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세븐일레븐, 65조 인수 제안을 받다2024년 7월,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인수 제안이 발표된다. 캐나다 편의점 업체 ACT가 일본의 세븐일레븐을 무려 6조 엔(약 56조 2,000억 원)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2달이 지난 9월에는 인수 금액을 7조 엔(약 65조 6,000억 원)로 올렸다. 이 인수 거래는 결국 무산되긴 했으나, 일본 편의점 산업의 가치를 일깨우기에는 충분했다.
편의점은 이제 우리 일상의 풍경이다. 일본은 약 5만 5,800개로 약 2,200명 당 1개, 한국은 약 5만 5,000개로 940명 당 1개 꼴로 편의점이 있다. 두 나라에서 편의점이 없는 동네는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오늘날 편의점이 없는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그런 풍경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권 국가들만 보아도 편의점이 이정도로 대중화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일본에 세븐일레븐이 최초로 수입되어 오픈한 것은 1974년이고(세븐일레븐 도요스점), 한국 최초의 편의점이 오픈한 것은 1982년(롯데세븐 약수시장점)이니, 편의점이 일상이 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일본과 한국은 어떻게 편의점 왕국이 됐을까?
이 책에는 한국보다 10년 정도 앞서서 편의점의 시대를 개척했던 일본 편의점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이 담겨 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꼽히는 피터 드러커는 이 과정의 선구자였던 세븐일레븐을 보며 “소매업의 주류에서 밀려나던 개인 상점을 소매업의 주류로 끌어들일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위대한 사회 혁명이나 다름없습니다”라고 평가했다.
삼각김밥으로 시장을 개척하다현재 일본 편의점 업계 1위인 세븐일레븐이 처음 일본에 진출했을 때는 편의점 자체가 거의 없었다. 소비자들은 주로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을 이용하던 시기였기에, 편의점을 수입해 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세븐일레븐 1호점을 오픈하는 일 자체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 이후에도 위기는 계속됐다. 미국의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일본 소비자가 편의점을 찾을 만한 매력적인 상품 개발이 절실했다.
세븐일레븐의 아버지 스즈키 도시후미는 당시의 변화하는 식문화 속에서 답을 찾았다.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오며 가며 먹을 수 있는 식사대용 간편식 수요가 늘고 있었는데, 구매해서 바로 먹을 수 있는 ‘밥’ 제품은 없다는 것에 주목했다. “주먹밥이나 도시락은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먹는 메뉴라 더더욱 잠재적 수요가 크다. 좋은 재료로 정말 맛있으면서도 집에서 먹는 주먹밥과 차별화된 제품을 선보인다면 분명 성공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한국에서 ‘삼각김밥’이라고 불리는 주먹밥이다. 밥과 김을 따로 포장하여 김의 바삭한 식감을 즐길 수 있도록 해서 가정에서 먹는 주먹밥과 차별화를 했다. 그렇게 탄생한 편의점 주먹밥은 ‘참치마요’와 같은 히트 제품들의 등장과 함께 편의점의 간판 상품으로 자리잡아 편의점 성장의 주역이 됐다.
침체기를 프리미엄 PB 상품으로 돌파하다 세븐일레븐을 비롯한 여러 편의점 브랜드들의 노력 덕에 편의점 산업은 빠르게 성장했지만, 2000년에 접어들면서 침체기를 맞게 된다. 세븐일레븐 점포가 10,000개에 달한 시점이었다. 기존 점포들의 연간 매출액은 지속적으로 감소했고, 언론들도 편의점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더 이상의 성장과 확장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세븐일레븐은 이 시기 이후 점포 수가 20,000개까지 확장된다.
스즈키 도시후미는 더 이상의 성장은 힘들다는 진단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전까지 주요 고객층이 10~20대였기에 고객층을 중장년으로까지 넓힐 수 있다면, 성장 여력은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PB 상품에 주목했다. 당시 여러 유통사들은 치열한 가격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저가 전략의 일환으로 PB 상품을 사용했지만, 세븐일레븐은 오히려 반대로 갔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닛폰햄과 함께 피자토스트를 개발한 에피소드다. 피자토스트 개발을 의뢰받은 닛폰햄은 선택받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으로 품질을 앞세워 비교적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브랜드 가치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저렴하고 저품질 제품을 개발하는 일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세븐일레븐은 닛폰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닛폰햄의 입장도 바뀌었다. “싼 가격이 아니라 좋은 제품의 가치를 전하는 PB를 만들겠다는 건가? 그럼, 제대로 해야지.”
그렇게 기존의 PB 상품과는 전혀 다르게 탄생한 ‘세븐프리미엄’은 보란듯이 성공했다. 2007년에 출범한 이후로 2020년까지 꾸준히 성장해 1조 5,000억 엔(약 15조 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올렸다. 이후로 품질을 더 올린 골드 시리즈, 신선 상품 ‘프레시푸드’, 갓 추출한 품질 좋은 커피 ‘세븐카페’ 등을 출시했다. 상품은 그 자리에서 먹는 식품을 넘어 비프카레, 비프스튜, 돼지고기 조림, 은대구 구이 등 식탁에 올라가는 주요 메뉴로까지 뻗어나가 편의점을 찾는 고객층을 넓히는데 성공했다.
