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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오디세이아
정음서원 | 부모님 | 2025.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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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일제당을 모태로 하여 삼성그룹에서 분리되어 나온 CJ 그룹의 성장사이다.
이재현 회장은 1993년 삼성그룹 계열 분리(Spin Off) 때 제일제당을 그룹으로부터 분리, 독립 경영을 선택했다. 제일제당은 삼성그룹의 모기업이다. 모기업이 본체를 떠나 분리, 독립한 예는 우리 재계 역사상 유일하다.
CJ그룹이 탄생할 때 그룹의 앞날을 비관적으로 보는 견해가 많았다. 식품 산업 단일 구조로 성장의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견해였다. 이재현 회장은 이런 일반의 예측을 보기 좋게 빗나가게 했다. 이재현 회장은 그룹의 산업구조를 주축인 식품 사업 이외에 바이오, 엔터테인먼트, 신유통 등 성장 잠재력이 큰 사업군을 개척해 냈다.
CJ그룹은 계열 분리가 법적으로 완성된 1995년부터 2025년까지 불과 30년 만에 시가 총액 기준 재계 서열 8위에 올랐다. 총매출 100조 그룹 진입을 바라보고 있다. CJ그룹 ‘CJ 브랜드’는 삼성과 현대, SK 등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 대표 기업을 호명할 때 “CJ 어디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수준이다. 이재현 회장의 고성장을 이끈 경영 능력은 경탄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향후 CJ의 성장이 어느 수준까지 이를까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CJ그룹 경영 핵심 가치는 온리원(Only One) 정신이다. 온리원은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단히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다. CJ는 이 정신으로 성장 성공 신화를 쓰고 있는 중이다.

저자는 일선 취재기자 시절 삼성그룹을 20년 넘게 출입했다. 그 이후로도 삼성의 성장사에 대해서 많은 관심과 연구를 하고 있다. 이번 CJ 오디세이아를 쓰면서 삼성그룹의 90년 성장사에서 잘못되어 있는 부분을 발견했다. 이맹희 CJ 명예회장에 대한 부분이다. 삼성 성장사에서 이맹희 명예회장은 삼성그룹의 부회장으로 7년 동안이나 삼성그룹을 리드했다. 그 부분이 삼성그룹 성장사를 다룬 어느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 기록에는 삼성 부회장의 재임 기간을 6개월로 축소하고 있고 이맹희 부회장의 이미지를 고의로 왜곡한 것도 있다. 이것이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한 저자는 마침 이맹희 삼성 부회장 시절의 모든 기록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것을 토대로 그 사실을 이 책에 쓸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저널리스트의 긍지로서 CJ 성장사의 진실(Fact)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1
대변혁 - 제일제당의 분리·독립


제일제당은 삼성그룹(三星)의 어머니 기업이다. 제일제당 창립일은 1955년 11월 5일이지만 이병철 창업회장이 한국을 설탕 수입국에서 설탕 생산국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공장을 짓기 시작한 시점은 1953년 4월이었다. 6.25 전쟁이 휴전 협정 단계로 접어들기는 했으나 아직도 일선에서는 포성이 그치지 않고 국민 생활은 비참했다. 설탕은 일제 강점기 때는 배급제였고 일반에게는 사치품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설탕을 일반 국민도 시장에서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있는 시대를 열고 싶어 했고 이것이 국가가 한 단계 발전하는 것이라는 신념이었다.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 공장을 지은 것을 경제사(史)적으로 보면 한국에 제조업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했고 삼성으로 보면 무역업에서 산업 자본화하는 의미가 있었다. 제일제당은 ‘백설표’라는 브랜드로 시장에 출시하자마자 폭발적인 수요를 만들어 냈고 일반 국민의 소비 생활을 윤택하게 했다.
이병철 회장은 어느 인터뷰에서 ‘제당으로 공전의 호황을 누렸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제일제당의 성공으로 계열사를 가질 수 있는 에너지를 확보했고 그 힘으로 제일모직, 금융, 보험, 유통, 조선 산업에 진출할 수 있었고 급기야는 반도체 산업을 일으켜 이 분야의 세계 최강 대열에 이르렀다.

