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모두들 바쁘고, 배달 서비스는 잘되어 있고,
유튜브에는 10분이면 뚝딱 만들 수 있는 요리 레시피가 넘쳐나는 이때에,
200년 전 쓰인 채식 요리 레시피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걱정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책을 만들면서 우리는
화려하고 복잡하고 넘치기 때문에, 본질보다 겉모습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었던 ‘참맛’을 만났다. 오랜만에 맑고 깊은 숨을 들이쉬는 기분도 들었다.
독자들에게도 그 ‘숨’의 밥상을 드리고 싶어졌다.
―편집자”
● 요리 책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왜 조선 선비의 채식 요리책인가?트로트나 LP 턴테이블 같은 것이 젊은이들 사이에게 새삼 인기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올드’한 것이 아니라 처음 맛보는 ‘신상’이기 때문일까? 최근 TV의 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국악이 새롭게 조명되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통해 옛날 놀이들도 소환되고 있는데, 시간 속에 잊힌 것들 중 다시 꺼내었을 때 그 안에 담긴 정서와 오래된 것만이 줄 수 있는 어떤 맛 그리고 지혜 같은 것들을 만날 때가 있다. 여기, 200년 전 조선 실학자 서유구가 쓴 음식 백과 ⟪정조지鼎俎志⟫에서 채식 음식들만 뽑아 현대의 자연 요리 전문가 문성희가 재현한 책 ⟪전통 채식 밥상―조선 선비의 비건 레시피⟫도 바로 그런 맛과 지혜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코로나 19가 장기화되고 기후 위기 또한 뚜렷해지면서 외식보다는 ‘집밥’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해독력과 면역력을 키워주는 치유식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는 상황에서, 이 책에 소개된 정갈한 음식들은 먹고 나면 “맑고 깊은 숨이 쉬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몸이 정화되고 마음까지 순수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실제로 이 음식들에 들어가는 양념은 소금, 간장, 식초, 꿀, 참기름, 참깨, 후추, 계피, 회향, 진피, 생강이 전부이며, 특히 간장과 식초는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발효시킨 발효 양념이고, 꿀, 후추, 계피, 회향, 진피, 생강은 몸을 따뜻하게 하며 해독을 시켜서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피를 맑게 만들어 몸속 기운을 순환시켜 주는 약성 식품들이다. 모두 깨끗한 재료 본래의 맛과 향을 해하지 않는 착한 양념들이다.
이 요리들을 재현한 문성희는 “풍석 선생의 부엌은 신선한 제철 재료와 여남은 가지의 양념이 전부인 조촐하고 소박한 공간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될 정도라고 말하는데, 비단 양념만 단순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밥과 국, 반찬을 비롯해 죽, 떡과 과자, 발효 음료와 차, 술까지 60여 가지 채식 음식들은 웬만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을 만큼 레시피가 단순하다. 그만큼 재료 본연의 맛과 영양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조리로 맛과 풍미를 최대한 살리는 요리법인 것이다.
● 본연의 맛이 살아있는 음식, 몸과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음식음식은 소박하고, 조리법은 단순하고, 재료 또한 매우 익숙한 것들인데, 왜 그 담백하고 심지어 밋밋해 보이기까지 하는 음식에서 삶이, 정성이, 품격이, 단아함이 느껴질까? 어쩌면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그만큼 화려하고 복잡하고 넘치기 때문에, 본질보다 겉모습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삶의 방식이 코로나 19를 부르고 기후 위기를 자초하면서 우리 삶을 근본부터 되돌아보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소박하고 정갈하고 본연의 맛이 살아있는 음식들을 먹으면, 또 이렇게 소박하고 깨끗하게 먹고 살면, 내 일상도 그리 될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조선 후기의 청렴한 선비이자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농사 짓고 음식 만드는 일을 귀하게 여겼던 서유구가 ⟪정조지⟫에서 음식을 대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실제로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1764~1845)는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한 후 농사를 지어 어머니를 위해 몸소 조석의 끼니를 봉양하였는데, 이때 어머니는 손에 굳은살이 박혀가면서 농사일을 하는 아들에게 “도회지에 살면서 농사와 길쌈에 대해서는 문외한인데, 먹고 입는 것은 귀신같이 밝히는 자들은 천하의 도적놈들”이라며 아들을 격려하였다고 한다. 당시 조선은 도시화와 상업의 발달로 수고手苦에 대한 멸시 풍조가 만연했는데, 특히 사대부 남성이라면 글 읽기에만 몰두할 뿐 생산적인 활동은 기피하는 분위기에서 과거에 급제하고 고위 관료까지 오른 선비가(그것도 명문 양반가의 남성이!) 직접 부엌을 들락거리며 손수 음식을 만들고 요리책을 쓴다는 것은 결코 상상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정조지鼎俎志⟫는 조선 최대의 실용 백과사전으로 알려진 서유구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16개 지志 중 여덟 번째 지로 식재료와 각종 요리법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담은 음식 백과이다. 이 책 ⟪전통 채식 밥상―조선 선비의 비건 레시피⟫에서는 ⟪정조지⟫ 내에서도 채식 요리들만 뽑아, 자연 요리 전문가인 문성희가 임원경제연구소 정정기 박사의 번역을 토대로 여러 상차림 형태로 재현하면서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친절한 레시피와 요리 팁, 해설을 붙이고, 새로운 상차림이나 음식을 소개할 때마다 그 음식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느낀 소회들까지 풀어내 독자들로 하여금 200년 전 채식 음식들에 한결 더 친근하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책에는 이렇게 ⟪정조지⟫의 채식 음식 60여 가지가 소개된다. 소박하면서도 기품 있는 다섯 가지 밥상, 정갈하면서도 보양이 될 것 같은 여섯 가지 죽상, 멋과 맛이 어우러진 떡과 과자, 색과 향이 고운 발효 음료와 차, 그리고 여유와 격조가 느껴지는 전통주, 마지막으로 이 음식들로 가족이나 친구를 초대해 함께할 수 있는 뷔페상과 코스상으로 나눠 소개함으로써 일상에서의 응용도 돕고 있다. 그리고 밥상의 경우는 밥과 국 그리고 세 가지 찬으로 하나의 상차림을 꾸몄고, 죽상에는 죽과 가장 잘 어울리는 반찬을 함께 소개했다. 예를 들면 영양밥상은 영양밥과 함께 국화잎국, 두부 넣어 만든 오이소박이, 식초에 살짝 절인 마를 곁들인 국화잎샐러드, 감초 넣은 통밀을 입힌 생강지짐을 하나의 상차림으로 선보이는 식이다.
