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부모님 > 부모님 > 소설,일반 > 역사
고난의 세월 누가 대신 울어주나요 이미지

고난의 세월 누가 대신 울어주나요
학이사(이상사) | 부모님 | 2024.04.15
  • 정가
  • 25,000원
  • 판매가
  • 22,500원 (10% 할인)
  • S포인트
  • 1,250P (5% 적립)
  • 상세정보
  • 15x22 | 0.728Kg | 560p
  • ISBN
  • 9791158545000
  • 배송비
  •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 (제주 5만원 이상) ?
    배송비 안내
    전집 구매시
    주문하신 상품의 전집이 있는 경우 무료배송입니다.(전집 구매 또는 전집 + 단품 구매 시)
    단품(단행본, DVD, 음반, 완구) 구매시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이며, 2만원 미만일 경우 2,000원의 배송비가 부과됩니다.(제주도는 5만원이상 무료배송)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일 경우 구매금액과 무관하게 무료 배송입니다.(도서, 산간지역 및 제주도는 제외)
  • 출고일
  • 1~2일 안에 출고됩니다. (영업일 기준) ?
    출고일 안내
    출고일 이란
    출고일은 주문하신 상품이 밀크북 물류센터 또는 해당업체에서 포장을 완료하고 고객님의 배송지로 발송하는 날짜이며, 재고의 여유가 충분할 경우 단축될 수 있습니다.
    당일 출고 기준
    재고가 있는 상품에 한하여 평일 오후3시 이전에 결제를 완료하시면 당일에 출고됩니다.
    재고 미보유 상품
    영업일 기준 업체배송상품은 통상 2일, 당사 물류센터에서 발송되는 경우 통상 3일 이내 출고되며, 재고확보가 일찍되면 출고일자가 단축될 수 있습니다.
    배송일시
    택배사 영업일 기준으로 출고일로부터 1~2일 이내 받으실 수 있으며, 도서, 산간, 제주도의 경우 지역에 따라 좀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묶음 배송 상품(부피가 작은 단품류)의 출고일
    상품페이지에 묶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은 당사 물류센터에서 출고가 되며, 이 때 출고일이 가장 늦은 상품을 기준으로 함께 출고됩니다.
  • 주문수량
  • ★★★★★
  • 0/5
리뷰 0
리뷰쓰기
  • 도서 소개
  • 출판사 리뷰
  • 목차
  • 회원 리뷰

  도서 소개

한국 전쟁 기간 중에 민간인 3,500여 명이 학살된 ‘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유족의 구술 증언집이다. 『그날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 경산 코발트광산 구술 증언집 1』에 이어 유족 및 목격자, 진상규명 활동가의 학살 관련 생생한 기억이 담겨 있다.

  출판사 리뷰

잊을 수 없는,
잊어선 안 되는
그날의 기억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 사건은 코발트광산 수직 갱도와 대원골 등 주변 골짜기에서 일어났다. 대구형무소 수감자 약 2,500명에 경산 청도 영동지역 등에서 한국전쟁 발발 직후 검속된 국민보도연맹원을 포함해 무려 3,500여 명을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이용해 불법으로 처형한 사건이다. 당시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희생자는 대부분 좌익 사상이나 반공 활동과는 무관한 단순부역자나 농민이었다고 한다.

민간인 불법 처형의 현장이 된 폐코발트광산은 1930년대 중반 한국인이 운영하던 춘길광산(금은)이었으나, 1937년 일본인 소유의 보국코발트광산으로 바뀌면서 일제의 지하자원 수탈 및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이 되었던 곳이다.

산에는 총소리가 울렸고 도랑에는 핏물이 흘렀다. 아무 죄가 없으니 곧 나갈 것이라 말하던 이들은 눈이 가려진 채 트럭에 실려 코발트 광산으로 향했다. 유족 및 목격자의 기억 속엔 그들의 마지막 모습이 남아 있었다. 『그날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경산 코발트광산 구술 증언집 1』에 이어 유족, 목격자, 진상규명 활동가의 증언을 기록으로 남겼다.

유족들의 증언은 구술의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표준어규정에 따라 수정하지 않고 구어체 그대로 실었다. 사회 분위기 때문에 떠난 날조차 알지 못하고 마음 편하게 이야기하기도 힘들었던 유족들의 아픔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영문도 모르고 끌려간 가족이 언제 돌아올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던 이들의 가슴속 응어리진 한을 풀어놓은 증언집이다.

