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문학과사회 하이픈』 151호는 ‘젠더-플레이’를 키워드로, 최근 청년 세대의 정체성 담론 및 재현에서 ‘젠더’가 작동하는 방식을 면밀히 이해해보고자 한다. 여섯 편의 글과 좌담이 흔히 주목되는 ‘갈등’과 ‘경쟁’의 논법을 넘어 그러한 언술의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언어를 전망하는 자리에 함께 한다.
이희우의 「우리의 일그러진 리바이어던─‘청년 남성 극우화’라는 사회적 사실의 구성」은 청년 남성의 극우화를 사회적 사실로 확인하는 사회학적 방법론이 내포한 재귀적 순환 논리를 비판적으로 드러내면서, 그러한 ‘확인’을 통한 ‘승인’을 넘어 사실을 변화시켜갈 수 있는 동력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를 다룬다.
인아영의 「비남성성의 남성성─우경화 시대 한국 남성들의 불안과 교착」은 기존의 남성성이 ‘한남’이라는 말을 통해 부정하고 부인해야 할 군집으로 여겨지는 장소들에서 남성이 처하는 이중 구속의 상태에 주목한다. 안세진의 「사라지는 청년 남성의 몸들─서장원의 최근 소설을 중심으로」는 ‘인셀’과 ‘알파 메일’의 이분법적 구도 안에서 괄호 쳐지는 것을 넘어 적극 삭제되는 남성‘들’의 몸‘들’에 주목하며 서장원의 소설 네 편을 읽는다.
출판사 리뷰
■ 서문 :
가을호를 펴내며
부대낄 신체가 닿지 않는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수업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면 처음에는 대부분 윤리적·미적·지적·사회적 가치에 관한 답변이 나온다. 인간이란 이런 존재라고 교육받으면서 합의한 내용들이 단순 반복 된다. 외계인을 만나면 인간을 어떻게 설명할 것 같나요. 질문을 바꾸면 인간은 생물학적·물리적·화학적·공학적 존재로 탈바꿈한다. 몸에서 차지하는 물의 비중은 몇 퍼센트이고 체온조절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손가락 관절을 움직여 작은 도구를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순수 물리력으로 어떠한 가속도에 도달해 어떤 생활 반경을 가지게 되었는지 등. 종의 특성을 이야기하다 보면 신체성이 어떻게 구분되고 어떤 기능을 수행하며 어떤 사회를 구성해가는지에 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때로 이런 문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은 여성과 남성으로 나누어지는데, 남성이 여성에 비해 신체가 크고 힘이 세기 때문에 태초부터 경제적 역할을 담당해왔고, 남성 중심적으로 기술과 사회가 발전해왔으며, 과거에 비해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오랜 제도의 효율성을 따져보았을 때 남성은 경제적·사회적 활동을 담당하고 여성은…… 인간의 연대기를 만드는 이토록 긴 문장 안에서 인간, 여성, 남성에 대한 ‘지식’이 구성되고 배치되는 방식을 흥미롭게 이야기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기억 속 장면을 꺼내는 이유는, 이 문장의 화자가 ‘여성은……’에서 나와 눈을 맞춘 다음 이어진 침묵을 환기하고 싶기 때문이다.
때로 젠더 문제에 대한 주목과 물음의 시선에는 집단과 집단을 분리하고 특정 집단을 격리시키는 방식으로 문제를 방치하거나 심화하게 되는 지점이 포함된다. 젠더란 언제나 관계성 속에서 ‘상대적으로’ 언어화되고 가시화되며 정치화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젠더에 대한 논의를 반복할 때에 중요한 것은 그러한 조건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동시에 조건 자체에 개입할 수 있는 언어적 가능성을 찾아가는 것일 듯하다. 이번 『문학과사회 하이픈』은 ‘젠더-플레이’를 키워드로, 최근 청년 세대의 정체성 담론 및 재현에서 ‘젠더’가 작동하는 방식을 면밀히 이해해보고자 한다. 여섯 편의 글과 좌담이 흔히 주목되는 ‘갈등’과 ‘경쟁’의 논법을 넘어 그러한 언술의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언어를 전망하는 자리에 함께 한다.
