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백서』는 1801년 조선 정부가 천주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할 때 황사영이 제천 배론의 토굴에서 작성한 장문의 서간문이다. 가로 62cm, 세로 38cm의 흰 명주 비단 위에 작은 붓글씨로 기록된 이 문서는 총 122행, 13,384자에 이른다. 황사영은 이 글에서 천주교 박해의 실상을 자세히 설명하고, 주문모 신부와 총회장 최창현 등 순교자들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마지막에는 조선 천주교회를 재건하고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비록 천주교 포교를 위해 외세를 끌어들이려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지만, 조선 천주교회의 초기 모습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 귀중한 사료이며, 인권과 자유의 측면에서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책은 백서의 원문과 현대 한국어 번역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러 사본과 자료를 비교하여 오류를 바로잡았으며,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표점(標點)을 가하고 상세한 주석을 덧붙였다.다시 무슨 낯으로 붓을 적셔서 우러러 호소하겠습니까? 엎드려 생각하건대, 성교(천주교)가 전복될 위험이 있고 백성들은 박해에 걸려 죽는 고통에 빠져 있는데, 자애로운 아버지는 이미 잃어버려서 매달려 호소하려 해도 붙잡을 수 없고, 어진 형제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상의하려고 해도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교님께서는 은혜로는 부모님과 같고 의리로는 사목의 중책을 지셨으니, 틀림없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지극히 고통스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누구를 불러야 하겠습니까?
아! 죽은 사람들이 이미 목숨을 바쳐서 성교를 증거했으니, 산 사람들은 죽음으로써 도(진리)를 지키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재주가 보잘것없고 능력이 모자라서 어찌할지 모르겠습니다. 은밀하게 교우 두세 사람과 당면문제를 해결할 마땅한 방안을 논의하여 가슴을 열고 조목조목 아룁니다. 부디 읽어보시고 나서 이렇게 외로운 우리들을 불쌍하게 여기셔서 빨리 구원을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옥리가 말했습니다. “서책은 이미 다 불태워 버렸는데, 무엇으로 배운단 말이오?” 말딩(이중배)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내 가슴 속의 불타지 않는 서책으로도 남들을 깨우쳐서 성교를 받들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황사영
조선 후기 천주교 평신도 지도자이자 순교자로, 조선 카톨릭교회의 창설과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남인 명문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유교 경전에 뛰어났으나, 처삼촌 정약종을 통해 천주교를 접하고 세례를 받아 알렉시오라는 세례명을 얻었다. 이후 신앙을 위해 출세의 길을 포기하고 박해 속에서도 교리를 전하며 교회 재건에 헌신했다.1801년 신유박해 때 충청북도 제천 배론의 토굴에서 북경 주교에게 보내기 위해 조선 천주교회의 실상과 선교 요청을 담은 장문의 보고서 『백서』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체포되어 11월 서소문 밖에서 처형되었고, 그의 순교는 이후 박해를 더욱 격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황사영의 『백서』는 순교 신앙과 교회 재건의 의지가 담긴 문헌이지만, 외세의 군사적 개입을 요청한 내용으로 오랫동안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비판받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종교의 자유와 인권 사상의 측면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목차
편집자 서문 5
역자 서문 9
서론 29
신유박해의 발단과 전개과정 37
신유박해 순교자 열전 59
결론 133
참고문헌 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