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걷는사람 시인선의 41번째 작품으로 1984년 《시인》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남준의 여덟 번째 시집이다. 일명 ‘은둔의 시인’ ‘자연의 시인’이라고도 불리는 박남준 시인이 산의 깊은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지도 어느덧 30년이 되었다. 지난 시집 『중독자』(펄북스, 2015) 출간 이후 본원적인 생태적 사유와 실존적 감각을 더욱 갈고닦은 박남준 시인이 6년 만에 선보이는 시집이다.
이번 시집은 시인 박남준이 그간 꾸준히 그려 왔던 풀, 나무, 꽃, 새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을 넘어 “눈 내리는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 “그늘 깊은 사구” “별들이 기다리는 바오밥나무” 같은 머나먼 미지의 공간으로 확장되어 나아간다.
출판사 리뷰
부추꽃에서부터 별이 바다를 이루는 우주에 이르기까지
-시원始元의 공간에서 끈질긴 생태적 사유로 이루어낸 시의 경지
걷는사람 시인선의 41번째 작품으로 박남준 시인의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가 출간되었다. 1984년 《시인》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남준의 여덟 번째 시집. 일명 ‘은둔의 시인’ ‘자연의 시인’이라고도 불리는 박남준 시인이 산의 깊은 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지도 어느덧 30년이 되었다. 지난 시집 『중독자』(펄북스, 2015) 출간 이후 본원적인 생태적 사유와 실존적 감각을 더욱 갈고닦은 박남준 시인이 6년 만에 선보이는 시집이다.
이번 시집은 시인 박남준이 그간 꾸준히 그려 왔던 풀, 나무, 꽃, 새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을 넘어 “눈 내리는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 “그늘 깊은 사구” “별들이 기다리는 바오밥나무” 같은 머나먼 미지의 공간으로 확장되어 나아간다.
박남준 시인은 섬세한 눈길로 “동백의 여백”을 “동박새가 찾아와 쉴 자리”(「동백의 여백」)로 포착해내고, 딱새가 “사과나무에 앉아 망을 보다 푸릉 떠난 가지”를 보고 “산다는 것 서로의 다리가 되어 건너는 것”(「아름다운 이치」)이라며 자연 속에서 삶의 이치를 깨닫는다. 또한 시집을 넘기다 보면 “녹두전을 시켜 놓고 술 따르”(「삼팔 구례 장날」)며 잰걸음으로 장터를 돌아다니는 푸근한 시인의 모습과, 애지중지 키워 놓은 상추와 쑥갓을 훔쳐 가는 도둑에게 “상추 뽀바간연 처먹고 디저라”(「상추 도둑」)라고 일갈하는 동네 할머니의 익살스러운 모습도 한데 그려져 시인이 겪은 다양한 일상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시인은 “간절한 기원이 있을 것이다/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길을 묻는 시작과 무시무종의 화두를 생각하며/깊은 고요에 안길 것이다”(「기원정사」)라고 진술하며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 자신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사유한다. 이러한 선언은 시인이 그간 이루었던 무아의 경지를 더욱 초월하고 싶은 간절한 기원일 것이다. “갠지스강물은 흐르고/내가 지금 보고 있는 강물은 보이는 강물이 아니리라/나를 스친 인연도 다만 어제의 인연이 아니리니”(「갠지스강가에서」)라며 갠지스에서 서로 물줄기처럼 스쳐 간 인연들을 떠올리기도 하며, 변방으로 내몰린 몽골에서는 “초원의 바다” 같은 장관을 목격하고는 “세상의 사진기로는 담을 수 없었으므로/두 눈에 써 넣었다”(「초원에서 문신을 새기다」)라고 고백하며,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문신을 새기듯 ‘몸’과 ‘세계’가 하나 되는 태도를 견지한다. 이외에도 다람살라, 둔황, 산티아고 등 본인의 순례길로 삼은 여행지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추천사를 쓴 금강 스님은 “박남준 시인은 삶이 시다. 산승이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눕고, 말하고, 묵묵하고, 움직이고, 고요할 때에도 화두를 참구하듯 항상 시를 쓰고 노래한다”며 “사물을 볼 때 분별을 뛰어넘어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밝은 빛을 볼 줄 아는 경지”를 품은 그의 시집에 찬사를 보낸다.
