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사실과 의견 사이의 모호한 회색지대를 벗어나
세상을 한층 더 높은 해상도로 바라보는 방법에 관하여코로나 팬데믹 초기, 전례 없는 질병의 창궐 앞에서 인류가 할 수 있었던 가장 손쉽고 명확한 대응은 ‘마스크 착용’을 통해 바이러스의 공기 중 확산을 막는 것이었다. 이는 기존의 현대 의학 연구에 따르면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백한 대응책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오히려 폐질환을 유발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마스크 무용론’을 펼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마스크 착용에 대한 찬반 담론 중에는 사실보다 의견이 더 많았다는 것 그리고 마스크 착용 찬성론자들이 반대론자들보다 근거가 되는 출처를 제대로 밝히는 경우가 확률적으로 더 높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이 하나 남아 있다. 바로 독립적인 연구 자료나 당국의 정보 등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밝히는 비율은 두 그룹 모두에서 절반 미만의 비율을 차지했다는 점이다. 즉, 당시 마스크 착용에 대한 찬성 및 반대 콘텐츠의 대다수가 ‘단지 의견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한쪽 의견이 사실에 가깝다고 해도 우리는 무언가를 주장하거나 수용할 때, 사실 그 자체보다는 자의적 신념에 의존하거나 우리 안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입장에 근거해 사실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하는 경향이 크다.
독일의 신경심리학자인 옌스 포엘은 이 책에서 ‘과학적으로 합의된 사실’과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의견’ 사이의 경계를 탐색할 때 우리가 꼭 염두에 두어야 할 16가지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우리가 사실을 탐색하고, 평가하고, 이해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 우리 앞의 세상에는 장애물이나 문제가 놓여 있기 마련이다. 이와 같은 인식과 추론의 오류는 우리가 이념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눈이 멀어 있지 않아도 그리고 자신을 포함해서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을 때에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처럼 끊임없이 빠지게 되는 인식과 추론의 오류들은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과학적으로 사실을 합의해나가는 과정 자체에 내재적 결함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다. 또한, 과학 연구가 실제로 어떻게 수행되고 전달되는지에 관해 아무도 대중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해준 적이 없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책은 과학적 사실을 발견하는 과정에 해당하는 네 가지 광범위한 영역을 순차적으로 따라간다. 관찰(‘살펴보기’), 가설 테스트(‘가설 검증하기’), 해석(‘해석하기’) 및 전달(‘친구에게 말 걸기’). 각 단계에서 인간은 관찰력과 기억력의 한계,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한 과도한 확신, 관찰한 사실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나 편향 등으로 인해 사실과 의견 사이에서 혼동을 범한다. 옌스 포엘은 이러한 우리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더 나은 사실을 발견하고 더욱 탁월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더불어서 옌스 포엘은 우리가 오늘날 ‘사실’이라는 지위를 부여한 놀라운 발견도 한때는 ‘의견’ 중 하나였으며, 이를 반박하는 새로운 가설이 일련의 절차를 거쳐 증명되고 나면 기존의 사실은 사실로서의 지위가 언제든 박탈될 수 있음을 이해하는, 유연한 사고의 중요성도 역설한다. 책의 말미에는 더 나은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준점들을 일종의 가이드 형식으로 요약해두어 본문의 핵심 내용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과 의견이 혼재하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 사실을 근거로 더 나은 의견을 선택할 줄 아는 ‘해상도 높은 눈’을 갖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봄직한 과학 교양서다.
“사실과 의견 그리고 해석의 경계를 구분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판단을 내리는 방법은 분명 있다매일 일정량의 커피를 마시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될까? 코로나 백신 접종은 득과 실 중 무엇이 더 클까? 건강이나 의학과 관련된 여러 매체의 영상이나 글들을 보다 보면 어떤 주장이 맞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동일한 주제를 다룬 의학 연구들인데도 상반된 결과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럴 때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실제로 일련의 연구자들이 버터, 치즈, 소금, 당근, 양파 등 요리법에 자주 쓰이는 50가지 일반 식재료에 관한 연구를 모아 분석한 결과는 우리가 겪는 이러한 혼란이 불가피함을 드러낸다. 연구자들은 관련된 과학 데이터베이스를 샅샅이 뒤져 각 성분이 암을 유발할 수 있는지, 아니면 암을 예방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결론은 놀라웠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식재료가 암을 유발하기도 하고, 반대로 예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떤 재료가 발암물질이라는 임상 연구가 있으면, 다른 연구에서는 그 반대의 주장을 한다. 물론, 때때로 여러 증거가 어느 한쪽을 사실로서 지지하는 방향으로 기울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결과는 상반되는 주장이 양립하는 상황인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욱 사실에 가까운지, 우리가 무엇을 믿고 수용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할 만한 기준은 없는 걸까?
