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스위스인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빌헬름 텔》은 오스트리아의 폭정에 고통받는 스위스 세 고을(우리, 슈비츠, 운터발덴) 사람들이 동맹을 맺고 외압에 맞서는 내용으로, 스위스 민중의 투쟁과 성공을 다룬다. 괴테가 운영을 맡고 있던 바이마르 궁정 극장에서 1804년에 초연되었다.
정치적 폭발력을 지닌 작품으로 일부 내용이 삭제되거나 공연 자체가 금지된 적도 있었으나 오늘날까지 ‘자유’를 열망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호명되며 스위스에서는 국민극 반열에 올랐다. 희곡은 번역했을 때 글자 수가 바뀌기 때문에 원서의 행 표시를 맞추기 어려워 번역하는 과정에서 빠지기도 했는데, 이번에 출간되는 《빌헬름 텔》은 40년 가까이 유럽 지성사를 탐구해온 독문학자 안인희의 세심한 번역과 편집으로 원서의 행 수 표시를 똑같이 맞춰 선보인다.
출판사 리뷰
스위스인의 정체성을 담은 작품
위대한 극작가 실러가 남긴 마지막 작품이자
자유를 열망하는 곳이면 언제든 울려 퍼질 ‘환희의 송가’
스위스인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빌헬름 텔》은 오스트리아의 폭정에 고통받는 스위스 세 고을(우리, 슈비츠, 운터발덴) 사람들이 동맹을 맺고 외압에 맞서는 내용으로, 스위스 민중의 투쟁과 성공을 다룬다. 괴테가 운영을 맡고 있던 바이마르 궁정 극장에서 1804년에 초연되었다. 정치적 폭발력을 지닌 작품으로 일부 내용이 삭제되거나 공연 자체가 금지된 적도 있었으나 오늘날까지 ‘자유’를 열망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호명되며 스위스에서는 국민극 반열에 올랐다. 희곡은 번역했을 때 글자 수가 바뀌기 때문에 원서의 행 표시를 맞추기 어려워 번역하는 과정에서 빠지기도 했는데, 이번에 출간되는 《빌헬름 텔》은 40년 가까이 유럽 지성사를 탐구해온 독문학자 안인희의 세심한 번역과 편집으로 원서의 행 수 표시를 똑같이 맞춰 선보인다.
1. ‘자유의 시인’ 실러가 ‘자유의 영웅’들을 등장시켜 들려주는 《빌헬름 텔》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실러는 스위스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역사서를 탐독하며 스위스 독립사의 역사적 의의를 탐구했다. ‘텔의 전설’에 자신이 오랫동안 화두로 삼은 ‘자유’를 녹여 역사적 고증, 문학적 사료, ‘자유’라는 자신의 철학적 태도가 결합된 《빌헬름 텔》을 썼다.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세 고을 평민 대표들이 비밀리에 민회를 열어 결행하는 총궐기이고, 둘째는 혼자 움직이는 텔의 영웅담이다. 인물들은 서로의 생각을 나누거나 홀로 깊이 생각하면서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이는 《빌헬름 텔》의 주요 요소로써 실러는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그려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민회를 열었던 평민 대표들은 상황이 변하자 귀족을 지휘자로 받아들이고, 궐기를 앞당기는 등 유연하게 대처한다(“갑시다, 우리를 지휘하시오. 당신을 따르겠소. 우리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왜 내일로 미루지요?”). ‘민족의 아버지’라 불리는 귀족 아팅하우젠은 평민들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을 마음을 다해 받아들인 뒤(“우리 뒤에도 민중은 살지—인류의 위대함은 다른 힘으로 자신을 지탱하려 하는구나.”) 낡은 것이 사라지고 시대가 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조카 ‘루덴츠’는 오스트리아 편에 서 있었는데 연인과 긴 대화를 나눈 끝에 스위스 민족 편(“이방의 속박을 영원히 끊고 내 민족의 편에 남겠습니다.”)에 선다. 가장 극적으로 변하는 인물은 텔이다. 처음에는 자신은 평화로운 자이니 평화가 허용될 거라면서 동맹을 맺자는 권유도 거절한다. “공동의 일을 그리도 냉정하게 버려두실 거요?”라는 호소에는 “각자 오직 저 자신만을 믿지”라고 응수한다. 하지만 태수 ‘게슬러’의 폭정으로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에 화살을 쏘아 맞혀야 했던 일을 겪고 포박된 채 끌려가다가 극적으로 탈출한 뒤 “가장 경건한 사람도 평화로울 수는 없다”라고 말하면서 생각을 바꾼다.
