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고미야 도요타카의 해설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의 명작 단편. 일본의 문호인 나쓰메 소세키는 단편보다 장편이 더 많이 읽히고 더 많이 논의되는 작가다. 이는 단편이 갖는 약간의 난해함과 작품을 읽어도 그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없는 모호성 때문인 듯하다.
이 책에 실린 해설을 쓴 고미야 도요타카는 소세키의 제자이자 신봉자로, 소세키 연구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람이다. 소세키와 시대를 함께하며 그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던 고미야 도요타카의 해설과 함께 소세키의 단편이 갖는 의의를 살펴보시기 바란다.
출판사 리뷰
새로 옮기고 다듬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속 ‘꿈’과 ‘시’
『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의 이전 판들에 몇 가지 첨삭을 가하고, 새로 옮기고, 다듬어서 이번 (개정증보판)『나쓰메 소세키 단편소설 전집』을 내놓게 되었다.
외형적으로 이전 판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수록작에 있는데 이전 판들에 수록되었던 「이백십일」을 빼고 그 대신 「칼라일 박물관」을 넣었다. 「칼라일 박물관」은 기행문으로 보는 견해도 있기에 이전 판들에 싣지 않았던 것인데, 소세키 자신이 살아 있을 당시 다른 소설들과 이를 한데 묶어서 단편집을 낸 일도 있기에 이번 판에는 「칼라일 박물관」을 수록했다. 또한 「이백십일」은 중편으로 보는 견해도 있기에 이번 판에서는 빼고 다음에 또 다른 중편인 「도련님」과 하나로 묶어서 출간할 예정이다.
또 다른 외형적 차이는 책 뒤에 고미야 도요타카의 해설을 수록했다는 점이다. 이전 판들을 읽으신 독자 가운데 단편의 의미에 대해서 물으시는 분이 간혹 있었기에 이번 판에는 소세키 연구의 권위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고미야 도요타카의 해설을 실었다. 작품과 함께 읽으면 소세키의 작품뿐만 아니라 인물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위의 외형적 변화뿐만 아니라 번역에도 대대적인 수정을 가했다. 첫 번째 판을 낸 이후 약 7년이 흘렀는데, 지금 와서 읽어보니 번역에 오류도 많았고 억지스럽게 번역한 부분도 많았다. 이에 수록작 전부를 거의 다시 번역하다시피 해서 이번 판을 엮었다. 원래대로 하자면 (개정판)에서 이런 작업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점은 역자와 출판사의 불찰이고, 독자께는 참으로 죄송한 일이다. 이러한 점은 깊이 반성하고 돌아보아야 할 일이지만, 늦게나마 바로잡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함과 반성과 되새김으로 엮은 이번 판을 보시고 부족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시기 바란다. 이후 판을 거듭할 때 적극 참고하기로 하겠다.
이하 고미야 도요타카의 해설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겠다.
<소세키의 ‘꿈’은 ‘현실’에게 위협받고 내몰리고 짓밟힐 것처럼 될 때마다 오히려 소세키 속에서 한층 더 그 색을 분명히 하고, 한층 더 그 반짝임을 더해간 듯하다. 따라서 소세키의 ‘꿈’에 대한 애착은 소세키가 ‘현실’에 시달리면 시달릴수록 한층 더 크게 느껴진 것이다. 소세키는 무자비하고 냉혹한 ‘현실’에 대해서, 온 몸으로 이 내면의 아름다운 ‘꿈’을 지켜내려 했다. 뿐만 아니라 소세키는 문학을 통해서 그것을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하여 관념적으로는 ‘현실’로부터 조금도 침해받지 않는 아름다운 ‘꿈’의 나라를 건설하려 했다.> ―고미야 도요타카의 해설 중에서
100세라는 나이는 기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그러나 약간 따분하다. 즐거움도 많을 테지만 괴로움도 길리라. 밍밍한 맥주를 매일같이 들이켜기보다는 혀가 타는 듯한 알코올을 반 방울 맛보는 것이 더 간편하다. 100년을 10으로 나누고 10년을 100으로 나누고 남은 시간의 절반에 100년의 고락을 싣는다면 역시 100년의 생을 누린 것과 같지 않겠는가. 태산도 카메라 안에 담기고 수소도 식으면 액체가 된다. 평생의 정을 한껏 뭉치고, 목숨을 걸 정도의 달콤함을 점으로 응고시킬 수 있다면―그러나 그것이 보통 사람에게 가능하기나 할까?―, 이 맹렬한 경험을 맛본 것은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윌리엄 한 사람뿐이었다. ―「환영의 방패」 중에서
8첩 방에 수염 있는 사람과 수염 없는 사람과 시원한 눈을 가진 여자가 모여 이와 같은 하룻밤을 보냈다. 그들의 하룻밤을 그린 것은 그들의 생애를 그린 것이다.
