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부모님 > 부모님 > 소설,일반 > 역사
[세트] 홍대용 평전 1~2 세트 (전2권)  이미지

[세트] 홍대용 평전 1~2 세트 (전2권)
실천적 정주학자
푸른역사 | 부모님 | 2025.10.29
  • 정가
  • 88,000원
  • 판매가
  • 79,200원 (10% 할인)
  • S포인트
  • 4,400P (5% 적립)
  • 상세정보
  • 15.2x22.3 | 1.916Kg | 1368p
  • ISBN
  • K332032947
  • 배송비
  •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 (제주 5만원 이상) ?
    배송비 안내
    전집 구매시
    주문하신 상품의 전집이 있는 경우 무료배송입니다.(전집 구매 또는 전집 + 단품 구매 시)
    단품(단행본, DVD, 음반, 완구) 구매시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이며, 2만원 미만일 경우 2,000원의 배송비가 부과됩니다.(제주도는 5만원이상 무료배송)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일 경우 구매금액과 무관하게 무료 배송입니다.(도서, 산간지역 및 제주도는 제외)
  • 출고일
  • 1~2일 안에 출고됩니다. (영업일 기준) ?
    출고일 안내
    출고일 이란
    출고일은 주문하신 상품이 밀크북 물류센터 또는 해당업체에서 포장을 완료하고 고객님의 배송지로 발송하는 날짜이며, 재고의 여유가 충분할 경우 단축될 수 있습니다.
    당일 출고 기준
    재고가 있는 상품에 한하여 평일 오후3시 이전에 결제를 완료하시면 당일에 출고됩니다.
    재고 미보유 상품
    영업일 기준 업체배송상품은 통상 2일, 당사 물류센터에서 발송되는 경우 통상 3일 이내 출고되며, 재고확보가 일찍되면 출고일자가 단축될 수 있습니다.
    배송일시
    택배사 영업일 기준으로 출고일로부터 1~2일 이내 받으실 수 있으며, 도서, 산간, 제주도의 경우 지역에 따라 좀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묶음 배송 상품(부피가 작은 단품류)의 출고일
    상품페이지에 묶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은 당사 물류센터에서 출고가 되며, 이 때 출고일이 가장 늦은 상품을 기준으로 함께 출고됩니다.
  • 주문수량
  • ★★★★★
  • 0/5
리뷰 0
리뷰쓰기

구매문의 및 도서상담은 031-944-3966(매장)으로 문의해주세요.
매장전집은 전화 혹은 매장방문만 구입 가능합니다.

  • 도서 소개
  • 출판사 리뷰
  • 작가 소개
  • 목차
  • 회원 리뷰

  도서 소개

조선 후기에 활약한 홍대용은, ‘4천 년 동안 사상에 빛나는 학자’ 6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 대표적 실학자다. 지은이는 방대한 관련 텍스트를 꼼꼼히 읽고 이런 통설에 설득력 있는 이의를 제기한다. 홍대용의 대표적 저술이라 할 《의산문답》, 〈임하경륜〉은 물론이고 그가 북경의 청나라 지식인들 주고받은 편지며, 《수리정온》 등 당대 서양 수학‧과학 저술까지 섭렵해 홍대용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16년 전 원고 집필을 시작해, 편집에만 3년이 걸린 원고지 5,500여 매-그사이 새로운 사료가 드러나 원고지 1,000여 매 분량이 추가되기도 했다- 분량의 이 책은, 볼륨 자체만으로도 우리 출판사에서 보기 드문 대작大作 평전이다.

지은이가 그려낸 홍대용은, 우리가 ‘교과서’로 익힌 홍대용상과 사뭇 다르다. 그러나 홍대용의 성취와 의미에 대한 주류의 해석은, 20세기 이후 한국인들이 있기를 바랐던 ‘자생적 근대화의 싹’을 투영한 것이 아닐까. 1,4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지만 ‘담헌학’-만약 있다면-의 시작이자 끝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책이다. 덧붙이자면 역사 바로 보기를 원한다면 무의미한 여정은 아닐 것이다.

  출판사 리뷰

지전설을 주창한 탁월한 과학자?
신분제 철폐를 내세운 사회사상가?
화이론을 부정한 내재적 민족주의자?

