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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나만 알 것 같은 역사
푸른역사 | 부모님 | 202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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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방방곡곡 바위에 새겨진 글씨와 비문에서 역사를 캐내다. 역사를 읽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의 ‘과거’로 읽기, 치세와 처신의 ‘교훈’으로 읽기, 소설?영화 뺨치는 ‘재미’로 읽기. 이 책은 그중 세 번째,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이다. 바위에 새겨진 글씨를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캐냈는데, 두말할 필요가 없다. 무조건 재미있다. ‘교실 안의 역사’에서 만나지 못한 흥미로운 한국사 뒷이야기가 쏟아진다.

  출판사 리뷰

역사 애호가의 궁극을 보여주다
이 책의 지은이는 역사가가 아니다. 정형외과 의사이니 말 그대로 아마추어 역사 애호가일 따름이다. 한데 바위글씨에 꽂혀 온갖 곳을 쏘다닌 것을 바탕으로 《실록》을 비롯한 사료는 물론 개인문집, 신문기사를 뒤져내 이야기를 캐내는 열성과 성취는 애호가 수준을 벗어난다. 이번 첫 책에서는 빠졌지만 그의 답사는 일본까지 걸친다. 여기에 맹견에 쫓기고, 뱀에 놀라고, 잔꾀를 부려 금지된 지역을 가는 등 실감나는 이야기가 버무려져 이 책은 깊이와 재미를 겸비한 수작(秀作)이라기에 손색이 없다.

어쩐지 나만 알 것 같은 이야기
서울 동작동의 국립현충원의 원주인은 중종의 부인인 창빈 안씨였다. 아들 덕흥군이 그녀의 유택을 이곳으로 옮겼는데 덕흥군의 아들 하성군이 왕위(선조)에 오르면서 조선 최고의 명당자리가 되었다. 국립서울현충원이 창빈 묘역에 자리 잡은 한 이유이다. 서울대 또한 ‘주인’은 추사 김정희와 어깨를 나란히 한 자하 신위다. 그의 5대조가 자하동(현 서울대 자리)에 자리를 잡았고, 현 서울대박물관 뒤에는 신위의 고조부 신확의 묘에서 가져온 문인석 한 쌍이 있다. 오늘날 강남의 요지 잠실이 원래 강북이었음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잠실은 잠실도라는 섬이었는데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전에는 가물면 걸어서 넘어갈 수 있었단다. 1914년 행정구역 명도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 잠실리였다.

상식을 뒤엎는 기막힌 이야기
중종반정의 ‘브레인’ 성희안의 묘를 찾은 지은이는 그를 ‘타락한 혁명’의 표본으로 든다. 그를 두고 원대한 꾀에 어둡고 집과 시첩에 사치를 부리는 등 방종하다가 생명을 잃었다고 평한 《실록》에 근거해서다. 선조의 맏아들 임해군은 병사를 모으려 함경도로 가서는 온갖 패악질을 일삼아 오죽했으면 주민들이 감금해 왜장에게 넘겨버렸을까. 위정척사의 대명사 최익현이 새긴 ‘평양화표’에서 “세상은 위대한 명나라의 것…요 임금을 섬기고 공자를 배워서…”란 구절을 보면 절로 한숨을 나오지 않을까. 나라가 흔들리는데 기껏 사대주의라니.

잊고 지내기엔 안타까운 이야기
광해군의 아들 폐세자 이지는 강화도에 위리안치되자 가위와 인두로 땅굴을 파서 탈출했다가 사흘 만에 붙잡히고 이 소식을 들은 이지의 처는 자진했다. 폭군의 아들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수락산 ‘옥류동’에서 되짚어본 사연이다. 조선 2대왕 정종의 둘째 아들 순평군은 40세가 넘도록 한 글자도 모르는 무식꾼이었다. 그의 유언은 “종학(宗學?왕족들을 위한 교육기관)을 영원히 떠나는 것이 크게 기쁘다”였단다. 학습지진아의 한이랄까. 일제강점기의 대지주 조병학은 폐교 위기의 세브란스를 살리기 위해 전 재산을 기부했는데 《친일인명사전》에 실렸다. 일제에 국방헌금을 냈다는 이유인데 ‘친일파 독지가’는 어떻게 봐야 할까.

돌에 새겨 전해지는 장한 이야기
충북 진천군의 ‘옥천병’이란 바위글씨는 숙종 때 영의정을 지낸 최석정이 남긴 것이다. 천재 수학자 오일러에 60여 년 앞서 9차 직교 라틴방진을 구한 빼어난 수학자의 흔적이다. 병자호란 때 척화론을 펼쳐 충절과 절개의 화신으로 꼽힌 김상헌은 전후에 일신의 안녕만 영위했다. 이를 두고 “…국가의 명운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 산성을 빠져나가 멀리 달아나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당시의 일이 대충 안정 되었는데도 끝내 성상을 찾아와 뵙지 않았습니다…”라 통박하는 상소를 올린 유석의 신도비가 경기도 안산시에 아슬아슬하니 서 있다. 조선의 최연소(만14세) 과거급제자 이건창의 영세불망비가 강화도에 있다. 비록 정치적 배려에 힘입어 급제했지만 청렴하고 유능해 조선 후기 암행어사의 대명사로 불린 그의 공덕을 기리는 비이다.

