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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영기·국역 영음 세트 (전3권)
학자원 | 부모님 | 20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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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에 살았던 근기 남인계열 관료 문인 청심옹(淸心翁) 이유경(李儒慶, 1748~1818)의 산문집 『영기(瀛記)』와 시집 『영음(瀛吟)』의 국역본과 원문 영인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유경은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조카로 영조⋅정조⋅순조 3대에 걸쳐 46년간 관직에 있으면서 채제공과 함께 근기 남인계열의 중요 인물로 활약하였다. 『영기』와 『영음』은 현전하는 이유경의 유일한 시문집으로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이유경의 삶과 문학세계를 일부 살필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그 가치와 의미가 크다.

  출판사 리뷰

본 『국역 영기』・『국역 영음』 3권 세트는 18세기 후반~19세기 전반에 살았던 근기 남인계열 관료 문인 청심옹(淸心翁) 이유경(李儒慶, 1748~1818)의 산문집 『영기(瀛記)』와 시집 『영음(瀛吟)』의 국역본과 원문 영인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유경은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조카로 영조⋅정조⋅순조 3대에 걸쳐 46년간 관직에 있으면서 채제공과 함께 근기 남인계열의 중요 인물로 활약하였다. 『영기』와 『영음』은 현전하는 이유경의 유일한 시문집으로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이유경의 삶과 문학세계를 일부 살필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그 가치와 의미가 크다. 『영기』에는 이유경이 지은 35편의 작품과 채제공의 글 5편, 성대중의 작품 1편 등 총 41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중 외숙 채제공의 유사인 「번암구야유사(樊巖舅爺遺事)」는 채제공과 관련된 다른 자료에서 볼 수 없는 모습들이 담겨 있어 자료적 가치가 높다. 『영음』은 강릉 부사 재임 시 1805년 윤6월에서 1808년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1809년 여주 목사로 부임하기 전까지 창작한 시 525수가 수록되어 있으며, 19세기 전반 근기 남인계열 관료의 관직 생활과 정치적 현실, 당시 강릉 지역 백성들의 삶의 모습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족을 걱정하는 인간 이유경의 내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국역 영기』와 『국역 영음』, 그리고 원문 영인본은 이유경의 삶과 문학세계를 이해하고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될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유경
1748(영조 23)~1818(순조 18). 본관은 咸平, 자는 而善, 호는 淸心翁이다. 樊巖 蔡濟恭의 조카로 일찍 부모를 여읜 뒤 채제공에게길러졌다. 1772년 정시 병과에 급제하였으며, 한림옥서·참판·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목차

<국역 영기>

01 진사 우【경모】에 대한 애사 31
02 어린 딸의 묘명 37
03 삼종숙 정언공에 대한 제문 39
04 진외조 허공에 대한 제문 41
05 삼종형 병사공에 대한 제문【갑자년1804)】 44
06 잡저 52
07 번암공의 묘소에 올리는 제문【용인김량촌】 55
08 강릉에 부임했을 때의 예장【관찰사임한호】 58
