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19년 창비신인소설상, 제46회 오늘의작가상을 받으며 작가적 입지를 공고히 다지고 『국자전』으로 사랑을 많이 받은 소설가 정은우의 연작소설 『포나』가 출간되었다. 서사적 완결성과 인물의 감정을 세심하게 따라가는 문체로 독자들을 사로잡아온 작가는, 이번 연작에서도 ‘발레’와 ‘인공지능’이라는 상이한 감각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으며 각기 다른 삶의 국면에 놓인 세 인물의 내면을 밀도 있게 그려나간다.
「내일의 서정」은 발레를 떠나 은행원이 된 정서가 자신을 지금에 이르게 한 것이 무엇인지 더듬어가는 이야기이며, 「내일의 헌정」은 안정적인 삶을 좇던 현정이 그간 외면해온 감정들과 관계의 상처 등 일상에 생긴 균열을 비로소 바라보게 되는 과정을 담아낸다. 「내일의 우연」은 발레무용수인 연우가 몸의 한계와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는 순간을 따라간다.
『포나』는 어린 시절 발레를 함께 배우며 같은 꿈을 꿨던 세 친구가 이제는 전혀 다른 일상에서 저마다의 선택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그리면서도, 그 중심에서 AI ‘포나’가 보여주는 수많은 가능성을 통해 독자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선택의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고 어떤 마음으로 내일을 살 거냐고. 자신의 판단으로 이루어진 결과가 늘 예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흔들리고, 망설이고, 뒤돌아보면서도 각자의 자리에 서 있는 우리에게, 이번 연작은 다시 한번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는다.
출판사 리뷰
이다혜 작가, 윤별 발레리노 강력 추천!
창비신인소설상, 오늘의작가상 수상 작가 정은우가 전하는
AI 포나와 발레, 그리고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
막이 오르기 전의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다시 무대를 향해 발을 내딛는 마음
연작을 구성하는 세 편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인물의 삶을 따라가지만, 그 시작은 모두 한 지점에서 비롯된다. 어린 시절 세 친구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던 ‘평화’라는 인물의 시선이다. 평화는 정서, 현정, 연우를 발레학원에 데리고 다니며 이들의 어린 시절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존재로, 성인이 된 후에도 세 인물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의미로 되살아난다. 정서에게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가는 기억의 기점으로, 현정에게는 외면해온 상처를 더듬는 감정의 자리로, 연우에게는 다시 무대를 꿈꾸게 하는 마음의 원점으로. 『포나』는 이러한 평화와의 기억을 통해 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면서도, 인공지능 ‘포나’와 ‘발레’를 매개로 각 인물이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내면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내일의 서정」에서는 은행원이 된 정서가 예고 시절 같은 반 친구였던 한사라와의 재회를 계기로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평화의 손을 잡고 발레학원에 다니던 어린 시절과 달리 고등학교에 들어서자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고, 그 무대에서 한사라는 언제나 앞서나가는 존재였다. 정서는 그 시절 한사라에게 느꼈던 위축과 동경, 발레를 그만두기로 했던 순간의 감정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제는 사회복지사가 된 그녀에게서 “아이들이 꿈꿀 수 있도록 돕는 어른이 되는 것”이 꿈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발레를 떠나게 되었는지 천천히 되짚어간다.
「내일의 헌정」에서는 현정이 그동안 외면해왔던 관계의 상처를 마주하며 자기 안에 쌓인 감정의 층위를 확인해간다. 포나를 통해 TLT(연인 모의 테스트)로 소개받은 동준과의 파혼, 그리고 오랫동안 단절한 채 지냈던 동생과의 동거는 현정의 일상에 변화를 가져온다. 그 과정에서 현정은 소아마비 동생을 돌보느라 부모의 관심에서 밀려나던 시간, 가장 믿고 의지하던 평화의 부재로 생긴 공백, 가장 좋아했던 발레마저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기억을 차례로 떠올린다. 그렇게 현정은 애써 피해왔던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게 된다.
「내일의 우연」에서는 부상과 회복을 반복하던 발레리노 연우가 무대에 서기 위해 결국 인공지능 시스템과 연결된 관절 수술을 택하면서 다시 한번 선택의 무게를 체감해나간다. 평소 AI에 회의적인데도 미래를 위해 수술을 감행한 연우는, 몸이 좀처럼 예전의 리듬을 되찾지 못하자 불안해한다. 동료의 부상 소식을 접하면서도 연우는 그저 자신에게도 곧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기대를 놓지 못하고, 결국 의사가 거듭 당부했던 포나 점검을 의도적으로 미루기까지 하며 스스로 해내 보이겠다는 욕심을 부린다. 그러나 무대를 앞두고 무릎이 갑작스레 움직이지 않고, 그 순간 연우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몸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받아들이며 한 걸음 나아간다.
