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서울미대 출신, 국립대 시각디자인과 교수였던 나성숙이 옻칠을 만나면서 새로이 깨닫고 치유받은 이야기다. 북촌 한옥 ‘서로재’를 배경으로 한, 사람들과의 인연, 전통 옻칠에서 현대적 조형미로의 변화와 발전, 예술혼과 삶의 고통이 만나 정화되는 과정을 옻칠을 바르는 것처럼, 사포를 치는 것처럼, 자개 등을 깎아내는 것처럼, 금칠을 더하는 것처럼…. 그렇게 켜켜이 쌓았다. 작가의 바람대로, 과도한 편집을 거치지 않은 작가의 육필 원고 그대로, 숨소리까지 들리는 듯한 살아있는 문장을 담았다.
이 책은 어떤 한 개인의 옻칠로 인한 치유와 성장만을 담은 ‘휴먼 스토리’로 끝나지 않는다. 작가 나성숙의 그야말로 ‘에너제틱’한 옻칠 작품을 선보이면서, 20년 터득한 옻칠의 매력과 지식을 오롯이 전하고자 한다.
옻칠은 낯설다, 어렵다, 옛것이다? ‘현대에 살아있는 것을 전통이라 한다’라는 ‘나성숙옻칠학교’에서옻칠은 혁신이고, 첨단이며 케이컬처(K-culture)다. 중국의 조칠, 일본의 마키에, 우리나라의 나전을20년 동안 묵묵히 수련한 나성숙의 옻칠은 소재의 질감, 과정의 재발견, 현대적 조형미를 새롭게 포착하고 개척했다. 나성숙의 옻칠이란 하나의 장르인 셈이다. 30기 옻칠 작가를 배출한 ‘나성숙옻칠학교’의 20년 옻칠 지식을 재료, 도구, 18단계의 과정으로 정리했다.
출판사 리뷰
심연에서 만난 검은 위로, 옻칠
서울미대 졸업, 하버드 연수, 주요 언론사 입사, 국립대 시각디자인과 교수, 유명 언론인의 아내, 총명한 두 딸의 엄마…. 작가 나성숙이 스스로 ‘상위 몇 프로쯤!’이라며 자부하며 살고 있었던 그즈음, 가장 빛나는 존재를 잃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그것도 남편 자신의 선택으로. 작가 나성숙은 그 어둠의 심연에서, 검은 광채-옻칠을 만났다.
그로부터 20년. 옻칠은 나성숙의 곁을 지키는 위로가 됐다. 사포질하고 옻칠하고 자개 박는 일 자체가 심호흡이었고 생명줄이었다. 옻칠로 사람을 만났고, 옻칠로 사람들을 위로했고, 옻칠로 나성숙의 남은 인생을 써 내려왔다.
2년 전, 지주막하출혈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혹시라도 덤으로 주어지는 시간이 있다면 이 경험을 ‘주자, 나누자’라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옻칠과 함께한 운명, 치유, 깨달음으로 단 한 사람이라도 위로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 담았다.
어떤 고독은 저절로 길이 된다
나성숙 작가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환경대학원을 나온(게다가 시각디자인을 강의하는) 현대적이거나 미래적인 미감에 몰두하는 사람이었다. 2004년 8월, 남편을 잃은 후, 반려자를 잃었다는 상실감과 더불어 따뜻한 조언, 목표와 방향성 설정, 중요한 의사결정과 설계를 모두 잃은 당혹감을 경험하게 된다. 작가는 ‘촛불은 흔들릴지언정 초는 흔들리지 말아야겠다’라는 심정으로 ‘우리나라 전통문화’라는 것에 눈을 떴고, 북촌에 한옥을 지어 공간을 마련했다. 고독과 상흔이 길이 되고 동력이 되어주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혼자 남은 시간을 ‘만드는 것’으로 채우리라는 생각에 소반을 배우고, 옻칠을 깨우쳤다. 취미 수준이 아니라, 그가 학생들을 가르쳐온 것처럼 큰 스승을 찾고 서당의 학동처럼 하나하나 배웠다. 문기현 대목장을 통해 한옥에 눈떴고, 배움은 소목과 소반까지 이어졌다. 전용복 옻칠 작가를 따라 일본 모리오카에서 옻칠을 접하고 배우는 이야기는, 범접할 수 없는 열정과 인내를 느끼게 한다.