09 임지에 도착하여 올린예장【당시 관찰사가 산삼공물에 대한 감독을 잘못하여 임금께서 특별히 그를 체직시키고 김이교로 교체하였으니 10월이었다.】60
10 임금의 탄신일에 경하하는 전문【정묘년1807)】 62
11 강릉의 삼폐에 대한 상소【정묘년1807)】 64
12 점산기【병인년1806)】 79
13 정언심【달한】에 대한 제문【병진년1808)】 85
14 외숙모 정경부인 안동 권씨에 대한 제문【정미년1787)】 89
15 사돈 이성서에 대한 제문【정사년1797)】 92
16 외숙부 번암 상공에 대한 제문【기미년1799)】 96
17 종형 상사공에 대한 제문【경신년1800)】 102
18 상서 이공회에 대한 제문【경신년1800)】 109
19 백두산 신에 대한 제문【계축년1793) 갑산(甲⼭의 관아에 있었다.】 113
20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경】을 보내는 글【무오년1798)】 116
21 사위 권【대주】에 대한 제문【무진년1808)】 119
22 장모 청송 심씨에 대한 제문【무진년1808)】 124
23 번암 외숙부 유사 128
24 이씨의 부인인 죽은 누이에 대한 번암의 제문 192
25 생질 이유사에 대한 외숙부 번암의 제문 200
26 생질부 진주 유씨에 대한 번암옹의 제문【기해년1779) 12월 27일】 209
27 생질부 유씨에 대한 번암옹의 제문【응당기해년조목위에있어야한다】 212
28 생질 이유사 묘지명 217
29 갑술년 4월에 좌의정 한용귀의 계청으로 인하여 도승지에서 삭직되었 222
다. 그해 음력 12월에 영의정 김재찬이 서용하기를 청하는 초기를 올렸다. 이듬
해 2월 1일에 다시 도승지에 제수된 것에 대하여 대변한 상소
30 큰며느리 연안 이씨에 대한 제문【임신년1812) 10월】 228
31 음죽 현감 척형 이숙승에 대한 제문【을해년1815)】 233
32 우 진사에게 시집간 누이에 대한 제문【병자년1816) 12월】 237
33 천마산에 대한 제문【병오년1786)】 242
34 괘궁정 활쏘기에 대한 기문【갑산(甲⼭에 있다. 계축년(1793)】 245
35 천일정에 대한 명 248
36 천일정에 대한 기문【북청부사성대중이지은것인데아울러수록하였다】 251
37 아경에 발탁된 것을 사양하는 상소【기미년1799) 10월 그믐에 병조 참의에 낙점받았는데 당시 경모궁 255
아헌관에 사람이 없자 상께서 말씀하시길 “이모는옛재상의생질로벼슬한지거의30년이니특별히발탁하라”
하고이어향첩(享帖)을 주신 일이다.】
38 갑산부 천붕산에 있는 자복사의 권선문 258
39 판서 이익운에 대한 제문【정축년1817)】 261
40 둘째 제수 진주 유씨에 대한 제문【무술년1778) 12월】 266
41 홍문관 교리를 사직하는 소 270

<국역 영음3>

01 고기잡이 구경【2수】 53
02 노인 정【지회】를 찾아가서 54
03 현판에 쓰인 시에 차운하다. 55
04 밤에 앉아 56
05 시신을 살피러 대관령을 넘어가며 57
06 첫 귀뚜라미 소리에 58
07 밤에 앉아 진씨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59
08 국화 베개 60
09 정인수의 시에 화운하다.【병서】 61
10 정인수와 경포대에 올라서 운자를 맞춰 함께 짓다. 64
11 정인수가 강원도 감영에 도착하여 길에서 지은 작품을 함께 붙여 편지를 보내주었기에 【심부름꾼이 화운시를 재촉하기에 화운하여 보내다】72
12 다시 서울에서 보여준 시에 차운하다. 76
13 풍호로 돌아온 뒤 선비 신석로가 시를 보내와 화운해달라고 하기에 그의 운자를 따라 지어서 보내 주다. 92
14 부인과 두 딸이 함께 허이대에 갔는데 신선이 하늘로 올라갔다는 곳 옆에 신라와 고려 때의 봉화대가 있었다. 바다를 두루 보니 바람과 파도는 고요하고 구름안개가 자욱한데 마
침 큰고래가 앞에서 반나절 동안 노닐었다. 돌아오는 길에 풍호를 감상하며 읊었다. 94
15 비가 내려 98
16 칠석에 99
17 강적 소리를 듣고【2수】 100
18 바다 그물로 민물고기를 잡았는데 겨우 몇 마리뿐이었다. 장난삼아 읊다. 101
19 창적송행. 상사 박【시혁】이 함흥으로 유람가는 것을 전송하다.【태조의 본궁에 청송과 적송 두 소나무가 있는데 이름을 적룡, 창룡이라고 한다】 102
20 사용하던 말발굽 모양의 구리거울을 서울 집에 두고 와서 며느리에게 잘 갈아서 보내게
하였는데, 돈이 없어 그냥 돌아왔기에 이때의 귀밑머리를 오언의 짧은 시로 장난삼아 읊다.
