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파스칼의 《팡세》는 신 없는 인간의 비참함을 논하고 이성과 신앙의 본질을 탐구한 인류의 철학적 유산이다. 17세기 프랑스의 과학자이자 수학자, 철학자였던 파스칼은 서른한 살이던 1654년, ‘불의 밤(Night of Fire)'이라는 신비 체험을 계기로 기독교로 회심했다. 이후 그는 당대의 무신론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팡세》를 기획했으나, 900여 개의 단상과 메모만을 남긴 채 생을 마감했다. 《팡세》는 이처럼 방대한 양의 짧은 메모로 이루어진 미완의 저작이지만, 그 속에 담긴 번뜩이는 통찰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인간은 왜 티끌을 핥는가?》는 노터데임 대학교의 철학교수를 역임하고 신학과 철학의 접목에 오랜 관심을 가져온 저자가, 《팡세》의 내용 중 ‘신, 불멸, 인생의 의미’에 해당되는 내용을 발췌하여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게 재구성한 저서다. 저자는 위트 있고 대중적인 필치로 삶의 의미란 티끌과 같은 현세적인 가치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으며, 무한하고 절대적인 신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미완의 《팡세》를 완성하려는 현대적 시도로서, G. K. 체스터턴과 C. S. 루이스의 계보를 잇는 변신론 및 기독교 변증론의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출판사 리뷰
하찮은 티끌에 연연하는 인간은 과연 삶의 공허를 피할 수 있을까?
어둠 속을 헤매는 필멸자들을 위한 《팡세》 안내서
모든 프랑스인은 데카르트 학도나 파스칼 학도로 태어나거나 적어도 아주 어려서부터 둘 중 하나가 된다. - 앨런 블룸(Allan Bloom)
천재 과학자는 왜 종교에 귀의했을까?
확률론을 창시한 수학자, 최초의 계산기를 만든 과학자이자 발명가, 실존주의의 선구자가 된 사상가. 사람들이 블레즈 파스칼이라는 이름에 떠올리는 칭호들이다. 그는 흔히 수학자나 과학자로 더 잘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철학이나 신학 쪽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파스칼은 서른한 살이던 1654년 11월 23일 ‘불의 밤(Night of Fire)’이라고 불리는 신비 체험을 통해 뜨거운 감격과 환희 속에서 신을 만났고, 이후 기독교로 회심했다.
‘수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될 뻔한 사람’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파스칼이 종교에 귀의한 까닭은 무엇일까? 철두철미한 과학자였던 파스칼마저도 논리와 증거, 이성만으로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일까?
“죄인은 티끌을 핥는다. 즉 세속적인 쾌락을 사랑한다.”
파스칼은 오만한 자기애와 돈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비롯된 성마름으로 삶에서 적지 않은 문제를 빚어왔다. 그는 종종 자신이 누리던 유명세에 어울리는 대우를 당연하게 기대했으며, 유산을 두고 누이와 말다툼을 벌인 일도 있었다. 이렇듯 파스칼은 숙고하는 철학자의 이미지에 그리 걸맞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자신이 의도했던 삶과 반대되는 온갖 부침을 겪으면서 힘들게 겸손과 사랑의 가치를 배웠다.
티끌을 핥는 모습은 삶이 주는 쾌락과 즐거움을 필사적으로 탐하려고 애쓰는 이미지다. 모든 사람이 쾌락을 즐기고 모든 사람이 즐거운 일을 좋아하므로, 그러한 태도를 무턱대고 비난할 수는 없다. 파스칼 역시 행복을 위해 즐거움이나 오락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는 분명히 자신과 삶을 ‘사랑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위락, 즉 ‘diversion’이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나듯이, 우리가 현세의 즐거움을 삶의 고통과 공허에서 도망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한 행복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초월하는 영원한 가치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영원성은 오직 신이 부여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파스칼이 《팡세》에서 말하는 삶의 의미란, 무한하고 절대적인 신을 마주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다.
논리와 증거, 이성만으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파스칼은 어떤 이유로 신과 불멸이 삶의 의미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불멸이 없다면 나는 바다에 몸을 던지리라”라고 했던 시인 테니슨이나, “내세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이 삶은 아침에 옷을 주워 입을 가치도 없다”라고 했던 비스마르크처럼, 영원히 살고 싶은 인간의 열망을 표현한 것이었을까? 파스칼은 불멸성에 대한 추구가 단순히 사후 세계의 존재를 갈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현 생애의 작은 것들에 훨씬 더 큰 가치를 부여하여 삶의 동력을 제공받기 위한 태도이다. 파스칼은 삶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할 때는, 단순히 이성적인 추론만이 방법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통제 바깥에 있는 탄생, 삶, 고통, 죽음…. 우리의 이성으로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없는 사태들에 대하여 오로지 이론적 증명에만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은 자세이다. 그에 따르면 이성의 마지막 단계는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 무한히 많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188)
신은 왜 숨어 있는가? 신은 왜 세상 앞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가?
무신론자들이 기독교 신자들에게 흔히 하는 질문이 있다. “신이 있다면 왜 그렇게 꼭꼭 숨어 있는 거죠?”, “우리를 그렇게 염려하는 창조주가 있다면 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걸까요?” 저자는 이와 같은 질문에 파스칼의 논리를 빌려 대답한다. 만약 신이 그를 알고 사랑할 준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낸다면, 그런 계시는 축복이라기보다 저주라는 것이다.