고종 황제의 사진을 처음 찍은 사람은 뜻밖에도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이다. 그는 한때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으로 알려진 명왕성의 존재를 예견했던 유명한 인물이다.

서촌 통인시장 뒤 작은 광장에서 수성동 계곡 방향 골목으로 오른다.…오르다 보면 윤동주 하숙집도 만나고, 한일병합조약 체결에 찬성했던 경술국적 중 한 사람인 윤덕영이 딸을 위해 지어 준 집(현재는 박노수미술관)도 만난다.

을축년 대홍수로 강북이었던 잠실이 강남이 되었다. 잠실은 잠실도라는 섬이었다.…한강의 본류가 흘러와 잠실도를 만나면…잠실도의 위아래로 흐르다가 삼성동에서 다시 만나 하나의 물줄기로 바뀌는 구조였다.…위쪽 지류는 일종의 샛강 같은 느낌이었고 가뭄이 들면 강북에서 걸어서 잠실도로 넘어갈 수 있는 정도였다. 이는 행정구역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1914년 잠실은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 잠실리였다. 즉 잠실은 강북이었던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배승호
부천 역곡역 인근에서 정형외과를 운영한다. 가톨릭 의대를 졸업했다. 서울성모병원에서 임상강사를 마치고 10년 넘게 수술하는 의사로 살았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병원에서 일한 덕에 서울 중심부에 남아 있는 바위 글씨의 세계로 입문했다. 바위에 가지런히 새겨진 글씨와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지도앱에 다녀온 곳과 가봐야 하는 곳을 표시했고, 바쁜 일상 중 짬이 나면 여지없이 짐을 꾸려 출발했다. 답사는 이야기를 캐어 내는 여정이었다. 그 신나는 여정과 바위 글씨에 녹아든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목차

책을 내며

01 물길의 도시 서울 1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이 걸음했던 ‘청린동천’ | 안평대군이 노닐던 ‘청계동천’과 ‘무계동’ | 임정 고문 동농 김가진이 새긴 ‘백운동천’ | 노무현 전 대통령이 되찾아 준 ‘백석동천’

02 물길의 도시 서울 2
겸재 정선도 반한 ‘수성동’ | 잃은 줄 알았다가 찾은 ‘옥류동’ | 유래를 알 수 없는 ‘일세암’과 ‘청와동’ | 주인이 밝혀진 계곡, ‘삼계동’ | 답사가의 보물창고, 홍제천 북쪽 ‘이요동’

03 한강의 이모저모
행호와 행주수위관측소 | 근대 상수도 역사의 출발점, 수도박물관 | 드물게 남은 민간 통행용 돌다리, 강매석교 | 잠실을 ‘강남’으로 만든 을축년 대홍수 기념비 | 제사 효과 없었던 송정동 수신비 | 한강에 잠긴 영혼을 위로하는 ‘한강수사자조혼비’

04 아름다운 수락산, 쓸쓸한 이야기
송시열과 폐세자 이지가 얽힌 수락산 ‘옥류동’ |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렀던 ‘금류동천’ | 사문난적으로 몰린 박세당의 흔적, ‘수락동천’ | 내시 가문 출신 예술가 이병직의 흔적, ‘벽운동천’

05 내 몸 안의 지도가 찾아낸 양주의 바위 글씨
8곳의 바위 글씨가 모인 ‘문장동천’ | 선유동천 금화동문

06 파주 공릉산의 3인 3색
조선의 채무왕 윤택영의 선산, ‘정승산’ | ‘독립유공자’ 민영달의 영세불망비 | ‘친일파’ 독지가 조병학

07 감사 비석 천지, 제주
속俗과 선仙의 경계, 제주 ‘방선문’ | 고래잡이의 슬픈 기억, 서귀포 ‘조난추도지비’ | 재일교포들에게 감사하는 비석들 | ‘객고풍상’을 견딘 제주 출가 해녀 영세불망비 | 국내 유일의 군의관 충혼비

08 두 차례나 왕위를 놓친 월산대군
숙부와 동생에게 밀린 불우한 왕자의 태비 | 월산대군의 흔적, 망원정과 석어당 | 더럽혀진 이름, 월산대군의 부인 박씨

09 그 밥에 그 나물, 반정 주역들
중종반정의 행동대장, 충렬공 박원종 | 중종반정의 ‘브레인’ 성희안 | 연산의 ‘칼’에서 반정 공신이 된 박건