동박새가 찾아와 쉴 자리가
동백의 여백이다
그늘을 견딜 수 없는 숙명도 있지만
다른 나무의 그늘에 들어야
잎과 꽃의 여백을 만드는 나무가 있다
동백의 여백을 생각한다
혼자 남은 동백은
지독하도록 촘촘하게
모든 여백을 다 지워서
가지를 뻗고 잎을 매달아
그 아래 올 어린 동백의 그늘을 만든다
─「동백의 여백」 부분
곧 하늘이 모자라게 별들이 뜰 것이므로
나는 보드카와 방랑의 담요를 두르고
사막의 밤으로 누울 것이다
밤하늘에는 불시착을 한 채
이 별에서 살아온 시간이 상영될 것이다
오 새드 무비♬~
서툰 배역은 견딜 수 있을 만큼만 고통스러웠다
잔기침쟁이 장미와 사막여우처럼
길고양이 룰랄라도 충분히 길들여진 채
이 별의 적응기를 끝냈으므로 나를 떠나갔다 하여
염려하지 않기로 한다
돌아갈 시간이 머지않다는 것을 안다
엔딩 자막이 올라오면 점멸하는 활주로에
꽃을 피우지 못해 울던 사구아로 선인장의 곡성이
화면을 채울 것이다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부분
술에 취한 오줌보 달랠 길 없어 와다닥 골목으로 뛰어들었는데 뉘집 담장 아래 터진 둑처럼 일 보고 있는데 맹렬하고도 그악스럽게 개가 짖어 댄다 그래 미안하다 인정하마 개처럼 살아왔다고 잘못 살아왔다고 오줌을 누다가 짐승처럼 꺽꺽거렸다 시인 유용주의 이야기다 나 또한 인정하마
어금니 두 개 빼고 20년 다 되도록 바람 새던 자리 치과 하는 친구 덕에 임플란트 끼우고 전주한옥마을 지나 간이정거장 가는 길 자꾸 침이 흘러 손수건 사려는데 아가씨가 묻는다 “아버님이 쓰시게요?”
순간 우리 아버지 돌아가신 지가 언젠데 대답하려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라고 그러니까 저 말이 나를 가리킨 것이지 나 원 참~ 손수건 사지 않고 잰걸음으로 멀어지다가 그래 인정하자 여태 장가 한번 가지 못해 아버지 되지는 못했으나 이미 그 나이 차고 넘친다는 것, 손수건 다시 샀다 나도 인정했다
─「인정했다」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박남준
전남 영광 법성포에서 태어나 1984년 《시인》지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 『적막』 『그 아저씨네 간이 휴게실 아래』 『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중독자』 등, 산문집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 『스님, 메리크리스마스』 『하늘을 걸어가거나 바다를 날아오거나』 『꽃이 진다 꽃이 핀다』 등을 냈다. 전주시예술가상, 거창평화인권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을 수상했다.
목차
1부 동박새의 쉴 자리가 동백의 여백이다
절
내 안에 봉인된 삶이 있다
동백의 여백
젖은 시간이 마를 때까지
말뚝과 반란
아름다운 이치
입승과 먹줄 승
무지개와 나
저녁 강이 숲에 들어
맹꽁이가 밤새
너를 그리고 싶었네
어린 왕자로부터 새드 무비
2부 손목이 지워진 시
국수
삼팔 구례 장날
영혼을 꿰어 안주를
하소연하다
상추 도둑
수국
사투
순자강 사연
총명불여둔필
친절한 경고
인정했다
소원
차꽃 앞에 놓는다
3부 어쩌자고 저렇게 대책 없는 별들을
은단풍나무 소리
보드카를 마실 시간
인도를 가네
별 떼들이 질주하네
사막의 은유
기원정사
갠지스강가에서
다람살라에 있다
초원에서 문신을 새기다
둔황
향 사르는 고요
가섭의 누더기
12사도의 섬
미륵사지탑이 말했다
정선
4부 아랫목이 슬프도록 따뜻했다
인사말
작은 나무
흰 무명옷이나 잿빛 삼베옷
옷의 이력
안부
그녀가 준 이불
슬프도록 따뜻했다
시작의 내력
잔인한 비문
지리산이 당신에게
팔만대장경이 물들이네
고요 한 점
화사별서
굴비 익는 법성포길
지리산은 지리산의 자리에서 노래하네
내 안의 당신께
5부 파문과 파문과 고요와 고요와
산에 드는 시간
해설
그리울 때 나는 시를 읽는다
-정철성(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