【종기가 미처 낫지 않았다】104
21 밤에 앉아 105
22 오대산의 상쾌했던 기운을 떠올리며 106
23 공관에서 더위를 피하며 107
24 횡계에서 묵으며【인삼 공물의 폐단에 관한 일로 강원 감영에 갔으니 7월이었다】 108
25 저물녘 출발하며 109
26 운교로 가다가 비를 만나【2수】 110
27 고고행. 독치를 넘으며 111
28 안흥역에서 묵으며【2수】 112
29 길에서 원주 판관 김상목이 남원을 유람할 때 지은 시에 차운하다. 113
30 대화에 들러 114
31 본부의 만경암 승려 덕인【기이한 승려이다】을 시켜 청심대 근처【청심대는 진부령에 있다】에 묏자리를 잡게 하였는데 오가는 길에 직접 자리를 표시한 것을 보고 절구 한 수를 읊어 기록한다. 115
32 대화에 묵으며【과거 시험의 감독관을 맡은 까닭에 횡계로 갔는데 8월이었다】 116
33 오대산에 묵으며 117
34 새벽에 횡계를 떠나며 118
35 고개를 넘으며【수십 리만에 더위와 추위가 판이하니 참으로 기이하다】 119
36 가마꾼을 걱정하며 120
37 정인수의 잡체시 10수에 화답하다.【인명체, 약명체, 연아체】 121
38 옥련환체【2수】 133
39 사위 이유성의 초시합격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134
40 진상할 연어를 잡지 못해 걱정하고 있다가 한 차례 비가 내린 뒤에 아전이 연어 수십 마리를 잡았다고 알리기에 기뻐서 읊다. 135
41 막내 아이가 과거 시험을 보고 돌아와 136
42 밤에 앉아서 희암의 시에 차운하다. 137
43 종제 운거가 오다. 138
44 밤에 앉아서 희암의 시를 차운하다. 이때 막 도사가 금강산을 향해 가다가
와서 묵었다. 139
45 중양절은 늙은 아내의 생일인데 누이도 생일이 같은 날이기에 곧 감회가
일어 읊다. 140
46 국화 142
47 추흥 팔수. 두보의 시에 차운하다. 143
48 두보의 시에 차운하다. 148
49 낙엽 150
50 기러기 떼 151
51 깊은 밤 달을 기다리며 152
52 짧은 촛대를 점점 가까이할 수 있게 되어
【6운 배율이다. 아이들에게 부친 것이다】 153
53 서울을 생각하며 154
54 우레가 쳤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 하인을 보내다.【2수】 155
55 맑은 밤의 밝은 별 157
56 가을비【2수】 158
57 매화나무에 꽃이 피었던가 159
58 그대에게 가져다 줄 수는 없네 160
59 저물녘 시린 강에 비가 내리네 161
60 시월에 곡식 거두어 들이네 162
61 언별촌에 불이 번졌다는 소식을 듣고 임시 숙소를 지을 군관을 보내다. 163
62 겨울이 따뜻하여【2수】 165
63 바람으로 겨울을 소리 내네 166
64 겨울밤 비【6수】 167
65 난로회【세상 사람들은 입골이라고 한다】 171
66 맑게 갠 달【초승달이다】 176
67 섬돌의 대나무 177
68 연어잡이 둑이 무너져 178
69 장삿배 179
70 밤에 앉아서【연아체】 180
71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짓다.【2수】 181
72 갑산의 김 아무개와 이 아무개 두 선비가 걸어와서 며칠을 머물고는 돌아가겠다고 하므로 절구 2수를 써서 주다. 183
73 가을 매 184
74 달빛 아래 사람을 전송하며 185
75 시월 보름에 186
76 졸다가 187
77 동쪽 문의 종소리를 듣고 188
78 밤에 읊으며【4수】 189
79 파도 191
80 마을의 시장 192
81 월대산 193
82 비 온 뒤 큰 추위 194
83 인삼 공물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내원에서 순찰사의 파직을 논했으므로 첫 번째 연과 두번째 연에서 말한 것이다】 195
84 겨울 소나무 196
85 역사를 읊으며【10수】 197
86 바람이 불어도 따뜻한 것을 기뻐하며 202
87 금관성의 꽃빛 짙어져 203
88 영화에는 시비가 있네 204
89 나의 도를 창주에 맡기리 205
90 노인성을 달게 여기네 206
91 오래도록 영웅들의 눈물 옷소매 가득 적시게 하리라 207
92 백제성 높고 저물녘 다듬이질 소리 바쁘네 208
93 겨울날 대관령에 올라 209
94 명을 들으러 가는 길을 반쯤 지나서 210
95 밤 되어 횡계에 이르러 211
96 진부로 가며 212
97 대화를 출발하며 213
98 가고 가며 214
99 칠언절구 215
100 오언절구 216
101 새벽에 가며 217
102 차를 달이며 218
103 사운 219
104 칠언절구 220