협력사와의 공진화를 추구하다세븐일레븐이 일본 편의점 업계 1위를 굳건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양질의 협력사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것이 주먹밥, PB상품, 커피 같은 핵심 상품들의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꾸준히 개선하고 리뉴얼할 수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세븐일레븐은 협력사를 결정하고, 납품된 제품의 품질을 검수하는 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협력사들과 세븐일레븐이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이유는 세븐일레븐에 우메보시를 납품하는 난키우메보시 사장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븐일레븐의 엄격한 기준 덕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면 할수록 기회는 늘어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세븐일레븐에 커피 머신을 납품하는 후지 전기다. 후지 전기는 수차례 커피 머신을 개선한 끝에 어렵사리 세븐일레븐의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세븐일레븐은 사용자 관점에서 발생하는 불편함과 개선 사항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어렵고 번거로운 요구사항들을 하나씩 반영해나가자 후지 전기의 비즈니스는 한층 발전했다. 후지 전기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업계의 방식이나 상식 등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 덕에 사용자 관점에서 제품 설계를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출시 10년이 넘도록 후지 전기는 세븐카페에 커피 머신을 납품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는 매장 내 진열장이나 거스름돈 계산기, 스무디 머신 등 사업 영역을 더 넓히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비자와의 접점이 늘면서 기업의 브랜드 인지도도 높아졌다. 이러한 상생 관계가 세븐일레븐을 편의점계의 ‘거목’으로 만들고 있다.”
포화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오늘날 편의점 산업은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점포 수로 보나 매출로 보나 편의점 시장은 이제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오늘날 일본 편의점들은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격투기 선수 추성훈을 통해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훼미리마트의 양말은 포화 상태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의 산물이다. 이제 편의점은 먹거리를 넘어 생필품까지 모두 조달하는 ‘원스톱 쇼핑 공간’을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그것을 훼미리마트의 강점과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한 끝에 탄생한 것이 훼미리마트 자체 의류 브랜드인 컨비니언스 웨어다. 이는 섬유업에 강한 이토추상사의 그룹사이기에 가능한 기획이기도 했다.
이마바리시의 명품 타올을 중국산보다 100엔(약 940원) 정도만 더 비싸게 받아서 고객들에게 가성비를 느끼게 하고, 디자이너 오치아이 히로미치와 공동 개발한 양말, 타월, 손수건을 매장에 투입했다. 품질과 디자인이 훌륭한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은 것이다. 반짝하고 말겠지 싶었던 생활용품들은 3년 반 동안 손수건 700만 장, 양말 2,000만 켤레가 팔리며 이제 훼미리마트의 얼굴로 자리잡았다.
세븐일레븐은 두 가지 성장 전략을 쓰고 있다. 훼미리마트와 마찬가지로 소상권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진단 하에 함께 할인했을 때 매출이 늘어나는 상품군을 면밀히 확인하고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동시에 인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하와이 등 해외 시장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형 모델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현지화가 필수라는 생각하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더 철저하게 국내 시장을 파악하고, 동시에 글로벌로의 확장을 통해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고자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가오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일본 편의점의 경험들은 고민에 빠진 한국 편의점은 물론 소매업과 유통업 전반에도 일정한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 편의점 시장 역시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몇 개의 회사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며 고객을 확장해온 세븐일레븐과 자신만의 강점을 살리며 성장해온 로손과 훼미리마트의 경험 속에서 미래를 대비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최대 소매업체로 군림해 온 세븐일레븐을 산하에 둔 세븐앤드아이홀딩스가 인수 대상이 됐다는 소식에 일본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국내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는 기업도 글로벌 경쟁이라는 파도에는 맥없이 휩쓸릴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일본 경제의 취약점이 드러난 것만 같아 향후 전개에 불안감을 느낀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일본 경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편의점의 미래를 생각하기에 앞서 지난 반세기의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 책은 악전고투를 거듭했던 창업 초기는 물론 상품 개발을 둘러싼 각종 에피소드, 가맹점주와 경영진의 인터뷰 등으로 구성돼 있다. 경영을 위한 유용한 힌트 내지는 일본 경제사를 수놓은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를 즐긴다는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란다.
그렇다면 어떤 주먹밥이 좋을까? 세븐일레븐은 손수 가정에서 만든 듯한 주먹밥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기왕이면 새로운 콘셉트를 선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바삭한 김으로 밥을 감싸서 먹는 주먹밥이었다. 이에 필름지로 김과 밥을 분리해서 김의 바삭함을 유지하는 포장 기법을 개발해 집에서 먹는 주먹밥과는 다른 독특한 식감을 선보였다.
스즈키는 이렇게 말했다.
“주먹밥이나 도시락은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먹는 메뉴라 더더욱 잠재적 수요가 큽니다. 좋은 재료로 정말 맛있으면서도 집에서 먹는 주먹밥과 차별화된 제품을 선보인다면 분명 성공합니다.”
이어서 이런 말도 덧붙였다.
“어묵도, 반조리 국수도, 절임류도 모두 이 같은 생각에서 탄생했습니다. 다들 매장에 비치된 상품에만 주목하는데, 새로운 수요는 매장 안이 아니라 밖에 있습니다.”
즉, 세븐일레븐 식품류의 경쟁자는 집에서 엄마나 아빠가 만드는 집밥인 것이다. 실제로 맞벌이 가구가 늘면서 편의점은 간편식의 시대를 여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