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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사마천
역사학의 성인 ‘사성史聖’으로 추앙받고 있는 사마천은 기원전 145년 지금의 샨시성陝西省 한청시韓城市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의 교육 아래 역사가로서의 자질을 갖추어나갔다. 스무 살 때는 아버지의 권유로 약 3년에 걸쳐 천하의 역사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팩트의 진실성과 그에 함축되어 있는 역사적 의미를 체험하는 뜻 깊은 행보를 실천으로 옮겼다. 이때의 경험은 3천 년에 걸친 방대한 역사서 《사기》의 출로를 모색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되었다.20대 중후반 예비관료인 낭중郎中으로 선발되어 궁중에 들어와 당대의 숱한 인재들과 교류하는한편 황제 무제武帝를 지근에서 모셨다. 36세 때 아버지 사마담이 세상을 떠나자 3년 상을 치른 후 38세 때인 기원전 108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부 문서와 기록을 책임지는 태사령太史令이되었다(이해에 고조선이 멸망했다).마흔이 넘으면서 사마천은 아버지 대부터 수집해놓은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서를 저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원전 98년 젊은 장수 이릉李陵을 변호하다가 황제의 처남이자 장군인 이광리李廣利를 무고했다는 죄목으로 옥에 갇혔다. 상황은 악화되어 반역죄에 몰려 사형이 선고되었고, 사마천은 미처 완성하지 못한 역사서를 마무리하기 위해 죽음보다 치욕스러운 궁형을 자청하여 죽음을 면했다.50세 무렵 감옥에서 풀려난 사마천은 몸과 마음이 완전히 망가진 처절한 상황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역사서 저술에 몰두했다. 약 3년에 걸친 옥살이와 궁형은 역사서의 방향과 내용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사마천은 이 수모와 고독 속에서 인간과 세상, 권력과 권력자, 인간의 본질에 대해 철저하게 숙고하는 한편, 나아가 ‘역사를 움직이는 진정한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무엇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가?’와 같은 근원적 의문을 던지며 3천 년 통사를 완성했다. 이로써 《사기》는 역사에서 인간의 역할을 누구보다 깊게 통찰한 인류 최고의 역사서로 거듭날 수 있었다. 궁형은 사마천 개인에게는 더할 수 없는 불행이었지만 인류에게는 비할 데 없는 값진 선물로 남은 ‘역설적 악역’이었다. 궁형으로 인한 수염 없는 그의 초상화가 그 의미를 일깨운다. 한편 사마천의 죽음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병사, 자살, 행방불명, 처형 등 여러 설이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맴돌고 있다. 사가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해를 대략 기원전 90년 무렵으로 추정한다. 그의 나이 56세였다.
<우리국학총서>를 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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