나성숙은 옻칠은 ‘업’과 ‘전통’에 대한 일침이다
나성숙 작가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일은 직(職)과 업(業)으로 나뉘며, 일생을 관통하고 통찰하는 업을 찾아 몰두하라는 것이다. 작가는 ‘인공지능’의 세상에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손작업이야말로 구식이 아니고 첨단이며 ‘감성지능’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뭔가를 ‘디자인’하고 ‘크리에이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자신의 ‘업’에서 옻칠이라는 운명적인 소재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옻칠 전통을 가진 한중일의 조칠, 금칠, 나전 등을 모두 경험한 작가가 바라는 것이 있다. 옻칠의 영문 표기가 ‘저팬(Japan)’이나 ‘동아시아 래커(East Asia lacquer)’가 아니라 ‘옻칠(Otchil)’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의 것이 좋고, 낫고, 아름답다는 차원이 아니다. 세계 그 어느 곳의 것이라도 받아들이고, 일상에서 쓰고 발전시켜 ‘익숙한 옛것’이 될 수 있는 여지가 한국의 옻칠에, 나성숙의 옻칠 작품에 깃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의미는, 옻칠화가, 옻칠작가 나성숙의 작품 70여 점을 초근접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결국은 사람이고 사랑이다
오늘도 북촌 골목의 낡은 한옥 ‘서로재’에는 사포 치는 소리가 가득하다. 20년 동안 제자 30기를 배출한 ‘나성숙옻칠학교’의 주인장, ‘옻칠인’ 나성숙. 정작 자신은 ‘옻칠 장인’도 아니라 하고, ‘옻칠 작가’라는 명칭도 사양한다. 옻칠을 핑계로 함께 공간을 나누고, 사포질하는 시간을 나누고, 가끔 이야기도 나누며 선을 넘지 않은 위로를 전한다. 알아간다는 것은 공간이 아니라 거리를 좁히는 것. 옻칠로 통하는 사이가 되면, “나는 옻칠로 큰 위로를 받았어요. 당신도 그렇지요?”라며 공감하는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나성숙
*출간작으로 『나는 옻칠로 위로받았다(룩백북, 2025)』, 『북어국(디자인하우스, 2005)』, 『유쾌한 반란(여백미디어, 2002)』이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 및 환경대학원을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 GSD(Niemann Fellow Affiliate)에서 연수했다. 한국여성디자이너협회장, 국제아트앤디자인협회 설립자, 미술과 비평 운영위원장 등을 맡았으며, 국립중앙박물관 C.I. 서울시 경관계획, 2000 여수엑스포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다. ‘도시환경의 시각 요소로서 슈퍼 그래픽의 선호도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유쾌한 반란(여백미디어, 2002)>, <북어국(디자인하우스, 2005)>를 쓰고, <기자 이병규 24년(한국여성디자인연구소, 2005)>을 엮었다. 또한 1997년부터 개인 신문 ‘여우보’를 발행하여 2025년 30호에 이른다.한국 전통에 매료되어, 북촌 한옥 봉산재와 서로재를 터전으로 삼아, 전통 미술과 문화의 연구와 보급에 20여 년을 바쳤다. 2007년 문을 연 ‘나성숙옻칠학교’는 옻칠 교육, 옻칠 작품 전시와 판매를 통해 옻칠의 새로운 조형적 아름다움을 발굴하고 수많은 옻칠 작가를 키워내고 있다.예술의 전당과 선화랑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쌍용건설, 차병원, 태양금속, 현대자동차, 세종호텔, 디자인하우스, 까사미아, 동국제약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디자인학과 명예교수이자 북촌아트센터 이사장이며, 제자들과 함께 ‘나성숙옻칠학교’에서 열정적으로 옻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목차
제1장 시린 가슴에 옻칠해 주오
1.1 하늘 길 열려 봄의 노래 - 다시 살다
1.2 날마다 조금씩 말없이 - 옻칠 시작
1.3 저 눈부신 햇살 속으로 - 한옥 구입
제2장 옻칠의 탯자리에서
2.1 물오른 미루나무 - 최고위과정
2.2 그 뿌리 끝에 가닿고 싶다 - 금박
2.3 돌아서 속으로 우는 소리 - 존재, 킨츠키
제3장 척박한 흙 위에 던져진 혼불
3.1 맑은 뿌리는 동쪽에 두고 - 부모, 남편
3.2 강물 한 켠에 오두막 짓고 - 사랑
3.3 함께 울었을 눈물인 여자를 보아라 - 소반
제4장 하늘과 바다가 한 끝에서 만나듯
4.1 꽃 피지 못한 날들이 슬프지 않다 - 정년퇴직
4.2 창밖엔 윙윙 바람이 불고 - 중년여자
4.3 우리 서로 다리가 되어 - 청주공예비엔날레
제5장 부대낄수록 뜨거워지는 피
5.1 강 건너 오라시네 - 옻칠 사업
5.2 내 심장을 그대 잔에 - 그는 갔다
5.3 밤마다 널 향해 돌아누워도 - 함
5.4 구름이 맘껏 제 갈 길 가듯 - 기물
제6장 목마른 코뿔소처럼
6.1 내 안에 그대를 찾아 - 민화와 지붕
6.2 별 하나가 와서 안긴다 - 옻칠판화, 목분
6.3 붉은 해를 마시며 - 옻칠화
6.4 기다림과 만남과 헤어짐이 - 진주패. 색자개. 교칠
제7장 내 마음의 일주문을 들어서니
7.1 산새 왼종일 울거나 - 후회
7.2 실바람에도 얼음이 녹고 - 연결
7.3 큰 산이 터지는 소리 - 미래
제8장 나무야 나무야 옻나무야
8.1 옻칠 배움 나무 앞에서 - 옻나무
8.2 천년 별 밤을 지키고 살았네 - 옻의 성분
8.3 억겹 꽃잎으로 다시 피는 날 - 옻칠 종류
제9장 등짝을 후려지며
9.1 숨어 있어도 보이는 그대 - 옻 채취하는 날
9.2 가자, 가자, 배우러 가자 - 배움터
9.3 전생 어느 길목에선가 - 옻의 독성
(부록) 옻칠은 나로 인해 새로워졌다 - ‘나성숙옻칠학교’ 기본 교재
- 1. 모래로 몸을 씻어 그대 나의 꿈 - 도구, 재료
- 2. 오늘도 바람 앞에 선다 -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