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출애굽의 역사성과 연대에 관해 견해를 달리하는 학자 다섯 명이 먼저 자신의 견해를 설명하고, 다른 학자들이 그 견해에 대해 비판한 후 원래 기고한 학자가 재답변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민족적 정체성과 사회 윤리의 토대가 되는 사건인 출애굽의 역사성과 연대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야 할 책이다.
출판사 리뷰
구약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하나를 꼽는다면 그것은 단연 출애굽 사건일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이 야웨 한 분만 섬기고, 안식일을 지키고, 나그네를 학대하지 않아야 하는 근거는 바로 야웨 하나님이 그들을 이집트에서의 노예 상태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이처럼 출애굽은 그야말로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사회 윤리의 핵심 토대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은 바빌로니아 유배 생활을 끝내고 팔레스타인으로 되돌아가는 회복과 구원의 패러다임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가장 강력한 심상이다. 그러나 특별히 20세기 이후 많은 학자가 나일 삼각주와 시나이반도에서 성경에 묘사된 대규모 출애굽 사건이 일어났음을 암시하는 고고학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며 출애굽의 역사성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 구약신학계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의 편집자는 대체로 복음주의의 테두리 안에 속하는 학자들을 모아 출애굽의 역사성과 연대 및 신학적 함의에 관해 학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게 한다. 이 학자들은 대체로 출애굽의 역사성 자체는 인정하되, 그 사건이 일어난 연대와 양상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한다. 즉 기원전 제2 천년기의 어느 때 훗날 이스라엘이 되는 집단이 이집트에 거주했고, 그들이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땅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비록 그 시기와 규모, 방법 등이 구약성경에 기록된 바와 다를지라도 말이다.
이 책의 기고자들의 입장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먼저 스콧 스트리플링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 되는 해이자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4년째에 성전 건축을 시작했다는 기록의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며 출애굽이 기원전 15세기에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는 고대 문서와 고고학 자료 역시 이른 시기의 출애굽, 즉 기원전 15세기의 출애굽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출애굽의 규모에 관해서는 구약성경에서 후에 “1,000”을 의미하게 된 “엘레프”라는 단어가 “군대의 단위”를 의미할 수 있다면서 한 단위가 1,000명이 아니라 10명 내외로 이뤄졌다면 출애굽의 규모는 민수기에 기록된 장정 60만 명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라고 추론하며, 이 적은 숫자는 당시의 이집트와 가나안 땅의 인구, 대규모 정착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점 등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이 책의 기고자 모두 동의한다.
제임스 K. 호프마이어는 열왕기상에 기록된 480년이라는 기간을 문자적으로 읽어서는 안 되며 그것은 아시리아 학자들이 말하는, “먼 과거에 관련된 근사치”인 디스츠안가베일 수 있다며 출애굽 시기를 기원전 13세기로 추정한다. 그는 스콧 스트리플링이 이른 출애굽의 증거로 제시하는 증거들에 대한 다른 해석을 토대로 오히려 그 증거들이 늦은 출애굽, 즉 기원전 13세기의 출애굽을 뒷받침한다고 주장한다.
피터 파인만은 출애굽의 연대에 관해서는 대체로 제임스 K. 호프마이어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출애굽의 주체에 관해 한때 이집트를 지배했던 힉소스인들이 출애굽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며, 게리 A. 렌즈버그는 출애굽이 기원전 12세기에 일어났다고 본다.
위 기고자들과 달리 로널드 헨델은 이집트에 거주하던 가나안 출신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에 거주하던 가나안인들도 모두 이집트의 노예였다고 주장하면서 이집트에서 탈출한 소규모 집단과 가나안 땅에 있던 일부 집단이 노예로서 이집트인들에게 압제를 당했던 공통의 문화적 기억을 토대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으로 통합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일반 교회 현장에서 강조하는 출애굽기나 오경 또는 구약성경의 내용 자체를 다루는 부분은 많지 않은 반면, 이집트를 포함한 고대 근동의 역사와 문화, 고고학, 금석학 등에 관한 학문적 내용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이런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다소 벅찰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건이 발생한 시기로부터 오래 뒤에 기록된 성경 자체로부터, 성경이 기록되고 나서 오래 지난 오늘날 과거에 정확히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재구성하기란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일 것이다. 이 책의 기고자들은 그런 문제에 대해 어떻게 역사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지,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는지에 관한 좋은 모범을 보여준다.