분리, 독립의 신호탄

1994년 12월 6일, 이날은 삼성그룹 성장사에서 특별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삼성그룹은 이날 이학수 제일제당 대표이사를 필두로 9명의 임원을 삼성그룹으로 발령 냈다. 이들 능력 있는 9명을 제일제당 경영에서 배제한 조치는 제일제당을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 독립시키는 뇌관을 당긴 것이었다. 삼성생명 12층에 위치한 제일제당은 그동안 이런 순간이 있을 것으로 어느 정도 예측은 했지만, 그래도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제일제당은 이날을 시발점으로 ‘독립 경영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제일제당은 독립 경영 시대를 맞았다는 기쁨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내부를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1,300여 명에 달하는 사원들은 삼성그룹 우산으로 입사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하루아침에 탈 삼성그룹 환경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회장님, 오늘 담화문을 발표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재현 상무(당시 직책, 현 CJ 회장)는 손경식 회장에게 건의했다.
“그래, 오늘이 적기야.”
제일제당 손경식 회장은 이날 오전 10시 사내 방송을 통해 긴급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문 부제는 ‘실질적 분리, 독립 선언’에 즈음하여서였다.
“우리 제일제당은 이제 삼성그룹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분리, 독립되었음을 이 자리에서 밝히고자 합니다. 이는 종전과는 달리 선언적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모든 면에서 독립됨을 의미합니다. 이제 우리는 ‘새 제일제당’ 건설을 위해서 활발하게 일을 추진해 나가고자 합니다. 거듭나기를 다짐하는 지금, 우리 앞에는 정말로 도전해 볼만한 새로운 미래와 여러 사업 기회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손 회장의 담화문에는 제일제당이 그간 겪어왔던 상황들이 고스란히 함축되어 있었다. 제일제당은 삼성그룹의 모태인 동시에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 아호) 선대 회장의 창업정신이 살아있는 터전이기도 했다. 제일제당이 갖는 막중한 의미에도 불구하고 그간 신규 사업 진출이나 투자는 그룹 차원의 결정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외면받아 왔다. 당시 제일제당은 막대한 수익을 내는 흑자 기업인데도 신산업에 대한 투자는 하지 않고 식품업에만 주력하는 기업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제일제당의 독립 경영은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임이 분명했다. 전화위복(轉禍爲福, ) 그 자체였다.
“이제 사업 구조 고도화와 경쟁력 향상을 겨냥한 우리의 발빠른 행보가 시작될 것입니다. 제당인(製糖人)은 제일제당을 위해서 일해야 하며 제일제당의 자원은 우리 제일제당과 제당인의 발전을 위해서 사용될 것입니다.”
손경식 회장의 담화문 가운데 ‘삼성그룹과의 우호 모색’ 내용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1993년 독립선언 이후 많은 논의가 진행되면서 오해가 생긴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그것은 삼성그룹의 출발점이 제일제당이라는 자긍심과 함께 ‘호암’의 창업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기도 했다.
“앞으로는 삼성그룹과는 매우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해 나가려고 합니다. 제일제당은 언제나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모태로서 따뜻하고 오랜 연(緣)이 있음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손 회장의 담화문은 새로운 제일제당의 건설을 위해 다 함께 힘차게 새 시대를 건설하자는 다짐으로 끝을 맺었다.

