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엉뚱한 행동, 쓸모없는 생각 속
‘잉여의 힘’이 인간을 발전시켰다!현직 사회교사이자 ‘실천교육교사모임’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청소년을 위한 인문 교양서와 교육 비평서를 두루 집필해 온 권재원 저자가 십 대를 위한 미래 수업 책을 펴냈다. 저자는 “미래가 이렇게 될 것이니 이렇게 대비하라.”라는 식의 책을 쓰고 싶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앞날에 대한 예측보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사건을 더 충실하게 다룬다. 미래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뚝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듯이 미래의 원인 역시 현재에 있기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미래를 살피는 길이다.
뒤늦게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 현생인류(호모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 등 다른 호모니드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원동력은 바로 ‘잉여의 힘’이었다. 쓸모없는 생각, 엉뚱한 행동 덕분에 호모사피엔스는 다른 호모니드들이 수십만 년 전 조상들이 쓰던 방법을 되풀이하고 있을 때 혁신에 혁신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산업과 기술이 발전하려면 혁신이 필요한데, 이 혁신은 잉여를 통해 나온다고 이야기한다.
게다가 산업과 기술, 혹은 혁신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거리인 것은 아니다. 또 그 산업과 기술의 변화에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만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저 둘은 우리가 마주해야 할 미래의 여러 변화 중 가장 사소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밖에도 정치, 문화, 혹은 도덕과 윤리, 생태 등 삶의 여러 측면을 이루는 분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세상은 산업과 기술만으로 달랑 바뀌는 그런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별난 사회 선생님의 수상한 미래 수업』은 전 지구적으로 가장 뜨거운 문제로 떠오른 여덟 가지 이슈를 골라 미래의 전망을 두루 살펴본다.
미디어로 포위된 세상, 소득 불평등, 기후 위기, 저출산 고령화, 민주주의의 한계…
가장 뜨거운 여덟 가지 이슈로 만나는 미래 수업‘내 일자리는 어디에’ 파트에서는 ‘노동이 필요 없어진 시대의 사람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 가져올 장밋빛 미래와 어두운 그림자를 두루 좇는다. 저자는 ‘몸으로 하는 일, 차이를 만들어 내는 생각, 정서적 공감 능력’이 바로 우리의 생존 배낭에 담아야 할 키워드라고 이야기한다.
‘미디어로 포위된 세상’에서는 매체의 민주화 이후에 마주하게 된 문제를 살펴본다. 매체를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의 수준과 진실성이 점점 더 의심스러워지는 상황에서 매체에 대한 비판적 사고는 오히려 더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절대적인 진리를 의심할 줄 알고, 실증적인 증거가 나온다면 자기 생각이나 믿음과 어긋나더라도 받아들일 줄 아는 ‘회의주의’를 강조한다. 또한 ‘증거’를 통해 검증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검증을 인정한 곳이 어딘지, 발표한 곳이 어떤 매체인지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딱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믿기 전에 확인하라.”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빅 브라더에 둘러싸인 우리의 현실을 마주한다. 국민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감시는 물론이고, 기업은 ‘토탈 케어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면서 소비자에게 손쉽게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그러나 ‘토탈 케어’와 ‘토탈 컨트롤’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선거를 통해 권력 기관을 철저히 감시하고 정보통신기업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할 제도와 법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만약 기업이나 기관이 개인정보를 제공한 서비스 사용자에게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력을 제안한다.
‘자유와 민주가 싸워요’ 파트에서는 ‘민주주의는 결코 그 자체로 선(善)이 아니다.’라는 문제의식을 던진다. 정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말을 빌려 민주주의는 현대 정치의 끝판왕, 즉 ‘역사의 종말’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저자는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은 파시즘도, 공산주의도, 혹은 전근대적인 신분제도 아닌 ‘포퓰리즘’이라고 말한다.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데 일반 대중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왜 문제인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도무지 파악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이 빈틈을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포장한 선동가가 파고든다. 따라서 수학, 과학, 통계학은 사회적인 쟁점들을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소양이다. 이런 소양을 갖춘 시민은 포퓰리스트들의 선동적인 주장을 식별해 낼 수 있다. 민주 시민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수학이나 통계학을 연구하고 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연구한 결과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런 노력이 민주주의에 무임승차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입장권이라고 말한다.
