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기후 변화와 기후 재난, 생태계 파괴, 자원 고갈, 전쟁 위기, 에너지 위기, 경제 위기, 기계-기술 문화의 초고도화, 그리고 신흥 파시즘의 급증, 보편적 정의에서 개체적 이기주의로의 퇴화….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지구적 상황이다.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보다 디스토피아적 상상, 정동, 비전이 우세하다. 현재 지구는 '인류의 황혼'을 맞이하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우리는 최후의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최후의 인간이 어떻게 세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믿게 되고, 어떻게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저자는 우리 동시대인을 머리를 잃은 '무두인'(無頭人)으로 가정한다.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비전을 잃었다는 의미다. 그것은 인간이 추구했던 정신과 의지가 지구에서 그 유효성을 상실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머리 없는 기사가 방랑자를 찾아왔을 때 방랑자는 비록 죽음의 공포로 몸을 떨게 되겠지만, 한편으론 비로소 잠들 수 있다는 사실에 기꺼이 기뻐한다. 불면의 꿈, 환각, 가능성의 지도를 끝장내는 것은 모든 방랑자들의 동병상련의 꿈이다. 머리 없는 기사는 미친자, 방랑자, 여행자, 구도자들의 혼이다.
기호는 환경과 혼의 꿰멤, 이어붙임의 수술과정이다. 언어는 최초의 연금술이자 변신술이다. 그 마법을 통해 눈앞의 세계가 비로소 가시화되는 것이다. 이것이 환경이 질서로 전환되는 원리, 대지와 코스모스의 원리다. 그러나 우주는 또 다른 전개의 원리가 있다. 무질서의 원리가 그것이다.
내 눈길을 끈 것은 두족류의 화석들이었다. 그것은 밤하늘에 새겨진 별자리를 닮았다. 우주와 돌과 암모나이트, 지하에 묻혀 있는 해골, 땅 위를 구르는 떨어져 나간 머리들, 무두인(無頭人)의 혼이 자리한 두개골. 나는 두족류가 살아 움직이며 지하 깊은 곳에서 흙을 뒤적이며 숨을 불어넣고 돌을 쪼개거나 쪼개진 돌을 짜 맞춰 쇠를 만들고 있는 상상을 했다. 광부들, 야금술사, 유리 세공사들로서의 두족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던 나머지 끝내 내게 이 머리 없는 기사 이야기를 쓰게 만들었다. 지하에 파묻힌 머리. 머리 없는 기사의 그 머리는 지하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 자신의 터를 만들고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채희철
소설가이자 철학 에세이를 비롯해 인문비평을 쓰고 있다.소설 <풀밭 위의 식사>(1997), <어반 왈츠>(2023)에세이 <눈 밖에 난 철학 귀 속에 든 철학>(2005), <고양이 왕>(2023)을 출간했다.기획한 책으로, 폴 B. 프레시아도의 <대항성 선언>(2022)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