우려의 시선과 기대감 교차

1993년 독립선언 직후 일반은 물론 고객과 협력사들도 앞날을 우려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국내 최대 그룹인 삼성(三星)으로부터 떨어져 나와도 과연 지금과 같은 성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 어린 시각이 적지 않았다.
그날 제일제당에서는 긴급 임원회의가 개최되었고 뒤이어 부서별 회의가 소집되었다. 그룹의 독립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를 주로 논의하는 한편 직원들의 동요를 막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룹의 독립 소식이 전해진 직후 제일제당 임직원들이 크게 당황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해 6월 11일 이재현(李在賢) 상무(현 CJ그룹 회장)가 신문 인터뷰를 통해 ‘직원들의 동요가 가장 걱정’이라고 밝힐 정도였다.
기업의 제일 자산은 인재다. 우리나라 최대 기업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삼성그룹의 울타리를 벗어난다는 것은 임직원들에게 우려와 불안을 가져다주는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 삼성 직원들조차 삼성의 모태 기업인 제일제당의 분리 소식에 어리둥절할 정도였으니 제일제당의 임직원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음날 회사의 분위기는 급변했다. 임직원들 사이에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려’ 제대로 뜻을 펼쳐 보지 못한 제일제당에 새로운 미래가 열렸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당시 삼성그룹은 반도체 산업을 위해 그룹 모든 신규투자가 반도체에 투입되었다.) 삼성의 모태 기업이자 알짜 기업으로 자체 역량만으로도 미래지향적인 회사로 발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팽배해진 때문이었다.
제일제당은 6월 14일에 새 인사를 발표했다. 손경식 당시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부회장을 제일제당 부회장으로, 이재현 삼성전자 이사를 제일제당 상무로 선임한 것이다.
이례적으로 이 인사가 신속하게 이루어진 것은 직원들의 일시적인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실제 대주주이자 향후 제일제당을 이끌어 갈 이재현 상무의 등장은 임직원들에게 새로운 비전과 자신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제일제당의 당시 비전은 식품 분야에 한정되어 있었다. 1992년 매출 1조 2,600억 원을 기록, 국내 최대의 식품회사로 올라섰지만, 더 큰 도약은 불가능했다. 끊임없이 신규사업 진출을 꾀했지만, 후순위로 밀려났다. 제일제당이 거둔 막대한 수입이 재투자되지 못하고 삼성의 타 계열사(삼성전자)로 넘어가는 현실에 불만을 갖는 임직원도 많았다. 이병철 회장의 적통이자 장손자인 이재현 상무의 등장은 그러한 과거의 패턴에서 벗어나 새 제일제당을 건설할 아주 좋은 신호를 주는 것이었다.
제일제당은 외부 고객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주는 데도 정성을 기울였다. 독립 선언 1개월 후인 1993년 7월 6일 제일제당 임직원들은 물론 협력업체와 대리점 대표들을 초청해 ‘신 제일제당’ 출범식을 거행했다.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린 출범식은 경영 방침 설명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제일제당의 독립 경영은 새로운 시대의 출발을 의미하는 동시에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습니다. 우선 대기업 그룹에 관한 각종 규제가 해소되면서 신규 업종 참여, 계열 기업군에 대한 여신 한도가 자유스러워집니다. 둘째, 삼성그룹 관계사에 대한 투자금액을 회수함으로써 재무 구조가 더 유연해질 것입니다. 셋째, 2000년대 제일제당의 기업 비전인 ‘생활 문화 창조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유통과 식품 서비스 등 다양한 신규사업 진출이 가능해졌다는 점입니다.”

임직원들에게는 창업주 ‘호암’의 뜻을 계승, 인재 제일의 최고 가치를 확대, 발전시키겠다고 다짐했다.
1993년부터 1995년 사이에 제일제당은 인재 제일의 의지와 협력사 및 대리점과의 상생 경영, 투자자들을 위한 경영의 뜻을 밝힘으로써 독립 경영 시대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성공했다.

