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저자인 송일준PD가 반년 이상 영암에 머무르며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긴 역사 속에서 태어나고 쌓인 흥미진진한 지역의 전설, 역사, 문화, 인물들의 이야기를 특유의 경쾌하고 유려한 필체로 풀어낸 여행서다. 아니 가벼운 여행서라기보단 외려 인문기행서라 해야 더 맞을 것이다. 그만큼 내용이 충실하고 묵직하다.영암은 저자가 태어나 여섯 해를 산 고향이다. 반세기 넘게 서울에서 살며 영영 인연이 없을 줄 알았던 고향 영암과 다시 만난 것은 뜻밖이었다. 37년 방송 생활의 마지막 3년을 영암과 가까운 광주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저자의 광주살이는 막연하게 고향이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하던 영암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온 계기가 되었다. 주말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남도 곳곳을 여행하던 저자는 광주에서 가까운 영암을 수시로 지나다녔다. 회가 거듭될수록 유년시절의 단편적 기억으로만 존재하던 영암이 저자의 가슴 속에서 점점 구체적인 고향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남도답사 0번지 영암』의 책에 담긴 소재는 다양하다. 암흑 속에 있던 고대 일본에 문명의 빛을 전해준 왕인박사, 천년 넘는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사고와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비보풍수의 창시자 도선국사, 고려건국의 공신이자 천문학자인 최지몽, 조선 최고의 연애 시 묏버들가를 쓴 기생 시인 홍랑이 목숨 바쳐 사랑한 고죽 최경창, 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지원하고 교류했던 현씨 가문과 죽림정, 부친을 모함해 죽게 한 원수인 간신 한덕수에게 살아생전 복수하지 못한 것을 죽는 날까지 원통해 했던 상남자 김완 장군, 을미왜변의 영웅 양달사 장군 같은 위대한 인물들의 스토리는 영암이란 지명의 유래가 된 월출산의 정기가 예사롭지 않음을 증거 한다.
출판사 리뷰
월출산의 신령스런 바위가 있는 천년고을 영암 이야기
송일준PD가 들려주는 영암의 흥미진진한 전설과 역사문화
『남도답사 0번지 영암』은 저자인 송일준PD가 반년 이상 영암에 머무르며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긴 역사 속에서 태어나고 쌓인 흥미진진한 지역의 전설, 역사, 문화, 인물들의 이야기를 특유의 경쾌하고 유려한 필체로 풀어낸 여행서다. 아니 가벼운 여행서라기보단 외려 인문기행서라 해야 더 맞을 것이다. 그만큼 내용이 충실하고 묵직하다.
영암은 저자가 태어나 여섯 해를 산 고향이다. 반세기 넘게 서울에서 살며 영영 인연이 없을 줄 알았던 고향 영암과 다시 만난 것은 뜻밖이었다. 37년 방송 생활의 마지막 3년을 영암과 가까운 광주에서 보내게 된 것이다. 저자의 광주살이는 막연하게 고향이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하던 영암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온 계기가 되었다. 주말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남도 곳곳을 여행하던 저자는 광주에서 가까운 영암을 수시로 지나다녔다. 회가 거듭될수록 유년시절의 단편적 기억으로만 존재하던 영암이 저자의 가슴 속에서 점점 구체적인 고향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남도답사 0번지 영암』의 책에 담긴 소재는 다양하다. 암흑 속에 있던 고대 일본에 문명의 빛을 전해준 왕인박사, 천년 넘는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사고와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비보풍수의 창시자 도선국사, 고려건국의 공신이자 천문학자인 최지몽, 조선 최고의 연애 시 묏버들가를 쓴 기생 시인 홍랑이 목숨 바쳐 사랑한 고죽 최경창, 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지원하고 교류했던 현씨 가문과 죽림정, 부친을 모함해 죽게 한 원수인 간신 한덕수에게 살아생전 복수하지 못한 것을 죽는 날까지 원통해 했던 상남자 김완 장군, 을미왜변의 영웅 양달사 장군 같은 위대한 인물들의 스토리는 영암이란 지명의 유래가 된 월출산의 정기가 예사롭지 않음을 증거 한다.
고대, 백제가 지배적인 세력이 된 후에도 상당한 기간 남도를 지배했던 마한 왕국들의 고분과 출토품의 모습은 신기하고 대단하다.
