상으로 비속어 수업 팁을 강의로 전달하기도 한다. 학생들을 직접 만나다 보면, 예상 외로 반응이 뜨겁고 집중도가 높다고 한다. 평소 별다른 생각 없이 내뱉던 비속어의 어원과 정의를 알고 나면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혀지기 때문이다. 비속어 하나하나마다 어떤 의미인지,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쓰는 말인지, 언제 써도 되는지 안 되는지 알아 간다면, 생각 없이 내뱉던 때와는 조금 다른 단어들을 사용하게 되지 않을까? 무엇이든 제대로 알고 맛보면 나쁠 것 하나 없으니까 말이다.
나는 비속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속어는 우리의 삶에 끼어들어 우리의 일상을, 우리의 대화를 말랑말랑하고도 재미나게 만들어 주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적절하게 써야 할 타이밍이 있다면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A급 언어, B급 언어 가운데 ‘B끕 언어’로 규정되었을 뿐이다. 이 책이 많은 분들에게 무심코 내뱉는 다양한 B급 언어가 어떤 의미이고,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쓰는 말인지 알려 줄 수 있다면 좋겠다. B급 언어를 써도 될 때와 써서는 안 될 때를 스스로 잘 판단할 수 있는 사고력을 길러 주면 좋겠다.
- ‘들어가는 글’에서
[미디어 소개]☞ 동아일보 2018년 10월 16일자 기사 바로가기KBS 스폐셜 <10대, 욕에 중독되다>라는 프로그램을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