출애굽의 역사적 실체 재구성이나 특정 주제에 관해 의견을 달리하는 학자들의 논쟁 방식에 관해 관심이 있는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이 주제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를 실제로 접하는 묘미와 함께 기독교 신앙의 한 근간이 되는 출애굽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관해 지평이 크게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출애굽 사건이 성경의 여러 곳에 등장하고 3대 주요 종교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함에도 질문들이 넘쳐난다. 그 사건이 실제로 오경에 기록된 대로 일어났는가? 그 사건이 일어나기는 한 것인가? 그 사건이 일어났다면, 언제 일어났는가? 파라오는 누구였는가? 그것은 여러 세대에 걸쳐 다시 이야기되는 가운데 윤색된 위대한 이야기에 불과한가? 그것은 단지 구원에 대한 은유인가? 그렇다면, 그것이 역사적 사건인지 또는 모세가 실제로 존재했는지가 정말 중요한가? 출애굽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책에 대한 내 주된 목표는 독자들에게 고대 이스라엘의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과 관련이 있는 다양한 데이터를 강조하고 논의하는, 출애굽에 대한 정교한 관점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는 독자들이 주제의 복잡성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이 책을 통해 출애굽,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를 구성하는 텍스트들, 출애굽의 잠재적 역사성, 그것의 연대기에 관해 좀 더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의 편집자로서 나는 우리 기고자들이 직접 자기 생각을 말하도록 허용하면서, 때로는 토론이 좀 더 격렬해지더라도 각 관점을 공평하고 관대하게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_서론
창세기에 수록된 조상 내러티브는 요셉이 고대 세계의 초강대국 이집트에서 제2인자가 되었다고 알려준다. 요셉은 이집트의 고관(최고 행정관)으로 일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이집트의 나일 삼각주에 있는 고센(Goshen)이라는 좋은 땅에 자기 가족을 정착시켰다. 그러나 정치적 풍토가 바뀌자 야곱의 자손은 노예 상태로 전락했다. 여러 성경 구절이 이스라엘의 노예 생활에서의 해방이 기원전 15세기에 일어났음을 확증한다. 이 인용구들에는 열왕기상 6:1, 사사기 11:26, 역대상 6:33-37, 에스겔 40:1, 사도행전 7:29-30이 포함된다. 종합해보면, 이 구절들의 무게는 해석의 저울이 결정적으로 이른 연대 쪽으로 기울어지게 한다.
고고학적 증거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이른 출애굽 연대에 대한 성경 외부의 증거를 고려해 보자. 성경 외부의 증거도 성경의 증거와 마찬가지로 출애굽이 일어났다는 사실(역사성)뿐만 아니라 출애굽이 일어난 시기(연대)도 제시한다. 다양한 고대 자료와 유적지는 출애굽의 실제성과 시기를 입증한다.
출애굽 사건이 언제 발생했든 이스라엘의 인구 규모는 많은 학자를 당황하게 한다. 40년 광야 생활의 시작과 끝에 인구조사가 시행되었다(민 1:45-46; 26:51). 두 인구조사 모두 전사의 수가 60만 명이 넘는다고 기록했는데, 전사들은 아마 20세에서 40세에 이르는 남성들이었을 것이다. 히브리어 단어 엘레프(ʾelep, 복수는 ʾălāpim)의 번역 오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단어는 확실히 훗날 성경의 역사에서 “1,000”이라는 의미를 지녔지만 그 단어가 후기 청동기 시대에 같은 의미를 지녔다면, 수백만 명이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했을 것이다. 신명기 7:7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라고 말한다. 이 말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거주하고 있던 민족들보다 인구가 적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후기 청동기 시대에 가나안 원주민 전체 인구가 30만 명을 넘었다고 주장하는 고고학자는 없다. 아마르나 서판이 이를 입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명백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해결 방법은 엘레프/알라핌(ʾelep/ʾălāpim)의 의미 범위에 놓여 있다. 히브리어 어휘의 수는 현대 어휘의 수에 비해 매우 적었고, 따라서 단어들에 종종 많은 의미가 있었다. 후기 청동기 시대 때 엘레프는 “소대”(platoon) 또는 “전투 단위”(fighting unit)를 의미했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 부대들에 각각 남자들 10명이 있었다면 이스라엘 군대에는 남성이 6천 명 정도 있었을 것이고, 전체 인구는 약 4만 명에 달했을 것이다.
_1장 기원전 15세기(이른 연대) 출애굽 관점
내가 이 기고문에서 여기서 취한 접근법은 히브리 성경을 “고대 자료를 비평적으로 다루되 그것을 경멸하지 말고 다루라”라는 고(故) 윌리엄 할로(William Hallo)의 의견을 따라서 고대 자료를 다룰 때처럼 다루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고대 텍스트—히브리어, 이집트어, 바빌로니아어, 아시리아어—를 해석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나는 할로가 성경 텍스트의 맥락을 고려하여 읽으라고 한 권고를 받아들인다. 이 읽기는 히브리어 내러티브의 배경—문화, 역사, 언어, 지리, 환경, 종교, 이데올로기—을 비춰주는, 상응하는 고대 근동 텍스트를 참조하여 텍스트를 읽는 것이다.