20년 넘게 자연 요리를 해오고 ⟪평화가 깃든 밥상⟫ 시리즈를 통해 채식 요리도 맛있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걸 알려온 자연 요리 전문가 문성희는, 모름지기 음식이란 만들기 쉽고 재료의 맛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요리 철학을 ⟪정조지⟫에서 고스란히 발견했다며 이렇게 말한다. “풍석 선생의 ⟪정조지⟫를 우연한 계기로 만나고 그 내용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 레시피 중 일부를 재현해 보면서 그 맛과 품격에 그야말로 매료되었습니다. 잘 익은 간장과 초와 기름 몇 방울만 가지고도 얼마나 품격 있는 맛을 내는지 ⟪정조지⟫의 음식들에서 저는 재료의 맛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조지⟫의 음식들은 제가 지난 20여 년 동안 추구해 온 ‘채소 중심’의 밥상, ‘소박하고 품격 있으며’ ‘생명을 살리는’ ‘평화가 깃든 밥상’의 뿌리였음을 깨달았습니다.”
대부분 과호흡 상태로 살아가는 요즘의 우리가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서 만나야 할 ‘깊고 느린 호흡’ 같은 음식들. 어떤 요리는 매우 심플하고, 어떤 요리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슬로푸드의 정석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상황에 맞게, 무리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해볼 수 있는 것들로 하나하나 자신의 밥상 위에 초대해 보면 어떨까? 마치 내 삶에 깊고 느린 호흡을 초대하듯이.
몸의 건강, 마음의 평화, 환경을 덜 해치는 삶의 방식…… 어렵게 느껴질지 몰라도 변화의 출발점은 의외로 간단한 곳에 있을 수 있다. 매일 내가 나에게 차려주는 밥상을 살피고, 아주 조금의 정성을 더해주는 일부터 말이다. 부디 이 책 속에 차려진 200년 전 밥상에서 그 평화의 기운과 영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 200년 전 레시피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재현한 이 책의 또 다른 특징들― 숟가락과 종이컵 등 집에 있는 평범한 도구를 이용한 계량
― 전통 레시피는 지키면서 대체할 수 있는 재료나 도구 제안
― 밥과 국, 그에 어울리는 반찬을 선별해 하나하나의 상차림으로 제안
― 모임상이나 뷔페로도 활용할 수 있는 응용 상차림
― 모든 레시피를 여러 컷의 과정 컷으로 상세 설명
― 풍석 선생과 문성희 선생의 요리 철학을 만날 수 있는 에세이 수록
― 풍석 선생의 생생한 설명을 맛볼 수 있는 《정조지》 원문과 번역본 수록
― 요리를 담아낸 장인들의 아름다운 그릇과 천연염색 상보 감상은 덤!
작가 소개
지은이 : 서유구
자는 준평(準平), 호는 풍석(楓石)이며 본관은 대구이다. 대제학 보만재 서명응의 손자이며, 이조판서 서호수의 아들이다. 영조1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규장각 초계문신으로 발탁된 후 좌부승지, 성균관 대사성, 홍문관 부제학을 거쳐 사헌부대사헌, 예문관대제학, 형조판서, 호조판서, 병조판서에 제수되었다가 늦은 나이에 전라도관찰사, 수원부 유수를 역임하였다.대표적인 경화세족 가문에서 태어나 다양한 학문을 깊이 있게 연구했으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학을 이어 특히 농학(農學)에 큰 업적을 남겼다. 가문의 개방적인 학문 기풍과 방대한 장서의 열람, 뛰어난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다방면에 식견과 경험을 쌓았다. 젊은 시절 정조의 치세 때에는 규장각에서 많은 편찬 사업에 참여했고, 방폐기간 동안의 여러 경험을 기반으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로 성장했다. 서유구가 지은 16개의 주제를 지(志)로 하여, 113권으로 구성된《임원경제지》는 농업, 목축, 어업, 양잠, 상업 등의 생산 전반과 의학, 음식, 주거, 선비가 알아야 할 일상 실용지식 등의 생활 전반을 담은 방대한 양의 생활 백과전서이다. 그 밖의 저술로는 정조의 명으로 조선에서 출판한 도서의 목판을 조사한《누판고》와, 전라도관찰사로 재직할 때는 기민을 구제하기 위해 고구마 재배법을 기록한 《종저보》를 간행하였다. 이 밖에도 개인 문집으로 《풍석고협집》, 《금화지비집》, 《번계시고》, 《금화경독기》와 전라도관찰사와 수원유수시절의 업무일지인 《완영일록》과 《화영일록》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