2
독립 경영 첫 행보,
인재 선발과 신사옥 마련


제일제당은 독립의 첫 행보를 신입사원 선발로 시작했다. 1993년 10월 제일제당은 ‘사람이 곧 기업이다. 기업이 곧 사람이다’라는 슬로건 밑에 130명의 신입사원 모집 공고를 신문 매체를 통해 게재했다. 제일제당 본부는 긴장했다. 삼성그룹에서 분리, 독립한 제일제당에 대졸자들이 과연 얼마나 응모할 것인가는 낙관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130명 모집에 1만 3,000여 명이 지원, 100대 1이라는 놀라운 경쟁률을 기록한 것이다. 특히 당시 최대 기업 그룹인 삼성과 현대그룹보다 지원자 수가 더 많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듬해인 1994년과 1995년에도 제일제당 입사 희망자는 늘어났다. 제일제당이 식품업에서 탈피, ‘종합 생활문화’ 그룹을 지향하며 새로운 사업 분야를 추진하자 그 성장 잠재력을 믿고 우수 인력들이 제일제당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제일제당은 신입사원들의 역량이 향후 회사 발전의 새로운 원동력이라는 판단 아래 사원 선발 방식에 혁신적인 방안을 도입했다. 그중에서 가장 화제를 모았던 것은 ‘인재 데이터뱅크’였다.
신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인재를 수시로 모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 아래 국내외 대학생 및 전문 인력을 대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것이다. 국내 대기업으로는 최초였고 앞날을 내다본 새로운 인재 확보 시스템이었다. 대학교 3,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공별로 전산화 작업이 이루어졌다. 특히 미국에 있는 우리나라 국적의 과학자들과 금융 분야 전문 인력, 국외 입사 희망자들의 인력풀(人力 Pool)도 그 대상에 포함되었다. 향후 글로벌 시대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으로 외국 주재원과 외교관 자녀, 개발도상국가의 우수 인력에 대한 자료 확보와 이들에 대한 채용도 적극 추진되었다.
모집 분야도 훨씬 다양해졌다. 이전까지는 식품, 제약, 연구개발직으로 한정되어 있었지만, 문화·멀티미디어·방송·금융·건설·정보통신으로 사업을 확대한다는 원대한 설계 아래 선발 분야를 크게 확대했다.
인재 데이터뱅크가 운영되면서 수시로 인력 모집이 가능해졌다. 1년에 두 차례에 걸쳐 시행된 그룹 공채와는 별도로 시기에 제한을 두지 않고 우수한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특히 직무 상담실을 상설 운영, 기존 인력과 신규 인력들이 적합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큰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독립 경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제일제당의 매출액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1993년 1조 3,062억 원이던 사업 실적은 1994년 1조 4,318억 원으로 증가되었다.
신규 사업 분야 개척도 눈부셨다. 1994년 12월에 결성된 신경영 추진팀은 슈퍼스토어, 단체 급식, 패밀리 레스토랑 등 신규 사업 분야를 확장했다. 이재현(李在賢) 상무 등 경영진은 2000년대까지 10대 그룹 진입을 목표로 다양한 신규 사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독립 경영의 시대가 본격화된 1995년 1월을 기점으로 제일제당은 삼성 로고(三星 Logotype)를 이용한 사기(社旗) 사용을 중단했다. 뒤이어 1,550만 원의 상금을 걸고 새로운 기업명을 공모한다고 밝혔다. 새 그룹명이 확정되기까지는 ‘제일그룹’이라는 그룹명을 사용하기로 했다. ‘제일(第一)’이라는 사명에는 지난 1950년대 이래 이병철 창업회장의 경영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한편 삼성으로부터의 독립에는 적지 않은 고충이 뒤따랐다. 가장 큰 난제는 임직원들이 편안하게 업무를 추진할 수 있는 공간 확보였다. 1993년 6월 독립 경영을 선포하고도 2년여의 시간 동안 제일제당은 삼성생명(삼성그룹) 사옥을 계속 사용했다. 그러나 독립 경영이 점차 진행되면서 더 이상 삼성과 한 울타리에서 업무를 보기가 어려워졌다. 독립 경영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새로운 사옥 마련은 임직원들의 사기 진작과 업무 효율화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시급한 현안이었다.
제일제당은 새 사옥을 구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도시개발공사가 서울 남대문로 5가 힐튼(Hilton)호텔 옆 양동지구 재개발 빌딩을 매물로 내놓았다는 정보가 입수되었다. 제일제당은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토지개발공사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1995년 7월 신사옥 계약이 완료되었다. 독립 경영 선언 이후 경영권과 인사권을 차례로 확보하고 새로운 미래를 시작할 보금자리까지 마련된 것이다. 남산에 마련된 새 사옥은 남산로(南山路)와 맞닿아있어 무엇보다 풍광이 아름다웠다. 광화문과 서울시청이 직경 1km 안에 있는 요지이기도 했다. 남산 중턱에 있어 아름다운 우리나라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제일제당이 인수한 사옥은 대지 면적 734.9평(2,429m²)에 건축 연면적 24,300평(8만400m²), 지하 2층, 지상 18층 높이로 462억 원의 신축 비용이 소요되었다.
제일제당은 사옥 매입 후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단행했다. 입주를 앞두고 창의적이면서 진취적인 사무 공간이 되도록 전면적인 공사가 전개되었다. 제일제당이 특히 주안점을 두었던 것은 ‘인간 존중’과 ‘Only One(단 하나) 정신’이었다. 제일제당의 환경은 ‘인간 존중 정신을 바탕으로 사원들이 자율적으로 일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생활문화 기업으로서 깨끗한 이미지를 확립하기 위해 꿈과 미래를 연결하는 공간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함께 창조적이고 효율적인 업무 수행 능력을 제고시켜 21세기 명실상부한 ’Only One’ 기업의 위상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제일제당의 사무 환경 개선은 우선 고객의 편의와 서비스를 극대화한다는 것이 기본 개념이었다. 수개월의 공사 끝에 약 700여 명의 본사 스태프 부서와 서울시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네 개 사업본부, 제일선물 등 관계사 임직원들이 신사옥에 둥지를 틀었다. 수십 년 동안 몸에 밴 삼성 문화에서 벗어나 이병철 선대 회장의 초기 창업정신으로 재무장하기 위한 본격적인 발걸음이었다.