105 모로령을 넘으며 221
106 시신을 살피러 가는 길에 진동문에 올랐는데 이 문은 진의 장수가 머무는 초루이다. 예전 임진년에 여기에서 왜구를 격파했다고 한다. 현판 위 판서 이민보������의 시에 차운하다.【누대는 삼척에 있다】222
107 죽서루가 서울 사람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은 것은 바닷가의 시내와 산 때문이다. 223
108 정월 초파일 아침 진동성 밖에서 까치 소리를 들으며【정묘년(1807)】 224
109 어두울 때 세아시를 지으며 225
110 누이의 회갑이 을축년(1805) 중양절이었고, 자형의 회갑이 정묘년(1807) 중춘 초하루여서 사람을 보냈다. 225
111 관아로 돌아가며【삼척으로 시신을 조사하러 가기 전이었다】 227
112 한송사에 과거 공부하러 가는 이유성을 전송하며 228
113 섣달이 지난 뒤에야 눈이 내려 시 한 수를 지어 둘째 아들에게 보여주다. 229
114 섣달의 매화 230
115 세모 231
116 서울로 돌아가는 종제를 전송하며 232
117 수세 233
118 이랑이 한송사에서 돌아와 234
119 찬바람 235
120 호적을 쓰며 236
121 바다를 바라보며【척주로 갈 때이다】 237
122 능파대【대는 척주에 있다】를 찾아가는데 흰 바위산 몇 봉우리가 깎아지른 듯 바다 가운데서 있는데 가사를 걸치고 절하는 부처의 형상 같고 높이 솟아 마치 안석에 기댄 모습 같았다. 산을 빙 둘러서 작은 바위가 쌓여 있는데 조금 위로 올라가니 산세가 마치 끊어진 것 같았다. 그 중간의 깎아지른 듯한 바위는 높고 낮으며 비스듬하거나 가로로 늘어선 것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바위의 생긴 모습은 다양했는데 어떤 것은 네모난 홀 같고, 어떤 것은 관복의 띠 같았다.범람하는 물기운을 막으니 뿜어져 오르는 물소리가 우레와 같았고, 솟구
치는 물결이 늘 작은 정자에 흩뿌려졌다. 정자는 고려말 심상서가 남긴 터에 있는
데 후손들이 지붕을 새로 이었다. 238
123 척주에서 돌아가며 240
124 마전현을 넘으며 241
125 「학명록」 무너진 다리 242
126 보진당에서 현판 위에 있는 외숙의 구자 운으로 삼가 짓다. 244
127 관아의 매화 246
128 음악을 살피며 247
129 성에 올라 249
130 닭 둥지 250
131 봄추위 251
132 9월 20일 밤 꿈에 대관령에 올랐는데 말 앞의 험하고 막혔던 길이 평탄하여 막힘이 없었다. 내가 종에게 “험한 길이 어떻게 이처럼 평탄해졌는가?”라고 묻자 종이 “어제 천둥 벼락소리를 들었는데 지금 이렇게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옛사람이 말하길 “낮에 생각
한 바는 밤에 반드시 꿈에 나타난다.”라고 하였는데 내가 늘 대관령을 지날 때마다 마음속
으로 무슨 방법으로 이 고개를 깎아서 편히 다닐 수 있게 할까 생각했는데 과연 꿈에 그대
로 나왔다. 절구 한 수를 지어서 기록한다. 252
133 선비 최명원의 시에 차운하여 돌려주다. 253
134 관거잡영 254
135 분자를 운으로 삼아 짓다. 며칠동안 어지러워서 글을 짓지 못하여 아이가 읊은 것에
따라서 급히 짓다. 256
136 한식날 이랑의 과거 급제 소식을 기다리며 257
137 정선 군수 신사원의 묘를 지나가며【임계에 있고 관아로부터 서쪽에 있다】 258
138 조카 우【곤하】가 와서 260



<국역 영음>

1 서대가【정묘년(1807)】 265
2 가뭄을 근심하다. 삼연의 시에 차운하다. 267
3 밤에 읊으며 268
4 이슬비 269
5 왕엄주의 문집을 읽고 270
6 개구리 울음 271
7 척주가 272
8 인삼을 올리는 일의 폐단에 대한 상소를 올리고 시를 읊다. 275
9 금강산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보안승 최【인간】를 맞이하여 앞 시의
운을 따라 짓다. 276
10 그냥 짓다. 277
11 저인이 상소의 비답을 가지고 와서 278
12 대관령에 올라 비를 만나 279
13 도중에서 280
14 횡계에서 281
15 지난번에 눈 속에서 이곳을 지났는데 지금은 뽕과 마가 울창해져서【2수】 282
16 순찰사께서 봉래각에서 선비들을 시험하였는데 이때 정시에 응시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서울에서 왔다. 나는 시관이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하여 시관의 직무를 맡지 않았으나 참
