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도서출판 호밀밭과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박재혁, 박차정, 안희제, 이종률, 최천택까지 총 5권으로 구성된 '인물로 만나는 부산정신' 시리즈를 기획했다. 4권은 자주적이고 진보적인 민족혁명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산수 이종률' 선생 편이다.
산수 이종률(1902~1989)은 한국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민족사상가이자 이론가이다. 1925년, 국내 최초의 사회주의 학생모임 '공학회' 대표를 맡았고 이후 일본 와세다대학에 입학해 신간회 동경지회 활동을 했으며 1931년에는 기관지 「이러타」를 창간해 편집인 겸 발행인을 맡아 운영했다. 창간 1년 만에 전국 28개 지역에 지국을 설치하는 성과를 이루지만, 일제의 악랄한 탄압과 고문에 시달리며 복역 생활과 출소를 끊임없이 반복해야만 했다.
해방 후에도 분단을 막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지만 6.25전쟁이 한반도를 덮치며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전쟁을 통해 민족의 단결과 통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더욱 깊이 깨달았고 전쟁 후에는 부산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부임해 후학들에게 민족주의에 대한 중요성을 강의하는 한편 활발한 언론활동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전파했다.
출판사 리뷰
자주적이고 진보적인 민족사회를 위해 헌신한
산수 이종률의 발자취를 조명하다
산수 이종률(1902~1989)은 한국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민족사상가이자 이론가이다. 1925년, 국내 최초의 사회주의 학생모임 ‘공학회’ 대표를 맡았고 이후 일본 와세다대학에 입학해 신간회 동경지회 활동을 했으며 1931년에는 기관지 <이러타>를 창간해 편집인 겸 발행인을 맡아 운영했다. 창간 1년 만에 전국 28개 지역에 지국을 설치하는 성과를 이루지만, 일제의 악랄한 탄압과 고문에 시달리며 복역 생활과 출소를 끊임없이 반복해야만 했다.
해방 후에도 분단을 막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지만 6·25전쟁이 한반도를 덮치며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전쟁을 통해 민족의 단결과 통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더욱 깊이 깨달았고 전쟁 후에는 부산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부임해 후학들에게 민족주의에 대한 중요성을 강의하는 한편 활발한 언론활동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전파했다.
독립운동부터 정치사회, 언론, 통일운동까지
한평생 조국 통일과 민족 평화를 꿈꾸다
이종률은 일제 강점기부터 8·15광복, 4·19혁명 등 한국 사회가 커다란 변화의 물결을 맞이할 때마다 그 중심에서 서 있었다. 항일혁명운동, 단독정부 반대 투쟁, 자주적 통일 운동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조국 통일과 민족의 평화를 위해 온몸으로 맞섰다. 또한 학문과 사상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으며 다수의 저작물을 남겼다.
이종률 선생의 일생을 살펴보다보면 곳곳에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인물들과 만나게 되는데 함께 민족일보를 창간했다가 박정희에 의해 사형 당한 조용수, 개운중학교과 웅상학원을 맡아달라고 찾아온 청년 채현국 등이 그들이다.
산수 이종률 선생은 1989년, 오랜 수감 생활과 고문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자택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오랜 시간 자신을 찾아오는 학생 및 젊은이들과 교유하며 자신의 이론과 사상을 가르쳤다.
“민족주의를 버리면 밖에서는 국제침략세력이 들어오고 안에서는 또다시 6·25 같은 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 본문 中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인물로 만나는 부산정신> 시리즈, 그 네 번째 이야기
도서출판 호밀밭과 (사)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박재혁, 박차정, 안희제, 이종률, 최천택까지 총 5권으로 구성된 <인물로 만나는 부산정신> 시리즈를 기획했다. 개성고등학교 출신 박재혁 의사는 부산경찰서 폭파 의거를 통해 3.1운동 이후 침체된 독립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다시 살려놓았고, 박차정 여사는 남편인 의열단 김원봉 단장과 함께 평생을 바쳐 민족과 여성의 해방을 위해 싸웠다. 백산 안희제 선생은 교육과 무역, 언론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일제에 항거했고 산수 이종률 선생은 자주적이고 진보적인 민족혁명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으며 박재혁 의사의 오랜 친구였던 최천택 선생은 숱한 고문과 고통 속에서도 죽는 날까지 일생을 조국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1925년 3월, 종률은 공학회 결성에 참여하였다. 공학회는 처음 만들어진 사회과학연구 학생단체로 ‘공동의 힘으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공동의 단결로 일제의 식민지교육에 반대한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항일 학생운동단체인 공학회가 만들어지자 유심히 지켜보던 종로경찰서에서 종률과 권혁을 불렀다.
1년 가까이 구금되었던 종률이 풀려났다. 종률은 새로 합류한 동료들과 사회실정조사소 일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와 함께 이러타사도 설립했다. ‘이러타’는 ‘이렇다’는 말이었다. 사회실정조사소가 나라 안팎의 자료를 수집하고 외국의 책과 자료를 번역하는 연구소라면, 이러타사는 그 결과를 『이러타』라는 책으로 펴내는 출판사였다. 종률은 양쪽 일을 다 보았다. 『이러타』 일은 거의 혼자 책임지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런 종률을 사람들은 ‘이러타!’라고 불렀다.
종률은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제국주의 침탈로 발생한 민족문제임을 확실히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종률은 자신의 생각을 책으로 펴냈다. 대학에서 강의를 맡아 ‘민족혁명론’을 펼치기도 하였다. 민주일보의 주필로도 활동했다. 민족의 위기 앞에서 종률은 힘닿는 대로 자신의 역할을 해나갔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정애
‘부산아동문학 신인상’을 받았고,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되었습니다. 부산에 있는 동네 책방 ‘책과 아이들’에서 오랫동안 어린이와 책을 만나 왔고, 어린이·청소년 문학을 꾸준히 공부하고 있습니다.인물 이야기 《이종률》을 썼고, 함께 쓴 책으로 《해돋이 마을》이 있습니다.
목차
1. 아버지가 선생님
2. 새로운 스승들
3. 일본에서 벌인 활동
4. 해방이 될 때까지
5. 분단이 불러온 전쟁
6. 동래 수곡과 천하정 제자들
7. 3·4월 민족항쟁과 민족통일운동
8. 민족일보와 수감생활
9. 그리운 가족
10. 마지막 남은 힘까지
특별 부록. 깊이 보는 역사/ 이종률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