이희우의 「우리의 일그러진 리바이어던─‘청년 남성 극우화’라는 사회적 사실의 구성」은 청년 남성의 극우화를 사회적 사실로 확인하는 사회학적 방법론이 내포한 재귀적 순환 논리를 비판적으로 드러내면서, 그러한 ‘확인’을 통한 ‘승인’을 넘어 사실을 변화시켜갈 수 있는 동력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를 다룬다. 사회학의 방법론과 ‘일그러진 리바이어던’의 형상이 겹쳐지는 장면들을 층층이 살펴내는 이 글은 한 사회학자의 작업을 대상으로 하지만 그것을 경유하여 지식의 방법 자체,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의 구조, 세계의 사실 앞에 서는 개인들의 믿음 체계와 ‘능력’을 해석하는 프레임을 향해 단계적으로 나아가 ‘오늘의’ 사실에 대한 우리 모두의 사고에 닿는다. 이희우가 강조하고자 하는 ‘능력’이라는 단어는 누구에 비한 무엇이 아니라 누구와도 나란히 있다는 보편 조건이다. 서로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으로부터 사실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을 다만 승인하고 방치하며 지속시키면서 반복해나가지 않을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개시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무수한 글쓰기 행위와 더불어 문학의 언어적 실천에 닿음으로써 말들을 불러들인다. 이곳의 사실들 속에서 언어가 위계의 형식이 되지 않게 할 수 있음을 믿는 이희우의 언어는 그 믿음이 공유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물음들 역시 모여드는 장소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인아영의 「비남성성의 남성성─우경화 시대 한국 남성들의 불안과 교착」은 기존의 남성성이 ‘한남’이라는 말을 통해 부정하고 부인해야 할 군집으로 여겨지는 장소들에서 남성이 처하는 이중 구속의 상태에 주목한다. 여전히 ‘그들’과의 경쟁 관계에서 살아남기를 도모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들’과는 다른 ‘좋은’ 남자라는 자의적·타의적 구분은,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비남성성’과 매혹적이고 강인한 ‘남성성’을 동시에 추구할 것을 요구하는 장치가 된다. 이 글은 김남숙과 서장원의 소설을 통해 현재 남성이 경험하는 ‘젠더 현기증’이 (여전히 전형적으로 구분되는) 여성의 시선을 다각도로 경유하고 있음을 가시화하고, 예소연의 소설이 보여주는 아버지 –딸 사이의 쌍방향적 일방성을 초과하는 ‘혁명’이 이 ‘현기증’으로부터 개시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그 전망을 ‘비남성성의 남성성’이라는 말로 응집시키고자 하는 이 글의 언어는, 남성성이라는 단어가 부정의 방식으로 반복되어야 하는 이유와 부정의 방식으로까지 반복되어야 하는 이유를 겹쳐 질문하게 한다.
안세진의 「사라지는 청년 남성의 몸들─서장원의 최근 소설을 중심으로」는 ‘인셀’과 ‘알파 메일’의 이분법적 구도 안에서 괄호 쳐지는 것을 넘어 적극 삭제되는 남성‘들’의 몸‘들’에 주목하며 서장원의 소설 네 편을 읽는다. 필자 스스로 과잉 대표의 문법 안에 배치되어 있다는 의식과 그 대표성의 어떤 어휘로도 설명되지 않는 몸이 여기에 있다는 감각이 만나, 몸이 놓여 있는 ‘경계’적 위치와 그 현재를 기록해야 한다는 글쓰기의 윤리로 필자를 이끈다.