엮은이 최승호 경산신문 대표는 “이 증언집이 반전평화인권 교육은 물론 기억의 장치로, 또한 진실과 화해의 관점에서 두루 활용돼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딛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똑바로 마주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증언집을 통해 후손들에게 역사 뒷면의 진실을 전한다.

[머리말]

20대 청상과부가 돼 치열하게 살아온 미망인들은 지난 70년의 세월을 입이 있어도 말을 못 하고, 눈이 있어도 눈물을 흘리지 못하며 인고의 세월을 살아오신 분들입니다. 희생자의 얼굴도, 붙잡혀 가던 그날의 기억도 희미해졌지만 ‘이제는 돌아오겠지’ 하는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사시는 분들의 기억이야말로 민간인학살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용서와 화합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다만 3차례 구술채록 과정에서 안타까웠던 것은 유가족들의 기억이 빠르게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기 유족을 합쳐 200여 명에 이르는 코발트광산 유가족들의 증언채록이 시급하다는 것도 이 같은 이유입니다. 유족회는 이번 1차 증언집 발간에 이어 앞으로도 유족들의 증언채록작업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 대학 등 지역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꼭 필요합니다.
이 증언집이 반전평화인권 교육은 물론 기억의 장치로, 또한 진실과 화해의 관점에서 두루 활용돼 지역의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도종열 : 인지라도 오마 마 손목 잡고 막 울겠다.
최승호 : 이제라도 오면 손목 잡고.
도종열 : 그래 저 아주마 저 저기 요리 올라오는 질이 있거든. 그거는 주야로 본다. 오는가 싶어가. 봤디마 요새 또 요질로 나갔는데 올 긴디 몬 온다 카미.
최승호 : 나갈 때 옷은 뭐 입었습디까?
도종열 : 삼비 중적삼이 입고 들에 갔다ㅤㅇㅗㅆ는 사람 디리고 가뿌ㅤㄹㅣㅆ다 마.
최승호 : 삼베. 그때 갈 때 내 갔다 올게 인사하고 갔습니까?
도종열 : 아 인사 어딨노. 경찰 딜고 가미 사람 오도 몬 하구로 하는데.
최승호 : 그러고 나서 할머니는 남편 면회 안 갔습니까?
도종열 : 면회 머 오라 캐야 가지. 가도 비주나 어데.
최승호 : 어느 지서에 있다 캅디까, 어느 지서에.
도종열 : 청도지서. 청도.
최승호 : 청도경찰서에 있다 캅디까. 풍각 지서가 아니고?
도종열 : 풍각 아이고. 풍각에 지서 있나 어데. 그런데 이 박사가 사람 몬 지기구로 해가지고 거 가여 한 달로 있었는데 어느 녁에 고마 디리고 가ㅤㅃㅜㅆ어.
최승호 : 유치장에 한 달 있다가.
도종열 : 경찰서 한 달 있다가. 거 면회로 가도 안 비주드마.
최승호 : 면회는 몇 번 갔습니까?
도종열 : 한 번 갔다. 함 분 가고 또 살릴라고 머 돈도 씨마 나온다 캐가 돈도 씨고 해사서 머. 한 달 동안에 쫓아댕기메 하미 소 한 마리 내삐리고. 소 한 마리 팔아가 사람 조노이 주도, 내 주도 안 하고.
최승호 : 아 소값을 줬는데도.
도종열 : 언날 한 달 있다가 가뿌고 없어. 어데 갔노 카이까네 안 갈쳐주. 저 희춘이가 희춘 씨가 거 어데 갔는고 알라꼬 오만 궁리를 다 내도 안 갈준다캐. 그래 그 박희춘 그 사람이 돌아가ㅤㅅㅣㅆ는가 우엣는고. 오새는 연락이 없어.