조선시대 임금님 수랏상에 오르던 영암어란, 간척으로 갯벌이 변해 농지가 되기 전 지천으로 나던 낙지 덕에 유명해진 독천낙지거리와 거기서 탄생한 갈낙탕,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최고가로 팔렸던 영암참빗 이야기도 재밌다.
영암이 배출한 인물들을 소개하는 장에서는 지금 전 세계에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김의 최초 양식자 김여익은 영암 사람이다. 당대 최고의 목판화가 김준권, 인생은 미완성 숨어 우는 바람소리 등 300곡이 넘는 유명 가요를 작사ㆍ작곡한 음악가 김지평, 영암아리랑을 불러 영암을 알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가수 하춘화의 고향은 영암이다. 월출산 아래 세워진 기찬랜드의 하춘화관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양의 예술품을 아낌없이 기증한 재일교포 메세나 하정웅의 스토리는 감동적이다. 하정웅의 부모는 일본에 살면서 평생 고향 영암을 그리워했다. 영암에 하정웅이 기증한 작품들로 세운 군립하정웅미술관이 있는 까닭이다.
『남도답사 0번지 영암』엔 또 전작들처럼 저자가 좋아하는 카페와 찻집 이야기도 나온다. 저자가 영암에 내려가 처음 들른 다육식물 카페 화담과 거기서 이어지는 서울 방배동의 인도전문 여행사와 북카페 메종인디아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이 책의 즐거움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송일준PD가 들려주는 신령스런 바위가 있는 천년고을 영암 이야기
“나는 긴 역사 속 흥미진진한 인물들과 이야기에 빠져 반년을 머물렀다”
퇴직 후 저자가 꿈꾸는 제2의 인생은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일 년에 한 권 정도 책을 쓰는 여행 작가의 삶이다.
저자의 첫 번째 결실은 '제주도 한 달 살기'였다. 한 달 간의 제주도 체류와 여행의 경험을 술술 읽히는 구어체와 유머러스한 필체로 엮어낸 '제주도 한 달 살기'는 440페이지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들의 환영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두 번째 결실은 '나주수첩'이란 타이틀로 나온 두 권의 여행서다. 저자는 전주와 함께 전라도란 명칭의 유래가 된 천년고도 나주에서 일 년을 살았다. 구석구석을 발로 뛰며 저자가 길어 올린 나주의 역사 문화 인물들의 이야기는 나주배 말고는 별반 알려진 게 없는 나주를 알리고 나주에 관해 아는 데 크게 도움이 되는 가이드북이다.
세 번째 타이틀을 고민하던 저자가 영암을 선택한 계기가 있었다. 영암군수가 저자에게 영암군 홍보대사를 맡아 달라 요청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마음속에 고향에 대한 사랑에 더해 영암을 널리 알려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남도답사 0번지 영암』은 무려 560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다. 가뜩이나 책이 안 팔리는 시대. 어찌 보면 출판사로선 무모한 모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출판사는 상업적으론 불리할지 모르지만 월출산 말고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영암을 제대로 알리려면 최소한 이 정도 내용은 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저자의 의견을 존중했다.
『남도답사 0번지 영암』책에 담긴 소재는 다양하다. 암흑 속에 있던 고대 일본에 문명의 빛을 전해준 왕인박사, 천년 넘는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사고와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비보풍수의 창시자 도선국사, 고려건국의 공신이자 천문학자인 최지몽, 조선 최고의 연애 시 묏버들가를 쓴 기생 시인 홍랑이 목숨 바쳐 사랑한 고죽 최경창, 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지원하고 교류했던 현씨 가문과 죽림정, 부친을 모함해 죽게 한 원수인 간신 한덕수에게 살아생전 복수하지 못한 것을 죽는 날까지 원통해 했던 상남자 김완 장군, 을미왜변의 영웅 양달사 장군 같은 위대한 인물들의 스토리는 영암이란 지명의 유래가 된 월출산의 정기가 예사롭지 않음을 증거 한다.
고대, 백제가 지배적인 세력이 된 후에도 상당한 기간 남도를 지배했던 마한 왕국들의 고분과 출토품의 모습은 신기하고 대단하다.
조선시대 임금님 수랏상에 오르던 영암어란, 간척으로 갯벌이 변해 농지가 되기 전 지천으로 나던 낙지 덕에 유명해진 독천낙지거리와 거기서 탄생한 갈낙탕,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최고가로 팔렸던 영암참빗 이야기도 재밌다.