그 기록의 여정은 ‘남성’의 몸을 응시하고 언어화하는 서장원의 문학적 글쓰기와 밀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서장원의 소설이 연속적으로 그려온 ‘이상적 남성성’과 남성의 몸, 몸과 ‘남성적 폭력’, 폭력성과 매혹의 관계성을 들여다보면서, 이 글은 그러한 관계 구도를 만들어내는 시선의 층위를 논점화한다. 요컨대 안세진의 언어는 ‘무대’를 만들고 그 위에 어떤 신체를 배치하며 그 몸에 의미값을 부여하는 시선의 끝에서 개별의 몸이 던지는 질문들을 아득히 가늠하고자 한다. 언제나 ‘전시’되는 방식으로 드러나는 신체들에 대한 문제의식은, 신체적 특수성이 과잉 의미화되는 젠더-플레이의 문법과 신체적 특수성을 개별적으로 의미화하는 젠더-플레이의 논법이 겹쳐지는 자리에 대한 물음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라영의 「정상의 귀환, 정상적인 차별의 시간」은 최근의 광장을 전후로 한 시간의 궤적 속에서, 여성이 가시화되고 바로 그럼으로써 지워지게 되어온 양상을 명징하게 언어화한다. ‘폭주하는 남성성’에 저항하는 광장에서 여성들은 ‘소녀’로 ‘재발견’되고, 광장 이후 대선의 문법에서는 말끔히 삭제되거나 미래의 ‘엄마’와 현재의 ‘아내’로서만 가시화되면서, 소수자의 시간을 현재로부터 유예시키는 권력의 시간 속에 거듭 놓인다. 이 글은 여성을 지우려는 의도적 시선들에 의해서만 재현되는 여성의 위치를 확인함과 동시에, 그러한 시선과 길항하는 가운데 새로워질 시간의 기반을 끝내 마련해가는 동력이 있음을 강조한다. 젠더가 통치의 수단이자 도구, 체제이자 ‘정상’성으로 플레이될 때 ‘플레이어’의 권력을 비판하는 일은 기대와 바람을 넘어 그 힘의 구체를 어떻게 언어화–시간화해갈 수 있을까. 믿음은 방법을 요청하고, 이 글은 그 요청과 더불어 ‘시계’라는 정치적 상징을 넘어서는 언어에 대한 질문을 마주한다.
안희제의 「젠더의 새벽─‘남자구실’과 낡은 꿈의 불침번」은 젠더가 단일 변수로 주목받을 때 반복되는 정치적·자기 환원적·폐쇄적 도구화의 문제를 지적한다. 이 글은 유권자 창출을 위한 언술 속에서 만들어지는 ‘2030 남성’의 이미지에서 실제적이고 현재적인 삶의 개체로서의 ‘남성’이 아닌 되어야 할 것, 해내야 할 것으로서의 ‘남자’가 패권을 잡고 있는 양상을 분석하면서, ‘남자’를 작동시키는 감각을 이해하고자 한다. 아버지와 같은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세대론적 꿈, 어차피 돌파할 수 없는 계급 불균형 앞에서 ‘가장’의 꿈을 이루기 위해 게임에서처럼 그저 몸을 던진다는 계급적 자기 인식이 ‘남자구실’에 붙박인 ‘남자’의 내부 논리라고 안희제는 지적한다. 그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남자’, 즉 젠더를 세대와 계급은 물론 지역·노동·‘엘리트’의 문제를 잠들어 있되 꿈꾸지 못하게 만드는 ‘불침번’으로 비유하는 점이다. 젠더로 하여금 잠 못 든 채로 게임 같은 꿈을 꾸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더불어, 젠더를 불침번으로 비유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이 글과 함께 던져볼 수 있다.