‘실학자 담헌’을 둘러싼 ‘신화’는 잊어라

‘담헌 신화’의 비판적 읽기 결정판

조선 후기에 활약한 홍대용은, ‘4천 년 동안 사상에 빛나는 학자’ 6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 대표적 실학자다. 지은이는 방대한 관련 텍스트를 꼼꼼히 읽고 이런 통설에 설득력 있는 이의를 제기한다. 홍대용의 대표적 저술이라 할 《의산문답》, 〈임하경륜〉은 물론이고 그가 북경의 청나라 지식인들 주고받은 편지며, 《수리정온》 등 당대 서양 수학‧과학 저술까지 섭렵해 홍대용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16년 전 원고 집필을 시작해, 편집에만 3년이 걸린 원고지 5,500여 매-그사이 새로운 사료가 드러나 원고지 1,000여 매 분량이 추가되기도 했다- 분량의 이 책은, 볼륨 자체만으로도 우리 출판사에서 보기 드문 대작大作 평전이다.

평전의 전범-종합적‧입체적 인물상 복원
‘대작’인 것만이 이 책의 미덕이 아니다. 여태 경학經學, 역사비평, 천문학과 자연학, 수학, 음악학, 실학 등 분절적으로 이해됐던 홍대용의 성취에 대해 종합적으로 살펴 그가 종래 알려졌던 ‘실학자’가 아니라, 진시황의 ‘분서’가 정당한 것이라 평했을 정도로 철저한 정주학자였음을 밝혀냈다. 여기 더해 그의 집안이 넉넉한 경화세족이었다든가, 십대 시절의 방황, 스승 김원행에 대한 비판적 의문 제기, 부친 홍역이 연루된 부패 사건, 북경행 전까지 홍대용의 수학 수준 등 그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내 홍대용 이해의 깊이를 더했다. 홍대용이 쓴 수학책 《주해수용》을 이해하기 위해 중고등학교 수학책까지 들춰봤다니 더 말할 게 없다. 깊게 파고들고 넓게 살피는 지은이의 저술 방식에는 어지간한 동료 연구자들이 토를 달기 어려울 정도다. 그렇게 해서 홍대용이 정주학의 진리성을 부정한 적이 없고, 단지 실천을 도외시 하는 주자朱子 맹신을 비판한 ‘실천적 정주학자’였음을 논증하는 데 성공했다.

한계 뚜렷한 ‘조선의 코페르니쿠스’
흔히 홍대용은 전근대적 우주관을 무너뜨린 ‘조선의 코페르니쿠스’라 평가된다. 지구가 스스로 돈다는 지구 자전설과 우주 무한론을 제시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은이는 홍대용의 자연학은 관측과 수학에 의거한 ‘과학’이 아니라, 정주학의 기론氣論에 입각한 선언적 상상력으로 구성된 것이라 한계를 지적한다. 물류상감설과 같은 재래의 동기감응설을 끌어오는가 하면 도가의 수련을 통해 천체 사이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황당한 말까지 태연히 늘어놓았다는 것이다. 담헌이 제작했던 혼천의가 관측기구가 아니라 천체 모형이었으며, 자신의 서재 천장에 별자리 그림을 붙여 놓고 천문학 연구에 열중했다든가 하는 사례도 마찬가지다. 또한 자전설은 지구 자전만 이야기했지 공전에 대해서는 침묵했기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지구중심설을 깨뜨린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과 궤를 달리한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홍대용의 지구 자전설이 담긴 《의산문답》이 인쇄되어 읽히지 않았기에 그 사회적 영향력은 미미했다는 것이다.

민과 동떨어진 신분제 해체론
지은이는 홍대용이 신분제 타파 등 평등을 강조한 사회사상가라는 주장 역시 ‘신화’라고 논증한다. 우선 그가 남긴 모든 글에서 민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든다. “사회의 계급과 신분적 차별에 반대했다”(《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라는 평가는, 그가 〈임하경륜〉에서 ‘놀고 먹는’ 유식遊食 사족을 비판한 대목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는 오독誤讀이라는 것이다. 담헌 자신이 노비를 거느린 지주였으며, 음직으로 벼슬을 살았다. 그러니 재능과 학문이 있는 농부나 장사꾼의 자식이 조정의 고위직에 오를 수 있고 공경의 자제가 관청의 하인이 되어도 무방하다는 말은 진실성 혹은 실천성이 결여된 수사로 보았다. 민이 수탈당하는 사회 모순에 대해 말하기는커녕 영천 군수로 있을 때 진휼곡을 착복하고 그것을 군민에게 빌려주어 갑절로 받아내려 했다고 꼬집는다. 또한 그가 그린 이상사회는 농민은 국가의 허락이 있어야 농민은 거주를 이전할 수 있고, 농토를 분배받을 수 있는 통제사회였다. 다산 정약용이나 연암 박지원과 달리 토지 소유제 등 〈임하경륜〉에 담긴 그의 ‘개혁책’은 구체적이지도 않고 단편적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주장이다.

