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10대 미혼모들의 절망적 현실을 슬픈 다큐멘터리로 엮어내는 노경실 작가의 성장소설. 열일곱 살 소녀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봉착하게 되는 절망적 현실에 작가는 현미경을 들이댄다. 잔인하리만치 냉정한 세상의 벽 앞에서 나날이 지리멸렬해져 가는 소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10대 미혼모 이야기가 결코 다른 세상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열일곱 살 미혼모 얘기다. 놀랍게도 그 아이는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무탈하게 자라온 지극히 평범한 여고 1학년생이다. 10대 청소년들의 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이 책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실화에 바탕한 한 편의 슬픈 다큐멘터리로 소개하고 싶은 책이다.무이는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거나, 선과 악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 따위는 지금 상황에서는 더운 여름날 걸친 털옷처럼 아무 가치 없는 일이었다. ‘우선 살아야 한다. 살아나기 위해서는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 진심으로 호소하면 되지 않을까?’무이는 장 선배의 손바닥에 짓눌려 있는 입술을 움직거렸다.“선배님... 한 번만 한 번만 살려주세요....”<16회 중에서>
무이는 제 방을 처음 들어선 사람처럼 구석구석 살폈다.‘모든 게 그대로야! 그런데... 정작 나만 변한 거야? 아니, 변하고 있는 건가? 이러다가 내가 괴물이 되는 건 아닌가? 에일리언처럼 내 뱃속에서 괴물이 자라는 건 아닐까?’ <20회 중에서>
‘제발, 아무 일 없게 해주세요. 제발... 대학교 못 가도 좋고, 평생 사랑하는 사람 못 만나도 좋아요. 제발 내 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나는 아직 학생이에요. 나는 잘못한 게 있다면 그 날, 다른 사람들이 알까 봐 소리를 지르거나 저항하지 못한 거예요. 이 세상에 장 선배와 나만 알고 있는 게 차라리 나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뿐이에요. 만약, 내 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엄마랑 아빠는 죽어요. 돌아가신다고요! 나 하나 때문에 우리 집은 멸망하는 거예요. 한 번만, 한 번만 나를 살려주세요. 다시는 이런 바보 같은 일은 당하지 않을게요. 그런 일이 생긴다면 사람들이 다 알아도 소리칠게요. 차라리 그런 수치를 당할게요. 제발, 제발... 한 번만 나에게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제발!’무이는 소리죽여 울었다. <28회 중에서>
작가 소개
저자 : 노경실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였고,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동화《누나의 까만 십자가》로 등단하였으며, 199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오목렌즈》가 당선되었다. 지금까지 주로 동화와 청소년을 위한 소설 창작에 애써 왔지만 독자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고 싶은 욕심에 번역한 외서들까지 합하면 그 결과물이 총 삼 백여 종에 이른다.전업 작가로 살아온 지 삼십 년이 넘었고, 글쓰기 말고 다른 일에는 영 관심이 없는 환갑을 코앞에 둔 나이지만, 밤하늘의 별과 달을 보며 삶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얻는다는 소녀다운 감성을 지니고 있다. 유일무이한 일탈이 있다면 전국 도서관을 무대로 독서 강연을 다니는 것이다. 남녀노소 세대를 불문하고 이십 년 가까이 종횡무진 독자들을 만나 온 덕분에 사서들이 한번쯤 꼭 초청하고 싶은 인기 강사로 꼽힌다. 덕분에 출판계에서는 지치지 않고 ‘책 부흥회’를 열고 있는 열혈 ‘책 전도사’로도 통한다. 작가의 꿈 이전에 퀴리 부인처럼 훌륭한 과학자가 되고 싶었으나, 고등학교 일 학년 때 함께 급성폐렴을 앓다 먼저 떠난 막냇동생을 생각하며 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어릴 적 망원동에 살면서 경험한 두 번의 홍수로 누구에게나 ‘사는 데 꼭 필요한 만큼의 힘’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과한 욕심이나 능력 밖의 것을 바라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오로지 ‘글쓰기’와 ‘강연’에 주어진 능력을 쏟아 붓고 있다. <사는 데 꼭 필요한 만큼의 힘>은 동화작가 노경실이 쓴 첫 번째 산문집으로,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작지만 시원한 그늘이 되고 싶은 바람에서 지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