《사실은 의견일 뿐이다》는 독일의 신경심리학자이자 학계와 대중을 잇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발히 활동 중인 옌스 포엘이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드는 핵심적인 문제를 16가지 유형으로 정리해 우리가 범하기 쉬운 인식과 추론의 오류, 과학적으로 사실을 합의해나가는 과정 자체에 내재한 문제 등에 대해 쉽게 풀어쓴 책이다.
우리는 흔히 사실과 의견을 명확히 구분하기 쉽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가령, 많은 사람이 과학 이론이나 과학적 개념들을 확고한 사실이라고 의심하지 않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행성이 단순히 행성이라면, 명왕성에 왜소행성 지위를 부여하기로 한 결정을 투표에 부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작은 입자의 세계에서도 의견과 사실의 경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항상 명확하지는 않다. 원자의 존재도 엄밀한 과학적 연구와 협의의 단계를 거쳐 사실로 인정되기 전까지는 그저 의견일 뿐이었다.
이는 비단 과학 영역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우리는 삶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사실과 의견’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게다가 디지털 통신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사실과 의견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만들거나 조작해 이른바 ‘가짜 뉴스’를 유포하며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이를테면, 이미 과학적인 지표들이 명명백백함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 부정론’을 주장하며 파리기후협정 탈퇴 선언을 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더 사실과 의견을 또렷이 구분하는 일이 중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과 의견의 차이는 “이 방의 온도는 섭씨 23도입니다”와 “오늘은 티셔츠를 입기 좋은 날씨네요”의 차이와 같다. 온도를 측정하는 것은 과학의 영역이고, 어떤 옷차림이 좋을지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과학이 아니다. 여기까지는 분명하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자신의 의견에 대한 권리는 있지만, 사실에 대한 권리는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이 책에서 계속 다루겠지만, 사실과 의견 그리고 해석의 경계를 구분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심리학과 자연과학 그리고 우리가 이해하는 세상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하나의 의견을 확립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실이 필요한 것일까?”포엘에 따르면, “사실이 의견의 근거가 되는 것이 옳지만, 때로 의견이 사실을 다루는 방법을 결정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현실에서 이 둘을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면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하게 바람직한 방법은 “과학적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기가 왜 그토록 어려우며, 때로 불가능하기도 한지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이다. 쉽게 말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실에 무턱대고 동의하기 전에 ‘가능한 신뢰할 수 있는 사실’에 어떻게 접근할지에 대해 먼저 합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 이미 내재하는 의견이나 입장은 우리가 사실을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장애물로 작용할 때가 많다. 하지만 어떤 관찰을 통해 수립한 가설(하나의 ‘의견’)은 그것이 학계가 합의한 일정한 절차를 제대로만 준수하고 증명된다면 과학적 진보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책에서는 ‘과학적 가설의 모범 사례’로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언급한다. 아인슈타인이 1915년 주장한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휘어진다(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것이 핵심 아이디어 중 하나였는데, 이는 그때까지 정설로 여겨졌던 뉴턴의 고전물리학 세계를 수정한 혁신적인 ‘의견’이었다.
이후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가설은 1919년 영국 천문물리학자 에딩턴의 개기일식 ‘관찰을 통해’ 증명된다. 개기일식 당시 태양 주변 별들의 빛을 관측해 계산해보니 빛이 굴절된 정도가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계산한 바와 비슷한 수치가 도출됐던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이 명확한 가설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말한 것처럼 수 세기 동안 측정과 통찰을 쌓아온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즉, 과학의 역사는 수많은 측정과 통찰을 통해 축적한 사실들을 바탕으로 하나의 의견(가설)을 확립하고, 그 가설을 다시 또 관찰과 측정을 통해 증명하거나 반박함으로써 새로운 사실로 정립해나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반복해온 역사나 다름없다.