화이론 부정의 진짜 이유와 그 실체
조선에서의 ‘화이론’은 임진왜란 때 원병을 보내준 명에 대한 충절의식을 내장한 것이었다. 하지만 홍대용이 북경행 이후 평생 소중하게 여겼던 엄성‧반정균 등 중국인 벗들은 이미 청 체제를 인정하고 있었다. 담헌이 귀국길에 만나 희원외도 모든 것은 변한다는 간단한 논리로 복색을 들먹이며 화와 이를 구분하려는 담헌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러니 담헌이 이후 저술한 《의산문답》에서 화‧이의 구분은 그저 허구라고 역설한 데는 개인적 동기가 있었다고 지은이는 해석한다. 귀국 후 벌어진 논쟁에서 김종후가 엄성 등을 명에 대한 충절 의식도 없이 오랑캐 조정에 벼슬하고자 하는 비루한 자로 몰아붙이자 그들과의 사귐을 중히 여겼던 담헌이 이를 논파하기 위해 화‧이의 구분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다는 설명이다. 이는 지구는 둥글다, 따라서 중국도 당연히 중심이 아니라는 지원설地圓說에 근거한 것이기도 해도 이를 그저 ‘민족의 주체성’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지은이가 그려낸 홍대용은, 우리가 ‘교과서’로 익힌 홍대용상과 사뭇 다르다. 그러나 홍대용의 성취와 의미에 대한 주류의 해석은, 20세기 이후 한국인들이 있기를 바랐던 ‘자생적 근대화의 싹’을 투영한 것이 아닐까. 1,4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지만 ‘담헌학’-만약 있다면-의 시작이자 끝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책이다. 덧붙이자면 역사 바로 보기를 원한다면 무의미한 여정은 아닐 것이다.

담헌의 가문은 17세기 이래 정통 노론의 당색을 띤 최상층의 경화세족이었다. 특히 담헌의 증조 홍숙 이하 그의 일계는…4대에 걸쳐 문과 합격자를 배출하는 등 번성하였다. 아울러 경제적으로도 담헌의 일계는 매우 부유하였다. 담헌이 노론계 유력 경화세족 가문의 일원이자 경제적 안정을 누리고 살았다는 사실은 기본적으로 담헌의 성격을 규정했을 것이다.

담헌은 정주학이 말하는 모든 인간의 생득적 도덕 원칙인 성性을, 언설의 차원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학문하는 행위라고 말했다.…〈자경설〉에서 정주학적 도덕 관념에 따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엄격히 통제하는, 곧 정주학적 원칙을 자신의 신체로 실천하는 담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775년 담헌이 세손익위사 시직으로 입시했을 때 정조(이때는 즉위 전이었다)가 송시열의 북벌을 빈말이라고 하자, 담헌은 “그것은 빈말이 아니다”라고 단호히 말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을 이적시하는 시각과 북벌의 당위성은 공적 담론의 영역에서는 비판 대상이 아니었다. 담헌이…즉각 받아친 것은, 그것이 자신의 신념이기도 했지만 또 북벌을 공공연히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강명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명예교수. 조선 중기 서울의 도시적 분위기에서 활동했던 여항인의 역사적 실체와 문학을 검토해 한문학의 지평을 넓혔으며, 방대한 한문학 텍스트에 근거한, 풍속사, 사회사, 음악사, 미술사를 포괄하는 다양한 저서들로 독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근래에는 조선 시대 지식의 생산과 유통이 인간의 사유와 행위로 연결되어 어떤 인간형을 만들어 내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지은 책으로 《냉면의 역사》, 《노비와 쇠고기》, 《이타와 시여》, 《가짜 남편 만들기》, 《조선 풍속사》(전 3권), 《열녀의 탄생》,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 《허생의 섬, 연암의 아나키즘》, 《독서한담》,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 《조선 후기 여항문학 연구》, 《공안파와 조선 후기 한문학》 등이 있다.