텔
나는 조용히, 해롭지 않게 살았다—활쏘기는
오로지 숲의 짐승들만을 향한 것,
내 생각은 살인과는 무관했지—
네가 나의 평화에서 나를 밖으로
끌어낸 거지, 경건한 사고방식의 젖줄을
네가 끓어오르는 맹독으로 바꾸었다. (202쪽)
2. 실러가 제안하는 성숙한 시민으로 가는 길
안인희 번역가는 《빌헬름 텔》의 인물들이 내면의 발전을 이루기 때문에 “올바른 한계를 지킬 수” 있었을 거라고 말한다. 황제를 죽이고 도망치던 ‘파리치다’는 텔을 만난 뒤 “당신의 집에선 자비심을 보리라 희망”했다고 하지만, 텔은 개인적인 욕심으로 살인을 저지른 파리치다와 “아비의 정당한 자기방어”를 똑같이 볼 수 없다며 선을 긋는다. 프랑스 혁명을 자세히 관찰한 실러는 혁명으로 세워진 공화국 정부가 혼란을 겪은 끝에 왕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혁명의 열기에 편승해 “과격함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위해 평범한 사람들이 “성숙한 시민, 계몽된 시민”이 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이를 ‘미적 상태’(asthetischer Zustand)라고 부른 실러는 이에 도달하기 위한 ‘미적 교육(asthetische Erziehung)’을 강조했는데 《빌헬름 텔》의 등장인물을 통해 ‘미적 교육’의 과정과 결실을 보여준다. “칼을 주먹에 쥐고도 자제하는 민족은 정당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하는 장면은 실러의 가치관이 잘 드러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작품 속 인물들은 ‘꼭 필요한 행동’만 하면서 적들을 쫓아냈고 독립을 위해 싸우는 동안 개인적인 복수심에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실러는 예술을 통할 때 ‘미적 교육’을 할 수 있고, “인간 내면의 참된 성숙과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좋은 작품을 보고 거듭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안인희 번역가 역시 AI가 많은 영역을 대체하는 오늘날, 비록 “한가로운 대답”일지언정, “좋은 작품을 접하려는 노력”과 “성찰하면서 사유의 방법을” 익히려는 태도가 중요하 다고 역설한다.
온갖 기술을 익히는 바쁜 시간 사이로, 좋은 작품을 접하려는 노력도 꼭 필요하다. 미적 교육을 통해 인간은 복잡 미묘 한 지성과 인간만의 품위를 유지하고 인간의 고유 영역을 확보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273쪽)
슈타우파허
참을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할까요?
텔
성급한 지배자는 잠깐 지배하지요.
슈타우파허 (원 안으로 들어서며)
우리는 새 동맹을 맺는 것이 아니오,
조상들 시대부터 내려오는 아주 오래된 동맹을
새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걸 알아두십시오, 동지들!
호수가 우리를 가르든, 산이 우리를 가르든,
각 고을 주민이 자치(自治)를 해도
우리는 한 종족, 한 핏줄이오,
우리는 한 고향에서 떠나온 사람들이오.
루덴츠
말하겠습니다.
말할 수 있고요, 왕의 명예는 거룩한 것이나
이런 통치는 증오를 얻을 겁니다.
이건 왕의 뜻이 아닙니다—나는 감히
주장하지만— 내 민족은 이런 잔혹함을 당할
일을 하지 않았으니, 당신이 이럴 권한은 없습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프리드리히 폰 실러
독일 고전주의 극작가이자 시인, 철학자, 역사가, 문학이론가이다. 독일 남서부 뷔르템베르크 주의 마르바흐의 하급 군인의 집에서 태어났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신학을 전공해 목사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영주(領主)인 카를 오이겐 공작의 명에 따라 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처음엔 법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 전공을 바꾼 그는 졸업 후 슈투트가르트에서 하급 군의관이 됐다. 그 후 사관학교를 졸업한 군인으로서 슈투트가르트 연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학생 시절에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유에 대한 동경이 싹터 저작에 몰두했는데, 자비 출판한 첫 작품 <군도>가 1782년 1월 13일 만하임에서 성공적으로 초연된 것을 계기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 후 공작의 저술 금지령을 피해서 그는 1782년 9월 22일 밤에 만하임으로 도주한다. 도피 방랑 생활을 하면서 <피에스코의 반란>(1783), <간계와 사랑(Kabale und Liebe)>(1784)을 썼다. 한때 만하임 극장의 전속 작가가 되었으나 중병을 앓고 사퇴한 후 쾨르너의 도움으로 <돈 카를로스(Don Carlos)>를 완성했다. 1787년에 네덜란드 독립사를 연구, 인정을 받아 1789년에 예나 대학의 비정규직 교수가 되었다. 그 후 미학, 철학, 역사에 관한 논문을 잇달아 발표하여 생활의 안정을 얻고 역사와 미학 강의를 했지만 학생 수의 감소와 신병으로 얼마 후 사직했다. 1794년부터 요한 볼프강 폰 괴테와 친분을 나누었고, 같이 《크세니엔(die Xenien)》이라는 시집을 내기도 했다. 이들은 자주 만나서 문학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많은 서신을 교환하며 공동 작업을 했다. 특히 1802년에는 실러가 예나에서 바이마르로 이사를 해 이들의 친교와 공동 작업은 더욱 강화됐다. 1799년경부터 3부작 <발렌슈타인>, <마리아 슈투아르트(Maria Stuart)>(1800), <오를레앙의 성 처녀(Die Jungfrau von Orleans)>(1801), <메시나 신부(Die Braut von Messina)>(1803), <빌헬름 텔(Wilhelm Tell)>(1804) 등의 대표작을 써서 괴테와 견주는 대작가가 되었다. 희곡의 대부분은 운명과 대결하는 의지의 힘을 묘사한 것으로 그리스 고전극 정신의 재생을 지향하고 있다. 1805년 5월 9일 오랫동안 앓던 지병으로 바이마르에서 사망했다. 대표 희곡으로 《군도》(1781), 《발렌슈타인》 3부작, 《마리아 슈투아르트》, 《오를레앙의 성 처녀》, 《간계와 사랑》(1784), 《빌헬름 텔》(1804) 등이 있다.
목차
등장인물
제1막
제2막
제3막
제4막
제5막
실러의 참고 문헌들
해설 | 칼을 쥐고도 자제하는 성숙한 시민의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