여하기를 요청하기에 조심스럽게 갔다. 283
17 금생행 284
18 그냥 짓다. 286
19 연자 운을 얻어 287
20 나그네가 매월당 김시습의 해주 부용시를 외워 전하기에 곧장 그 시의 운자를 따서 바로 짓다. 288
21 저물녘 꾀꼬리 289
22 경포에 배를 띄우고【6월 18일】 290
23 양양 부사 조【항존】을 방문하였는데 당시 전조의 탄핵을 받고
해직되어 돌아왔다. 291
24 바다를 보며 함경도 관찰사 이【집두】가 선비 최【형일】에게 준 시에 차운하다. 292
25 매미 소리를 들으며 앞 시의 운을 따라 짓다. 293
26 관청에서 그냥 짓다. 294
27 오동잎 하나. 권운서와 함께 짓다. 300
28 밤에 꿈속에서 지금의 귀인과 외숙 번암공의 일을 이야기했는데, 귀인이 오언의 짧은 시
한 편을 외워 전해주었다. 꿈을 깬 후에 “이 사람 꿈꾸기도 어렵네.”라는 한 구절만 기억이 나서 내가 이 구절을 나누어 오언고시를 지어서 그 기이함을 기록한다. 304
29 양양 부사 권【행언】이 찾아왔기에 사례하여 308
30 비가 개어 309
31 한송사를 찾아가서 310
32 소를 타고 견소진을 건너며 312
33 견소진 313
34 녹도정을 방문하여 314
35 다시 풍호를 구경하며【4수】 316
36 김【정익】의 시에 차운하다.【2수. 김정익은 무인이다】 318
37 선비 최【명원】의 운자를 따라 짓다. 320
38 가을 회포 열 수 323
39 유【백륜】의 별장에 쫓아서 차운하다. 329
40 공자묘에서 제사를 드리고 시를 읊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다. 332
41 사단에서 제사를 지내고 333
42 물에 비친 달 334
43 시객 최【명원】을 전송하며 335
44 어머니와 서울로 돌아가려는 먼 손자 아이를 전송하며 336
45 문이 닫히고 호각 소리가 울릴 때 먹구름 한 조각이 북쪽에서부터 흘러왔다. 옆에 있는 사람이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마침 비가 내렸고, 시장에는 술에 취한 사람들
이 매우 많아서 시 안에 아울러 말하였다. 337
46 자염행 338
47 정준 스님은 구례 사람이다. 죄가 없는데도 동해의 강릉주에 귀양 왔는데, 주에는 본래
종이가 없으니, 종이는 호남에서 나는 것으로, 호남 중에서도 구례에서 생산되는 종이가
최상품이다. 내가 평소에는 스님의 일을 하도록 시켜 주에서 가까운 사찰에서 일을 하면
서 종이를 만들게 하였는데, 종이의 빛깔이 고왔다. 내가 글을 지을 때마다 “훌륭하다.”
라고 칭찬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 또 풍수가의 술법이 본래 스님에게 있어 내가 본주의
청심대 위에서 사후의 묏자리를 점치고자 하였으나 그곳이 참되고 바른 곳인지를 결정하
지 못하자 정준이 듣고는 만경암의 스님 덕인을 데리고 석장과 낡은 삼베옷으로 거리낌
없이 한 자리를 점지한 뒤 돌아갔다. 3년 동안 나를 위해 수고한 것이 많았는데 마침 사면
되어 돌아간다고 고하기에 내가 한마디 말도 없을 수가 없어 절구
세 수를 지어 주었다. 339

48 과거를 보러 가는 막내아들을 전송하며 341
49 첫째 아들을 전송하며. 평소 병이 많았는데 북쪽에서 동쪽으로 왔기에 시 안에서 언급
하였다. 342
50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가는 손자 원성을 경계하며【아이가 이전에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아버지의 병 때문에 과거 공부를 그만두었고, 제가 부지런히 공부하려고 하여 한 두 차례 글을 읽으면 싫은 증세가 저절로 나옵니다.”라고 하였다】343
51 포도 344
52 옷을 다듬이질하며 345
53 추석 346
54 추석에 유백륜을 그리워하며. 백륜은 예전에 고양현에서 살았었다. 347
55 병무행 348
56 둘째 아이가 훈련대장【국구】으로 인해 경연에서 아뢰어 별도로 천거되어 진을 펼쳤다고 하여 349
57 강가 정자를 그리워하며 350
58 서울을 그리워하며 351
59 저물녘에 앉아 352
60 점군행 353
61 나뭇잎 354
62 가을걷이 355
63 권 사성 채와 함께 읊다. 356
64 고승을 떠올리며 358
66 구일 359
67 칠사당 팔경 360
68 군사 훈련이 가까운 밤에 앉아 365
69 선비 최명원이 오언율시를 보여주면서 내가 늘 말하기를 “3년 동안 관리 노릇서 싫어하는 마음이 너무 많아 마치 코에서 악취가 나는 것 같고 또 관청이 가난한데도 요구에 응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라고 하였다고 그가 말하기에 내가 또 해명하였다. 366