모호함이 전혀 없다면 인간은 자기의 타락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빛이 전혀 없다면 인간은 치유를 바라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신이 얼마간은 숨어 있고 얼마간은 드러나 있는 것이 옳을 뿐만 아니라 유익하다. 자기의 비참함은 알지 못하고 신을 아는 것이나, 신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비참함을 아는 것은 똑같이 위험하기 때문이다.(446)
이처럼 저자는 젊은 천재 파스칼을 고뇌하게 한 질문들을 하나씩 검토하면서, 《팡세》의 메모 속에 보물처럼 숨겨진 답을 찾아 나간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 앞의 비통한 실존은, 비단 파스칼뿐만이 아니라 부처, 톨스토이, 카뮈 등 동서고금의 현자들을 괴롭혔고 오늘날 우리 모두를 다시금 방황하게 만드는 고민들이다. 신의 존재와 믿음에 대한 파스칼의 통찰이 시대를 거듭하면서도 살아남은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합리적인 이성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알았으며 ‘맹목’을 거부했다. 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둘 다 합리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 이러한 신념에 따라 파스칼은 다음과 같이 적는다. “두 가지 과도한 것: 이성을 배제하는 것과 오로지 이성만을 인정하는 것.”(167)
미완의 고전 《팡세》에서 찾은 인생의 의미
신 없는 인간의 비참함과, 이성과 신앙의 본질을 탐구하며 세기의 고전 반열에 오른 파스칼의 《팡세》는 그가 39세의 나이로 요절하면서 완성되지 못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팡세》는 책을 쓰기 위해 파스칼이 적어놓은 900여 개의 단상과 메모들을 후대의 편집자들이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정리해놓은 것으로, 여러 판본들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높은 명성에 비해서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워, 단순히 기독교 호교론이 담긴 명상록으로만 알려져 있는 실정이다. ‘프랑스 정신의 최고봉’, ‘미완의 성전’, ‘인간의 언어로 번역된 신의 메시지’라고 일컬어지며 인류 사상사의 반석이 되었음에도, 이처럼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는 책은 드물다. 인문고전에 대한 관심이 유행처럼 돌아올 때마다 우리나라에서도 《팡세》를 찾는 독자가 더러 생겨나고는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완독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인간은 왜 티끌을 핥는가?》는 미국의 철학자 토머스 모리스가 《팡세》의 메모 중, ‘신, 불멸, 인생의 의미’에 해당되는 내용을 발췌하여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게 재구성한 저서다. 이 책은 미완의 《팡세》를 현대적으로 다시 쓰려는 시도로서 많은 이들의 공감과 호평을 얻었고, G. K. 체스터턴과 C. S. 루이스에 필적하는 기독교 옹호론의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신학과 철학을 접목시키는 데 관심을 기울여온 저자는, 대중적인 시각과 생생하고 유머러스한 필치로 철학과 문학, 영화 등의 예시를 곁들여 《팡세》의 내용을 한층 풍부하게 풀어낸다. 그동안 《팡세》에 담긴 의미를 지레짐작으로만 알고 있던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파스칼이 《팡세》에 담으려고 한 뜻을 제대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삶에 있는 위락의 힘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아주 간단하다. 우리를 빠져버리게 하는 이런 활동은 다른 수준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주의를 크게 분산시킨다. 우리 문화에서 가장 침투력 있고 위력 있는 위락은 신체적 영역에 있는 활동들이다. 이런 활동들은 우리 시간과 에너지, 관심을 온통 거기에만 쏟게 하고 지적인 성찰과 영적인 노력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러나 지적인 활동 또한 강력하게 주의를 전환시킬 수 있다. 많은 철학자와 이론가는 영적인 현실과 거리를 유지하는 데는 대가들이다. 이들은 지적인 활동에만 빠져 영적인 문제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회피한다.
파스칼이 다룬 주제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이다. 인간의 위대함을 알지 못하고 인간의 비참함을 아는 것은 절망을 낳는다. 우리의 비참함을 깨닫지 못하고 우리의 위대함을 아는 것은 자만심을 높인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신을 명확하게 아는 것은 자만심을 높인다고 파스칼은 믿었다. 신을 믿는 마음으로 우리가 연약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우쭐해지도록 유혹받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지식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든다.
현재의 쾌락은 거짓이다. 그것은 우리를 완벽하게 만족시켜주겠다는 약속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또한 부재한 쾌락은 헛되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쾌락은 집요하고 우리에게 거의 저항하기 어려운 유혹의 노래다. 그러나 파스칼은 그것이 주는 약속은 그저 헛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세상에는 삶을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즐거움이 없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흥분의 꼭대기에 있다가 권태의 골짜기로 떨어져 버리기도 하는 롤러코스터 같다. 아니면 사막을 지나는 지루한 여행길 같아서 간간이 신기루를 만날 때나 무료함을 벗어날 수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토머스 V. 모리스
미국 철학자. 1952년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나 자랐다. 노터데임 대학교에서 15년 동안 철학을 가르쳤고, 우수 교수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다.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월밍턴에 있는 모리스 인간 가치 연구소(Morris Institute for Human Values) 소장이다. 대중적이고 유머러스한 철학적 글쓰기로 유명하며, 신학과 철학의 접목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는 현대 신학철학의 고전적 텍스트로 간주되는 《신의 화신의 논리(The Logic of God Incarnate)》와 《신에 대한 우리의 관념(Our Idea of God)》, 《천재 A반을 위한 Philosophy》, 《해리 포터 철학교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너럴 모터스를 경영한다면》 등이 있다.
목차
서문
1 우리에겐 길잡이가 필요하다
2 무관심의 어리석음
3 위락의 위험
4 삶의 의미
5 회의주의, 증거, 그리고 좋은 삶
6 숨은 신
7 삶의 내기
8 인간이라는 수수께끼
9 진리의 증표
10 신앙과 심성
11 사랑과 삶, 그리고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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