이병철 회장의 창업 정신을 이어받은 적통 장자 기업

적장자(嫡長子)란 정실부인이 낳은 자식 중 맏아들을 의미한다.
제일제당 창립 43주년 기념일인 1996년 11월 5일 창립 기념 행사를 마친 후 제일제당의 주요 임원들이 사옥 2층 로비로 들어섰다. 안내 데스크를 중심으로 로비 양쪽 벽면은 흰 베일로 덮여 있었다. 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의 선율이 조화를 이루며 실내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날의 행사는 매우 뜻깊은 것이었다. 43년 전인 1953년 ‘호암’이 제일제당으로 최초의 제조업을 시작한 이래 그의 창업정신을 올곧이 이어받고 미래를 향한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호암의 장손(長孫)이자 제일제당을 이끌어가고 있던 이재현 상무는 유럽 출장을 마치고 창업주 이병철 회장 존상과 제일제당 심벌 제막식에 참석했다. 주요 인사들이 미리 마련된 제막 버튼 앞에 섰다. 장내에 불이 꺼지고 긴장감을 주는 음악 소리가 멈추는 순간 주요 인사들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베일이 벗겨졌다.
로비 중앙을 중심으로 왼쪽 벽면에 이병철 선대 회장의 청동 좌상 부조(浮彫)가 나타났다. 그 아래는 호암의 평생 철학이기도 했던 ‘사업 보국, 인재 제일, 합리 추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호암 좌상 주변으로는 과거 제일제당의 역사를 상징하듯 온 국민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새긴 조각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로비 오른쪽에는 새로 제정된 제일제당의 사명인 영문(英文) CJ와 향후 추구할 사업군 상징물이 조각되어 있었다. 영상 멀티미디어를 상징하는 필름과 영사기, 정보통신을 상징하는 인공위성과 컴퓨터 등 미래에 추진해 나갈 신산업을 표현하는 상징물이었다. 임원들은 묵묵히 청동 좌상 부조를 바라보았다. 제당 독립의 시대. 선대 회장이 만들고자 했던 창의적 기업의 꿈을 새롭게 이어가겠다는 결의가 그들의 얼굴에 나타나 있었다.
언론들은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부조를 서울 중구 남대문로 제일제당 빌딩 본관 로비 벽에 새겨 오는 11월 5일 창립기념일에 제막한다고 비중있게 보도했다. 이 회장이 앉아 있는 모습을 동으로 새긴 이 부조는 높이 2m, 폭 1.5m로 실물보다는 크고 재질은 청동을 사용했다. 본관 로비 벽면에 창업자의 부조를 새기는 뜻은 제일제당이 바로 삼성의 모태 기업이고 이 회장의 법통과 창업정신을 이어받고 있음을 내외에 천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일제당 임직원들은 부조상 앞에 놓인 표지 조형물을 세심하게 읽었다. 두 종류로 제작된 표지 조형물에는 호암의 창업정신과 경영이념이 수록되어 있었다.
「본 조각은 창업주이신 이병철 회장의 창업이념을 계승, 발전시켜 제일제당 그룹을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키려는 임직원들의 진취적인 의지를 담아 제작함. 이병철 회장의 존상은 오늘의 제일제당이 있기까지 좌표 역할을 해 온 창업이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음. 즉 사업을 통해 사회의 번영과 풍요를 가져오는 사업 보국 이념과 현장 모습을 통해서는 경영 활동의 근간인 인재 제일과 합리 추구의 창업이념을 형상화함. 아울러 도전과 개척 정신이 드높은 선배들의 모습을 함께 표현함」