그밖에도 10%의 중산층과 90%의 빈곤층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소득 불평등,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와 생산성 혁신, 언제 파국을 맞이할지 알 수 없는 지구 환경의 위기, 민족국가의 분열에 따른 정체성의 혼란과 혐오의 확산 등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논제들은 하나하나 우리 앞에 직면한 현실이며, 함께 답을 찾아 나가야 할 문제들이다.
다양한 키워드와 인포그래픽으로 살펴보는 현재와 미래,
지금 여기의 십 대를 위한 미래 생존 교과서
이제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함께 모험을 떠나자!이 책의 본문 앞에는 각 장의 핵심 개념을 소개하는 키워드 다섯 가지를 골라 별도 페이지로 배치했다. 이 키워드만 숙지해도 미래 사회와 관련한 40가지 개념을 알게 되는 셈이다. 또 장별로 지금의 핫이슈 여덟 가지를 인포그래픽 페이지로 삽입해 이 책에서 다루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분석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현재에 뿌리를 두지 않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그려 대는 미래의 청사진은 매우 해롭다. 청소년의 현실감각을 무디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뿌리가 끊긴 채 던져지는 미래의 청사진은 그것이 낙관적이든 비관적이든 결국은 그렇게 되고 말 것이라는 ‘숙명론’이 된다. 반면 현재로부터 끌어내는 미래의 청사진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만든다. 미래의 열쇠가 현재에 있기 때문에 단지 대비만 할 뿐 아니라 거기에 새로운 미래를 보탤 수도 있으며, 다가올 미래를 오지 못하게 막을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은 불확실하고 불안한 미래를 향해 자신을 던질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 동물들은 확실한 행동만 한다. DNA에 새겨져 있거나, 오랜 진화 과정에서 습성으로 굳어진 행동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그리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확실한 결과를 보장했던 그런 행동만 한다. 그러나 사람은 문자 그대로 전례가 없는 상황,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수 있다. 불확실한 행동, 아직 결과가 확인되지 않은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특정한 자연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동물의 분포와 달리 지구상의 거의 모든 지역에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불확실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 대책 없이 자신을 던지는 무모한 행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불확실하고 불안한 가운데서도 자신을 던질 수 있는 것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만 100%의 확신이 불가능할 뿐이다. 미래에 대한 예측과 준비 역시 완벽한 해법 패키지가 아니기 때문에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사실 누구도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모험인 것이다. 그래도 사람은 도전한다.
우리를 기다리는 미래가 희극일지, 비극일지, 혹은 공포물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배낭에 싸 넣은 것들이 미래에 대처하는 데 충분할지 아닐지는 모른다. 다만 최선을 다해 준비할 뿐이며, 무엇이 더 필요할지는 대처해 나가는 과정에서 알아내고 새로 구하면 된다. 자, 배낭을 쌌으면 이제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모험을 떠나자.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어차피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 아니겠는가?
인공지능은 어떤 문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주어진 정보들을 바탕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찾아낸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게다가 이런 일을 사람보다 더 빨리 정확하게 할 수 있다. 이건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인공지능의 한계가 있다. 인공지능은 언제나 문제 이후 단계에서부터 시작한다. 애초에 문제가 입력되어야 이후 과정이 진행되도록 짜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어진 문제만 계속 반복해서는 발전이란 없다. 사람은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며 발전해 왔다. 그중에는 끝내 해법을 찾지 못한 문제들도 많았지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장했다.
어떤 문제가 해결되고 정리되었을 때, 그 해결에 대해 ‘아니오’를 말하고 정리된 것을 헝클어 놓을 수 있는 능력. 기존에 내린 결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고유한 능력이다.
범람하는 사용자 제작 콘텐츠와 인공지능에 의한 추천은 시청자들에게 자신이 자유롭게 콘텐츠를 선택하고 있다는 착각을 심어 준다. 사실은 기존 취향 속에 갇혀서 그것만을 계속 강요당하고 있으며, 혹은 인공지능에 의해 은근히 특정한 취향 쪽으로 유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렇게 유튜브 시청자는 보고 듣는 콘텐츠를 자신이 선택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TV 시청자에 비해 비판적 거리를 두고 감상하는 경우가 훨씬 적을 것이다.
이건 심각한 역설이다. 매체를 통해 유통되는 콘텐츠의 수준과 진실성이 점점 더 의심스러워지는 상황에서 매체에 대한 비판적 사고는 오히려 더 약해지고 있다. (…)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앞으로 우리는 영영 진실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서 살게 되는 것일까? 심지어 빅 브라더조차 없는 상황에서 수억 명이 각자 수억 명을 속이면서 아수라장이 된 매체를 보고 들어가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