배하은의 「다이너마이트를 좋아하는 그들은」은 여대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했다는 허위 이메일 속 ‘다이너마이트’ 라는 구체적인 용어에서 조커의 이미지를 읽어내면서, 동전 던지기 같은 ‘공평함’이 조커식 ‘저항’의 방법이라 믿는 이들의 불안을 분석한다. 끊임없이 ‘외부’를 만들면서 공정 이데올로기를 작동시키는 ‘그들’의 도덕은 니체의 용어를 빌려 노예도덕으로 설명된다. 노예도덕의 신자유주의적 작동에 대한 꾸준한 비판들을 환기하면서, 이 글은 레비나스를 참고한 버틀러의 이론을 통해 윤리의 다른 양태를 언어화하고자 한다. 타인이 나를 해칠지 모른다는 불안에 내가 타인을 해칠지 모른다는 불안이 더해지는 딜레마의 상태가 담론 자체의 상황이라는 버틀러의 설명을 통해, 세월호 이후의 광장들을 채운 (다이너마이트가 아닌 ) 촛불을 바라보는 배하은의 접근은, 이론으로 실천을 의미화하고 실천에서 이론의 지속 가능성을 확인하는 순환의 힘과 그 테두리를 생각하게 한다. 촛불의 사유와 실천은 다이너마이트의 사고와 행위를 어떻게 포섭할 수 있는가. 담론 상황에 대한 신뢰로 실제 상황의 장면들을 어떻게 벼려갈 것인지에 관해 함께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섯 편의 글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젠더 구분이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화되고 장소화되는 방식을 드러내면서 젠더 규정, 재현, 실천의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 수행성을 맥락화한다. ‘플레이’라는 말은 그 수행성을 하나의 방향이 아닌 복수의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장치일 것이다. 젠더는 사회라는 공간과 그 안에서 유통되는 언어와 문법, 그것을 공유하는 동시에 위계적으로 활용하는 타자적 존재들과의 관계 속에서 구분되고 역학을 작동시키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권희진 소설가, 송희지·유선혜 시인, 하혁진·소유정 평론가가 함께 꾸린 좌담 「중간 지대를 만들어가는 일」은 ‘플레이’되는 젠더의 복잡성에 관하여 충분히, 솔직하게, 재단이나 포기 없이 이야기 나누기 위하여 개인과 사회, 문학과 제도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세밀한 결로 나누어 다룬다. ‘플레이’라는 말을 게임이나 경기에서의 협의로부터 작거나 큰 어느 공간, 장소로든 이동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자리에 더불어 앉아, 이번 기획에서 미처 다루어지지 못한 이야기와 더 밀고 나가야 할 언어 들을 함께 찾아주시기를 바란다.
*
문학의 언어는 기실 늘상 다채로운 방법으로 한곳에 모이고, 흩어지고, 다시 모이기를 반복한다. 그 움직임에 이번 계절에도 동행할 수 있어 기쁘다. 창작란에서는 천양희, 김정환, 이장욱, 김이듬, 박연준, 주민현, 기원석, 박다래, 오석화 시인의 시와 김숨, 정용준, 서장원 작가의 소설을 만난다. 이승우 작가의 연재는 지난 계절에 이어 2회차로 계속된다. 신작들과 가을의 공기를 나누어 쉬면서, 높아지는 하늘을 내다보듯 더 멀리 시선을 던져보시기를 바란다. 리뷰 코너에서는 최가은, 김웅기, 박상수, 김정빈, 최의진, 김미정, 김보경, 박민아, 이지연, 강동호 평론가가 지난 계절의 시와 소설, 비평을 가까이 읽고 쓴 글을 나눈다. 읽기의 언어를 공유하고 또 재미있는 차이들을 발견하면서, 문학에 관한 이야기의 장을 함께해주시기를 바란다.
메타비평 코너에는 두 편의 글을 싣는다. 김항의 「영화와 정치, 혹은 각성과 냉소 사이─하스미 시게히코의 『제국의 음모』 읽기」는 하스미 시게히코가 루이 보나파르트를 대문자적 ‘역사’ 속에 자리매김한 마르크스의 작업을 비틀면서 “조금도 본질적이지 못한 취급을 받아온 역사성”의 요소들을 가시화하는 ‘영화비평적’ 방법에 집중한다. “영화의 등장으로 거대서사가 이미 언제나 형해화되어 있음을 간파한 하스미의 비평”의 매력을 김항의 언어를 경유하여 가까이 체험해볼 수 있다. 이승윤의 「벼농사에서 소셜 케이지까지: ‘불평등’의 역사적 계보와 구조적 전환의 과제─이철승의 『불평등의 세대』 『쌀, 재난, 국가』 『오픈 엑시트』를 중심으로」는 이철승의 ‘불평등 3부작’을 아우른다.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벼농사 체제, 386세대의 자원 동원 네트워크, 그 유산이 축적된 ‘소셜 케이지’의 문제로 읽어낸 저자의 작업을 세밀히 짚어가면서, 이승윤은 실제로 불평등으로부터의 ‘엑시트’가 가능하기 위해서 “자본이 노동에 대해 갖는 구조적 권력관계에” 대한 논의를 어떻게 더하여 확장해야 할 것인가를 질문한다. 실증적 통찰에 대한 전망 역시 실증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불평등에 대한 지적 논의의 미래를 더불어 고민할 것을 독자에게 제안한다. 서사화 작업을 수행하는 동시에 그것을 쉼 없이 경계하는 태도로 만나는 두 글을 통해, 끊임없이 읽고 해석하는 비평과 지식의 자리를 점검해보기를 권한다.