책에서는 과학적 사실을 확립해나가는 각 단계, 즉 ‘관찰하기-가설 설정하기-해석하기-전달하기’의 과정에서 인간이 관찰력과 기억력의 한계,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한 과도한 확신, 관찰한 사실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나 편향 등으로 범하게 되는 오류들을 쉽고 흥미로운 예시들을 통해 설명한다. ‘생존 편향’과 ‘마시멜로 실험’은 이러한 오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만 측정할 수 있다는 현상의 한 가지 특별한 경우는 ‘생존 편향’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공군의 항공기 정비사들은 폭격기가 귀환했을 때 총탄이 맞은 위치를 조사했다. 예를 들어, 날개 부분은 타격을 입었지만 동체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이들은 피격된 부위를 보강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통계학자인 아브라함 왈드는 이 전략에 치명적인 오류가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살아남아 돌아온 폭격기만을 기준으로 강화할 부위를 결정하면, 오히려 잘못된 부분을 보강하게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탄흔이 남아 있지 않은 부위가 더 중요한 부분일 수 있으며, 그곳이 피격될 경우 항공기가 귀환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무엇이 실제로 훗날 아이의 성공을 결정하는 요소일까? (마시멜로 실험의) 재현 연구 보고서에서는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며, 보상 지연이 이 문제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유일한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언급했다. 부유한 부모의 자녀들은 충분한 자원이 있는 환경에서 자라기 때문에 두 번째 마시멜로를 기다리는 데 어려움을 덜 겪는다. 그리고 이들은 바로 부모가 부유하다는 이유로 더 많은 성공을 거두게 된다. 반대로, 연구에 참여한 일부 아이들은 빈곤하거나 겨우 빈곤 상태를 벗어난 가정에 속했다. 그 아이들은 두 번째 마시멜로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 과자가 가득 들어 있는 서랍이 내일이면 비어버린 경험을 이미 여러 번 겪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실험자의 약속을 믿지 않기로 쉽게 결정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이 이후 인생에서 만족을 덜 느끼는 것은 마시멜로나 자제력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단지 그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적었기 때문이다. (마시멜로 실험은) 아이들의 의지를 시험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부모의 수입으로 인한 차이를 실험한 셈이나 다름없게 됐다. 여기에서 부모의 은행 잔고는 혼란을 야기하는 요인, 즉 예상치 못하거나 인식하지 못한 방식으로 결과를 왜곡하는 변수였다.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이 책의 마지막 챕터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저자의 내공이 특별히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가짜 뉴스가 횡행하는 시대, 우리로 하여금 ‘가능한 한 신뢰할 수 있는 사실’에 접근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포엘은 믿을 만한 정보들 사이에서도 그 신뢰의 정도가 엄연히 층위를 이룬다고 언급하며, 과학 저널이나 논문에 실린 내용이라고 해서 무조건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일갈한다. 즉, “명백히 가짜는 아니더라도 모든 논문을 똑같이 신뢰할 수는 없다”는 것. 무엇이 더 사실에 가깝고, 더 믿을 만한 의견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높여주기 위해 저자는 과학 논문의 구조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데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또한, 우리가 엄정한 사실만을 추구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과학계 안에서 최근 상당한 수준의 가짜 논문과 가짜 저널이 양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환기시킨다. 특히 챗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언어 프로그램이 여러 과학 논문의 공동 저자로 등재되기 시작했다고 언급하며, AI 오용 가능성에 과학계가 충분히 대비된 상태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우리의 지각도, 기억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 실험과 과학적 연구에 의존하려고 해도, 그것들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수와 오류는 필연적이며, 설령 이를 최소화해 측정한다고 해도 그 결과가 때로는 부정확한 경우도 많다. 실험실 안에서든 데이터를 해석하는 과정에서든, 결과를 왜곡할 수 있는 심리적 필터들이 적용되기도 한다. 게다가 우리의 언어는 매우 모호하고 주관적이어서 제대로 정립된 사실조차 전달 과정에서 왜곡되기도 한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자신이 주관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주관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실을 찾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연 무의미한 것일까? 저자에 따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견을 뒷받침하는 사실들에 대해 높은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이 책에서 설명한 과정을 우리가 따르고, 그 모든 단계를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과학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셈이다. 당신이 흰 가운을 걸치고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인지, 아니면 단지 지식과 통찰을 향한 갈망을 가진 세심한 사람일 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온갖 함정들을 인식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과학자의 태도를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토론을 할 때 스스로 먼저 지식과 신념에 따라 최선을 다해 행동한다는 기준을 세우고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은 그저 의견에 불과하다.

우리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러한 관찰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제대로 관찰하는 데 서투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속한 환경과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과학적으로 타당한 관찰을 하는 능력이 우리의 본성이 아니며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친다> 중에서
우리는 때때로 그곳에서 열쇠를 잃어버려서가 아니라 단지 다른 곳이 어둡기 때문에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만 아파트 열쇠를 찾는 취객이 되곤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만 측정할 수 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