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젊은작가상,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을 비롯해 2025년 김승옥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최은미 작가의 첫 짧은 소설집 『별일』이 출간되었다. 책에는 2020년 6월 웹진 《비유》에 발표한 「이상한 이야기」부터 2025년 6월에 완성한 「여름 출타」까지 지난 5년 사이 작가가 집필한 짧은 소설 열한 편이 수록되어 있다.
평범한 일상을 절개하면 드러나는 폭력과 불안, 죄책감 같은 끈적이는 감정을 향한 최은미의 응시는 여전히 선연하다. 여기에 더해 “짧은 소설로라면 무엇이든 쓸 수 있을 것 같았다”라는 자신의 말처럼, 형식적 제약이 가져다준 자유로움에 힘입어 작가는 그간 보여줬던 색깔에 유머라는 새로운 면모를 더한다. 현실을 직시하는 집요한 시선에 은근한 아이러니와 위트가 섞이면서 한층 더 폭넓어진 최은미의 세계를 만나볼 수 있다. 일상의 여백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그림작가 수하의 삽화는 단조로워 보이는 생활의 이면을 상상하게 한다.
출판사 리뷰
일상의 뒤편에서 일어나는 별일들
낯선 만남과 이상한 위로
2025년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
최은미 작가의 첫 짧은 소설집
모르는 타자와 마주했을 때
빚어지는 사건들
『별일』 속 인물들은 낯선 타자와 마주한다. 담배 냄새를 추적하다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이웃 주민과 만나고(「별일」), 뒷산에서 긴 빨대로 나무를 두드리며 돌아다니는 할머니와 대화하고(「김청자가 아닌 사람」), 은행 현금인출기 부스에 두고 간 만두를 매개로 전혀 모르던 두 사람의 기이한 추격전이 펼쳐진다(「이상한 이야기」).
낯선 존재와의 만남은 때로는 파국으로, 때로는 기묘한 위로로 이어진다. 「모르는 이야기」에서 화장실 공사를 맡긴 인테리어 시공업자에게 사기당한 주인공이 서서히 파멸한다면, 가족과 계곡에 놀러 갔다가 근처 강가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여인을 만난 「여름 출타」의 주인공은 그 덕에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한 고립 위기를 피한다.
최은미는 보통의 일상에 틈입해 들어오는 우연을 들여다보며 다채로운 이야기의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그 스펙트럼을 따라 읽다 보면, 지루한 현실의 문을 두드리는 ‘별일’들을 문득 환대하게 된다.
파쇄기 옆에 서서 만두를 쳐다보면서 나는 한편으론 만두를 두고 간 사람을 궁금해했었다. 이런 컴컴한 시간에 만두 1인분을 포장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저녁을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했었다. 잃어버린 만두를 찾으러 추위를 뚫고 달려오는 사람이라면 일곱 개의 0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내가 만두 주인한테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런 것들이었다.
―「이상한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연결되는 마음
잠시 타인이 되어보는 시간
『별일』에는 ‘이야기 모임’이라는 제목을 단 작품이 두 편 실려 있다. 이야기 모임은 “뭔가를 얘기하고 싶어서 못 배길 때” 모임을 만들어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임시적인 커뮤니티다. 이때 모임 참여자는 듣기만 해서는 안 되고 자신의 이야기를 준비해야 한다. 최은미의 이번 소설집은 우리가 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왜 필요한지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다.
「특별한 어떤 날」에서 주인공 은리가 아기였을 때 구슬을 삼켜 죽을 뻔했다가 옆집 할머니의 도움으로 살아난 이야기는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계속 회자되면서 가족들을 잇는다. 「어떤 드라마」에서 화자는 오래전 방영되었던 한 드라마를 통해서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던 할머니와 연결된다. 「겨울의 일」에서 오랜 추억이 켜켜이 쌓인 의자는 폐기물로 버려진 뒤에도 계속 흔적처럼 남아 결코 새로운 의자로 대체되지 않는다.
「이야기 모임 1」과 「이야기 모임 2」에서 양배추라는 식재료를 매개로 모인 사람들은 각자 가슴에 품은 이야기들을 꺼내 나눈다. 매운 것을 먹지 못한다는 콤플렉스를 털어놓기도 하고, 부엌에서 비린내가 난다는 남편의 말에 받은 상처를 공유하기도 한다. 그 과정을 통해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한층 가벼워진 마음을 안고 귀가한다.
그럴 때가 있어요. 내 몸이 겪지 않은 일로도 내 몸이 반응하는 걸 봐야겠는 날이요. 오늘이 그렇습니다.
―「이야기 모임 1」에서
『별일』 속 작품들은 일상을 한 꺼풀만 들춰내도 그 안에 무수한 이야기의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최은미가 마련한 ‘이야기 모임’에 참여하는 독자들은 현실을 바라보는 세심하고 다정한 시선을 선물처럼 받게 될 것이다.
중희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데에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미워할 수밖에 없다면 확실한 물증을 잡고 정확한 대상을 짚어 낭비 없이 미워하고 싶었다.
여자가 나타나 나를 의심했을 때,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오래 기다려왔는지. 얼마나 오래 참아왔는지. 파쇄기 옆에 서서 만두를 쳐다보면서 나는 한편으론 만두를 두고 간 사람을 궁금해했었다. 이런 컴컴한 시간에 만두 1인분을 포장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저녁을 먹을 수도 상상했었다. 잃어버린 만두를 찾으러 추위를 뚫고 달려오는 사람이라면 일곱 개의 0에 대해 얘기를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내가 만두 주인한테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런 것들이었다.
여자는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무엇에 취약하고 무엇에 타격을 받는지. 무엇을 꺼려하는지. 산 채로 찢기는 게 얼마나 가능한지. 여자가 그걸 알 거라는 사실이 나를 더 두렵게 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최은미
굴과 귤이 맛있어지는 겨울을 좋아한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생명체는 겨울나무라고 믿고 있다. 단무지 냄새를 맡으면 일기를 쓰고 싶어지고 새 가구 냄새를 맡으면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요즘 좋아하는 부사는 ‘마냥’. 날개뼈를 느껴볼 수 있어서 등 운동 하는 시간을 좋아한다.2008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쓴 책으로 소설집 『너무 아름다운 꿈』 『목련정전目連正傳』 『눈으로 만든 사람』, 장편소설 『아홉 번째 파도』 『마주』, 중편소설 『어제는 봄』 등이 있다.
목차
작가의 말
한철
별일
김청자가 아닌 사람
이상한 이야기
어떤 드라마
이야기 모임 1
이야기 모임 2
모르는 이야기
여름 출타
특별한 어떤 날
겨울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