마지막으로, 2025년 박화성소설상 수상작으로 윤신우의 「0시의 새」가 선정되었음을 기쁜 마음으로 전한다. 수상자에게 진심 어린 축하와 응원의 마음을 건넨다. 수상작에 대한 심사평과 수상 소감은 본권 지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말해지거나 말해지지 않은 언어가 그 앞에 있는 나를 자각하게 만드는 때가 있다. 말은 상(像 )을 만들고, 우리는 그 상과 씨름한다. 씨름이 몸과 몸을 맞대어 겨루는 일이라면, 말과의 씨름은 부대낄 신체가 닿지 않는 황망함과도 더불어 마주하는 일이다. 상을 주고받으면서 그 너머의 몸과 몸으로 만나는 순간, 그렇게 각자의 황망함을 같이 관통해 가는 시간을 생각한다. 지금이거나 지금이 아닐, 그러나 언제고 지금일 시간을.
편집동인 홍성희
청년 세대에서 젠더가 작동하는 방식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갈등’과 ‘경쟁’의 논법을 넘어 언술의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언어를 전망하기
「우리의 일그러진 리바이어던―‘청년 남성의 극우화’라는 사회적 사실의 구성」 _이희우
사실 글을 쓴다는 것, 익명의 다수가 읽기를 바라며 글을 발표한다는 것, 읽는 사람을 미약하게나마 변화시키기를 바란다는 것, 그 모든 일은 글을 읽는 아무개의 평등한 능력에 대한 믿음에 기반한다. 그 믿음이 없으면 글을 쓰고 발표하는 모든 일은—어떤 종류의 글이건 간에—의미가 없다. 말의 전달을 위해 가정되어야 하는 것은 ‘정체성’도 ‘전문성’도 아니다. 대부분의 인간이 모국어를 배울 때 발휘한 바 있는, ‘아무개로서 아무개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그 평범한 능력일 뿐이다. 우리가 다른 삶을 산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면 오직 그 능력을 통해서다. 차이 있는 사람과 연대할 수 있는 것도 오직 그 능력을 통해서다. 우리가 통계에 의해 식별되는 ‘사회적 정체성’에서 이탈해 변화를 만들어내는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 평범한 능력을 통해서다. 문학은 그 평범한 능력의 가장 주의 깊은 사용이다.
「비남성성의 남성성―우경화 시대 한국 남성들의 불안과 교착」 _인아영
‘비남성성의 남성성’은 기존의 남성성이 약화·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부인·회피되는 자기부정의 형태로 남아 남성성과 비남성성이 모순적으로 착종되어 있음을 뜻한다. 바바라 리즈만의 용어를 빌리자면, 전통적인 성별 배치가 더는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을 가지고는 있지만 성평등적인 대안을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않거나 못하는 상황에서 겪는 일종의 ‘젠더 현기증gender vertigo’이라고도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동시대 한국 남성들이 관습적인 의미의 남성성으로부터 벗어나 비남성성을 체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비)남성성이라고 여겨져온 성질을 실제로 내면화하거나 실천하는 정도와는 별개로, 남성성이 구성되는 방식에 형질 변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오히려 젠더 권력을 은폐된 방식으로 재생산하거나 기존의 남성성을 반성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차단할 수 있으며, 남성성과 비남성성 사이의 간극을 감당하거나 양자를 모두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력으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폭력으로 전화될 위험이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남성성과 비남성성이 불가분하게 뒤엉겨 있다는 것 자체가 어떤 전환점에 도달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라지는 청년 남성의 몸들―서장원의 최근 소설을 중심으로」 _안세진
끊임없이 퀴어해지는 청년 남성의 몸과 그것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는 이분법적인 명명들 사이의 괴리 속에서, 문학이야말로 그 스펙트럼의 세부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아직도 믿고 있다. 그러나 동시대 한국문학에서 2030 남성들의 몸은 정말로 충분히 다루어져왔을까? 나는 지금 분명하게 퀴어문학이 그려온 성좌(星座)를 염두에 두고 발화하고 있다. 나는 게이문학이 그동안 남성의 몸에 대해 매우 정치적이고 또 미학적인 탐구를 벌여왔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소위 이성애 규범적 사회 속에서 통용되는 ‘패권적 남성성’을 되비추는 비판적 거울이 되어주기도 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 역시 그 속에서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를 ‘정상 남성’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내 친구들의 퀴어한 몸과, 그것이 일방적으로 매도되거나 혹은 어떤 혐오를 위한 총알로 봉합될 때 느껴지는 그 끔찍한 자기–소외의 경험이 아직 충분히 탐구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싶다.