  목차

1권

⚫책머리에

[01] 경화세족 담헌
충청도의 경화세족 | 아버지 홍역과 숙부 홍억 | 담헌 가문의 위상과 경제력
[02] 방황하던 10대의 한때
유소년기 | 거문고를 배우고 가희·무녀와 어울리다 | 갈등과 번민, 과거인가 학문인가
[03] 석실서원
스승 김원행 | 석실서원 | 스승에게 올린 편지 | 문경에서 벌인 당론 |
스승 김원행과 당론으로 논쟁하다 | 1753·1754년 《소학》 강의 | 소소한 일상
[04] 젊은 날의 공부, 경학·성리설·역사비평
성인에게도 의문을 품다 | 〈대학문의〉 | 〈논어문의〉 | 〈맹자문의〉 | 〈중용문의〉 |
〈서전문의〉 | 〈시경변의〉 | 〈주역변의〉 | 〈계몽기의〉 | 성리설을 공부하다 |
〈사론〉, 《자치통감》 비평
[05] 실천적 정주학자의 탄생
주필남에게 주는 글 | 실천적 정주학자의 탄생 | 화이론자 담헌
[06] 서양 천문학과 만나다
아버지 홍역을 따라 나주로 가다 | 나경적을 만나다 | 조선의 혼천의 |
담헌이 만든 혼천의 | 연행 전 담헌 천문학의 수준 | 홍역의 부정축재 사건
[07] 북경에서 본 청의 안정과 번영, 그리고 국경을 초월한 우정
1765년 가을 북경으로 떠나다 | 북경행의 목적 | 압록강을 건너 한 달 만에 북경에 도착하다| 북경에서의 두 달, 1766년 1월과 2월 | 청을 바라보는 시각, 대명 의리 |
조선인의 의복과 중국인의 의복 | 청의 안정과 번영 | 청의 정치 | 중국 문명의 합리성 |
세계인을 만나는 곳, 북경 | 서양의 기기들, 일표·자명종 | 유구·몽골·회회·러시아 사람 |
천주당의 서양인 신부 | 엄성·반정균·육비 등 한인 지식인과 사귀다 | 마지막 만남과 이별 | 귀로에서 사귄 벗들 | 중국·북경 여행의 의미
[08] 편지로 이어진 우정과 북경 체험의 파란
편지로 이어진 우정 | 1766년 여름 첫 편지를 보내다 |
1767년 1월 반정균과 엄성의 편지를 받다 | 담헌의 북경 체험에 대한 두 가지 반응 | 1767년 김종후와 논쟁을 벌이다 | 홍역과 엄성의 죽음 | 엄성이 죽기 직전 쓴 1767년 가을의 편지 | 엄성의 죽음을 슬퍼하며 답신을 보내다 | 《의례》 연구와 관련해 김종후와 2차 논쟁을 벌이다| 1769년, 김종후와 논쟁이 이어지다 |
1769년 5월 동지사 회환 편에 육비와 반정균 등의 편지를 받다 |
김종후에게 다시 반박하는 편지를 보내다 | 1769년에 중국으로 보낸 편지

⚫주
⚫찾아보기

2권

⚫책머리에

[01] 연암 그룹과 첫 벼슬
연암 그룹과 어울리다 | 1770년 4월부터 1774년 2월까지의 편지 |
1774년 2월 벼슬을 시작하다 | 세자익위사 시직 담헌 | 손유의·등사민과의 문답 |
손유의의 답 | 이단관의 변화
[02] 항주에서 편지가 오다
유금의 북경행 | 끊어졌던 엄성 쪽 소식이 10년 만에 전해지다 | 주문조의 편지 |
엄과의 편지 | 등사민과 주고받은 편지 | 1779년 엄과와 주문조 등에게 보낸 편지 |
연암이 보낸 편지 | 영천군수가 되다 | 손유의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
[03] 천문학과 수학
서양 천문학·수학과 경화세족 | 담헌의 수학과 천문학 연구 | 담헌의 수학-《주해수용》 |
삼각함수 수용 | 천문 계산 | 천문 관측기기 | 음악 이론 | 담헌 수학·천문학의 의의
[04] 담헌 사유의 도착지, 《의산문답》과 〈임하경륜〉
담헌 사상의 최종 도착점 | 《의산문답》의 저술 시기와 형식 | 《의산문답》을 쓴 이유 |
한역 서양서의 천문학·지구자연학과 《의산문답》 | 관점의 전환, 인물균론 |
기와 천체, 물질 | 지구는 둥글다, 그리고 자전한다 | 중심 없는 세계 | 자연학의 조정 |
인간과 역사, 화이론의 부정 | 통제된 이상국가―〈임하경륜〉
[05] 담헌의 죽음과 그가 일으킨 파란
담헌의 죽음 | 담헌이 열었던 길이 막히다

에필로그—‘담헌 신화’를 다시 생각한다

⚫주
⚫찾아보기

  회원리뷰

리뷰쓰기

    이 분야의 신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