영암이 배출한 인물들을 소개하는 장에서는 지금 전 세계에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김의 최초 양식자 김여익은 영암 사람이다. 당대 최고의 목판화가 김준권, 인생은 미완성 숨어 우는 바람소리 등 300곡이 넘는 유명 가요를 작사ㆍ작곡한 음악가 김지평, 영암아리랑을 불러 영암을 알리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가수 하춘화의 고향은 영암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양의 예술품을 아낌없이 기증한 재일교포 메세나 하정웅의 스토리는 감동적이다. 하정웅의 부모는 일본에 살면서 평생 고향 영암을 그리워했다. 영암에 하정웅이 기증한 작품들로 세운 군립하정웅미술관이 있는 까닭이다.
영암에는 지역 이상의 흥미진진한 전설과 역사를 참 많은 고장으로 과연 남도 0번지답다.
ㅡ월출산 아래 있는 호남의 으뜸 명촌 구림마을에서 위대한 세 명의 인물이 태어났다. 고대 일본에 문명의 빛을 전한 왕인박사, 땅과 자연에 대한 우리 민족의 사고에 깊숙이 뿌리내린 비보풍수사상의 창시자 도선국사, 고려의 건국 공신이자 당대 최고의 천문학자 최지몽.
ㅡ통일신라 말. 구림마을 한 처녀는 월출산 빨래터에 떠내려 오는 오이를 먹고 배가 불러 도선국사를 낳았다.
ㅡ조선 최고의 연애 시 묏버들가를 쓴 기생 홍랑은 뛰어난 시인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영암 출신 선비 최경창을 지독히 사랑했다. 관습과 신분을 초월해 기생 시인 홍랑과 인격적으로 교감하고 사랑했던 선비 최경창을 기념하는 고죽관이 구림마을에 있다.
ㅡ임금님께 진상했던 영암어란. 더운 여름날, 학질에 걸린 병자에게 찬물에 만 흰밥에 영암어란 한 조각을 얹어 먹이면 자리를 훌훌 털고 벌떡 일어났다. 영암에는 세계 최고로 맛있는 어란을 만드는 장인이 있다.
ㅡ소년 김완은 원수를 갚기 위해 문신의 꿈을 버리고 무인이 됐다.
부친을 모함해 죽게 한 간신 한덕수를 죽이려 두 번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전쟁 영웅으로 벼슬이 높아졌지만 죽을 때까지 부친의 원수를 갚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겼다. 저자는 호랑이장군 김완보다 효자이자 상남자 김완에게 끌린다.
ㅡ월출산 구정봉은 봉우리 전체가 사람 얼굴을 한 거대한 바위다. 명암대비로 얼굴이 또렷이 드러나는 정오 무렵, 전망대에 앉아 큰 바위 얼굴을 응시하면 순간 신비로운 기운에 사로잡힌다. 영암이 예로부터 기가 센 고장으로 알려진 데는 까닭이 있다.
또한 『남도답사 0번지 영암』엔 또 전작들처럼 저자가 좋아하는 카페와 찻집 이야기도 나온다. 저자가 영암에 내려가 처음 들른 다육식물 카페 화담과 거기서 이어지는 서울 방배동의 인도전문 여행사와 북카페 메종인디아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송일준PD의 세 번째 여행서 『남도답사 0번지 영암』은 두께가 무색하게 술술 즐겁게 금세 읽힌다. 37년의 방송 PD 생활에서 단련된 구어체 덕이 클 것이다. 글에서는 저자의 캐릭터가 그대로 느껴진다. 그것이 재밌다.
제목을 '남도답사 0번지'로 정한 것은 짐작대로 '남도답사 1번지 강진'을 의식해서다. 강진은 그런 수식어로 강진을 소개한 유홍준 교수 덕을 톡톡히 봤다.
영암에는 강진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있다. 안 알려지고 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책을 읽어보면 왜 영암이 ‘남도답사 0번지’로 불려 마땅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영암은 물론 남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실제로 영암은 월출산이고 월출산이 곧 영암이라는 사실은 직접 영암에 와보면 알게 된다. 나주를 거쳐 영암 금정을 지나는 터널을 빠져나오는 순간 혹은 구불구불 옛 여운재 고갯길을 넘어서는 순간 너른 들판 끝에 갑자기 등장하는 거대한 바위산의 위용에 압도당할 것이다.