70 합동 훈련에 조정의 명이 있었으나, 본부인 영동 주진의 깃발과 활, 장막이 다 떨어져 나가 남아 있는 것을 하나도 볼 수 없다고 하니, 대체로 몇 해 동안 군사 훈련을 폐지한 결과이다. 약간의 재물을 힘들게 갖추어 깃발을 가려 두고 이 밤 독신에게 고한다. 368
71 밤에 읊으며 369
72 왜장행 370
73 연곡현에서 삼가 상국 상진이 현판에 쓴 시에 차운하다. 이때 순행하는 깃발이 이르렀는
데 돈대에 흙으로 칠해진 곳이 많아서 장난삼아 짓다. 372
74 마음 상해【오언고시】 373
74 순찰사를 모시고 경포대를 노닐며 375
75 군사 훈련에서 순찰사를 모시고 377
76 내가 공무에 골몰하느라 지쳐 아직 여유를 갖지 못해 양양의 낙산사로 놀러가는 아이를
먼저 보내며 378
77 군사 훈련을 마친 뒤에 순찰사 형제를 받들어 전송하며 380
78 순찰사께서 찾아오신 것에 감사하며 381
79 서울로 돌아가는 내상을 전송하며 382
80 초겨울 383
81 아이가 낙산에서 돌아와 이전 운을 따라 짓다. 384
82 섬돌의 달빛을 밟으며 385
83 혜성을 보며 386
84 누군가에게 시를 보내다. 387
85 밤에 앉아 388
86 모산을 지나며 389
87 화비령에 올라 390
88 우계 391
89 삼척 부사를 만나【백첨 홍경두이다】 392
90 견우가 393
91 비가 그치고 394
92 군사 훈련 후 선비 최명원이 보여준 시에 차운하다. 395
93 또 남쪽으로 울진에 갔을 때 최 선비가 보여준 시에 차운하다. 397
94 바람이 거센데도 춥지 않아 399
95 길을 가며 400
96 우계를 떠나며 401
97 무과에 급제한 사람을 만나 402
98 삼척에서 묵으며 403
99 새벽에 삼척을 떠나며 404
100 평릉에 이르러 405
101 추천을 지나며 406
102 아치를 넘으며 용화의 여관에서 밥을 먹다가 407
103 울진에 이르러 408
104 소공대에서【옛날에 익성공 황희가 쉬던 곳에 비석을 만들었다】【소공대 칠언을 이 편 아래에 쓰다】 409
105 울릉도를 바라보며 410
106 용화에서 묵으며 411
107 고개를 넘으며 412
108 평릉역에서 413
109 무릉계를 찾아가서【삼척에 있다】 414
110 용추를 찾아가 415
111 내가 공무로 울진을 지나가다 동굴의 이름이 성거인 것을 듣고 몹시 괴이하게 여겨 찾아서 들어가 보았다. 그 안은 침침한 것이 캄캄한 방과 같이 어둑어둑하여 횃불을 가지고
보니 길이 점점 좁아지는데 길이가 한 마장 남짓 되었고 그 높이가 몇 장이나 되었으며,
아래에는 흙과 모래에 덮인 큰 물체가 있었으니 청주에서 공물로 바친 바위같이 웅장했
다. 그 모습이 휘장을 친 전각이나 금부처, 단청 칠한 돌마루, 웅크린 짐승, 놀란 새의 형
상이었는데, 바위를 골라 두드려 보니 북과 징 소리가 섞여 났다. 옆으로는 맑은 물이 많
았고, 검은 바위가 그 속에 있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이 말하기를 바깥에 미나리 밭이 있
으니 세 발 솥을 걸어두던 터라고 하였는데, 나는 꺼려서 곧장 돌아가려 하였으니 사물을
형상한 공교로움이 귀신이 힘을 쓴 것이 많아 분명히 깔린 불빛이 영롱하고 황홀한 것이
라고 여겼다. 산수를 기록한 옛사람 중에서 이 동굴에 와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으니 생
각해보면 그윽하고 어둠침침하여 형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시를 지어 기록하
여 후세에 찾아오는 사람을 일깨우고자 한다. 416
112 소공대 419
113 동짓달 24일에 임영을 출발했다. 애초에 천 수의 시를 짓기를 기약했었으나 공무의 여가에 겨우 900수를 지었으니 아쉬울 뿐이다. 421
114 어제 밤 늙은 기녀 계옥과 동섬, 숭란이 와서 노래를 하여 422
115 집에 돌아와 환자를 얻어 423
116 섣달 그믐날 앓아 누워 424
117 설날 【무진년(1808)】 425
118 지방관이 된 지 삼 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로 돌아가니 땔감이 귀해 추위를 견딜 수가 없었고, 또 해가 바뀌자 문에 서서 빚을 독촉받았는데 이것은 오히려 일상적인 일이었다. 나의 숙부는 죄도 없이 관직을 빼앗긴 지 이미 8년이 되었는데 여기에 대해 다시 아무런 말이 없었다. 최근에 문생 이익운이 상소하여 또 대간의 논의가 있었으니 마음이 몹시 괴롭고 원통하여 가슴 속에서 시가 나왔을 뿐이다. 426
