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세상과의 아주 특별한 교감, 하네스실제 안내견으로 활동했던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 ‘창조’와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 씨를 모델로 하고 있는 이 소설은 따뜻하다. 사람과 개의 우정, 나아가 결국은 헤어짐으로써 생겨나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의 시각이 아닌 개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몸이 불편한 사람의 삶을 함께 살아가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특수목적견, 그중에서도 안내견들의 삶이 사람 못지않게 기쁨과 슬픔의 감정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도 새로운 깨달음이다. 일하는 대가는 ‘주인을 즐겁게 해주었을 때 돌아오는 칭찬’뿐이다. 오직 그것만을 바라보는 이 개들은 물질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그저 칭찬과 관심을 즐길 뿐이다.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즐거움’, 그 사람을 ‘사랑하는 즐거움’은 안내견이 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표다. 삶을 즐기려 든다면 모든 것이 행복하고 힘들지 않아 보인다는 점을 알면서도 실제로는 그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안내견의 삶은 얼마나 좋은 본보기인가.
이 책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창조’라는 안내견의 눈과 입을 통해 직시하게 함으로써 잃었거나 혹은 잊었던 것을 돌아보게 한다. 내 아이를 돌아보게 하고, 아버지를 돌아보게 하며, 친구와 타인을 보게 한다. 사랑과 헌신, 즐거움과 베풂의 정신으로 말이다.
지금 현재 외롭거나 상처받았다면, 혹은 가족을 멀리 떠나보냈거나 긴 기다림에 빠져 고독과 적막함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면, 까만 눈동자를 굴리며 당신을 바라보는 창조의 따뜻한 시선이 큰 위안으로 다가올 것이다.
창조가 겉에 걸친 하네스의 손잡이를 예지가 붙잡으면, 아주 특별한 교감이 벌어진다. 당신이 책장을 넘길 때, 그 손끝에 창조와 이어지는 하네스가 느껴질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랑과 우정의 하네스는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삶의 개체들과 교감케 하는 아주 특별한 장치일지도 모르겠다.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시각장애인 안내견 ‘창조’를 통해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가까이는 함께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예지 씨를, 멀리는 일상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아픔과 외로움을 생각하게 한다. 창조의 눈과 귀와 입을 통해 보이는 것들과 듣는 것들이 마음의 울림이 되어 우리에게 전해진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안내견들의 일상과 시각을 통해 비춰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생각보다 완전하지 않다. 개들의 시각에서 보는 사람의 삶은 오히려 부족하거나 공허하다. 사람들에게도 늘 기다림이라는 정서가 있어서다. 따지고 보면 모두들 기다림에 지쳐있다. 친구를 기다리고 가족을 기다리며, 사랑을 기다린다. 기다리다 지친 그들은 외로워서 결국 누군가의 따스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사람의 말을 하지 못하는 창조는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준다. 자원봉사자 아버지의 말대로라면 사람을 완벽하게 ‘무장해제 시키는 힘’이 있다. “내가 왜 개에게 이런 넋두리를 하고 있지?”라며 반문하면서도 창조에게만은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고는 후련해한다. 열심히 들어준 창조는 조용히 자신의 코끝을 상대방에게 대주거나, 앞발을 무릎에 올려놓아 위로를 전달한다.
창조는 여덟 살된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다.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예지의 눈이 되어 안내견으로 살아가는 일이 자신의 천직이라 생각한다. 안내견의 삶이 늘 행복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자신을 ‘개’라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틈에서 부대껴야 하고, 익숙하지 않고 낯선 곳에서 두려움도 이겨내야 한다.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는 움직이는 계단 ‘에스컬레이터’와의 신경전도 그렇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매순간 뛰어넘고 이겨내야 할 일시적인 어려움일 뿐, 해내고 나면 가슴 뿌듯하고 보람찬 일이기도 하다.
창조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기다림 속에 있으면서 늘 인내한다.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맛보는 기쁨을 최고의 순간으로 여긴다. 예지가 연주를 하는 동안 그 곁에서 기다리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기다린다. 지루한 수업 중에는 여유롭게 잠을 자며 기다릴 줄도 안다. 가끔 잠꼬대로 친구들의 수업을 방해하곤 하지만 그마저도 즐거운 일상이다.
이런 창조도 견디지 못하는 일이 있다. 바로 슬픔이다. 사랑하는 예지와 가족들이 안고 살아가는 슬픔, 언젠가는 이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슬픔이 그렇다. 또한 주변에서 만나는 이웃들이 가진 저마다의 슬픔과 외로움이 주는 무게가 웬일인지 힘겹고 가슴 아프다. 학교 가기 싫어하는 초등학생 동민이의 슬픔이 그렇고, 가족을 멀리 떠나보낸 삼촌의 외로움이 그렇다. 특히, 앞을 보지 못하는 예지가 어둠 속에서 느끼는 공포와 외로움이 슬프다.
창조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뿐이다. 그저 말없이 들어줄 뿐인데 모두들 창조에게 마음을 열고 고마워한다. 그리고 예지를 통해 깨닫는다. 육체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볼 수 있다면 이 세상이 더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하네스 입자.”
예지는 엄마가 들고 있던 하네스를 건네받아 내몸에 입혀 주었다. 내 가슴에 딱 맞는 둥그런 띠에 예지가 잡을 수 있는 긴 손잡이가 달려 있다. 이제 예지가 하네스의 손잡이를 잡으면, 우리 둘사이에 아주 특별한 교감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예지와 함께 문을 향해 움직였다. 사람들 틈에서 발에 밟히지 않게 조심하며 예지를 안내한다는 일은 참 쉽지 않다. 사람들은 자기가 갈 길을 방해받기 싫어하면서도, 자신이 남의 길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은, 조금이라도 먼저 내리겠다고 나와 예지를 밀어붙이며 성급하게 뛰어내리는 사람도 있다.
예지가 넘어질까 걱정되는 아주 위험한 순간이다. 내 발이 밟히는 것쯤은 이제 흔한 일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예지는 내 발이 밟혀 피가 나도 알아차리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