목차
| 본권 |
가을호를 펴내며
시
천양희 사람에 대한 최근의 생각 1 외 1편
김정환 고골(1809~1852) 번역 외 1편
이장욱 추리소설 외 1편
김이듬 귀여운 여인 외 1편
박연준 이제 대화는 기계하고만 나누는 인류 외 1편
주민현 보따리 안기 외 1편
기원석 파도치는 방 외 1편
박다래 카페에서 일어나서 카페 가기 외 1편
오석화 서정 외 1편
소설
김숨 딸기 따러 간 여자들
정용준 검침원
서장원 뱀이 있는 곳
이승우 집으로 가는 중[장편 연재 2회]
리뷰
최가은 미래의 한 장소를 소진하려는 시도
—김뉘연, 『이것을 아주 분명하게』(문학과지성사, 2025)
—안미린, 『희소 미래』(현대문학, 2025)
김웅기 슬픔 채록
—서윤후, 『나쁘게 눈부시기』(문학과지성사, 2025)
—조온윤, 『자꾸만 꿈만 꾸자』(문학동네, 2025)
박상수 삼키기와 지도 그리기
—남진우, 『숲속의 대성당』(문학과지성사, 2025)
—송재학, 『습이거나 스페인』(문학과지성사, 2025)
김정빈 시 읽기와 의미
—김종연, 『검은 양 세기』(민음사, 2025)
—김복희, 『보조 영혼』(문학과지성사, 2025)
최의진 복선의 세계
—김보나, 『나의 모험 만화』(문학과지성사, 2025)
—신이인, 『나 외계인이 될지도 몰라』(문학동네, 2025)
김미정 어긋남과 손실과 비밀
—김애란, 『안녕이라 그랬어』(문학동네, 2025)
김보경 소설의 분열과 공백
—남현정, 『아다지오 아사이』(문학과지성사, 2025)
—장진영, 『우아한 유령』(민음사, 2025)
박민아 멸망 없이, 내일 없이
—공현진,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문학과지성사, 2025)
—기준영, 『내일을 위한 힌트』(문학동네, 2025)
이지연 불순함과 공존하기
—성해나, 『혼모노』(창비, 2025)
—강보라,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문학동네, 2025)
강동호 말년의 눈[雪/眼]에 관하여
—김주연, 『포스트휴먼과 문학』 『강원도의 눈』(문학과지성사, 2025)
메타비평
김항 영화와 정치, 혹은 각성과 냉소 사이
—하스미 시게히코의 『제국의 음모』 읽기
이승윤 벼농사에서 소셜 케이지까지: ‘불평등’의 역사적 계보와 구조적 전환의 과제
—이철승의 『불평등의 세대』 『쌀, 재난, 국가』 『오픈 엑시트』를 중심으로
2025년 박화성소설상 발표
윤신우 0시의 새
색인
정기 구독 안내
| 하이픈 | 젠더-플레이
이희우 우리의 일그러진 리바이어던—‘청년 남성 극우화’라는 사회적 사실의 구성
인아영 비남성성의 남성성—우경화 시대 한국 남성들의 불안과 교착
안세진 사라지는 청년 남성의 몸들—서장원의 최근 소설을 중심으로
이라영 정상의 귀환, 정상적인 차별의 시간
안희제 젠더의 새벽—‘남자구실’과 낡은 꿈의 불침번
배하은 다이너마이트를 좋아하는 그들은
[좌담] 권희진‧송희지‧유선혜‧하혁진‧소유정 중간 지대를 만들어가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