- ‘도종열 구술증언’ 중에서


이수연 : 파출소에 있다가 파출소 잡혀, 새벽에 다 잡혀갔잖아요, 마을 사람들이. 그거 그 원정지에 지서라는 데가 있어요. 거기 잡혀 있다가 이제 추럭을 타고 운문 사람 뭐 동창 사람 이런 사람들 다 가는데 우리 아버지가 거기 탔더래요. 거 우리 저기 이준호 씨가 봤을 때. 타고 가는 걸 봤고. 그런 이제 곰티재에 총소리가 났다고, 클 났다고 거기 뭔일 났다고 그래가 이제 잡혀갔으니까 우리 엄마는 나를 업고 곰티재 가는데 순경들이 총 개머리판으로 거 가면 죽인다고 막 개머리판으로 들이댔는데 우리 엄마가 나도 죽이라고, 이런 상황에서 살마 뭐 하냐고 같이 죽여 달라고 막 그러니까 순경들이 거 저기 그냥 말을 못 하고 가도록 놔뒀대요. 그래 거 가가 이제 이준호 씨하고 돌아가신 우리 오빠 뭐 이런 사람 그 자리에서 엮있는 그 손목 엮있는 거 풀구 그 자리 뭐 얼마 안 떨어ㅤㅈㅣㅆ는데 거기서 뭐 저 무, 그거 산소 대충 맨들어 가지고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중략)
최승호 : 그러면 이제 이 김종재, 이일희, 운산댁, 진주아지매, 이재화, 아버지 이정복. 이런 사람들이 이제 다 돌아가셨네 그지예?
이수연 : 예. 그렇죠, 그렇죠. 예예예.
최승호 : 같은 날. 같이 6월 24일날 다 제사 지냅니까?
이수연 : 그렇죠, 그렇죠. 제사가 그때 막 여럿 집이 지내가지고 우리가 어릴 때 그 집 딸하고 우리 딸. 어떻게 우리 아버지하고 너거 아버지하고 제사가 같은 날이다 그지? 막 이러고. 그때 여름에….
최승호 : 이유를 몰랐구나.
이수연 : 그 이유를 모르니까 뭐 그때는 못 살아가 쌀도 제사 때 쌀이 없어가 그리고 우리 엄마는 우리 아버지 제사 때 그리 욕을 하더라고. 그래 우리 아버지가 억수로 나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최승호 : 아버지 좋은 사람이었어요. 세상을 바꿀려고 했던 사람인데 억울하게 죽은 거죠. 똑똑해서 그래요, 아버지가.
이수연 : 그런데 그전에 언젠가 내가 30대쯤 돼가 그 손에 엮여서 그 총부리 앞에서 그 이 사람이 생각해 보세요. 그 죽음 앞에서. 그 사람이 한창 30대 초반인데 그 마음이 어떻겠는지 그거 생각하면은 내가 통곡을 했다고 한날 그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우리 엄마는 뭐….

- ‘이수연 전화녹취록(이인백 증언의 보조 구술)’ 중에서

최승호 : 그때 당시 굴에서 살아나온 생존자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김무술 : 그때 저의 부친 친구분 김 우 자 술 자 쓰시는 분이 동굴에서 집까지 직선거리로 이삼백 미터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 거기 사실 때 그분 밭에서 호박을 뜯어 먹다가, 그 속에 갇혀 있다가 어떻게 기어 나와가지고, 수직굴에서 수핑굴로 연결돼 있으니까 떨어지다가 수평굴에 걸려 거기로 나와가지고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호박, 생호박을 먹다가 엎어져서 죽어 있더랍니다. 그런 분도 발견했고. 또 어떤 분들은 하대에 계시는 분이라고 하는데 살아가지고 지금은 다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살아 나오신 분들도 있답니다. 억울한 분들이 다시 살아나와가지고 사살된 분들도 있답니다.
최승호 : 수평굴과 수직굴이 다 연결돼 있네요?
김무술 : 수직굴하고 수평굴하고 다…. 수직굴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우리가 어릴 때 돌을 떨어뜨리면 밀에서 물소리가 나는 게 한참 있다가 났다고요. 굉장히 깊다는 얘기지요. 그 위치가 일제시대 때 코발트를 캐내던 중앙자리랍니다.

- ‘김무술 구술증언’ 중에서

  목차


발간사/나정태
증언집 발간에 부쳐/최승호
유족의 기억과 목소리/최범순

3차 구술(2022년 10월~11월)

이태옥 구술증언
정시종 구술증언(2차)
이대우 구술증언(2차)
도종열 구술증언
이인백 구술증언
이수연 전화녹취록

4차 구술(2024년 2월~)

권춘희 구술증언
남효덕 구술증언(2차)
문태주 구술증언(2차)
이영대 구술증언
최주홍 구술증언

활동가 및 목격자 구술(2007년~2022년)

강창덕 구술증언
김무술 구술증언
박효열 구술증언
안경치·유동하 구술증언
최재림 구술증언
김주영 구술증언

진실규명 작업일지(1950년~2023년)

  회원리뷰

리뷰쓰기

    이 분야의 신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