일주일 이상 차를 몰고 영암 이곳저곳을 탐방하고 있는 중인데, 몇 군데를 제외하고 어디를 가든 월출산이 보인다. 바라보는 앵글이나 거리에 따라 그 모습은 달라질지언정 월출산은 하루 스물네 시간 일년 삼백육십오일 사람들의 시야를 지배한다.
옛날 옛적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너른 평야에 갑툭튀한 거대한 바윗덩어리. 영암은 곧 바위였다.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전국 여기저기 흔히 보는 유의 전설이다. 중국 사람들이 조선땅에 큰 인물이 날 것을 우려해 해꼬지를 했고, 우리 조상들은 그걸 어떤 식으로든 극복했다는.
옛날 월출산 꼭대기에 동석(움직이는 돌)이 셋 있었다. 큰 인물이 날 것을 염려한 중국사람들이 동석을 세게 밀어 전부 떨어뜨려버렸는데, 그중 하나가 스스로 굴러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후 사람들은 이 고장을 영암이라고 불렀다.
- ‘영암, 왜 지명이 신령스런 바위(靈巖)일까’ 중에서
세조실록에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세조 3년인 1457년 4월 16일자 기사다. 임금이 별진상(別進上)을 없애라는 교지를 내렸는데도 전라도 관찰사 송처관이 건어란을 바쳤으니 형조가 조사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세조는 정례 진상이 아닌 별도의 진상품을 마련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지방관아와 백성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
관찰사라는 자가 남들 안 할 때 아부해서 돋보이려고 바친 진상품이 건어란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어떤 생선알로 만든 것인지 분명하진 않지만 그냥 말린 생선알이 아니라 엄청나게 공들여 만든 어란이었을 것이다. 전라도 관찰사였으니 송처관이 바친 어란은 영암어란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란은 숭어 외에도 민어, 청어, 조기알로도 만들었지만 숭어알로 만든 것을 최고로 쳤다. 최태근 명장도 한때 민어알로 어란을 만든 적이 있었지만 그만두었단다. 숭어알에 없는 충이 있었다. 먹어도 지장은 없지만 꺼림칙했다. 현재는 오로지 숭어알로만 만들고 있다.
- ‘임금님께 바친 영암어란’ 중에서
트로트 가수 명예의 전당. 유명 가수들의 사진 액자들로 채워져 있다. 영암 출신으로는 단연 하춘화가 있다. 오랜 무명생활 끝에 ‘땡벌’로 유명해진 가수 강진도 있다. 영암 출신인 걸 처음 알았다.
이발소, 손님들의 리퀘스트를 받아 틀어주던 DJ박스가 있는 다방, 문방구, 극장 매표소 등을 재현해 놓았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는 옛날 주조장 바깥 풍경이다. 검은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순식간에 먼 유년시절로 타임슬립했다.
술심부름이었을까. 아버지가 타던 큰 짐바리 자전거를 타고 가다 2미터는 될 개천 아래로 떨어진 적이 있었다. 안장에 앉으면 페달에 다리가 닿지 않아 안장 아래 프레임 안으로 한 다리를 집어 넣고 비스듬히 매달려 페달을 돌렸다. 그러다 균형이 무너져 추락했는데 개천 옆 돌밭이었다. 다행히 다친 데 하나 없이 멀쩡했다. 가난했지만 즐거웠던 시절이다. 그립다.
극장에서는 서너 명의 관객이 하춘화 다큐를 관람하고 있고 옆에 있는 노래방에선 반짝이 재킷에 모자를 쓰고 제법 가수 흉내를 내며 노래하는 이들이 있다.