왜 세 사람은 만난 걸까? 그건 알 수 없다. 세 사람은 어떤 신분과 경력과 성격을 가지고 있을까? 그것도 알 수 없다. 세 사람의 말과 동작을 통틀어서 일관된 사건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인생을 쓴 것이지 소설을 쓴 것이 아니기에 어쩔 수가 없다. 왜 세 사람 모두 동시에 잠들었을까? 세 사람 모두 동시에 잠이 왔기 때문이다. ―「하룻밤」 중에서
쓰기를 마친 글자는 이상하게 흐트러져 알아보기 어려웠다. 노인의 손이 떨린 것은 늙음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여자가 다시 말했다. “숨이 끊어져 몸이 식기 전에, 오른손에 이 편지를 쥐어주세요. 손과 발 모두 싸늘하게 식은 뒤에 온갖 아름다운 옷으로 저를 꾸며주세요.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검은 천을 깐 작은 배 안에 저를 태워주세요. 산과 들의 하얀 장미, 하얀 백합을 전부 따다가 배 안에 던져주세요. ―배는 띄워 보내주세요.”
그리고 일레인은 눈을 감았다. 잠든 눈을 뜰 때는 오지 않으리라. 아버지와 오빠는 유언대로 순순히 가엾은 아가씨의 시체를 배에 실었다.
오래 전부터 흐르던 강에는 잔물결조차 죽어 바람이 분다는 사실도 모른다는 듯 고요했다. 배는 지금 초록으로 둘러싸인 그늘을 지나서 중류로 저어 나갔다. 노를 젓는 것은 오직 한 사람, 하얀 머리에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처럼 보였다. 천천히 젓는 물이 한가로이 움직여 노를 한 번 저을 때마다 납과 같은 빛을 내뿜었다. 배는 물결에 떠 있는 수련이 잠들어 있는 속으로 소리도 없이 들어갔다가, 지나쳐갔다. 꽃받침 기울여 배를 보내고 난 뒤에는, 가볍게 그려진 물결과 함께 잠시 흔들리던 꽃의 모습도 평소의 고요함으로 돌아갔다. 떠밀려 갈라졌던 잎이 다시 떠오른 표면에서는 때 아닌 이슬이 방울을 굴렸다. ―「해로행」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나쓰메 소세키
도쿄 명문가의 막내로 태어났다. 본명은 긴노스케. 당시 어머니는 고령으로 ‘면목 없다’며 노산을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12세에 도쿄 제1중학교 정규과에 입학하지만 한학 · 문학에 뜻을 두고 2학년 때 중퇴, 한학사숙에 입학해 이후 소설에서 볼 수 있는 유교적인 윤리관, 동양적 미의식, 에도적 감성을 기른다. 22세 때, 문학적 · 인간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준 마사오카 시키와 만나게 되지만, 잇따른 가족의 죽음으로 염세주의, 신경쇠약에 빠진다. 대학 졸업 후 도쿄에서 영어 교사로 있다가 1895년 고등사범학교를 사퇴하고 아이치 현의 중학교로 도망치듯 부임해 간다. 이후 런던으로 유학을 떠나지만 영문학 연구에 거부감을 느껴 신경쇠약에 걸리게 된다. 귀국 후 도쿄 제국대학 강사생활을 하다 또 다시 신경쇠약에 걸리자 강사를 그만두고 집필에만 전념하던 소세키는 1907년 아사히신문사에 입사, 직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이후 계속되는 신경쇠약, 위궤양에 시달리다 1916년 12월 9일에 대량의 내출혈이 일어나 『명암』 집필 중에 사망했다. 마지막 말은 ‘죽으면 안 되는데’였다고 한다.
목차
1. 런던탑
2. 칼라일 박물관
3. 환영의 방패
4. 환청에 들리는 거문고 소리
5. 하룻밤
6. 해로행
7. 취미의 유전
8. 문조
9. 열흘 밤의 꿈
10. 편지
해설(고미야 도요타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