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시리즈 16권. 총 다섯 편이 수록된 이상권 작가의 소설집이다. 장애, 가난, 낙태, 죽음 등의 주제로 각각 독립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폭력이 지배하는 현실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은 인간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에 당위성을 부여하길 거부하는 청소년들의 집요한 자기 싸움의 기록이다.
사랑니가 주는 무시무시한 치통을 온몸으로 느끼며 괴로워하던 진우는 마침내 사랑니를 빼기 위해 치과를 찾는다. 그런데 그렇게 발악을 하던 사랑니도 막상 병원 앞에 이르자 잠잠해졌다. 새삼 사랑니도 생명체라는 것을 느낀 진우는 예전에 배 속의 아이를 지우고 힘들어 했던 풀잎이의 마음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던 자신을 떠올리는데….
출판사 리뷰
우리의 존재를 위협하는 장애, 가난, 불륜, 낙태, 성폭력, 죽음
폭력으로 가득 찬 세상에 대한 순수한 영혼들의 순박하고 아름다운 저항!
『성인식』에 이은 이상권 작가의 두 번째 신작 소설집 『사랑니』. 총 다섯 편이 수록된 이번 작품집은 장애, 가난, 낙태, 죽음 등의 주제로 각각 독립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폭력이 지배하는 현실을 그리고 있다.
우리 모두는 이 날것의 현실에 생생하게 노출되어 있다. 성인들이 이런 세계에 대해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소설 속의 청소년들은 폭력의 당위에 대해 온몸으로 질문을 던지고 용납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용납할 수 없음을 정직하게 고백하며 이에 저항한다. 이 소설은 인간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에 당위성을 부여하길 거부하는 청소년들의 집요한 자기 싸움의 기록이다. 작가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저희가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논쟁을 벌이던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비록 서툴지만 끊임없이 생의 근원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개똥철학자들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세상에 내보낸다고 말한다.
네가 품고 있던 사랑니도 이렇게 아팠을까?
고통과 마주한 순간, 나는 네가 보고 싶다
“어디야? 지금 달려갈게.”
표제작 「사랑니」에서 끊임없이 주인공 진우를 괴롭히는 치통은 직.간접적인 폭력으로 인해 나약한 개체가 감당해야 하는 고통을 상징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런 고통을 참으며 기다려야 할 때가 많을 것이라는 할머니의 전언은 이 시대가 지배하는 폭력의 터널을 지나면서 체득해야만 하는 뼈아픈 교훈이다. 진우는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니가 주는 치통을 참아내는 연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니가 주는 치통과 멀쩡한 생니까지 뽑아내는 고통을 이겨낸 후에야 진우는 비로소 낙태를 경험한 여자친구(타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폭력의 채널을 경유하고 나서야 관계적, 공감적 연대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 사회의 모든 통로가 폭력으로 가득 차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출산에 대한 가족들의 논쟁을 그린 「매운 떡볶이」, 정치화된 폭력의 현실을 나타낸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폭력을 치유하는 공간인 가족을 소재로 한 「신이 내린 안마사가 사는 집」, 나약한 삶의 태도를 과감히 버리고 당당하게 나아가는 청소년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개 대신 남친」 또한 폭력이 지배하는 현실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세계를 통과하는 우리 청소년들은 폭력적 현실로부터 도망치지 않으며 맞서고 아파하고 고민하고 저항한다.
“임신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붕 떠 있는 기분이었어. 맨날 새처럼 날아다니는 꿈만 꾸었고, 아기 이름도 새와 관련된 것으로 정해주려고 생각하고 있었어. 몸에 아기가 들어왔다는 것이 느껴질 때부터 나무랑 풀이랑 새들이 많은 숲에 자주 갔어. 땅속에다 깊이 뿌리 내린 나무와 같은 황홀감을 맛보고 싶었거든. 그러자 내가 나무가 되는 꿈을 꿨어. 내 가지에 수많은 새들이 와서 둥지를 틀었어. 나는 그런 꿈만 꾸었지,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채영아, 이모는 멀쩡한데 배 속에 있는 아기가 멀쩡하지 않다고 하니까 받아들일 수가 없어.” 나는 작은이모의 힘겨운 눈빛을 받아내면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는데, 지금 이모의 상태로 봐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매운 고춧가루가 범벅이 된 떡볶이로도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모한테는 매운 음식보다 더 자극적이면서도 더 절대적인 힘을 가진 마법의 약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두 손을 배 위에다 모아서 깍지를 끼고는 한껏 힘을 주었다. 그럴수록 손은 더 떨렸다. 여전히 사랑니는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나는 깍지를 풀고 배를 쓰다듬었다. 무엇인가 배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사랑니가 배 속에도 있는지 모른다. 지금 의사의 눈에 보이는 놈은 수많은 사랑니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진짜 우두머리는 내 배 속 아득한 곳에 숨어서 끝까지 버티라고 지령을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
아, 얼마나 아팠을까, 넌, 넌, 넌······ 자궁 속에 있는 사랑니를······ 아, 아, 아······ 난 한 번도 그런 생각 하지 않았어. 네가 수술하러 가는 날까지, 내 앞에서 막 뛰어가는 너를 볼 때까지. 은근히 너를 미워하기도 했어. 왜 나를 그런 일에 끌어들이는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만으로도, 집을 에워싸고 있는 나무와 풀과 온갖 살아 있는 것들의 몸에서 우러나는 빛만으로도 이 작은 마당은 환했다. 여기서 살아갈 때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밤에 마당이 환하다는 생각도 처음이고, 마당 색이 참 곱다는 생각도 처음이고, 하여 신발 벗고 다니면 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괜찮겠다는 생각도 처음이다. 왜 이제야 이런 것들이 느껴지고 보일까. 내가 무엇이든 더디고 느려서 그때그때 상황을 파악하는 게 아니라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걸까. 그렇게라도 되기만 한다면 좋겠다. 늦어도 좋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깨닫고 느끼는 것만큼 알았으면 좋겠다.
작가 소개
저자 : 이상권
산과 강이 있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는 나만의 옹달샘이 있었고, 나만의 나무도 여러 그루 있었고, 나만의 비밀 동굴도 있었고, 휘파람을 잘 부는 아이였다. 대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갑자기 들이닥친 난독증과 우울증으로 생을 놓아버리고 싶었을 때 문학이 찾아왔다. 그 시절이 내게 가장 슬펐고, 가장 사랑하고 싶었다. 그래서 작가가 된 뒤로도 청소년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한양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으며, 1994년 계간 <창작과 비평>에 단편소설 「눈물 한 번 씻고 세상을 보니」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지금은 일반문학과 아동청소년문학의 경계를 넘어 동화부터 소설까지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 작품으로『친구님』『성인식』『발차기』『난 할 거다』『애벌레를 위하여』『하늘을 달린다』『하늘로 날아간 집오리』『겁쟁이』『싸움소』 『야생초밥상』 등이 있다.
목차
매운 떡볶이
사랑니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
신이 내린 안마사가 사는 집
개 대신 남친
발표지면
해설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