- ‘기찬랜드 한국트로트가요센터’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송일준
1957년 영암에서 태어나 나주로 이사했다. 나주초등학교에 입학해 나주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주중학교로 진학했다. 나주중학교 1학년 때 상경, 덕수중학교(야간부), 양정고등학교, 고려대학교(사회학과), 한국외대 통역대학원(한영과)을 졸업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에 능통하다.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을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신문방송학과)에서 언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 『일본의 테레비』 『송일준 PD 제주도 한 달 살기』 『송일준의 나주 수첩 1, 2』, 역서로 『거대 NHK 붕괴』 『미디어리터러시 접근법』 등이 있다.1984년 MBC에 입사, 3년 간의 AD생활을 거쳐 PD로 승격했다. 〈출발 새 아침〉 〈취미여행〉 〈인간시대〉 〈PD수첩〉,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국제협력팀장, 도쿄PD특파원, 외주제작센터장을 맡아 떠나 있기도 했지만, PD수첩과 함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2008년 4월 이명박 정부의 광우병 위험 미국쇠고기수입 무제한 허용 방침을 비판한 방송 후 오랫동안 고초를 겪었다. 보수정권 내내 제작현업에서 쫓겨나 사내 유배생활을 했고, MBC PD협회장, 한국PD연합회장이 되어 언론자유 회복 투쟁의 일선에서 싸웠다.2018년 1월 광주MBC사장으로 부임하여 지역성과 보편성을 겸비한 글로벌 수준의 프로그램 제작, 지자체와 협력하여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는 문화사업을 열정적으로 추진했다. 홍어를 180도 새로운 관점에서 들여다본 11부작 다큐멘터리 〈핑크피쉬〉(연출 백재훈 최선영)로 많은 상을 받았다. 나주정미소를 리모델링한 공연장 ‘난장곡간’, 광주 양림동 펭귄골목 입구의 라디오 오픈스튜디오, 담양에 추진 중인 LP뮤지엄 등으로 지역의 쇠락한 원도심을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한국의 방송에 PD저널리즘이란 용어를 탄생시킨 〈PD수첩〉의 대표적 얼굴 중 한 명으로 〈PD수첩〉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목차
프롤로그
1. 신령스런 바위
영암, 왜 지명이 신령스런 바위靈巖일까 | 융성도서관 | 호동마을 카페 화담 | 길심 씨의 인생 여행 | 카페 화담에서 북카페 메종 인디아로 | 즉석 발열 떡국 | 달뜬 콩국수 | 카페 해올 | 카페 월요 | 갈낙탕의 탄생지 독천 낙지거리 | 임금님께 바친 영암어란 | 궁중 진상품 영암 참빗
2. 큰 바위 얼굴
기찬랜드 한국트로트가요센터 | 덕진 차밭, 월출산을 전망하는 최고의 지점 | 큰 바위 얼굴, 뉴햄프셔주와 영암 | 월출산 등산, 큰바위얼굴을 만나다 | 하늘 아래 첫 부처 길 | 영암과 세도나 | 800살 노거수 엄길리 느티나무 | 작고 예쁜 성당, 영암 신북성당 시종공소 | 영팔정과 아천미술관 | 이안 미술관 | 성재리 포구 | 구림 상대포역사공원의 야간 산책 | 쌍정마을과 리드미컬 프레임 | 송계마을의 왕버들 | 정겨운 광암마을과 찻집 명다헌 | 벼락 맞은 이팝나무와 한옥펜션 월인당 | 모정마을 한 바퀴 | 아름다운 폐교 학신분교 | 라이딩 길에 만난 폐교, 서호북초등학교
3. 영암 사람들
엄길마을 산책 | 복다회마을의 돌미륵 | 영보정 마을, 구림과 더불어 영암을 대표하는 명촌 | 주암마을 아천정과 경회 김영근 선생 | 영암에서 만난 아프리카 마콘데 조각 | 강박사의 보물창고 | 농촌 유토피아 신유토마을 | 김 시식자始植者 영암 사람 김여익 | 영암군립 하정웅미술관 | 목판화가 김준권 | 인생은 미완성 작사가 김지평 | 죽림정, 이순신 장군 영암에 오다 | 도림사 장군당
4. 지독한 사랑
마한시대 고분들과 마한문화공원 | 나주에서 만난 영암 고분 출토품들 | 성기동공원 왕인박사 유적 | 왕인박사, 천자문,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 엄길리 암각매향명 | 도선국사 백의암의 전설 | 월출산이 수리였다?! | 국사암과 국암사 | 을묘왜변의 영웅 양달사 의병장과 장독샘 | 바람벽에 쓴 시 | 양달사 시묘공원 | 상남자 호랑이 장군 김완 | 지독한 사랑, 기생 홍랑과 선비 최경창의 러브 스토리 | 의향 영암, 초등학생들의 동맹휴학과 일본인 교장의 자살 | 구한말 여성 의병 양방매 | 영암 근대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농민들은 못 쓰는 학파 1저수지 | 늦가을 도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