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경주 남산의 스물여섯 골짜기를 모두 자기 발로 직접 걸어 보고 그 안에 어떤 문화유산이 숨어 있는지 누구보다 깊이 살펴본 이가 있다. 바로 이 글의 화자인 고청 윤경렬(古靑 尹京烈, 1916~1999, 이하 고청) 선생이다. 고청은 고향 함경북도 주을에서 경상북도 경주까지 내려와 마지막 신라인이 된 사람이다.
고청은 신라의 아름다움을 고구려의 억셈과 백제의 부드러움이라고 할 만한 차이를 하나로 융합하는 데 있다고 정의한다. 고청의 생각을 빌어 말하자면 신라인들은 통일 이전까지 적대하던 세 나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다양성을 배척하지 않고 하나로 일치시켜 석굴암과 안압지, 그리고 남산의 불상과 석탑들에 담긴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포함’과 ‘무애’의 가치가 신라의 아름다움 속에 이미 담겨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신라의 아름다움을 향한 고청의 생애가 이렇게 ‘포함’과 ‘무애’로 자연스럽게 귀결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남산에서 살다 간 원효와 최치원과 김시습 세 분이 고청과 대화하는 형식을 빌려 경주 남산을 포함과 무애의 공간으로 승화시켰다.
출판사 리뷰
△ 책의 의의
경주 남산은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산 전체에 걸쳐 품고 있다. 서라벌을 지키는 산이자 서라벌이라는 속세 옆에서 해탈의 길을 열어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바위마다 있는 부처님과 봉우리마다 세워진 탑과 빈터마다 들어선 절은 모두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으려는 원념의 소산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해탈과 사바의 세계를 나누어 어느 한쪽을 버리지 않듯이, 서라벌과 남산은 별개가 아니다. 성(聖)과 속(俗)이나 부귀(富貴)와 빈천(貧賤)과 같은 속세의 온갖 구별이 무애(無涯)하게 하나가 된다. 원효대사가 추구했던 무애의 공간이다.
남산이 해탈과 사바라는 구분을 넘어선 무애한 공간이라는 말은 최치원이 말한 ‘풍류(風流)’와 ‘포함삼교(包含三敎)’의 속뜻과도 닿아 있다. 셋을 달리 보지 않고 하나로 아울러 뭇 생명을 살리는 조화의 길을 추구하는 데 최치원의 풍류가 있다면, 남산이야말로 유교와 불교와 도가를 비롯해 서로 다른 길이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드는 공간이니 실로 무애이자 포함이다. 최치원이 남산에서 자기 사유를 닦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주 남산의 스물여섯 골짜기를 모두 자기 발로 직접 걸어 보고 그 안에 어떤 문화유산이 숨어 있는지 누구보다 깊이 살펴본 이가 있다. 바로 이 글의 화자인 고청 윤경렬(古靑 尹京烈, 1916~1999, 이하 고청) 선생이다. 고청은 고향 함경북도 주을에서 경상북도 경주까지 내려와 마지막 신라인이 된 사람이다. 신라와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연구하고 널리 알리는 일에 평생을 바쳐 ‘살아 있는 신라인’으로 불렸고 자서전에서도 스스로 『마지막 신라인 윤경렬』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아름다움을 향한 한없는 경외심을 품은 채 오롯이 경주와 신라를 끌어안고 살아온 이의 삶에서 포함과 무애의 가치는 어떻게 드러날까? 이를 추적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고청의 자서전에 담긴 내용을 빌려 그 생애와 남산에 관해 연구한 이야기를 구술의 형식으로 재구성하였다.
△ 책의 간략 소개
고청이 개성을 거쳐 경주로 향하게 된 계기는 공교롭게도 한국 미술사의 시조였던 우현 고유섭 선생에게 있다. 우현 선생은 고청에게 “신라를 알고 싶으면 경주에 가 살아라. 겨레의 혼을 알고 싶으면 서라벌의 흙냄새를 맡아라. 한국 불교의 원류를 찾으려 한다면 경주 남산에 가 보아라”라는 가르침을 준다. 고청은 경주에 살면서 근화여중 미술 교사로 근무하는 한편 풍속 인형연구소 고청사(古靑舍)를 세워 신라인의 얼굴과 풍속을 기초로 한 인형과 기념품을 만들며 생애를 보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경주 어린이 박물관학교〉를 설립해 어린이들에게 신라와 한국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일을 해 왔으며, 옛 역사 기록과 함께 남산을 구석구석 답사하여 『겨레의 땅 부처님 땅』이라는 역작을 남긴 뒤 1999년 세상을 떠난다.