10 선조의 문제아 아들들
갑질에 살인까지, 맏이 임해군 | 큰어머니 납치도 했던 정원군 | 역대급 사이코패스, 순화군

11 믿을 수 있는 송덕비 두 개, 이안눌과 이건창
연산군의 제사를 지낸 명문 사대부 이안눌의 ‘명월동문’ | 엄청난 미사여구 송덕비의 주인공 | 최연소 과거 급제자 이건창의 영세불망비 | 역사서를 엮어 낸 소론 가문

12 덕흥대원군 집안과 현충원
국립현충원의‘ 원주인, ’창빈 안씨 | 아들 잘 둬 영광을 누린 덕흥대원군 | 창산군 이해창과 사찰 간의 소송 해부

13 명필 글씨, 미수 허목에서 추사 김정희까지
송시열의 최대 라이벌, 미수 허목 | 한반도 1세대 래퍼의 풍자 | 서인이 짓고 남인이 쓴 ‘취선암’ | 미수 허목의 사돈이자 친구, 이진무 묘비 | 척화파에 돌직구 날린 유석

14 범상치 않거나 기구했던 왕족들
궁벽한 곳에 잠든 조선 첫 세자 이방석 | 희대의 학습지진아 순평군 이군생 | 말썽쟁이 익녕군 이치와 오리 이원익 | 두 개의 별난 기록을 보유한 예종 | 조선의 초식남 제안대군 | 아비에게 죽임을 당한 왕자 복성군 | 아비에게 미움받은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씨 | 효종이 아꼈던 숙명공주 천장비 | 박복했던 순정효황후와 백운동천

15 비문으로 남은 신하들
은퇴하지 못하는 남자, 조말생 | 부관참시된 연산군의 채홍사 임숭재 | 호란을 대비했던 선각자 최기남 | 공도 많고 과도 많은 귤산 이유원의 ‘가오복지’ | 수장壽藏을 한 귤산 이유원과 ‘필운대’ | 시대착오적인 면암 최익현의 ‘바위 글씨’ | 조선 최초로 폭탄 테러에 당한 민승호

16 드물게 남은 여성의 비문들
조선 유일 여성 신도비 주인공, 남양 홍씨 | 서얼 출신 첫 정경부인 정난정의 묘

17 조선의 수학자들
조선 고유 역법을 마련한 수학자 이순지 | 노론 남병철의 숨길 수 없는 수학 사랑 | 천재 수학자 오일러에 앞서간 최석정의 ‘옥천병’

18 이상한 조합의 친구들, 묘적사 영세기송비
친일파 윤덕영과 ‘등룡동’ | 고종 ‘집사’에서 일제 귀족으로 변신한 이달용 | 두 얼굴의 ‘의로운 남자’ 홍순형

19 친일과 애국의 경계를 넘나든 인물들
‘문제적’ 인물 김홍집 | 사회사업에 진심이었던 김주용 | ‘베푸는 친일파’ 송수천 | 어느 사이비 독립운동가 | 간송 전형필과 보문사 마애불

20 조선 총독이 남긴 바위 글씨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의 이토 히로부미 | 서울시립미술관과 서울역의 사이토 마코토 | 마포 선통물의 우가키 가즈시게 | 연세대학교 내 미나미 지로

21 특별한 보통사람들의 자취
오죽헌의 충노忠奴 행적비 | 양화진 외국인 묘지의 일본식 묘비 | 한국 고아들의 자부慈父, 소다 가이치 | 무속인을 기리는 유일한 비석, ‘무당 김점례 공덕비’ | 이태원 공동묘지의 유관순 | 진정한 친한파 가나야마 마사히데 대사 | 음성 나환자들의 고마움을 새긴 에틴저 마을 비석

22 명필의 흔적과 한글 비석
피를 찍어 쓴 듯한 ‘최지백 정려비’ | 추사 친필을 새긴 조기복 묘비 | 몇 안 되는 조선 시대 한글 비석, 이윤탁 영비

23 바위 글씨는 말이 없지만
묘 따로 신도비 따로 화산군 이연 | 효자동의 유래가 된 조선 명문가의 흔적, ‘운강대’ | 엉뚱한 곳으로 옮겨진 연령군 신도비 | 살아서 기구했고 죽어서 더 기구한 왕족 은언군| 이상도 하다, 장충단공원의 ‘제일강산 태평세계비’

24 어처구니없는 바위 글씨들
명나라 장수를 기리는 ‘양호거사비’ | 어처구니없는 사대의 흔적, ‘조종암’ | 후손들도 잊고 지내는 동암 이발 |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의 400년 싸움, 산송

25 어쩐지 나만 알 것 같은 바위 글씨들
태조 왕건과 화가 임득명이 깃든 ‘향림동’ |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바위 글씨 ‘월암동’ | 서울대학교의 원래 ‘주인’ 자하 신위 | 서초동에 ‘정씨 집성촌’을 일군 정역 | 무인이자 명필 최홍희의 흔적, 관음암과 주먹탑 | 권력의 끝 김재규와 차지철, 이기붕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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