몸의 한계와 마음의 요동을 딛고
삶이라는 무대를 완성해나가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
세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세 편의 발레극이 차례로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정서는 자유로운 스와닐다를 바라보는 인형 코펠리아로(「코펠리아」), 현정은 긴 잠에서 깨어나는 오로라 공주로(「잠자는 숲속의 미녀」), 연우는 사랑과 운명 앞에 선 지크프리트로(「백조의 호수」) 포개진다. 그리고 이것은 『포나』를 보면서 느끼는 또 다른 재미이기도 하다.
“인간의 몸과 삶은 유한했다. 유한한 몸과 삶으로 무한한 꿈을 향하는 인간, 위대하기보다는 어리석어 보였다. 언젠가는 산산이 부서질지도 몰랐다.” - 본문 중에서
“최선을 다해 춤춘다고 해서 최고의 춤을 출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확실한 보장을 받고 싶다면 무대에 서는 건 무리였다. 모든 무대는 단 한 번뿐이었다. 그래서 모든 걸 쏟아내야 했다. 음악이 끝나고, 막이 내리기 전까지.” _본문 중에서
불확실한 미래 앞에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삶이라는 무대에 선 우리는 모두 흔들리고 망설이며 제자리에서 발끝을 고쳐 디딘다. 그러나 그 요동을 딛고 나아가는 방향은 제각각이다. 정서처럼 좋아하는 마음과 뒤처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계속 흔들리다가 끝내는 다른 문을 열기도 하고, 현정처럼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일찍이 발레를 포기하기도 하며, 연우처럼 발레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한길을 향해 끝없이 걸어나가기도 한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결국 선택하고 나아가야 하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물론 그때마다 근심 걱정들이 물 밀 듯이 밀려올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불안이나 두려움에 시달리지 않는 방법은 없다. 그냥 계속하는 수밖에”(‘작가의 말’ 중에서). 생의 자리에서 주저하고 머뭇대는 건 결함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조건이다. 그러니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가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마음, 바로 그 지속하는 움직임이야말로 우리가 삶을 완성해나가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힘이 아닐까.
『포나』는 이렇듯 우리의 삶이 정답을 향해 가는 길이 아니라 매 순간 미세하게 방향을 조정해가는 과정임을 조용히 환기시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의 자리에서 이어갈 수 있는 한 걸음이며, 그 불완전한 움직임이 삶을 생동하게 한다는 사실은, 이 책을 읽는 모든 이에게 가닿아 잔잔한 울림을 줄 것이다.
“넌 좋은 선배는 못 되겠다.”
“내가 좋은 선배 되려고 발레단에 들어간 줄 알아?”
“적어도 나쁜 선배는 되지 말아야지.”
“뭐가 나빠? 쉽게 답을 얻고 싶어 하는 게 문제 아닌가. 그게 좀 찔리니까 선택 운운하는 거지. 발레를 잘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 일단 첫 번째는 인공지능에게 발레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지 않는 거야. 본인이 계속 연습하고 움직여야 알 수 있는 거라고.” (‘내일의 서정’ 중에서)
정서에게 선택한다는 건 엎어놓은 카드 두 장 중 하나를 골라서 뒤집는 것과 같았다. 그 카드 앞면에 무슨 무늬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무엇이든 골라야 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니까. 흘러가다 보면 언젠가는 녹고 무너져서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이 올 테니까. 춤추든 춤추지 않든, 무엇을 선택하든 자유였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랐다. 무겁고 버거웠다. (‘내일의 서정’ 중에서)
새로운 테크닉을 배운다는 건 새로운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었고, 새로운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없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단번에 성공하는 행운은 오히려 불운의 징조였다. 다음에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실패할 테니까. 불가능한 동작들을 가능하게 하려면 실수를 거듭해야 했다. 포기하는 건 곧 실패였다. 성공할 때까지 계속해야 했다. 인간이 어떻게 날 수 있을까? 날 수 없다고 포기하는 순간 인간은 날 수 없었다. 날기 위해 시도하는 이상 인간은 날 수 있는 존재였다. 끔찍하리만치 단순한 진실이었다. (‘내일의 서정’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정은우
2019년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연작소설 『안녕한 내일』(2024), 소설집 『묘비 세우기』(2023), 장편소설 『국자전』(2022) 등이 있다.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했다.
목차
내일의 서정
내일의 헌정
내일의 우연
추천의 말
작가의 말