고청은 신라의 아름다움을 고구려의 억셈과 백제의 부드러움이라고 할 만한 차이를 하나로 융합하는 데 있다고 정의한다. 고청의 생각을 빌어 말하자면 신라인들은 통일 이전까지 적대하던 세 나라 사람들이 만들어낸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다양성을 배척하지 않고 하나로 일치시켜 석굴암과 안압지, 그리고 남산의 불상과 석탑들에 담긴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포함’과 ‘무애’의 가치가 신라의 아름다움 속에 이미 담겨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고청은 신라의 아름다움 하나를 줄기차게 파고들어 삼국의 아름다움이 신라에서 하나로 ‘포함’되고 ‘무애’하게 된다는 더 넓고 깊은 가치에 도달한다. 이는 그가 신라의 아름다움을 일컬어 “작은 것에 큰 것이 숨겨져 있고, 작은 탑이 산과 연결되어 구름이 걸릴 듯한 높은 탑으로 승화하고, 만들다가 만 듯한 미완성 불상이 뒤편 바위산과 연결되어 산봉우리가 법당으로 변한다”라고 말한 것과 그대로 통한다.
이 책에서는 신라의 아름다움을 향한 고청의 생애가 이렇게 ‘포함’과 ‘무애’로 자연스럽게 귀결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남산에서 살다 간 원효와 최치원과 김시습 세 분이 고청과 대화하는 형식을 빌려 왔다. 고청과 원효, 최치원, 김시습과의 대화라는 플롯을 짜려면 남산 구석구석에 묻어 있는 세 사람의 흔적을 찾아야 했다. 원효가 표방했던 ‘무애’한 민중불교의 이상은 남산 바위에 얼기설기 새겨진 소박한 부처님들 속에 들어 있다. 원효가 요석공주를 얻어 설총을 얻기에 이른 파계의 시작은 남산 초입에 걸려 있는 월정교이다. 조락하는 신라를 일으켜 세우려던 최치원의 이상을 길러준 곳은 남산 문턱 상서장과 건너편 낭산 독서당이다. 김시습은 세조가 단종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했던 계유정난(癸酉靖難) 이후 속세를 등지고 승려가 되어 남산 용장골 용장사에 주석하며 조선 최초의 소설집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집필한다.
이 책은 경주 남산을 포함과 무애의 공간으로 승화시켰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정빈나
성균관대학교에서 중국철학으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2022). 감리교신학대학교, 성균관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등에 출강하는 한편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문화연구소 연구원을 맡고 있다. 저서는 『한중일 동양3국의 혁신유학』(2022, 공저), 『철학자와 예술가의 이야기마당』(2021, 공저), 『철학자의 창고』(2022, 공저)가 있다. 「유학의 ‘서’와 기독교의 ‘용서’ 관념 간의 대화」(2024), 「혐오에 저항하는 실천주체로서의 군자상에 관한 연구」(2023), 「청대 학술사에 나타난 유교 지식론의 사상적 전환」(2022)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목차
책을 여는 글 5
1. 꼴꼴꼴, 술 따르는 오후 15
2. 상서장에 세운 뜻은 27
3. 불곡 감실부처님과 빛의 예술 47
4. 부처바위 가득 새긴 불국정토 61
5. 사천왕사와 망덕사를 바라보며 77
6. 거문고갑을 쏴라 95
7. 원효 스님과 함께 오르는 칠불암 107
8. 천룡사에 얽힌 설화들 149
9. 꿈속에 또 꿈이로세, 용장사에서 만난 설잠 스님 165
10. 서남산 자락을 걸어가면 193
11. 월정교 다리 위에 남긴 이야기들 213
12. 최씨 종택에 품은 뜻은 227
맺음말 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