히브리인들이 왕실 건축 프로젝트를 위해 벽돌을 만드는 강제 노동에 종사했다는 사실은 확실히 이집트에서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노역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출 1:8-14; 2:23-24; 3:7; 5:1-23). 기원전 15세기 서아시아와 수단으로의 군사 원정 때부터 전쟁 포로들이 국가의 노예로서 이집트로 끌려왔고, 전사들 개개인은 포로로 잡힌 자들을 자기의 개인 노예로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됨으로써 보상을 받았다. 레크미레의 무덤(기원전 1450-1400년경)에 그려져 있는 유명한 장면은 레반트와 아프리카 출신의 전쟁 포로들이 카르나크의 아크 메누 신전(Akh-menu Temple)을 건설하기 위해 벽돌을 만들고 운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 위에 쓰인 글은 왕이 그의 원정 중에 취한 “약탈품” 가운데 벽돌 만드는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마지막 연대기적 자료는 메르넵타의 유명한 석비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이다. 람세스 2세의 아들이자 후계자는 늦어도 그의 재위 5년(기원전 1208년경) 이전에 가나안 군사 원정을 시작했는데, 이는 메르넵타가 표적으로 삼을 만큼 충분히 많은 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부 레반트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피람세스의 건설이 세티 1세 때 시작되어 람세스 2세에 의해 완공되었다는 점(약 기원전 1294년과 1260년)과 메르넵타의 아시아 원정이 기원전 1208년경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기원전 1270-1240년이 출애굽의 타당한 시기로 보인다.
_2장 기원전 13세기(늦은 연대) 출애굽 관점
작가 소개
지은이 : 제임스 K. 호프마이어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구약학과 고대 근동 역사 및 고고학 명예교수다. 그는 『이집트 안의 이스라엘』(Israel in Egypt) 등 출애굽의 역사성을 지지하는 많은 논문과 책을 저술한 이집트학 학자이자 고고학자다. 그는 또한 시나이 북부에 있는 텔 엘 보르그의 발굴 책임자였다.
지은이 : 로널드 헨델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히브리 성경과 유대학 분야 노마 앤 샘 대비 재단 교수(Norma and Sam Dabby Professor)다. 그는 『히브리 성경: 비평판』(The Hebrew Bible: A Critical Edition), 『창세기: 전기』(The Book of Genesis: A Biography), 『히브리 성경 신판을 향한 발걸음』(Steps to a New Edition of the Hebrew Bible) 등 히브리 성경에 관한 많은 책과 논문을 저술 또는 편집했다. 그는 기억과 그것이 문화, 역사, 히브리 성경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하여 인정받는 전문가다.
지은이 : 스콧 스트리플링
텍사스 케이티에 있는 성서 신학교의 학장으로 재직 중이며, 키르베트 엘 마카티르와 실로에서의 성서 연구학회 발굴 책임자다. 그는 요르단과 예루살렘에서도 발굴 작업을 했으며, 『고고학자의 삽과 진실』(The Trowel and the Truth)의 저자다.
지은이 : 게리 A. 렌즈버그
럿거스 대학교(Rutgers University) 유대사 분야 블랑쉬 앤 어빙 로리 재단(Blanche and Irving Laurie) 석좌교수이며, 히브리어와 성경에 관한 많은 책과 논문을 썼다. 그의 최근에 『성경은 어떻게 기록되었는가?』(How the Bible Is Written)를 저술했으며,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지 않았느냐?』(Did I Not Bring Israel out of Egypt?)를 공동 편집했다. 그는 출애굽 연대를 좀 더 전통적인 견해인 늦은 연대보다 대략 1세기 뒤인 람세스 3세의 통치 기간(기원전 1186-1155년경)으로 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주창(主唱)했다.
지은이 : 피터 파인만
역사·고고학·교육 연구소(Institute of History, Archaeology, and Education)의 창립자이자 소장이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역사학 학사학위(B.A.)를 받았고 뉴욕 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M.Ed.)와 MBA를 받았으며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Ed.D.)를 받았다. 그는 히브리 성경의 작성, 자료비평, 성경의 역사를 분석한 『예루살렘 왕좌 게임』(Jerusalem Throne Games)의 저자다.
목차
편집자・기고자 소개
약어
서론 출애굽: 자료, 방법론, 학문 _ 마크 D. 얀젠
1장 : 기원전 15세기(이른 연대) 출애굽 관점: 스콧 스트리플링
스콧 스트리플링에 대한 답변
재답변
2장 : 기원전 13세기(늦은 연대) 출애굽 관점: 제임스 K. 호프마이어
제임스 K. 호프마이어에 대한 답변
재답변
3장 : 기원전 13세기에 힉소스/레위인이 주도한 출애굽 관점: 피터 파인만
피터 파인만에 대한 답변
재답변
4장 : 기원전 12세기 출애굽 관점: 게리 A. 렌즈버그
게리 A. 렌즈버그에 대한 답변
재답변 378
5장 : 문화적 기억으로서의 출애굽 관점: 로널드 헨델
로널드 헨델에 대한 답변
재답변
결론 _ 마크 D. 얀젠
성구 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