119 상서 박종보의 반우에 나아가 곡하며 427
120 제관에 임명되어 인정전에 들어서 428
121 향을 받들고 서쪽 교외로 나가며 429
122 시안정을 지나다 판서 이익운의 시 운에 화답하다. 430
123 승지 박대규의 만시 431
124 사월 초하루에 총부의 숙직실에서 433
125 총부에서 숙직하다가 금강산 생각이 나서 434
126 관등【2수】 435
127 초파일 저녁에 비 때문에 등을 달지 못했는데 그 다음날 등을 밝힌 곳이 약간 있었으나 끝내 초파일 같지가 않았다. 또 마을 사람들이 구경하러 오려 하였으나 진창길이어서 감히 문을 나서지 못하여 장난삼아 지었다. 436
128 벗 유백륜이 찾아온 것을 감사하며 437
129 비 오는 날 누워서 438
130 경희궁가 439
131 영지가. 임영으로 부임하는 대언 박사문을 삼가 전송하며 442
132 제관에 임명되어 443
133 길을 가며 444
134 창릉의 객점에서 정조의 어제를 새긴 비각에 삼가 경의를 표하며 445
135 능동의 입구에 들어서며 446
136 경신년(1800)에서 무진년(1808)까지 9년을 편안히 지내다가 처음 무관의 직책에 임명되었는데 이날 영희전으로 호가하였다. 447
137 중일 448
138 마음 가는대로 읊다. 449
139 왜가 통신사로 와서 대마도의 일을 청했는데 백성들이 궁핍하고 재물이 고갈되었다는 것을 핑계로 일기도와 대판에 넉넉하지 못한 것을 달라고 하였다. 조정은 비록 허락하지 않
았으나 속이려는 마음을 이리저리 살펴보면 믿기 어렵다. 충무는 곧 이순신의 시호인데
임진난의 수전에서 큰 공이 있어 전서가 항상 총부의 책상 주변에 있었는데 두 사람이
짝지어 숙직하던 중에 마침 공이 다른 곳으로 나갔기 때문에 혼자 앉아서 시를 읊었다.
【이때 비가 왔다】 450
140 오위도총부에서 바로 짓다. 451
141 인사 명령이 내려와 재랑이 임명되었으나 추천된 사람이 애초에는 세 사람의 후보자에
들지 않았다. 452
142 숙직하며 453
143 채소밭을 가꾸며 454
144 유백륜이 와서 묵어 455
145 태종우 456
146 검서관 김사현이 생선을 보내준 것에 사례하여 458
147 빗속에 앉아【오위도총부에서 숙직하였다】 459
148 비가 그치고 460
149 소낙비가 내리는 중에 동문의 황교복이 푸른 오이를 세 번 보내주어 461
150 집에 있으며 462
151 오위장 전진룡과 관상에 대해 이야기하며 463
152 윤5월 10일 임금님께서 춘당대 북원에 나오셔서 명나라 신종의 위판에 망배례를 행하다. 464
153 이어 충량문무과를 시행하여 465
154 유백륜과 방옹의 시 운에 차운하다. 466
155 방옹의 시 운에 차운하다. 468
156 명월가. 유백륜이 머물러 잤다. 469
157 홀로 앉아【오위도총부에서 숙직하다】 470
158 기우제를 지내라는 명이 있어 471
159 단비 472
160 벗 유백륜의 아들 상림과 셋째 아이가 함께했으니 이것은 이 부자가 두터운 정의를 이은것이어서 기뻐하며 시를 짓다. 473
161 궂은 비 475
162 내가 경신년(1800) 여름 이전 임금님의 장례 행렬이 길을 나설 때 이조 판서 이병정이 외숙 번암공에게 원망이 있어서 이조 판서의 후보자 명단에서 쫓겨나 선발되지 못하고 끝내 행적을 묘사하는 시편을 짓는 것에서도 빠졌다. 내가 비록 거칠고 졸렬하나 평소 사명을 맡은 신하로서 항상 간절한 마음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한가로운 틈이 있어 칠언율시 10수를 읊었으니 하염없이 눈물만 흐를 뿐이다. 477
163 곧은 길로 나아가며 487
164 대감 신지 임희존이 병조에 숙직하기 위해 길을 지나 들어와서 물이 불어난 모습을 보는 장쾌함을 몹시 칭송하였다. 며칠 전 서강에 있는 친구의 정자에 올랐다가 돌아와서 읊
었다.【2수】488
165 폐지된 장용영에서【정조 때 대궐문 서쪽 마을 입구에 영을 설치하고 장용영이라고 불렀는데, 신유년(1801)에 재상 심환지가 정순대비께 아뢰어 폐지하였다. 이곳은 성종·중종 때의 본궁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자세하지 않다. 내가 판금오 이만수와 연이어 관청에 나가 옥사를 논의하였는데 이때가 무진년(1808) 6월 그믐이었다】 490
166 심한 가뭄 중에 한바탕 가랑비가 내려 조금 생기가 있었다. 또 모기떼가 극성을 부리고 새가 처마에서 몸을 씻었다. 492
167 특진관으로 강연에 나아가 493
168 칠석 494
169 모기【입추 뒤에】 495