1953년부터 쉼 없이 달려온 43년의 세월 넘어 이병철 회장의 창업정신이 제일제당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독립 경영의 시대는 본격화되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백인호
매일경제 편집국장,MBN 대표이사,YTN 사장,가천대 초빙교수[저서]장편소설 『삼성오디세이아』『현대오디세이아』『자동차왕 정몽구 오디세이아』『SK 오디세이아』『LG 오디세이아』『롯데 오디세이아』『삼성 이건희 오디세이아』『한화 오디세이아』『대한항공 오디세이아』

  목차

서문 7

제 1 부

1 대변혁 - 제일제당의 분리·독립 15
2 독립 경영 첫 행보, 인재 선발과 신사옥 마련 21
3 이병철의 설탕 생산국의 꿈 27
4 청년 사업가 이병철 사장의 원대한 발상 37
5 제일제당 수요 폭발로 증설 거듭, 최우량 상 수상 48
6 사활을 건 설탕 전쟁 56
7 제분(製粉, Flour mills) 사업 시작 65
8 삼분파동(三粉波動)과 시련 78
9 국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제일제당 88
10 삼성 조미료(調味料, Condiment) 산업 진출 98
11 히트 브랜드 백설(白雪)표 탄생 111
12 인천에 동양 최대 제당 공장 건설 121
13 식문화(Food Culture)를 바꾼 제분 사업 132
14 식용유(Cooking Oil)와 배합 사료 사업 진출 141
15 육가공(肉加工, Meat Processing) 사업 분야 진출 153
16 제약산업(製藥産業, Phamaceutical Industry) 진출 163
17 해외 생산기지 구축과 수출 국제화 177
18 기업공개(IPO, Initial Public Offering)로 국민 기업으로 186
19 호암 이병철(李秉喆) 회장의 77년 인생 197

제 2 부

20 한비 헌납과 이맹희 부회장 등장214
21 공신(功臣) 그룹의 배신224
22 이맹희 부회장의 삼성 7년 역사236
23 새로운 꿈, 전자산업 - 삼성전자242
24 아버지의 원대한 건설 개발 꿈 252
25 삼성 퇴진 무렵 벌어진 불행한 일들 261
26 갈수록 벌어진 부자(父子)의 고랑268
27 드디어 내려진 총수 승계 선언277
28 어머니, 고마운 어머니284
29 나의 이력, 우리집 내력291
30 커피(Coffee, Maxwell) 공장의 꿈302
31 프란체스카(이승만 대통령 부인) 여사와 제일모직 옷감308
32 죽어가는 땅을 살리는 길. 유기비료317
33 삼성(三星)은 월남전 특수를 외면했다324
34 성숙되지 않은 호텔(Hotel) 문화329
35 삼성그룹 안양 컨트리클럽(현 안양 베네스트골프클럽)337
36 뇌물을 주고 나면 공사는 반드시 부실화된다345
37 큰 것과 작은 것은 잘 어울릴 수 있다348

제 3 부
38 식품 사업 새 역사를 쓰다 359
39 토종 패밀리 레스토랑 빕스(VIPS) 탄생 369
40 영상(映像)미디어 사업 진출 379
41 멀티플렉스(Multiplex, 복합영화관) CGV의 탄생 394
42 미래 성장을 위한 M&A, 지주회사 출범 (기업합병) 405
43 식품 사업의 글로벌 진출 415
44 위대한(Great) CJ의 선언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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