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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제주 근대건축 산책
제주만의 이야기가 깃든 근대 유산을 찾아서
루아크 | 부모님 | 2024.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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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근대건축을 통해 바라본 제주의 어제와 오늘. 일제강점기에서부터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1960~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제주에는 수많은 근대건축물이 들어섰다. 이제는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하나 둘 사라지고 있지만 이들 건축물은 당시 제주도민의 생각과 제주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중한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이 책 <제주 근대건축 산책>은 제주에 남아 있는, 혹은 철거되어 사라진 근대건축물의 자취를 찬찬히 살피면서 그 안에 담긴 제주만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한국에서 이른바 서양식 유인등대有人燈臺가 처음 건설된 것은 대한제국의 초청 형식으로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기사技師 이시바시 아야히코石橋絢彦가 건축한 인천 팔미도등대(1903년)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침략의 유산이지만 1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우리에게 소중한 문화재로 변모한 이들 등대는 대부분 콘크리트조였지만 목조, 석조, 벽돌조, 철제구조물로 된 등대도 전해진다. 등대는 고유의 기능과 목적을 위해 보통 지대가 높은 벼랑이나 곶, 또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의 가장 높은 지대에 들어섰다. 아울러 염분이나 거센 파도에도 버텨내야 했기에 당시 건축 여건이나 기술 수준을 고려했을 때 최고 수준의 기술이 집약된 건축물이었다. 팔미도등대를 건축한 이시바시가 정규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으로 유학해 각국의 등대를 견학한 뒤 일본 등대 건설에 공헌했던 점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제주 우도등대는 1905년 목재를 이용해 약 한 달 만에 완공되었는데, 기둥을 세워 등불을 달았던 등간燈竿이 먼저 건축되었다. 서둘러 목조 등간을 완공해야 했던 것은 러일전쟁(1904~1905년)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적 목적 때문이었다._1장 근대 등대의 등장과 도대불
군사요충지였던 알뜨르 지역에 1926년부터 약 20만 평 규모의 비행장이 들어섰다. 중일전쟁이 끝난 뒤에는 오무라大村 해군 항공기지가 이곳으로 이동했는데, 군인 2500명이 주둔했고 25기의 전투기가 배치되었다. 이후 1937년까지 알뜨르비행장은 약 40만 평으로 확대되었다. 1937년 8월 이후에는 중국 남경을 본격적으로 폭격하기 위해 중간 기착지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그 역할이 1937년 11월 상해 인근으로 옮겨가면서 알뜨르비행장은 훈련용 비행장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그러다 패색이 짙어가던 1944년에 접어들면서는 이른바 결7호작전에 따라 비행장과 그 주변이 대대적인 방어를 위한 요새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1944년에는 약 66만 평까지 부지가 확장되었고 격납고도 38기로 늘리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와 동시에 송악산 해안가에 특공기지가 건설되었고, 송악산 능선과 산방산, 단산, 수월봉으로 이어지는 동굴진지도 구축되었다. 본토 방어를 위해 확장된 알뜨르비행장의 규모는 일본 해군항공본부가 작성한 ‘항공기지일람 별지자료’에 잘 나와 있다. 이 자료에는 격납고 위치와 수, 유도로, 지하벙커 지휘소, 관제소, 연료 저장고만이 아니라 섯알오름과 셋알오름의 고사포진지 그리고 항공 관련 각종 지원시설의 위치까지 정확히 표시되어 있다._3장 제주의 전략적 중요성과 군사기지화
한국전쟁 초기 낙동강을 중심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긴박한 상황에서 전선에 보낼 군인이 더 필요했다. 이에 육군은 1950년 8월 14일 대구의 제25연대를 모체로 제1훈련소를 창설했다. 그런데 1951년 1・4후퇴로 전세가 또다시 급박하게 돌아가자 1월 21일 제1훈련소를 모슬포로 이전한다. 당시 모슬포에는 해방 이후 창설된 국경경비대인 제9연대가 주둔 중이었다. 1951년 11월에는 논산에 제2훈련소를 창설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연무대鍊武臺라는 휘호를 부여하기도 했다. 당시 육군은 거제도의 제3훈련소를 비롯해 제7훈련소까지 창설해 운영했는데, 한국전쟁이 끝난 뒤에는 제2훈련소를 제외한 다른 훈련소는 모두 폐쇄했다. 논산의 제2훈련소는 1999년 2월 육군훈련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모슬포 제9연대 자리에 제1훈련소가 설치되면서 야전병원인 육군 98병원과 공군사관학교도 함께 이전되었다. 제1훈련소는 약 10만 명을 수용할 정도로 그 규모가 상당했다고 한다. _5장 한국전쟁이 남긴 군사전적지

  작가 소개

지은이 : 김태일
동아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에서 석ㆍ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일본 효고현 '장수사회연구소' 연구원, 경남기업 실버사업부 과정을 거쳐 제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분야는 고령자시설계획이며 저출산 고령사회에 대응가능한 지역사회기반의 주택과 시설계획과 지역계획적 접근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다. 또한 거점대학으로서의 제주대학교 연구자로서 제주의 특별함을 땅의 가치, 풍경과 흔적, 기억의 가치에 두고 도시건축과의 공존에 대해서도 탐색해 오고 있으며, 사회적 활동을 통해 대중과의 공감ㆍ공유에도 노력해오고 있다. 주요저서로는 《제주건축의 맥》, 《고령화사회의 주거공간학》, 《제주도시건축이야기》, 《제주 속 건축》, 《제주근대건축산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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