170 검서관 김사현 만시 496
171 집으로 돌아가며 497
172 재계하고 498
173 공인의 집에 묵으며 499
174 경모궁 500
175 또【칠언율시】 501
176 벗 심달한을 위한 특별한 부의가 이제야 조정의 관보에 나와 502
177 친척 윤영휘가 짧은 시를 써서 보여주었다. 단아하고 고지식한 성품으로 죄 없이 세상에 막힌 지 오래되었는데 부모님을 모시는 마음이 몹시 어여뻤기 때문에 말을 꾸며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을 북돋았다. 503
178 모기를 꾸짖으며 504
179 모기를 변론하며 505
180 다시 특진관으로 승정원에 머물며 506
181 대감 한혜보를 전송하고 관리영을 다스리며 507
182 순천 부사 정인수의 회갑 잔치연 음식에 감사하며【2수】 508
183 정인수가 보여준 시의 운자에 차운하여 509
184 참판 권상신이 7월 16일에 시를 지어 화운해서 지어 두었는데 칠언절구는 그 운자를 잊다.【2수】 510
185 판금오께서 종이와 먹을 주신 것에 감사하여 511
186 또 대감 권상신의 시를 따라 짓다. 512
187 대궐에서 생각나는 대로 읊다. 513
188 보사제를 지내는 제관으로 차임되어 저자도로 나가며 514
189 배에 올라 515
190 팔월 초파일에 어가를 모시고 고양관에서 묵으며 516
191 영유 현령 김홍운은 사현의 아버지이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당한 뒤부터 음식을 전부 물리치고 통곡하며 우는 것이 너무 지나쳐서 일어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애처로울
뿐이다.【3수】 517
192 중추절 다음 날 밤 달빛이 매우 아름다워【3수】 520
193 원성과 문성의 시에 차운하다. 521
194 심자를 운으로 삼아 522
195 권랑의 병이 심해 조용히 기도하며 읊다. 524
196 중양절에 홀로 앉아 526
197 망묘루에 올라【9월 보름에 종묘의 제관에 차임되었다】 527
198 권랑의 무덤에서 곡하고 하직하며 528
199 동야음 529
200 전비행 530
201 눈보라 불고 모진 비 내리는데 영남 관아에서 병에 관한 연락이 이르러 532
202 한가로이 앉아 533
203 차가운 달 534
204 도목정사가 지나고 주서 채홍운이 보여준 시에 화답하다. 535
205 정월대보름 전날 밤 달의 모습이 제법 아름다워【기사년(1809)】 536
206 약봉 아래 옛터로 나와 친구를 찾아가며 537
207 한식날 제관으로 차임되어 538
208 이른 봄 누각에 올라 539
209 삼짇날에 540
210 대보단의 제관으로 차임되어 541
211 모화관에서 무관의 활쏘기를 시험하며 542
212 위원 부사 성【대중】 만시 2수 543
213 특진관으로 승정원에서 선잠을 자다.【지경연은 김희순, 참찬관은 김상휴였다】 545
214 영릉정 관리로 차임되어 신원점에 이르러 546
215 농가 547
216 능동 어귀에 들어가며 548
217 표경 민두세의 시에 차운하다.【표경이 닭을 보내와서 내가 부채로 답하였다】 549
218 북단 기우제의 헌관으로 차임되어 550
219 임금님께서 말을 내려주시는 은혜를 받고 551
220 민표경이 보여준 시의 운자에 차운하여 조심해서 비웃지 말라고 하고는 스스로 너무 크게 웃었다. 표경은 물고기를 탐내고 나는 부채를 탐내어 서로 번갈아 이기고 졌는데 표경
이 물고기를 보내지 않고 흰 부채를 가져 시의 마지막에 그렇게 말했다. 552
221 기우제를 아홉 번 행했으나 끝내 비가 내리지 않았다. 임금님께서 친히 남쪽 성곽에서 기도하시자 그날 밤에 마침내 비가 내렸다. 554
222 매미 소리를 듣고 555
223 내가 평소에 시로 자부하지 않았는데 이전에 예천 권씨 어르신의 회혼례에 참석하였
을때 축하의 시를 짓지 않은 지 오래되었으나 동생인 좌랑에게 이끌려 나가니 노형은 은
근히 시 짓기를 바라서 바쳤다. 예천 권씨 어른의 이름은 성이고, 좌랑의 이름은 급이다.
【부자가 서로 계속 잔을 돌렸다】556
224 북쪽 교외에서 보사제를 지내며 557
225 탕춘대에서 558
226 시골에 머무르며 560
227 칠언율시 561
228 제사 지내는 저녁 562
229 오언율시【흰 바위가 연융대 아래에 있다】 563
230 풀이 길게 자라고 시내가 습해서 괴로웠는데, 파리 모기가 없으니 이상하다. 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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